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붙임
D&D로 고레벨 플레이를 하고 있을 때의 일. 당시 마스터도 플레이어들도 몇 년 이상의 경험을 쌓아 온 베테랑들이었고, 저러한 케이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노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레주가 위에서 언급한 'TRPG에서 캐릭터의 수치적 강함은 결국 마스터의 안배 앞에서 의미 없다'는 깨달음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고, 마스터와 플레이어들 간의 은근한 대립구도를 형성해서는 서로 서로 진의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수싸움을 하는 상태였습니다. 여러 모험을 거치고 레벨업을 하며 몇 번 정도는 밤새 룰북과 D&D 제작사 홈페이지의 QNA 코너, 포럼 란을 뒤져서 알아낸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주문 콤보로 거기까진 준비 못한 마스터의 안배를 뚫고 물을 먹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 마스터의 신중한 낚시질에 걸려 들어 좋은 마법무기를 잃어 버리고 간신히 도망치기도 했고.... 뭐 그런 비교적 평범한 '연륜이 제법 쌓인,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마스터와 플레이어들도 제법 고레벨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토리도 탄력을 받아서, 배경 세계에서도 제법 악명과 세력이 있던 상당히 강한 마왕급 중간 보스를 힘들게 물리치고, 그 배후에서 암약하고 있던 대마왕급 최종 보스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습니다. 마왕성을 탈탈 털은 캐릭터들은 거기서 봉인되어 있던 강력한 고대의 주문이 적힌 마법서적들과 희귀하고 강력한 마법 아이템을 잔뜩 발견했습니다. 그걸 반영해서, 이번엔 마스터가 지금까지 봉인하고 있던, 강력한 옵션 룰이 잔뜩 담긴 추가 룰북을 해금해주고 있는 옵션 룰과 아이템을 마음껏 가져다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환호했습니다.
그 때까지 플레이어들은 이게 지옥의 문, 마스터가 공들여서 준비한 회심의 함정카드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파티는 이미 마왕의 공세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었고, 리더 격인 전사는 공주와 한참 썸을 타고 있었습니다. 이 공주 NPC가 좀 특별했는데, 플레이 초반부터 꾸준하게 등장해 캐릭터들을 다방면으로 도와주기도 하고 좋은 아이템도 제공해 주고 하면서 캐릭터들은 물론 플레이어들의 호감까지도 꽤 쌓여 있었습니다. 다음 패턴은 예, 뻔하죠? 대마왕이 공주를 납치해갔습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도 이것까지는 예상하고 있었고요. 새로이 얻은 강력한 아이템과 주문들의 힘을 빌려 방어를 뚫고 공주가 잡혀 있는 제단으로 향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소소하게 플레이어들은 그간 갈고 닦은 룰에 대한 지식으로 대마왕의 부하들을 유유히 격파해 갔고요("원래 시간정지 주문을 쓰면 그 동안은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격마법 같은 걸 쓸 수 없지. 하지만 시간정지를 건 뒤 시간정지의 지속 시간이 끝난 뒤에 효과가 발동되도록 세팅해 둔 다른 공격주문들을 미리 잔뜩 깔아둔다면 어떨까!" 등등). 좀 빡세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해 볼만한 난이도의 전투들이 이어지고 캐릭터들은 제단으로 가기 시작했고요. 드디어 클라이막스에 접어 들었고 대마왕의 직속 엘리트 부하들은 '일정 범위 내의 주문 사용을 아예 봉인해 버리는' 주문이나 '마법 아이템 효과를 억제해 버리는' 온갖 사악한 수단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밀고 들어오다가 그런 식으로 근본적인 선에서 능력을 차단하거나 억제해 버리는 능력을 상대하게 된 캐릭터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래도 어떻게든 힘들게 격파하고 제단까지 왔습니다. 거기에는 묶여 있는 공주가 있었고, 그 옆에는 지금껏 몇 번 나타나서 캐릭터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적 있는, 대마왕이 아끼는 킹왕짱 쎈 베리베리 스페셜한 골렘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거의 모든 주문 효과에 면역, 미칠 듯한 맷집과 다종다양한 주문 유사 능력, 마법사나 도둑 같은 좀 피통이 빈약한 캐릭터는 한 방에 빈사할 만한 파워로 떡칠한). 그리고 이번에는...
