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The Union stands on its own ruins.
류 감독관이 다음 서류로 스크린을 넘긴다. 오늘 처리해야할 서류만 산더미다. 그는 AP-42 아말감의 후신, AP-5 아말감의 감독관으로 정식 임명된 상태였다.
1999년의 대 재앙은 디멘셔널 아노말리Dimensional Anomaly라고 공식적으로 명명되었다. 컨벤셔널 스페이스 밖에 있었던 유니언의 자산 중 대부분이 손망실 되었고, 그들을 영도하던 통제부Control과의 연락도 끊겨버렸다. 쏟아져나오던 클론의 생산량도 급감했고, 궤도상의 무중력-무균 수술실들이 거의 다 파괴됨에 따라 바이오모드에 의존하던 몇몇 요원들은 ‘퇴역’ 되기도 했다.
포그롬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AP-5 아말감의 목표는 현실교란자의 제거 및 억제가 아닌 치안 유지에 국한된다. 예산 부족이라는 간단한 이유 때문에.
“감독관님.”
부관 역할을 하는 염가의 클론이 그에게 다가와 추가적인 서류를 건네준다. 그가 자동 인식기에 서류를 밀어넣는다. 즉시 서류의 내용이 업무용 인터페이스에 의해 처리되어 정리된 채로 류 감독관의 결정을 기다린다. 당연히 일반적인 행정은 아니다. 트래디션의 동향에 관한 보고서, 그들의 챈트리에 심어놓은 스파이로부터의 보고, 관할 구역 내 뱀파이어들의 움직임, 전향이 의심되는 요원에 관한 첩보 같은 것들이다.
그에 대한 상부의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는 임시로 조직된 부대를 가지고서도 대 혼란기의 치안을 성공적으로 유지했다. 부족한 자산을 쥐어짜는 대신 현실 교란자들 간의 정치역학적 관계를 교묘하게 조종해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억제한다. 무조건 불태우고 총알을 박아넣는 것보다, 지금의 유니언으로서는 그 방식이 최선이다.
그가 잠깐 눈길을 돌린다.
아직 그는 잊지 않았다.
오 국장의 추적은 이미 최하위로 밀려나 있었지만, 그만은 잊지 않았다.
배신자는 제거되어야 한다.
“감독관님.”
“음?”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감지됩니다. 아말감 내 주치의에게 연락을 취해드릴 수 있습니다.”
클론 부관이 클론다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인간이 아니라 도구다. 업무 보조용의 도구. 그리고 그 도구의 목적 중 하나는 류 감독관의 업무 효율성을 재고하는 것이다. 상시 무표정인 것 같은 그의 동작 하나, 미세한 눈동자의 떨림 하나를 감지해 자신도 모르게 집중력이 떨어졌을때를 감지해 알려준다.
“아니, 됐다. 시설 재탈환 작전은?”
“30분내에 준비가 완료됩니다.”
“나도 동행하겠다고 알려.”
“네.”
클론이 즉시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다. 동행하겠다, 라는 건 변명이다. 배신자에 대한 생각을 눌러버리기 위한 변명.
“아니, 정정해. 내가 직접 돌입하겠다.”
“감독관님. 고위 명령권자의 현장 활동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나도 알아.”
“알겠습니다.”
그가 명령하며 즉각 자신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한다. 오늘은, 현실교란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불운한 날이 될 모양이었다.
빼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실내에서 폭죽이 터진다. 이 동네에서 제일 큰 건물인데도, 오래전 시행된 테크노크라시의 프로시져로 인해 아직도 주민들은 이 건물을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통행량과 건물 간의 시야를 고려한 위치선정으로 인해 건물 그 자체부터 노출이 되지 않고, 복잡한 행정 절차 및 위장용의 소송관계로 인해 공무원은 커녕 부동산 업자마저 건드리지 않는다. 버려진 테크노크라시의 시설. 훗날 AP-5 아말감의 기지로 쓰이게 될 시설이지만, 디멘셔널 아노말리와 함께 지금은 버려진 상태였다.
이곳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현실교란자들. 그것도 정보기술에 능한 테크노 메이지들이다.
“짝!”
손바닥이 마주 부딪히며 텅 빈 시설에 소리를 퍼트린다. 아직도 내부 관리 시설이 작동하는 중인지 경화 콘크리트 벽과 바닥은 깔끔하다. 심지어 시간이 되면 조명마저도 자동으로 조절되고, 냉난방도 제대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정보통제 시설이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보다 10, 20년은 더 넘게 진보한 엄청난 성능의 컴퓨터들이 잔뜩 깔려 있는 것이다.
