늦은 봄이었습니다. 늦다고 하기에도 뭐하지만 요사이에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어 봄이 아니라 여름처럼 느껴지는 날씨였습니다.


그 해의 6학년 나는 꽃집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노랑이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아이의 마지막은 처참했습니다. 뿌리 사이에 벌레가 꼬이고 흐물흐물 녹아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가 내가 사랑했던 노랑이가 맞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3일에 한번 물도 주고 다이소 가서 영양제도 꽂아주었는데. 밖에 들고 나가서 햇빛 쬐려 산책도 보냈는데. 무엇인가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랑을 듬뿍 주는 게 제일로 예쁘게 자란다고 들었는데. 왜 내 노랑이는 죽었을까요. 


또 한번의 봄이 왔습니다. 벚꽃은 지고 녹음은 우거지는 그 계절에. 노랑이와 똑 닮은 아이를 또 만났습니다. 꽃집 트럭에서 3000원의 지폐를 내밀고 오는 길에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플라스틱 화분을 꼭 쥡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노랑이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단지 내가 노랑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을 뿐 그 애가 카랑코에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애가 다육 식물이었다는 것도. 그 애의 흙에 꼬였던 것이 나의 사랑은 말할 수 조차 없었던 존재에게 이기적으로 쏟아부어진 소낙비였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아꼈던 것과 같은 작은 존재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까랑이야. 너를 제일로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제일의 사랑을 줄게. 


그리고 너를 어떻게 사랑할지, 식물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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