올ㅋ 앞서의 전투에서 캐릭터들을 괴롭힌 주문 사용 봉인이나 아이템 억제 효과가 없네요? 플레이어들은, 피차 전력을 다해 싸워보자는 마스터의 도전장으로 이걸 받아 들였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플레이어들은 앞서의 전투에서 억눌렸던 욕구를 마음껏 풀었습니다. 텔레포트해서 도망칠 수 없도록 결계도 쳐놓고, 재생하지 못하도록 저주도 걸고, 버프도 거의 10개 넘게 덕지덕지 바르고, 기타 등등. 드디어 전사의 마법검(죽은 상대는 절대로 재생이나 부활할 수 없는 특수 효과가 붙어 있었습니다)이 골렘의 코어를 가르고, 박살나는 골렘.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캐릭터들이 구출해야 했던 공주였습니다. 그리고 제단에 묶여 있던 공주의 환상이 사라지고, 환상으로 가려져 있던 대마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매력적인 NPC 공주 캐릭터를 만들어 내보내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호감까지 얻어낸 것도, 마왕을 쓰러뜨린 뒤 강한 주문과 아이템들을 잔뜩 얻었던 것도, 이 전투 직전 캐릭터들의 자원을 통제함으로서 욕구불만을 유도한 것도, 그래서 이번 전투에 모든 화력을 쏟아내게 한 것도, 결정적으로 전사에게 재생 및 부활을 할 수 없게 하는 마법검을 준 것도, 모두가 마스터의 심리적인 함정이었습니다. 전사는(그리고 전사의 플레이어는) 멘붕했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들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대마왕은 그 틈에 캐릭터들이 골렘 속에 갇혀 있는 공주를 잔인하게 패잡는 모습을 녹화한 영상을 저 멀리 떨어진 왕궁에서 캐릭터들의 승리와 공주 구출을 기원하며 잠들었던 국왕의 꿈에 전송했습니다.
플레이는 중지됐고, 이건 너무 악랄하지 않냐고 플레이어들은 마스터에게 항의했습니다.
마스터:"그 정도는 예상했었어야지.... 나는 룰 전혀 어긴 거 없고.... 대마왕은 교활하고 잔인하다고 간접적으로 여러번 경고했고.... 공주를 자기 손으로 죽이게 한 건 지나치다고? 글쎄 내가 강요를 했냐 뭘했냐..... 공주 마음에 든다고 한 건 너였고.... 난 거기에 반응해서 니 캐릭터랑 공주를 엮어주기 직전까지 갔을 뿐이고.... 그러게 눈 앞에 보이는 게 적인 거 같다고 무작정 때려 잡으려 들면 안 되고.... 이렇게 된 건 결국 니네들이 무모하게 행동해서고...."
뒷 이야기가 좀 더 있습니다. 이걸 계기로 플레이어들과 마스터 사이에는 큰 골이 생겼지만 이후 마스터도 자기가 좀 지나쳤다고 사과했고, 그 전사의 플레이어도 멘탈을 추스려서는 그럭저럭 플레이를 속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캐릭터들을 지원하던 왕국의 국왕과 병사들도 모두 적으로 돌아서서는 캐릭터들을 쫓고 있고 캐릭터들은 그간 정 붙인 병사들을 차마 죽이지 못해서 희생을 감수해 가며 이 과정에서 그렇게 빵빵하던 아이템과 주문 능력도 잃어 버리고 레벨도 깎이고 온갖 삽질을 다하며 대마왕에게 역습을 할 기회를 노립니다(생각해 보면 이 시점에서 이미 더 이상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는 없어졌습니다). 앞서의 사건의 임팩트가 컸던 데다가 다들 정신적으로 좀 피폐해져서 편집증적으로 환상과 거짓말을 탐지하는 능력과 아이템을 얻는데 투자하던 참에 자신은 대마왕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며 대마왕의 부하가 접근해 옵니다. 갖고 있는 마법적 수단과 평범한 수단을 총동원해 본 결과 진실이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사실 이 놈은 대마왕에게 불만을 갖고 있으며 캐릭터들을 도우려고 하는 거 자체는 진실이되 그 뒤에는 캐릭터들의 통수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막판에 결국 그걸 알아내서는 대마왕과 그 놈을 함께 엮어서 물리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이미 왕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가 캐릭터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캐릭터들은 지키고자 했던 고향 왕국도 아꼈던 사람들도 능력도 죄다 잃어 버리고서 일부는 죽을 때까지 도망 다니고 하나는 지치고 좌절한 나머지 자살하고 예의 그 전사는 끝내 스스로 대마왕의 왕관을 쓴다는 엔딩을 맞이했습니다.
