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Chummer들아
최근에 라라비가 러시안들에게 잡혀갔다가 해당 GM이 번아웃이 와서 잠시 풀려난 기념으로 썰이나 풀어볼까 해.
(섀도우런은 쉬니까 대신 배틀테크 하자고 하더라.)
원래 라라비는 전에 쓰던 펄스-에잇(Pulse-8)이란 침투형 데커를 대체하기 위해 좀 더 최적화시켜서 만든 사무라이 데커였어. 펄스-에잇은 데킹을 한번 배워보자고 만든 캐릭터였는데, 첫번째 런에서는 평화롭게 자고 있었던 풀 메탈 사무라이를 깨워서 사악한 테크노맨서에게 복속시켰고, 사무라이를 구하러 온 갱단의 트럭 3대를 강제 조작으로 충돌시켜서 싸그리 곤죽으로 만들었고, 이후 어린 애들 6명을 존슨의 명령에 따라 수장시켰고, 프로토타입 바이오웨어에 깃든 하이브마인드 AI를 없앤답시고 살아있는 실험체로 뇌수술 연습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어서 나도 플레이어도 GM도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 이 녀석은 뭔가 내 통제를 벗어나버린 것 같아서 고향이었던 아레스(Ares Macrotechnologies) 본사로 돌려보내고 리타이어시켰어.
라라비는 펄스의 빌드에서 스킬과 능력치를 더 쥐어짜서 전투 스킬과 카리스마에 붓는 식으로 보조 페이스 겸 데커 사무라이로 만들었어. 펄스를 플레이할 때는 다른 캐릭터들이 펄스가 뭘 하는지 모르도록 플레이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팀원들간의 정보망을 구축하고, 데킹 과정과 성공/실패 여부를 팀원들에게 공개하고,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식으로 사회성이 있는 데커를 플레이하고 싶었거든.
처음에 그저 데커와 사무라이, 보조 페이스를 섞은 아키타입이었을 뿐인 라라비는 런을 25번 뛰는 동안 다른 러너들간의 드라마에도 휘말리고, 정신 마법도 맞아보고, 여러번 물리적으로 죽을뻔하기도 하면서 또다시 내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어. 펄스가 자기 혼자만 챙기는 경향이 강했다면 라라비는 반대로 자신한테 점점 엄격해지고 팀원들을 챙기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 팀원을 물리적, 매트릭스적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누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니까 본인이 기억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게 생긴 거지. 사실 라라비의 백스는 런을 망친 자신의 이전 팀을 메가콥에게 버려두고 가는 거였는데 말야.
라라비가 이런 성격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약 네달 전에 있었던, 라라비가 첫번째 수집품을 얻은 런이었어.
라라비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해본 친한 러너들은 작업장 뒤쪽에 있는 검은색 유리 진열장을 보게 될 거야.
유리를 투명하게 만들면 아래 수집품이 진열되어있고, AR 태그로 주석이 적혀있어.
이 걸 처음 본 러너들은 라라비가 까마귀 토템 2호(Mentor Spirit, Raven Alt)를 따르는 어뎁트인가? 하고 헷갈려하더라고. 까마귀 토템 2호는 지각력을 크게 늘려주는 댓가로 지식과 수집에 대한 욕구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거든. 라라비와 같이 런을 뛴 지인들은 라라비가 머글인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냥 별종이네 하면서 AR 태그를 살펴봤어. 그리고 진열장 맨 위에 있는 방부 처리된 오른손을 보고 기겁했어. 데커가 왜 저런 걸 가지고 있지? 사이코였나? 내 손 모가지도 잘라서 가지려고 하는 거 아냐? 그러다가 AR 태그에 적힌 이름을 보고 숙연해하더라.
(포트레잇 출처: https://www.deviantart.com/mariowibisono/art/Nika-127310274 )
오른손의 주인공은 스트리트 사무라이 질리야 사토(Ziliya Sato), 일명 질리(Zili)라고 불렸어. 질리는 말 그대로 오늘만 사는 캐릭터였어. 빌린 시간(Borrowed Time) 퀄리티 때문에 런을 뛸 때마다 1/6의 확률로 무조건 드라마틱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페널티가 있었기 때문이야. 재수가 없으면 첫번째 런에서 퀄리티가 발동해서 죽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질리는 런을 10번이나 뛰고서도 살아남았어.