“이게 진짜 우리 돈이란 말이지?”
그들은 방금 몇몇 거대 은행에서 거액의 돈을 훔쳐낸 참이었다. 그들의 수법은 일반적인 기술로는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 했다. 어느 보안 전문가가 보더라도 그 천재성에 감탄할만한, 자생적인 현실교란자들의 테크닉.
“와…”
그들의 계좌에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찍혀있었다. 일반적인 회사원이 평생을 일해도 못벌만큼의 돈.
“이제 이걸-”
철컹.
갑자기 축제 분위기에 물을 끼얹듯, 시설 전체의 불이 꺼진다.
“뭐야?”
항상 자동으로 관리되던 조명이 꺼진것에 조금 당황한 그들. 그러나 괜히 테크노 메이지가 아니다. 이 정도라면 금방 고칠 수 있다. 그들 중 한명이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선다.
“고장났나?”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한다. 자생적인 현실교란자. 즉, 그들에게는 ‘스승’의 역할을 할 사람도 없다. 그들을 이끌어 줄 사람도, 그리고 경고해 줄 사람도 없다.
“무-”
담뱃불을 켜고 문 밖으로 나선 그. 희미한 담뱃불에 비춰지는, 그만큼이나 희미한 인상의 남자.
“아아악!”
비명이 울린다.
그들에게는 경고해 줄 사람이 없다. 이목을 끄는 짓을 하면 반드시 쫓아오는 자가 있다는 것을. 테크노크라시라는 이름이 얼마나 큰 공포를 가져다주는지를.
“...”
류 감독관이 구속된 채 끌려가는 현실교란자들은 본다. 그들은 재활용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먼저 손을 댄 것이 테크노크라시인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지. 교육만 제대로 된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현대의 패러다임 싸움에 큰 기여를 할 것이 분명하다. 보상 역시 확실하리라.
“시설 상태는?”
“55% 이상의 가동률입니다. 표준 규약에 따라 이곳으로 아말감 시설을 옮기는 것이 권장됩니다.”
“준비하도록 해.”
“네. 시설의 지휘관실도 멀쩡합니다.”
“누가 쓰던거지?”
“기록은 망실되었습니다. 감독관 님의 권한으로는 모든 정보를 엑세스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클론 부관이 대답한다. ‘염가형’이라는 라벨에 맞게 뇌에 정보처리용 단말을 삽입한 것이 아니라, 컨디셔닝 된 지적 프로그램을 통해 보통 인간의 수 배는 빠른 속도로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 그가 들고 있는 업무용 단말만 3개였다. 그래봐야 정말 행정 용도로 만들어진 반-기계, 반-인간 클론 부관에는 못 미치지만.
“직접 가보지.”
“알겠습니다.”
즉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라지는 부관. 류 감독관이 시설을 살펴보며 지휘실로 향한다. 관리받지 못해 새로 짓느니만 못한 시설도 있지만, 이렇게 잘 보존된 시설도 있다. 이런 시설에서는 대개 디멘셔널 아노말리 때 사라져버린 중요한 정보와 기술이 보존되어 있기에 그 가치가 아주 높다. 아마 지휘관실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정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휘관실의 문은 무채색의, 아주 간단한 디자인이었다. 물론 손잡이 따위는 없다.
“-신원 확인.”
어디에 있을지 모를 센서가 그를 스캔한다. 동시에 인공적인 합성음이 흘러나온다.
“환영합니다, AP-5 아말감 감독관님.”
중성적인 합성음이 열린 문 안에서 흘러나온다. 류 감독관이 그 안으로 들어선다. 먼지가 쌓인 것 빼고는 멀쩡했다. 이쯤되면 망실된 시설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비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현 시설의 전 관리자는 누구지?”
“기록 삭제. 불명.”
“다른 사용자는?”
“기록 삭제. 불명.”
메아리 같은 답변만이 돌아온다. 터치 모니터를 겸하는 새까만 집무용 모니터에는 기록 삭제, 이라는 메시지만이 떠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설을 비우기 전에 데이터를 모조리 퍼지한 모양이었다.
“삭제되지 않은 정보는?”
“백업된 예측 모델의 정보가 있습니다.”
“이 시설에서 작성된건가?”
“타 시설에서 작성되어 백업을 위해 전송된 로그가 있습니다.”