끝나고 나서 시발 뭐 이 따위냐고 열 받은 플레이어들이 마스터한테 따졌지만
마스터:"나도 내 딴에는 캐릭터들이 대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길 진심으로 바랐고... 하지만 그 정도로 큰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역경이 있어야 되는 법이고..... 난 단지 마스터로서 니네가 그 역경을 돌파하고 세상을 구하는 걸 보고 싶었고....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역경을 줬을 뿐이고.... 결국 이렇게 끝나서 유감이긴 한데 마스터로서 클리어로 가는 길을 떠먹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니들이 예측하고 대비 못한 건 어쩔 수 없고..... 니들이 룰북 파고 홈페이지 포럼란까지 뒤져보는 그 열성을 발휘해서 시나리오 점검하고 복선들 잘 파악했다면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을 테고... 난 아무 잘못도 없고...."
이런데 있음
D&D로 고레벨 플레이를 하고 있을 때의 일. 당시 마스터도 플레이어들도 몇 년 이상의 경험을 쌓아 온 베테랑들이었고, 저러한 케이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노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레주가 위에서 언급한 'TRPG에서 캐릭터의 수치적 강함은 결국 마스터의 안배 앞에서 의미 없다'는 깨달음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고, 마스터와 플레이어들 간의 은근한 대립구도를 형성해서는 서로 서로 진의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수싸움을 하는 상태였습니다. 여러 모험을 거치고 레벨업을 하며 몇 번 정도는 밤새 룰북과 D&D 제작사 홈페이지의 QNA 코너, 포럼 란을 뒤져서 알아낸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주문 콤보로 거기까진 준비 못한 마스터의 안배를 뚫고 물을 먹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 마스터의 신중한 낚시질에 걸려 들어 좋은 마법무기를 잃어 버리고 간신히 도망치기도 했고.... 뭐 그런 비교적 평범한 '연륜이 제법 쌓인,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마스터와 플레이어들도 제법 고레벨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토리도 탄력을 받아서, 배경 세계에서도 제법 악명과 세력이 있던 상당히 강한 마왕급 중간 보스를 힘들게 물리치고, 그 배후에서 암약하고 있던 대마왕급 최종 보스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습니다. 마왕성을 탈탈 털은 캐릭터들은 거기서 봉인되어 있던 강력한 고대의 주문이 적힌 마법서적들과 희귀하고 강력한 마법 아이템을 잔뜩 발견했습니다. 그걸 반영해서, 이번엔 마스터가 지금까지 봉인하고 있던, 강력한 옵션 룰이 잔뜩 담긴 추가 룰북을 해금해주고 있는 옵션 룰과 아이템을 마음껏 가져다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환호했습니다.