질리가 오늘만 사는 방식은 상당히 특이했어. 레즈비언인 GM M은 질리를 본인처럼 레즈비언으로 설정했는데, 설정한 방식은 카리스마가 5 이상인 여성 캐릭터를 볼 때마다 평정심을 굴려서 본인이 그 캐릭터에게 반하는지를 판정하는 것이었어. (일반인의 카리스마는 보통 2~3점이야.) 라라비와 만났을 때 쯤 질리는 서버 내에서 카리스마가 5 이상인 모든 여성 PC와 이미 한번씩 썸을 타본 몸이었어.
데빌 랫(Devil Rats)에 의해 점령당한 하수구를 정화하는 런에서 라라비와 질리가 처음 만났을 때, 질리는 라라비의 카리스마가 정확히 5인 것을 보았고, 평정심 판정을 굴렸고, 크리티컬 글리치를 굴렸어. 그 결과 질리는 라라비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지. 라라비가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해도 멍하니 입을 벌리면서 보기만 했고, 싸울 때를 제외하면 아무 말 없이 일행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라라비의 뒷모습을 바라봤어. 물론 일이 먼저였던 라라비는 자기 엉덩이만 바라보는 질리를 귀찮게 생각했지. 실제 런 그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어. 데빌 랫을 다루는 쥐 샤먼이 걸리적거리기는 했지만 다들 사무라이라서 섬광탄과 제압 사격으로 손쉽게 쓸어버렸지.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질리를 보고 라라비는 얘기가 하고 싶으면 일이 끝나고 바에서 해보자고 생각할 뿐이었어.
안타깝게도 라라비는 질리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어. 질리의 빌린 시간 퀄리티가 발동했고, 의뢰받은 전력 시설을 가동하러 가는 길에서 상어만한 돌연변이 물고기 2마리가 뛰쳐나와 질리를 하수구 깊은 곳으로 물고 들어가버린 거야. 질리는 마지막 행동으로 걸치고 있던 섬광탄을 전부 터뜨렸고, 물 안에서 터진 폭음 때문에 질리와 물고기의 몸은 산산조각났어. 질리의 몸에서 건질 수 있었던 것은 물 밖으로 튕겨져나온 오른손과 오른손에 들려있던 노다치 뿐이었어.
이 때 라라비는 아직 하수구에 들어오기 직전에 투여했던 지능 촉진제(Psyche)의 지속 시간이 남아있던 상태였어. 지능 촉진제의 부작용은 복용자가 사소한 세부사항에 극도로 집중하게 된다는 거야.(SR5 CRB p. 412) 이 때 라라비가 극도로 집중한 세부 사항은 바로 질리의 손, 그 중에서도 절단된 손목 단면이었어. 단면을 살펴보던 라라비는 질리의 몸이 바이오웨어로 가득했던 것을 눈치챘고, 촉진제에 의해 증폭된 바이오웨어 시술 스킬(Biotech)을 굴렸고, 스킬 판정을 통해서 질리의 몸에 무슨 바이오웨어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 근육 유연화, 근육 강화, 골밀도 증강, 장갑 피부, 단열 피부 등등등. 자신이 사이버웨어를 통해 확보한 것과 동일한 강화 성능이었어.
즉, 라라비는 질리의 목소리는 전혀 못 들었지만 몸에 무슨 바이오웨어가 있는지는 알았고, 관심사는 몰랐지만 자신과 몸의 구성이 동일함을 깨달았고, 살아있을 때는 무시했지만 죽은 뒤에야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고 시도한 아이러니를 겪은 거야. 그래서 라라비는 그 자리에서 오른손을 안고 오열했고, 나는 오열하는 걸 연기하면서 슬퍼했고, GM M은 질리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라본 것은 라라비의 엉덩이였는데 그 라라비가 자신을 위해 슬퍼해줬기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 감동했어.
런이 끝났을 때 라라비는 평소의 냉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계속 눈물을 훌쩍이면서 감추지 않았어. 러너 하나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본 의뢰인은 질리 분량의 크레딧 스틱을 자신이 챙기려고 했지만, 팀원들이 질리의 직계 가족에게 위로금으로 전해주겠다고 하자 순순히 건네주었어. 런에서 받은 크레딧 스틱과 질리가 탔던 10만 뉴엔짜리 바이크를 질리의 아버지인 야쿠자 두목에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런은 종료되었어. (그 댓가로 GM M은 해당 야쿠자 두목이 남은 일행에게 빚을 진 것으로 처리해줬어. 자기가 야쿠자 두목을 출연시키는 런을 짜면 고려해보겠다고 하면서.)
