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피가…”


눈을 뜬 그녀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그는 피범벅이었다.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내긴 했지만 아직 자국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은가?”


그러나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는 그녀가 다시 현실에 돌아와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호흡, 짧은 말에서 느껴지는 떨림, 몸을 가누는 자세에서부터. 결정적으로 그녀는 20대 정도 되는 나이의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테크노크라시의 패러다임이 옅은 이곳, 그녀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네. 고마워요.”


그녀가 눈을 감았다 뜬다.


“대단하네요.”


그녀의 시선이 그의 존재 자체를 응시한다.


“전 많은 괴물을 봐왔어요. 하지만 당신만큼 힘들이지 않고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괴물은 몇 없을거에요.”


“필요하면 효율적인 살상기계도 될 수 있지.”


그녀가 안심했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뱉는다. 


“우리 딸도 그렇게 될거에요.”


그런 끔찍한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좋은 일인가?”


“다행스러운 일이죠. 생명을 빼앗는 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도 그렇게 될거니까요.”


그녀가 옅은 미소를 남긴다.


“이제 어디로?”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디로가도 그렇게 될거니까.”


“그럼 내 고향 땅으로 가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1999년의 여름.


그 부부는 참으로 이상한 부부였다. 족히 나이 차이가 10, 20살 정도 날 것 같은 부부가 도시도 아니고 외진 시골까지 내려와 살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일주일에 한번정도 도시에 나갔다오고, 그 동안 여자는 집을 지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말로 조용하게 살았다. 가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조차 까먹을 정도로. 마을 이장마저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고 이야기하고서는 이내 까먹어버리는 것이다.


그 집이 완전히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그 집에 네다섯살이나 됐을까, 하는 여자 아이가 하나 있는 것이다. 가끔 혼자 마을에 나와있는 그 아이의 행동은 정말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아가! 뭐하는거니 거기서!”


거의 비명 같은 소리. 쉰살은 족히 넘겼을 동네 거주민이 잔뜩 놀란 표정으로 지붕 위를 쳐다본다. 작은 여자아이가 지붕 위를 걷고 있었다. 지붕 위를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둘째치고 지붕 위의 연통 굴뚝을 살펴보는 모습이 범상치 않다.


“아가! 내려오렴!”


비명 같은 소리를 듣고 그녀의 남편이 뛰쳐나온다. 


“아이고, 여보. 저 아이가 또 저러네. 얼른 가서 저, 아빠나 엄마 얼른 불러와! 아가! 거기 꼼짝말고 있어야된다!”


그가 옆집으로 뛰어가 사다리를 빌려오려하지만, 무슨 날인지 다른 일에 쓰느라 없다. 그가 헐레벌떡 돌아와 다시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가 연통을 살펴보더니 꽉 껴안는다.


“아저씨.”


“아이고, 놀래라. 아니, 애기가 저길 어떻게 올라-”


“연통 각도가 잘못됐군요. 혹시 다른 집보다 연통 청소를 더 많이 하시지 않습니까?”



한번 이 집 근처로 산책을 시켜줬을 뿐인데, 틀린 점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것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잘 통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가?”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을 사람이 눈을 껌뻑이며 그의 얼굴을 본다. 분명 처음 마을에 올 때는 그의 얼굴이 인상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볼때마다 그의 얼굴을 까먹는 것 같다. 눈을 돌리자마자 잊혀지는 인상.


“애기가 그게 맘에 안들었나봅니다.”


그가 가볍게 말하며 아이를 본다. 아이가 온 힘을 다해 연통을 밀어낸다. 연통이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렇게 되어야’ 할 방향으로 꺾인다. 



어떻게 해야할지 안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풀어나갈줄도 안다. 천재는 아니지만, 수재 정도는 된다.



발을 헛 딛은 것인지 아기가 지붕위를 구르기 시작한다. 누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지붕에서 굴러떨어지는 아이. 그러나 마치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빗물받이에 걸리고, 빗물받이의 한쪽이 지붕에서 떨어져나오며 마치 미끄럼틀 같은 모습이 된다. 아이가 빗물받이를 타고 내려와, 어른 허리춤 정도 되는 높이에서 떨어져 푹신한 땅에 착지한다. 만화에 나오면 재미 없지만, 현실에서 보면 신기한 정도의 일Coincidental Magic. 



그러나 이 정도로 충분한걸까.



“아빠!”