그 때까지 플레이어들은 이게 지옥의 문, 마스터가 공들여서 준비한 회심의 함정카드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파티는 이미 마왕의 공세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었고, 리더 격인 전사는 공주와 한참 썸을 타고 있었습니다. 이 공주 NPC가 좀 특별했는데, 플레이 초반부터 꾸준하게 등장해 캐릭터들을 다방면으로 도와주기도 하고 좋은 아이템도 제공해 주고 하면서 캐릭터들은 물론 플레이어들의 호감까지도 꽤 쌓여 있었습니다. 다음 패턴은 예, 뻔하죠? 대마왕이 공주를 납치해갔습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도 이것까지는 예상하고 있었고요. 새로이 얻은 강력한 아이템과 주문들의 힘을 빌려 방어를 뚫고 공주가 잡혀 있는 제단으로 향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소소하게 플레이어들은 그간 갈고 닦은 룰에 대한 지식으로 대마왕의 부하들을 유유히 격파해 갔고요("원래 시간정지 주문을 쓰면 그 동안은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격마법 같은 걸 쓸 수 없지. 하지만 시간정지를 건 뒤 시간정지의 지속 시간이 끝난 뒤에 효과가 발동되도록 세팅해 둔 다른 공격주문들을 미리 잔뜩 깔아둔다면 어떨까!" 등등). 좀 빡세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해 볼만한 난이도의 전투들이 이어지고 캐릭터들은 제단으로 가기 시작했고요. 드디어 클라이막스에 접어 들었고 대마왕의 직속 엘리트 부하들은 '일정 범위 내의 주문 사용을 아예 봉인해 버리는' 주문이나 '마법 아이템 효과를 억제해 버리는' 온갖 사악한 수단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밀고 들어오다가 그런 식으로 근본적인 선에서 능력을 차단하거나 억제해 버리는 능력을 상대하게 된 캐릭터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래도 어떻게든 힘들게 격파하고 제단까지 왔습니다. 거기에는 묶여 있는 공주가 있었고, 그 옆에는 지금껏 몇 번 나타나서 캐릭터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적 있는, 대마왕이 아끼는 킹왕짱 쎈 베리베리 스페셜한 골렘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거의 모든 주문 효과에 면역, 미칠 듯한 맷집과 다종다양한 주문 유사 능력, 마법사나 도둑 같은 좀 피통이 빈약한 캐릭터는 한 방에 빈사할 만한 파워로 떡칠한). 그리고 이번에는...
올ㅋ 앞서의 전투에서 캐릭터들을 괴롭힌 주문 사용 봉인이나 아이템 억제 효과가 없네요? 플레이어들은, 피차 전력을 다해 싸워보자는 마스터의 도전장으로 이걸 받아 들였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플레이어들은 앞서의 전투에서 억눌렸던 욕구를 마음껏 풀었습니다. 텔레포트해서 도망칠 수 없도록 결계도 쳐놓고, 재생하지 못하도록 저주도 걸고, 버프도 거의 10개 넘게 덕지덕지 바르고, 기타 등등. 드디어 전사의 마법검(죽은 상대는 절대로 재생이나 부활할 수 없는 특수 효과가 붙어 있었습니다)이 골렘의 코어를 가르고, 박살나는 골렘.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캐릭터들이 구출해야 했던 공주였습니다. 그리고 제단에 묶여 있던 공주의 환상이 사라지고, 환상으로 가려져 있던 대마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매력적인 NPC 공주 캐릭터를 만들어 내보내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호감까지 얻어낸 것도, 마왕을 쓰러뜨린 뒤 강한 주문과 아이템들을 잔뜩 얻었던 것도, 이 전투 직전 캐릭터들의 자원을 통제함으로서 욕구불만을 유도한 것도, 그래서 이번 전투에 모든 화력을 쏟아내게 한 것도, 결정적으로 전사에게 재생 및 부활을 할 수 없게 하는 마법검을 준 것도, 모두가 마스터의 심리적인 함정이었습니다. 전사는(그리고 전사의 플레이어는) 멘붕했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들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대마왕은 그 틈에 캐릭터들이 골렘 속에 갇혀 있는 공주를 잔인하게 패잡는 모습을 녹화한 영상을 저 멀리 떨어진 왕궁에서 캐릭터들의 승리와 공주 구출을 기원하며 잠들었던 국왕의 꿈에 전송했습니다.