“언제 전송된거지?”
“기록 손상. 불명.”
“...모델을 불러와.”
동시에 합성음이 모델의 특징들을 무감정하게 읊기 시작한다.
“아포칼립스급 시나리오 대상, 비확정성 매크로-시나리오 전용, 인과 대분류형 모델.”
모델 넘버 43-252-003-274-489-856-000, 라는 길고 긴 일련번호가 홀로그램으로 출력된다. 류 감독관이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세계 멸망을 의미하는 아포칼립스급 시나리오. 모델 타입도 이상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계가 멸망하는지를 예측 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의 대분류, 다시 말해 멸망 할지 하지 않을지, 한다면 언제일지, 정도만을 예측하는 모델인 것이다.
동시에 수백가지의 모델 파라미터, 중간 계산 값, 인과 위배 행렬, 포스트-베이시안 통계에 따른 과적합성, 그 밖에도 수십가지의 정보가 쏟아져나온다. 류 감독관이 모델을 자세히 살핀다. 인과보정 차분기가 쏟아놓은 결과 값과 멀티레이어 바이오 컴퓨터가 인간이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게 해석한 결과들.
계몽된 요원들이 수행하는 정치 동역학적 모델은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모델과는 차원이 다르다. 뛰어난 요원일수록 간단한 수식이나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을 반영할 수 있다. 예컨대 예측 모델에 인간의 질투이나 문화적 특성을 그러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수치화하여 집어넣는 것이 아닌,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모델링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NWO 요원들은 심지어 집단 광기의 등장이나 정치의 극단화 같은 복잡성이 내재된 개념까지 모델링하곤 했다. 그들이 수행하는 예측이 실질적으로 예언 같아보이는 것은 그런 연유다.
“...이건…”
그러나 그런 모델을 몇번씩 보아온 류 감독관의 눈에도 이 모델은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복잡함을 다루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몇몇 파라메터를 스친다. 시각화된 파라메터를 그가 자세히 관찰한다. 텍스트로 된 설명이나 주석 따위는 전혀 없다.
오직 오브젝트화 된 데이터 덩어리를 시각화한 그래프, 값에 따라 색조를 입힌 매트릭스, 변수 간의 상호관계. 그것을 하나씩 읽어나간다.
“파라메터 43번과 23번의 상호작용 행렬 시각화.”
“시각화 중. 완료.”
그가 간신히 첫 파라메터를 읽어낸다. 그것을 구심점 삼아 천천히 하나씩 모델을 해석한다.
“43번 시계열 시각화.”
“시각화 중. 완료.”
“43번 파라메터 1번부터 15번까지 스탠튼-라나 필터 알고리즘 적용.”
“필터 적용 완료.”
하나씩, 하나씩.
난민과 관련된 유럽 지역에서의 정치적 위기.
신디케이트와 NWO 간의 갈등이 국지적 경제 위기에서 표출되는 방식.
변신족들 중 일부의 극단화 및 이탈.
뱀파이어들의 분열 및 상호배신.
그가 모델을 읽어나간다.
그러나 파라메터가 너무 많다. 해석하는데만 몇주가 걸릴 것 같다. 그가 천천히 시각화된 예측 모델을 둘러본다. 그러나 이 모델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의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이 모델의 작성자는?”
“기밀 사항입니다. 음성 인식으로 락을 해제하시기 바랍니다.”
“...”
그가 메시지를 무시하고 해석을 다시 시작한다. 자신이 직감적으로 내린 결론을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거기에 3주째 박혀있다고?”
AUDIO ONLY, 라고 쓰인 스크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 스크린을 빼고 다른 모든 스크린들은 오직 예측 모델에 관한 정보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해석 뿐만 아니라, 모델에 최신 이론 기반의 파라메터를 몇개 더한 상태였다.
“그렇지.”
“너라면 이상하지 않네.”
“그레인저, 그게 동기들의 나에 대한 컨센서스인가?”
“그렇지.”
그는 훈련 과정 동기생 중 한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에게 친구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극소수의 요원들 뿐일 것이다.
“어쨌든 진급도 제일 빠른건 너니까.”
“현장에서의 올바른 판단은 네가 앞선다. 단 너는 네 가치관을 그 올바름에 반영하는 성향이 있지. 그래서 종종 실패하는거다.”
“알아. 나도 좀 기계처럼 행동하면 이런 미행 업무에는- 미안, 나중에.”