아이가 달려온다. 그가 달려오는 딸을 안아올린다.


“빗물받이는 좀 있다가 고쳐드리겠습니다.”


“아니, 잠깐, 그럼 저 위엔 어떻게 올라간겨?”


멍한 표정을 짓던 마을 사람이 묻는다. 


“그건…”


그가 대답 대신, 시선을 연달아 집 근처로 옮긴다. 보통 농촌의 낡은 집에는 버리지 않고 남겨둔 물건들이 많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체중을 지탱할 수 없는 물건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하다. 아마 아이가 보기에 지붕으로 올라가는 것은 장난감 퍼즐을 푸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걸을 수만 있는 아이면 올라갈 수 있겠군요.”


“아니 그- 아니, 됐고, 빗물받이는 내가 알아서 고칠테니 애기 괜찮은가 얼른 봐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안고 집으로 향한다.


“하은아, 맘대로 나가면 안된댔지?”


“엄마 친구들이…”


그가 끄덕이며 언덕을 오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정한 가장의 모습.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수십가지 생각이 흐른다.



이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언제 어떻게 떠나보내야할 것인지. 어디까지 아이의 자율성을 남겨놔야 할지, 얼마나 목적의식을 깊게 심어두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위장용의 자아를 심층 표면에 심어놔야할 필요성, 가짜 신분을 만들어줄 수단. 냉전 시대의 수면 학습 및 세뇌기술을 이용한 전투기술의 훈련. 스스로를 속이고도 남을 정도의 심리전 교육의 방법. 



그의 부성애 -정말 부성애라 부를 수 있다면- 는 그것 뿐이다. 아이가 태어난 목적을 이루게 해주는 것. 그는 자유의지나 천부인권 따위는 믿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개념 자체를 만들어 교육한 것이 테크노크라시니까. 있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며 위화감이 드는 감정을 느낀다. 죄책감, 아니면 미안함, 같은 감정이지만 그는 제대로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감정을 느낀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자, 다 왔다.”


그가 하은이를 내려놓는다. 문이 열리며 그의 아내가 걸어나온다. 


“하은아, 들어오렴.”


“네!”


쾌활한 대답과 함께 뛰어들어가는 아이.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한다.



두 사람이 멸망을 막더라도, 멸망을 막는 괴물일 뿐.


그들은 인간의 이유를 마음에 담을 무언가를 길러내고 있었다.



“맛있는거 해줄까?”


“네!”


하은이가 더러워진 옷으로 바닥에 주저 앉는다.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일을 보기 위해선지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녀가 웃으며 가볍게 손을 내젓는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진다. 염동력으로 레버를 돌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인과에서 연유를 생략하고 결과만을 가져온다. 연소작용이라는 기초적인 섭리를 불러내 불을 붙인다. 불은 마치 혀를 낼름거리는 네발동물 같은 모습Spirit을 취한채 타오르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은이가 그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이 집은 다 그런식이다. 


전깃불은 꺼져있지만, 빛 그 자체가 방 안에 감돌며 사방을 환하게 비춘다. 보일러를 떼는 대신 열의 개념 그 자체를 불러내 따뜻함을 가져다준다. 하은이의 부친이 결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면, 모친은 결과 그 자체를 보여준다.


하은이 손을 뻗어 허공에 감도는 빛, 아니, 그 빛을 상징하는 존재Spirit를 만진다. 빛이 부드럽게 풀려져나와 하은이의 팔을 감싼다. 


완전히 이질적인 두 개의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곳.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평화로웠다.




그날 밤.


“포착 완료.”


“국지적 현실 교란 단계 분석 완료. 목표 B의 흔적이 유력합니다.”


AP-42 아말감의 현장 감독관이 된 류가 꺼림칙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명령권한이 없다.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현장에서 실행하는 역할일 뿐. 


“상부에서 명령은?”


“현재 최종 검토… 정정하겠습니다, 현시간부로 승인입니다.”


“공격 개시.”


동시에 지휘 모니터에 병력들의 움직임이 표시되기 시작한다. 그들이 작은 마을에 빠르게 침투하기 시작한다. 민간인들을 제압하기 위한 수면가스가 살포된다. 이 마을의 거주민들은 대체로 고령인 탓에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 곧바로 마을이 조용해진다. 


[1제대, 마을 우측에서 진-]


동시에 1제대 지휘관의 생명 신호가 사라진다.


“알고 있었군.”