플레이는 중지됐고, 이건 너무 악랄하지 않냐고 플레이어들은 마스터에게 항의했습니다.
마스터:"그 정도는 예상했었어야지.... 나는 룰 전혀 어긴 거 없고.... 대마왕은 교활하고 잔인하다고 간접적으로 여러번 경고했고.... 공주를 자기 손으로 죽이게 한 건 지나치다고? 글쎄 내가 강요를 했냐 뭘했냐..... 공주 마음에 든다고 한 건 너였고.... 난 거기에 반응해서 니 캐릭터랑 공주를 엮어주기 직전까지 갔을 뿐이고.... 그러게 눈 앞에 보이는 게 적인 거 같다고 무작정 때려 잡으려 들면 안 되고.... 이렇게 된 건 결국 니네들이 무모하게 행동해서고...."
뒷 이야기가 좀 더 있습니다. 이걸 계기로 플레이어들과 마스터 사이에는 큰 골이 생겼지만 이후 마스터도 자기가 좀 지나쳤다고 사과했고, 그 전사의 플레이어도 멘탈을 추스려서는 그럭저럭 플레이를 속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캐릭터들을 지원하던 왕국의 국왕과 병사들도 모두 적으로 돌아서서는 캐릭터들을 쫓고 있고 캐릭터들은 그간 정 붙인 병사들을 차마 죽이지 못해서 희생을 감수해 가며 이 과정에서 그렇게 빵빵하던 아이템과 주문 능력도 잃어 버리고 레벨도 깎이고 온갖 삽질을 다하며 대마왕에게 역습을 할 기회를 노립니다(생각해 보면 이 시점에서 이미 더 이상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는 없어졌습니다). 앞서의 사건의 임팩트가 컸던 데다가 다들 정신적으로 좀 피폐해져서 편집증적으로 환상과 거짓말을 탐지하는 능력과 아이템을 얻는데 투자하던 참에 자신은 대마왕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며 대마왕의 부하가 접근해 옵니다. 갖고 있는 마법적 수단과 평범한 수단을 총동원해 본 결과 진실이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사실 이 놈은 대마왕에게 불만을 갖고 있으며 캐릭터들을 도우려고 하는 거 자체는 진실이되 그 뒤에는 캐릭터들의 통수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막판에 결국 그걸 알아내서는 대마왕과 그 놈을 함께 엮어서 물리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이미 왕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가 캐릭터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캐릭터들은 지키고자 했던 고향 왕국도 아꼈던 사람들도 능력도 죄다 잃어 버리고서 일부는 죽을 때까지 도망 다니고 하나는 지치고 좌절한 나머지 자살하고 예의 그 전사는 끝내 스스로 대마왕의 왕관을 쓴다는 엔딩을 맞이했습니다.
끝나고 나서 시발 뭐 이 따위냐고 열 받은 플레이어들이 마스터한테 따졌지만
마스터:"나도 내 딴에는 캐릭터들이 대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길 진심으로 바랐고... 하지만 그 정도로 큰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역경이 있어야 되는 법이고..... 난 단지 마스터로서 니네가 그 역경을 돌파하고 세상을 구하는 걸 보고 싶었고....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역경을 줬을 뿐이고.... 결국 이렇게 끝나서 유감이긴 한데 마스터로서 클리어로 가는 길을 떠먹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니들이 예측하고 대비 못한 건 어쩔 수 없고..... 니들이 룰북 파고 홈페이지 포럼란까지 뒤져보는 그 열성을 발휘해서 시나리오 점검하고 복선들 잘 파악했다면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을 테고... 난 아무 잘못도 없고...."
이런데 있음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소설을 써야 할 사람이, 간혹 여러 사람 끌어들이며 트라우마를 입히는 경우들이 있는 거여요.
저 마스터가 딱히 잘못됐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과는 별개로 유감표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과가 아니라. 그리고 저 플레이어들은 다시는 저 마스터와 엮이지 않으면 되는 거죠!
저 마스터가 대놓고 사람들 뜻을 무시했네
그래도 추억이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