대답하기도 전에 통신이 끊긴다. 목표가 나타났거나 이동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통신이 끊김과 함께 그가 불안함을 느낀다. 동기들의 안부를 묻는다, 라는 극히 그 답지 않은 핑계로 동기생과 사적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의외라는 반응도 당연하다.
아무리 파라메터를 바꾸어 봐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몇번이나 재검증 했지만 이 모델이 틀렸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가 없다. 오히려 더 많은 데이터를 더할 수록 그 결과만 확실해질뿐.
세계는 멸망한다. 그리고, 유니언은 그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
아무리 거대하고 강력한 괴물 앞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공포를, 차가운 스크린과 수많은 문자열 앞에서 느낀다. 대체 누가 이 모델을 만든 것일까. 그리고 왜 만들고서도 이렇게 내버려둔 것일까.
“작성자는?”
“기밀 사항입니다. 음성 인식으로 락을 해제하시기 바랍니다.”
“...”
떠오르는 것이 있다.
유니언의 요원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연을 맞닥뜨리는 일은 없다. 그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무언가 의미가 있다. 과거에서 흘러온 의미일지, 미래로 흘러갈 의미일지는 모르지만.
그가 업무용 단말을 꺼낸다. 앞으로 10년이나 있어야 대중 사이에 ‘스마트 폰’이라는 이름으로 풀릴 물건. 그가 단말에서 음성을 찾아 재생한다.
“-네 추적부대는 전부 죽었다. 대충 너도 어디있는지 알겠군. 각오는 됐겠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그의 전 상관. 그를 사냥하는데 실패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작전 기록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음성 인식 완료. 락 해제.”
역시.
우연 같은 것은 없다. 홀로그램이 띄워지며 이 모델의 작성자가 표시된다.
“오 국장.”
그가 배신자의 이름을 읊조린다.
그가 몸에 언제나 품고다니는 작은 펜을 꺼낸다. 겉모습은 펜이지만, 실제로는 극약을 주사하는 암살 무기다. 주사와 동시에 대상의 세포를 채취해 확실히 암살했음을 증명하고, 확실하게 대상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무기다. 한마디로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경고를 위한 무기인 것이다.
자신의 전 상관을, 다시 맞닥뜨릴 때가 되었다.
“다녀왔니?”
“네.”
하은이가 집으로 들어오며 묻는다.
“아빠는 언제 와요?”
“글쎄. 아빠는 출장가셨잖니?”
“1년씩 출장가요?”
하은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시는데.”
하은이가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묻는다.
“얼마나요?”
“글쎄… 세상을 구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던데?”
어린 하은이의 눈가가 살짝 씰룩인다. ‘구한다’ 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모친, 정확히는 그녀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정신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의 본래 정신과 영혼은 현실 세계와의 연결이 끊긴지 오래다. 지금 하은이의 엄마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다. 아내의 몸에 모친으로서의 정신을 프로그래밍 해넣은 그 남자는, 지난 일년간 사라져 있었다. 남편 없이도 그녀는 가족을 유지해나가고 있었다. 그것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정신이니까.
“씻고 들어가서 숙제하렴. 과일 깎아줄게.”
“네.”
쾌활하기 그지없던 하은이의 성격은 거의 죽어있다시피 했다. 네판디의 본성이 깨어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하은이의 부친이 몇년간 실시한 프로시져의 결과다. 운이 좋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막아둘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멸망시킬 운명과, 구할 운명. 두 운명을 어떻게든 분리해낼 수 있을 때까지.
[3팀, 위치.]
[1팀, 돌입.]
한밤중.
모녀가 자고 있는 집의 문이 조용히 열린다. 작은 주택 단지의 주민들은 미리 주입된 마취가스로 인해 전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표로 하는 집에는 가스를 주입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 그것이 불가능 하도록 집 곳곳이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평소에는 어떻게 통풍이 가능한건지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유니언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사전 정찰의 수단을 모조리 차단할 수 있는 사전 조치가 취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이곳에 목표가 있다는 의미.
열린 문으로 특수전 부대가 진입한다. 즉시 그들이 모녀의 신병을 구속한다. 비명 지를새도 없이 재갈이 물리고 구속구가 채워진다. 거실로 끌려나온 그들. 아이라고 봐주는 것은 없다. 하은이가 거칠게 끌려온채로 쓰러진다. 당황하고 겁에 질렸지만, 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침착한 쪽이었다. 그들 앞에 천천히 다가와 선 류 감독관. 그의 옆에 재빨리 보좌역의 염가형 클론이 다가온다. 클론 역시 간단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질 정도로 간단하다. 그때는 수십의 병력과 엄청난 양의 무기를 동원했는데도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겨우 열댓명밖에 안되는 인원으로도 일부나마 목표를 달성한 것 처럼 보였다.