류가 담담하게 말한다. 당연하다. AP-42 아말감이 속한 AP 심포지움의 최정예 병력은 일부러 그가 작전에서 제외시켜 놓았다. 지금 투입된 병력은 일부러 그가 골라낸 ‘소모되어도 괜찮은’ 병력이다. 그가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단 하나뿐이다. 목표 A, B가 거주중인 주택에 접근할 것. 철저하게 세뇌된 수하 병력들은 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이다. 


[2제대, 해당 위치에서 정지. 13번 지점으로 이동하도록.]


류는 자신의 전 상관의 약점을 알고 있다. 아니, 모든 테크노크랏의 약점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을 초월하지는 못한다. 기술의 산물이 없으면 그들은 여러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없고, 건물 하나를 통채로 날려버릴 수도 없으며,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3제대, 15번 지점을 거쳐 13번으로 이동하도록.]


따라서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미끼를 던져 시간을 끄는 것은 가능하다. 그는 공간을 찢어 이동할 수 있는 재주는 없으니까. 인간이 달릴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계산해, 그의 이동 경로를 최대한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유니언의 병력이 집에 도달하기 전에 그가 도달 할 수 없게 만든다.


[2제-]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갑자기 3제대의 신호가 사라진다.




[전진.]


3제대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진 것은, 몇초 전이었다.


분명 목표 A는 자신들에게서 한참이나 떨어져있어야할 터였다.


그들의 발 밑에서 무엇인가 튀어올라온다. 오래된 피아노 줄이 팽팽하게 튕겨올라오며 그들의 보호장구가 보호하지 못하는 목과 머리 사이의 틈을 파고든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튄다. 목이 잘려나간 몇구의 시체가 털썩, 하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3제대, 응답 없습니다.”


“뭐?”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적됩니다.”


“목표 A의 위치는?”


“13위치에서 2제대와 교전중입니다. 2제대 생존자 4, 3, 전멸입니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2제대의 전투원이 무릎꿇는다. 


“...”


오 국장으로 불렸던 남자의 손에는 급조한 무기가 들려있었다. 그가 라디오로 만든 간단한 장치를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이제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평소에 틈틈히 만들어둔 함정을 작동시키는 여러개의 리모컨 -리모컨이라기에는, 겨우 기판과 재활용한 외장만 있는 수준이지만- 이 그의 허리춤에 메어져 있었다. 기초적인 전자공학 기술이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장치들이다. 


그들이 어디를 지나가는지 알기 위해선 그런 장치조차 필요 없다. 각 주택마다 설치해 놓은 차임이나, 인간용의 수면가스에 쉽게 잠들지 않는 동물들의 경계어린 울부짖음, 지나치게 간단한 -유니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장비로 만들어놓은 몇가지의 불빛 신호로 충분하다. 거기에 사전에 생각해 놓은 수백가지의 진압 시나리오까지 있으면 유니언의 추적 부대가 어떻게 들어올 것인가, 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의 생각이 맞다면, 지금쯤 피아노줄 함정에 걸린 제대가 목이 잘린채로 뒹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집에서 떨어트리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엄마…”


하은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품속으로 파고든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의 손길에도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하은.


-덜컹.


동시에 문이 열린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흑복을 입은 형상들이 그들에게 기관단총을 겨눈다. 그들의 시선이 하은을 감싸고 있는 여성을 향한다. 피픽, 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이 그들을 덮친다. 



치익-



금속이 녹는 소리.


그녀의 눈짓만으로도 탄환이 허공에서 녹아버린다. 그러나 습격자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훈련받은대로 제일 앞에 있는 자가 나이프를 꺼내든다.


“!”


푹, 하는 소리. 그러나 그것은 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느샌가 그들을 쫓아온 남자의 나이프가 그들의 내장을 찢어놓는다. 극도로 효율적인 움직임. 철저하게 장비면에서 불리한 상황. 그러나 좁은 공간을 그의 이점으로 삼는다. 다수의 움직임을 계산해 나이프를 흘려넘기고 권총의 궤도를 틀어놓는다. 툭, 치는 것만으로도 균형을 무너트리고 상대의 무기를 빼앗아 목을 베고 배에 흉탄을 박아넣는다.


“...”


순식간에, 그가 유니언의 추적팀을 모조리 사살한다.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하은이를 보며 그가 말한다.


“...교육에 별로 좋지 않을텐데.”


