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같은 걸 처음 시작했던 이야기이니,
가볍게 읽어주길...

때는 언제였나,
대학시절 룸메 한명과 같이 자취방을 얻어 휴학계내고 마음대로 인생을 살던 시절이었다.

이 룸메라는 녀석은 상당한 여성혐오증 환자였어.
어머니부터 해서 이모, 고모한테 많이 학대? 같은걸 당하기도 하고, 당시에 유행하던 김치녀... 그런거에 완전히 몰두하던 녀석이었지.

하루는 자기 전에 누워서, 이 녀석의 여성혐오에 대한 내용을 들어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든거야. 그리고 아무생각 없이 생각났던 말을 내뱉었어.

"야. 그러면 너가 점심시간에 분수 근처에서 쉬고 있는데 엄청 예쁜 여자가 너 옆자리에 앉으면 어떡할래? 그래도 안사귈래?"

하고, 아무 생각없이 말해버린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어.

나는 녀석을 놀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귀엽고 상냥한 여학생을 연기했지. 이 여자는 룸메가 싫어하는 나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온갖 드라마틱한 상황과 말도 안되는 전개를 통해 결국 룸메는 이 여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고, 동이 틀 무렵..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되었어.

잠을 한 참 자고 나니까, 묘한 흥분감이 있더라. 이게 엄청 재미있게 느껴졌어. 그래서 그때 친하던 친구들과 후배들을 데리고 이상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 그게 바로 내 TRPG(라고 인정받을 순 없겠지만) 경험의 시작이었고...

아프리카 방송에서 시작했지. 룰 같은건 없었어. 다만 보통  gm한명이 플레이어 여럿을 상대하는게 보통이라면, 내 플레이에서는 GM이 여러명이고, 한 명의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시나리오가 진행되었어.

말하자면 플레이어는 혼자.
그리고 4-5 명정도 되는 연기자가 각자 맡은 NPC를 연기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지.

그리고 아프리카에 방을 파 놓고 배경화면을 띄우고, BGM을 바꿀 준비를 하고.. 누군가가 접속하길 기다렸어.
그리고 접속한 플레이어는

"사실이 아니어도 좋으니 몰입을 위해 기본 개인 설정이랑 좋아하는 이상형을 알려주세요!" 라는 말에 흔쾌히 내용을 말해주었어.

그러면 매니저방(스텝들이 모인 곳) 에서 약 5분간 폭풍같이 회의가 시작되었지. 어디서 만나나, 어떤 스타일인가, 누가 나가서 연기하겠나. 어떻게 전개할까 등등.. 그리고 5분 지나면 아무것도 준비 안된 상태에서 바로 내용을 시작했고. ㅎ

나는 거기의 GM과 나레이션 역을 맡았고. 처음 플레이 한 실시간 연애시뮬레이션은 놀랍게도.. 성공적이었어. 더 놀라웠던건 그 플레이어가 흥미를 느끼며, 스텝에 편입되었다는거야. ㅎㅎ

즐거운 순간들이었지. 어느 때의 히로인은 산중턱 외로운 고택의 병약한 소녀이기도 했고, 편의점에서 힘겹게 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귀여운 알바생이기도 했지.
때로는 조폭들의 위협에 쫓기는 위험천만한 모험도 있었고!

그때마다 다른 스탭들이 나가 자기마다 연기를 펼쳤고, 플레이어에게 우울증이 해소되었다며 감사의 말을 듣기도 했었지. 그 시간들도 결국 바쁜 일상에 묻혀 없어져 버렸지만.

그때는 그게 TRPG비슷한 것이라는 것도 몰랐고, 최근에서야 TRPG를 다시 하게 되었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

TRPG 정말 재미있지. 내 캐릭터를 플레이하거나 다른 캐릭터들과 마주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 있는 수 많은 반짝반짝한 가능성과 관계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숨을 쉬는 것 같이 느껴져. 그리고 그 많은 대사들과 선언들이 의미가 되어 결말을 향해 치달아 갈때 느끼는 묘한 해방감이나. 세션이 끝나고 난 다음 느끼는 벅찬 감정과 안정감도 너무 좋아.

더 많은 재미있는 세션이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대화랑 멋진 장면들이 있으면 좋겠다.
로그지가 산더미같이 쌓일 만큼 다양하고 많이 TRPG를 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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