“목표 A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발견한 것은 이 둘뿐입니다.”
그들 앞에서 떨고 있는 여성을 내려다본다. 분명 목표 B, 다시 말해 오 국장과 함께 탈주한 현실교란자가 맞다. 최소한, 영상으로 남겨진 수 많은 나이대의 그녀의 사진과 닮았다. 특별히 분석해보지 않아도, 그것이 그 ‘몸’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신비함, 현실교란적 자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라고는 전혀 없었다.
“...”
사실 목표 B는 상관 없었다. 목표 A만이 중요할 뿐.
실패다.
“포획합니까?”
“아니. 여기서 사살한다. 목표 B는 이미 이 세상에 없어. 이건 인형일 뿐이다.”
그가 총을 겨눈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찰칵.
총알의 발사음 대신 공허한 금속음만 들릴뿐이다.
-분명히 총의 무게는 평소와 같았는데.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세발의 소음 권총 발사음이 울린다.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대원들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동시에 단말마와 함께 통신도 끊긴다. 부대원들이 머리에 부착하고 있었던 통신기기에 작은 폭발물을 심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순식간에 전투원은 류 감독관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류 감독관.”
목표 A.
그가 서있었다. 류 감독관의 ‘부관 클론’의 자리에. 이제야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 그다. 뒷세계의 인맥을 동원한 성형, 표정 및 목소리 연기, 변장, 철저한 행동 패턴 관리. 일년이 넘게 그에게 속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꽤 되었지.”
그가 오랜만에 표정을 짓는다. 그가 입 안에서 초소형의 음성 변조기를 뱉어내자, 목소리도 익숙한 목소리로 바뀐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종류다.
“아직 배움이 덜하군. 난 개인적으로 클론을 가까이 두는 것을 선호하지 않네.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거든.”
류 감독관이 권총을 들어 탄창을 뺀다. 총알 대신, 그 무게만큼의 납덩이가 쑤셔넣어져 있다. 그의 부관 역할을 한 만큼 언제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이 여자는 미끼인가?”
“내 아내가 놓은 미끼지.”
“...그녀는 이 세상에 없나보군.”
“미미한 영향력밖에 없다… 라고 하는게 정확하겠지. 예전부터.”
과연. 그 정도 위력의 현실교란자가 디멘셔널 아노말리를 겪고도 멀쩡할리가 없다.
“그럼, 그 시설로 날 유인한건가?”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날 여기서 죽여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유니언이-”
“하나만 묻지.”
평생 쫓겨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그가 류 감독관의 말을 끊는다.
“만약 대답할 수 있으면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 투항도 좋고, 이 자리에서 사살도 좋네.”
그가 뜸들이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모델의 결과를 봤겠지. 그리고 유니언의 실패도.”
류 감독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덤벼들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분명 헛된 일일 것이다.
“그 실패의 이유를 알고 있나?”
“합의된 현실이 쌓아올려지는 속도가 빨라질 수록,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가 씁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유니언도, 트래디션도, 그 어떤 현실교란종도 세계를 구하지 못할거야. 왜인지 알고 있나?”
류 감독관이 침묵을 지킨다.
“질문을 바꿔보지. 세계의 멸망이 내일이라고 가정하면, 그 시점에서 유니언이 바라는게 뭐라고 생각하나? 멸망을 막는 것? 아니면 멸망을 막는 힘?”
류 감독관의 침묵은 계속된다.
“똑같은 원리네. 유니언이 원하는 것이 더 나은 세계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더 나은 세계를 규정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나?”
류 감독관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감독관으로 발탁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더 나은 세계를 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규정되든- 실현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깨어난 자와 계몽된 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이 바라는 세계를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세계를 불러올 힘을 원하는 것인가?
“그래. 그렇다네.”
자신의 전 상관이 내뱉는 말을 곱씹는다.
“유니언이 이 현실에 상시 존재하는 그 어떤 세력보다 강하다는건 기정 사실이지. 움브라에서나 활동하는 일부 EDE를 제외하고서는.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를 지니겠나?”
“어떻게 막지?”
“역시, 겁먹지 않았군.”