그러나 겁먹은 표정을 짓고도 눈을 떼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불리한 상황에서 어떻게 활로를 찾는지, 무엇이 유리하고, 무엇이 불리한지를 읽는다.


“무슨 소리에요.”


하은이를 쓰다듬으며 대답하는 그의 아내. 그가 그녀의 눈빛에서, 마치 프로제니터가 자신이 만들어낸 클론을 보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읽어낸다. 


“...”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곧 돌아오지. 이사를 가야겠군.”


그녀가 살짝 웃는다. 그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1개 제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류 감독관이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한다. 그는 1개 제대보다는 집 안에서 죽은 제대의 바디캠 영상에 더 관심이 있었다.



배신자에게, 딸이 있다.



“폭격 준비.”


“폭격 말입니까? 상부에서…”


“허가를 받을 시간은 없어. 상공에 체류하고 있는 기체를 부르도록.”


“8번 제대 전멸.”


그가 손짓하며 지시한다.


“8번 제대 지휘관의 통신용 스피커를 연결해.”




따뜻한 피가 땅에 뿌려진다. 오늘도 수십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오늘은 더 이상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돌아서려는데,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의 어깨에 달린 통신기가 익숙한 목소리를 전달한다.


“듣고있나?”


자신의 부관이었던 요원의 목소리.


“...류.”


“당신이 패배했다는걸 알려주고 싶군, 배신자.”


“네 추적부대는 전부 죽었다. 대충 너도 어디있는지 알겠군. 각오는 됐겠지?”


저번처럼, 머리까지 쳐낼 생각이다.


“당신이 집에서 죽인 내 부하들이 자폭 조끼를 입고 있는건 알고 있나? 지금 막으러가도 늦었을거다. 그 여자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딸은 죽겠지.”


그가 칼을 바닥으로 던지며 대답한다.


“내 아내가 막아줄거다.”


“아니, 그 여자는 다른 걸 막느라 바쁠 걸.”


동시에 통신이 끊긴다.


그와 함께 하늘을 밝은 불빛이 가른다. 이터레이션X의 비충격 초음속 폭격기들이 날아오며 그의 집에 미사일을 퍼붓는다. 동시에 공간이 휘어지며 미사일들을 사방으로 흩어놓는다. 


“...!”


많다.


아주.


도시 몇 블록을 깔끔하게 날려버릴 정도의 화력. 처음에는 날아들기만 하던 미사일들이 착탄 없이 공중에서 폭발한다. 그러나 폭발이 지상을 휩쓸기 전에 공간이 휘며 불꽃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공간 그 자체가 압축되며 점으로 줄어들어 사라지고, 폭발이 없어져버린다. 뒤이어 다탄두 마이크로 미사일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집을 덮친다. 바로 다음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폭발하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마이크로 미사일들이 공간의 왜곡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공격은 계속된다.


자폭 조끼의 폭발을 가리기 위한 미끼. 그러나 엄청난 화력의 미끼다. 그가 전속력으로 달린다.


그의 마음속에 걱정, 이라는 감정이 정말 오랜만에 떠오른다. 그의 머리 위에서 마지막 폭격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집 앞에 도착한 그의 눈에 마당에 나와있는 아내가 보인다.


“하은이는? 자폭까지 막은건가?”


그의 물음. 그녀가 말없이 문 안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고개를 흔든다. 폭발의 흔적 같은 것은 없다. 그가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집 안으로 뛰어든다. 그 안에는 의외의 광경이 있었다.


“...”


조끼를 해체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하은이였다. 그녀의 머리 위로 열쇠와 자물쇠로 만들어진 것 같은 사람 모양의 작은 형상이 떠돌고 있었다. 그 형상이 몇초마다 풀어졌다가, 다시 원래 모양대로 조립된다. 하은이가 막힐때마다, 그것이 가야할 길을 가르켜준다. 자그마한 손으로 칼날을 잡고 전선을 잘라내는 아이의 모습은, 기괴했다. 그러나 하은이에게는 지금까지 풀어온 그 어떤 것보다 재미있는 일이리라.


“아빠! 이거 재밌어!”


하은이의 목소리에서 흡족해하는 것이 가감없이 느껴진다. 문득 자기 딸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봤죠?”


그의 아내가 말한다. 그제서야 왜 그녀가 자신을 택했는지 깨닫는다. 그녀는 오직 결과에 바로 도달하는 것 밖에 가르쳐줄 수 없다. 반대로 그는 과정을 걷는 방식밖에 가르쳐줄 수가 없다.