질리가 들고 있었던 노다치는 이미 전주인이 2번 죽은 뒤에 질리의 손에 들어간 일종의 저주받은 무기였어. 그래서 노다치를 물려받은 사무라이 프라임(Prime)도 이후 런에서 노다치를 꺼내지 않고 집에서 보관만 하고 있었어. 이 상태에서 마법 무기(웨폰 포커스)로 만들었으면 아마 강력한 네크로 마법 무기가 되었겠지만, 이후 질리의 전 여친의 여친 스발라(Svala)가 회수한 후 사악한 아티팩트를 만들기는 싫다는 이유로 정화 의식을 실행하고 나서 평범한 노다치로 되돌아갔다고 전해져. 프라임과 라라비는 이후 런을 몇번 같이 뛴 동료 사이가 돼.
질리를 기리기 위해 라라비는 런에서 받은 카르마로 의술과 화학 스킬을 수련하고, 지인 길거리 의사의 재료를 빌려서 질리의 손을 방부처리했어. 일반적인 러너라면 그냥 질리의 손을 묻거나 불태웠겠지만, 라라비는 촉진제의 부작용 때문에 손에 집착하면서 손을 보존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게 되었어. 그리고 데커답게 의술을 벼락치기로 배울 지능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완벽하게 방부처리를 할 수 있었어. 이 말을 들은 GM M은 진짜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기뻐했지. 자기는 그저 사무라이를 플레이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일부러 죽을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다고.
"질리 여기에 잠들다
매일밤 뜨다가
영원히 뜨다감"
마지막으로, 라라비가 이런 묘비명을 써줬다고 하니까 GM M이 더 웃다가 반쯤 숨이 막히더라. 질리의 인생을 정확히 요약했다면서.
라라비가 기억을 수집하는 데커가 된 건 이 시점이었던 것 같아. 누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것이 섀도우러너의 인생인데, 그 인생의 끝에 남들에게 잊혀지는 것은 죽는 그 순간보다 더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잘 된 런에서는 추억을, 잘못된 런에서는 교훈을 새기기 위해, 런을 뛸 때마다 라라비는 런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을만한 흔적을 수집품으로 하나씩 챙기고 거기에 자신이 기억한 런 내용을 (민감한 내용을 지우고서) AR 태그로 첨부했어.
물론 이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으니까 라라비도 살짝 맛이 가기는 했어. 사람의 몸이 바이오웨어를 장착하면 어떻게 보이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사무라이 혹은 사이버웨어/바이오웨어를 장착한 사람을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사이버웨어/바이오웨어를 뜯어다 팔면 얼마나 나올지 계산하는 습관이 생긴 거야. 시체를 뜯어다 다시 파는 게 일상인 지인 길거리 의사한테 옮은 습관이었지. 본인도 장착했던 중고(Used) 바이오웨어가 어디서 오는 건지 몸소 체험해봤으니까. 자기 스스로의 시체도 그렇게 팔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자기 시체를 찾으면 지인 길거리 의사에게 가져다달라는 데드맨 스위치도 만들었어. (내가 GM이 되고 라라비가 정말로 죽으면 이 내용으로 런을 하나 할 지도 몰라.)
그리고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는 습관도 이 때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어. 사이버웨어를 장착한 후 에센스가 6.0 만점에 1.4밖에 남지 않아서 슬슬 감정이 무뎌지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이 런에서 충격을 받고 자기 몸을 도구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던 거지. 라라비의 몸이 약물 부작용으로 어떻게 축나기 시작하는지는 다른 썰에서 얘기해볼게.
시간이 나면 데커 가이드와 라라비 런 썰을 더 올릴거야. 궁금한 게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고, 다음에 볼 때까지 사요나라
결국 라라비는 주겄나요?
라라비 데커 구하기 작전 진행중 아니었던가
gm이 번아웃왔다셔서 어떻게 되가나 물을려고 한 질문임.
일단 스탭이 배틀테크를 돌리면서 무기한 보류중, 보류중인 동안에는 아직 잡히기 전인 것으로 간주함. 취조 RP를 해야 하는데 죽진 않을 것 같아
라라비쟝 추
섀런글 재밌게 읽고 있어. 그런데 예전에 말한 포확찢 시나리오 썰은 안 풀기로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