그가 감탄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정말 감탄한 것인지, 아니면 이 상황에 드라마틱함을 더해주기 위해 지은 표정인지 알 수 없다. 그가 무언가를 들어올린다. 류 감독관이 직접 주입하려 했던 극독이 든 펜.
그가 그것은 자신의 팔에 주사한다.
“무-”
“받아라.”
그가 펜을 던진다. 류 감독관이 그것을 받아든다. 이제, 오 국장이라는 배신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펜이 증거다. 류 감독관이 배신자를 처단했다는 증거. 아마도 그 어떤 요원도 해내지 못할 법한, 큰 보상이 따를 업적의 증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류 감독관이 묻는다.
“그럼 당신들이 원하는건?”
“우리는 그저 이 세계가 살아남기를 원할뿐이야.”
“...”
“돌아가게. 우리가 자네를 위해 준비한게 있으니. 승진 미리 축하하네.”
그가 하은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한다. 류 감독관이 그를 내려다본다.
그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가 천천히 불꺼진 복도쪽으로 사라진다. 임무는 달성했다. 오 국장이었던 요원은 1, 2년 내에 현대 의학으로는 절대 치료할 수 없는 중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던 현실교란자는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이 남았다.
“자네의 성과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군. 상부에서는 자네를 AP 심포지움의 부감독관으로 임명하기로 했네. 후임자를 찾아두게나.”
AUDIO ONLY, 라는 글자가 점멸한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사무적인 목소리가 축하의 말도 없이 소식을 전한다. 이제 그는 작게는 자신의 밑에 있는 수백의 요원부터 크게는 수백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유니언 내에서도 기록적인 속도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 대신 성과로 보여주게. 통신 종료.”
스크린이 새까매진다.
“...”
그가 오 국장의 ‘유품’을 꺼내든다.
이제 그는 정말로 추적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모든 흔적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 그가 남긴 것은 작은 데이터 칩 하나 뿐이다. 칩을 데이터 리더에 끼워넣는다. 업무용의 인터페이스에 로드 된 프로그램이 외부 스피커를 통해 전자음을 내뱉는다.
“이름은?”
AI 답지 않게 마치 하급자를 대하는 듯한 AI의 목소리.
“류. AP-5 감독관, AP 심포지움의 부감독관이다.”
“인식 완료. 현 시간부로 에페메라 작전을 개시.”
그의 앞에 작전 개요가 나타난다. 그가 계획을 훝는다. 작전 대상자의 발견, 수학적 필연을 뒤집기 위한 개체의 분리와 그를 위한 클로닝, 유니언의 분열 획책까지.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10년 뒤에는 유니언의 기술로 가능해질 일 까지 고려한 작전 계획이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오만하고 편집증적이다.
다시 말해, 말도 안되는 계획이다.
계획 자체의 거대함을 둘째치고라도 어떻게 한명의 요원이 이것을 해낸단 말인가?
감정이라고는 드러나지 않는 그의 표정 뒤로 그가 억누르고 있었던 공포가 절망으로 바뀐다.
이런 자리까지 오르고도 그는 무력할 뿐이다.
막을 수가 없다.
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가 천천히 돌아선다.
그곳에는 요원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 서있었다. NWO의 요원, 아니, 공권력과 조직이 존재하는 곳에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떠올릴법한 공포의 형상. 검은색 양복과 선글라스, 희미한 인상과 무표정한 얼굴.
“진실을 보는 자의 외침에 응해, 우리가 너를 가호한다.”
류 감독관이 그가 말하는 ‘우리’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린다. 각자의 가능성을 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함과 안전함을 바라는 일반인들. 그의 앞에 서있는 것은, 트래디션의 언어로 말하자면 ‘질서의 정령’인 것이다. 그들이 준비한 선물이란 이런 것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류 감독관이 묻는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시작할 의식을 치루기라도 하듯이.
“당신은 누구지?”
억양도 없고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교관the Man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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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작품: 마진 콜.
정말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니 아레테 높은 메이지들은 진짜 신이랑 다름 없어 보이네
다음편
끝이라니 아쉽다. 근데 진짜 테크 묘사하는 용어들 볼 때 마다 노고가 느껴짐 고생하셨어요.
“나는 교관the Man이다.” - dc App
완성도가 대단합니다.. 정말 잘봤습니다 - dc App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용
.................지렸다. 아....진짜진짜 재밌게 봤고, 넘 멋진 작품이었음. 짝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