“그렇군.”


그가 담담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어둠속을 바라본다. 이미 그들을 쫓는 류, 아니, 류 감독관은 도주했을 것이다. 그의 수법이 서서히 노출되고 있다. 어쩌면 몇년 내로 정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오지로 피해야할지도 모른다. 




“류 감독관.”


“네.”


“자네가 오늘 낭비한 무기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알고 있습니다. 낭비했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그가 침착하게 상부의 질책성 질문에 대답한다.


“낭비가 아니라고? 화력지원 한두번은 모르나 어제 자네의 명령은 월권행위라네.”


“설명할 시간이 없었을 뿐입니다.병력들에게 자폭 조끼를 입혀놓은 상태였기에 목표 B의 시선을 끌어줄 것이 필요했습니다. 보고드린대로 그에게는 딸이 있습니다.”


“그의 딸보다 그와 그 현실교란자가 더 우선적인 목표임을 망각하지 말게.”


“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작전이 몇년이상 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침착하고 무감정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하나하나씩 무너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자네의 의견을 구했던가? 자네는 실행만 하고 현장 지휘만 하-”


그 순간 홀로그램 통신에 노이즈가 낀다. 동시에 류 감독관의 VDAS에 긴급 메시지가 표시된다. 


[인도-방글라데쉬 지역의 에이펙스급 시나리오가 현 시간부로 아포칼립스급 시나리오로 격상. 코드: 아포칼립스 발동. 이차원 병기 및 궤도 위성의 사용은 해당 작전 용으로 제한됨. 아시아 지역의 요원들은 긴급 징발에 대비할 것.]


홀로그램이 복구되었으나, 아무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가 즉시 첩보 사항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인도에서 방글라데쉬에 이르는 지역에서 극도로 위험한 현실교란종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고대의 괴물이 깨어나 모조리 피를 마셔버린 날. 구름이 깔리고 그 밑에서 피와 살을 탐하는 괴물들이 지축을 뒤 흔든 날. 죽음의 땅과 산자의 땅에서 동시에 원한의 덩어리가 공명한 그 날.


아바타 스톰Avatar Storm이라 불릴 재앙이 모든 깨어난 자들을 덮치게 된 그 날이 오늘이라는 것을.




“아아아아악!”


언덕 위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이 울려퍼진다. 그 비명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한데 응축되었다가, 폭발적으로 뻗어나간다. 비명이 언덕을, 건물을, 그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쓰러진 유니언의 요원들을, 나무를, 농사가 한창인 논의 벼들을, 그리고 집 안에서 자고 있던 아이를 훑고 지나간다. 


오 국장으로 불렸던 사내가 마을 한가운데를 달린다. 이 마을에서 이 정도 규모의 사이킥 비명을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광경이 그의 눈을 스친다.


무심할 정도로 반짝이는 별들.


그 아래 살아있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썩어간다.


수면제에 취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노인이 머리카락부터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농기구는 순식간에 불길한 녹의 색으로 물들며 마치 유리가 깨지듯 깨져버린다. 옆집의 중년 여성은 입에서 피를, 눈가에서는 녹아내리는 흰자를 흘리며 그대로 절명한다.


그가 죽인 테크노크라시의 전투요원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엄청난 속도로 흐르며 시체가 썩고, 벌레에 먹히고, 백골화 된다. 어떤 시체는 마치 살아나려는 것처럼 경련한다.


“-윽.”


그가 머리를 죄어오는 두통을 느낀다. 그것은 그녀의 아내가 토해내는 사이킥 비명 때문이 아니다. 괴물들의 세계를 영원히 바꿔버릴 끔찍한 일Avatar Storm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전 지구적인 규모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은 멈추지 않는다. 그가 집안으로 뛰어들다시피한다. 바닥에 누운채 경련하는 그의 아내.


“괜찮은-”


그녀가 다시 한번 비명지른다. 엄청난 강도의 사이킥 비명. 영혼 -그런 것이 있다면- 그 자체를 뒤흔들것 같은 울부짖음.


그녀의 눈에 거대한 재앙이 보인다.



이면의 세계가 통째로 산산조각나는 것을.


고대의 흡혈귀가 토해낸 저주로 그 후손들이 서로 잡아먹는 운명에 처해진다.


죽은자들의 땅이 산산조각나며 집착에 가득한 망령들을 흩어놓는다.


지옥의 창살이 휘어지며 악마들이 땅으로 쏟아진다.


수많은 깨어난 자들의 아바타가 빨려나가고, 움브라에 머물던 자들이 폭풍에 휩쓸려 다른 무엇인가로 변해버린다. 


그 재앙은 그녀의 존재마저 죄여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패러독스에 고통 받는 그녀의 정신과 영혼이 현실세계에서 찢겨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눈앞에 닥친 재앙이 아닌, 그녀의 딸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 내 사랑… 내가 잘못했어요…”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는다.


“무슨 말이지?”


“우리 아이를… 남기고 그냥 사라져야 했는데… 욕심...에…”


그가 고개를 들어 하은이를 본다.


“...”


활기찬 기운이 넘치던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총명함은 그대로지만, 무엇인가 이상하다. 


“하은아.”


하은이가 엄마의 말에 반응해서 천천히 다가온다. 앉은채로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가 하은이의 눈동자, 그리고 행동을 본다. 그녀의 손에서 무언가 찾고 있었다. 그가 본능적으로 느낀다. 생명, 지속, 따뜻함을 찾는 손길이 아니다.


사라짐. 그 자체를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 사랑…”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환상이 밀려들어온다.



피의 바다.


죽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죽음.



수백의 죽음. 수천의 죽음. 그 너머로 보이는 수백만의 죽음, 수억의 죽음. 그것을 뒤덮은 붉은 파도. 내장과 굳은 피의 산.



그 위에 서 있는 여성. 알 수 있다. 자신의 딸, 오하은이 서 있는 것을.



그러나 순식간에 그 파도가 쓸려나간다.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 운명이 바스라지는 모습이. 대신 그 파괴적인 운명을 짓밟고, 그 힘을 삼키고 나아가는 존재가 있다. 피하고자 하지만 피할 수 없음에 자조하는 존재가 있다. 그가 보아온 테크노크랏이나 트래디션 메이지와는 다르다. 미래,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이 아니라 단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사랑이라기에는 뒤틀린 감정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그 존재가 어두운 방에 도달한다.


검붉은 무언가가 된다.


그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차린다.


그것도, 자신의 딸이다.



“-윽.”


그가 신음하며 살짝 물러선다.


“이건... 뭐지?”


“미안해요. 우리 딸이 세상을 구할줄 알았는데, 그 반대… 반대가 됐어요…”


그녀가 숨을 가쁘게 내쉰다. 


“우리… 하은이가… 세계를 삼켜버릴…”


“그 다음은?”


“그… 그 다음… 아직… 아직 운명이 끊어지지 않았어요.. 섭리가… 우리 아이가…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이지?”


“안돼요… 당신은… 당신들은 영혼에 대해 알지 못하니까… 내가… 내가 있어야 하는데… 운명을… 분리할 수 있는 건… 내…”


그녀가 점점 사라져간다. 몸은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영혼, 그녀의 본질이 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손 대지… 못하…”


죽음이 아닌, 추방.


“운명을 분리한다고?”


“내… 내 사랑… 이제… 당신… 밖에… 미안...해…”


그녀의 눈동자가 텅, 빈다.


백치가 아니라, 그 본질이 사라진 인간. 


잠깐이나마 일상을 공유했던 그의 아내는 이제 막 태어난 클론이나 다름없는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그가 그녀의 손을 놓는다. 그리고 하은이를 본다. 그가 무표정한 하은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이제서야 이해한다. 사이킥 비명에 휘말리고도 멀쩡한 것이 아니었다. 막 깨어나고 있는 어린 천재성Genius, 아니면 아바타Avatar가 뒤틀려버린 것이다. 오직 멸망만을 원하는 영혼Nephandi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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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주에 벌어진 일, 어떻게 네판디가 됐는가, 하은이 엄마는 어떻게 되었는가, 어떻게 그런 메타-현실/메타-게임적 패러다임을 가지게 되었는가, 왜 하은이 엄마가 트래디션 메이지가 아닌 이너서클의 요원을 선택했는가... 등에 관한 이야기.


참고로 각성/계몽된자의 소양이 100% 유전되거나 한다는 설정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 패러다임의 '교육'을 통한 수정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야 테키<>트래디션 상호간 전향/세뇌가 있겠죠)


다음편에 외전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