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시 개인 사정으로 TRPG 플레이는 꿈도 꾸지 못하고 ORPG 플레이나 이따금씩 깔짝대며, 거듭되는 플 폭파에 매일 아침 교차로를 뒤지며 조건 맞는 빈 자리가 나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주시하는 구직자 마냥 구인 공고들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전형적인 알망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도통 조건에 맞는 자리가 나타나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자,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수면 시간까지 줄여 덕질에 투자하는 미친 생활로 돌아갈 생각을 품고서 마스터링을 계획하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tr을 같이 할 인원들을 모으기 시작했지. 그리고 주사위 신의 흔치않은 도우심으로 그 간 한 명모으는 것도 다행이던 이 동네에서 세 명이나 되는 인원을 모을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셋 다 안면이 있는 사이끼리 모이게 되어 비교적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고, 그 중 두 명은 각자 플레이한 게임과 감상한 애니 시리즈가 이미 2,300개는 족히 넘어가는 준수한 오덕들이었으므로, 나는 평상시의 염원이었던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마스터를 양성해 내가 플레이어로 참가한다'는 계획을 이 둘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내 보잘것 없는 능력이 허락하는 한 어떻게든 이들을 알피지의 쾌락를 아는 몸으로 만들어주리라 작정한 뒤 기합을 넣어 플레이 준비에 착수하기 시작했어.
당시 돌리려던 캠페인은 패스파인더의 상용 시나리오 연작 모음인 '카운슬 오브 씨브즈'로, 마신 아스모데우스와 그가 부리는 악마들과 연합한 부패한 귀족들이 다스리는 첼리악스라는 가상의 제국, 그 중에서도 웨스트크라운이라는 항구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반체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이 시나리오들이 진행되는 배경 설정들이 갖는 극적 가능성에는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지만 정작 시나리오 자체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시나리오의 배경 설정과 데이터들을 적당히 취사 선택하고 수정, 조합해 독자적인 이야기를 진행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야기의 큰 틀을 어떻게 정할지 결정해야 했고, 당연히 다른 플레이어들의 의견도 물어야 했지.
그리고 그 결과, 본 연작의 기본 방향인 '사악한 제국에 저항하는 반체제 영웅들의 이야기'를 캠페인의 큰 줄기로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고, 거기 맞춰 각자가 플레이 하고 싶은 캐릭터들의 컨셉을 물었다. 그 중 둘은 각자 귀족 가문 사생아 출신 전사, 양부 밑에서 자란 고아 출신 티플링 몽크 정도로 간단히 컨셉을 잡았고, 다른 한 명은 본래 첼리악스 제국의 황가인 쓰룬 가문을 도와 마법 연구를 진행하던 연금술사 남매 중 오빠였으나, 어느 날 여동생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뒤 실은 그녀가 반체제 세력으로 몰래 전향해 활동하던 중 제국의 공작원들에게 발각되어 암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반체제 세력에 투신하게 된 마법사라는 보다 더 구체적인 설정을 들고 왔어. 나는 이 시점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일반적인 토굴과 용가리 류의 캠페인들이 갖는 전형적인 모험담들에 비해 보다 더 진중한 드라마가 진행될 여지가 있는 이 캠페인의 특성을 낭비하지 않고, 플레이어들에게 패스파인더 특유의 전투로 점철된 서사 구조와 더불어 드라마틱한 요소들 또한 같이 맛보여 주기로 마음 먹고 각 캐릭터의 개인 별 프롤로그 플레이를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시간 관계 상 전사와 몽크, 둘의 일정이 먼저 잡혔고, 아직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구체적인 설정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나 당사자들의 흥미 유지 면에서도 무리였으므로, 프롤로그를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각 캐릭터들의 설정에 살을 붙이는 것을 도와주기로 하고, 사전에 이 점을 두고 두 사람의 합의 또한 얻어냈다. 첫 플레이는 귀족 가문 사생아 전사의 시점에서 진행되었는데, 부패한 중소 상업 귀족 가문의 삼남 중 막내인 서자로 태어나 본래는 가문의 사병들을 지휘할 차남의 보좌 역으로 같이 무술 및 전술 훈련을 받으며 자랐으나, 두 형들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인해 갑작스레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가 되었고 이로 인한 주위 사람들의 은근한 의혹의 눈초리에 내심 괴로워하고 있다는설정이었어. 하지만 어째선지 그의 아버지만은 그가 모든 의혹에서 깨끗하다는 사실을 믿어줬지. 사실 그 주변의 모든 이들 중 가장 그를 의심할 법한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는데도 말야.
그러던 어느 날, 웨스트크라운에서 손꼽히는 귀족 가문인 드로빈지 가문의 티플링 적자이자 사생아인 에카르디안 드로빈지가 주최하는 연회에 처음으로 초대를 받게 된 그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 기회에 가문의 새 후계자로서 좋은 인상을 줌과 동시에 귀족 가문들과의 인맥을 구축하기 위한 신중한 첫걸음을 내딛으라는 충고를 받고 연회에 참석하게 됐어. 처음 그는 이전까지 봐온 중소 귀족들의 고만고만한 연회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성대한 연회의 화려함에 빠져들었지만, 그만큼 이전의 연회들과는 비교도 하기 힘든 그 연회의 퇴폐적인 모습들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지. 연회의 흥은 어릿광대의 출현과 함께 절정에 올랐고, 그 즈음 연회의 주인공이었던 에카르디안 드로빈지 또한 모습을 드러냈어. 에카르디안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캐릭터와 첫 대화를 나누었고, 그 또한 자신과 같은 사생아요 서자라는 사실을 대화 도중 우연찮게 알게 되자, 갑자기 은근한 태도를 취하며 캐릭터에게 살갑게 굴기 시작했어. 마치, 그와 자신 사이에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연회의 흥은 자신의 익살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 된 관중의 반응에 도취된 어릿광대가 새로운 목표물로 에카르디안을,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의 역린이었던 그의 태생을 익살의 소재로 택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지. 이내 분위기가 이상해진 어릿광대는 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어. 에카르디안은 차가운 경멸의 웃음과 함께, 그 자리에 모인 관중들에게 새로운 여흥 거리를 제공하겠다고 말했어. 웨스트크라운의 귀족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던 놀이인 '가축 사냥'을 자신의 저택 정원에서 진행할 것이라 외친 뒤, 그는 놀이에 참여할 지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어. 이윽고 가학적인 웃음을 만면에 띈 일단의 젊은이들이 에카르디안과 함께 그의 정원으로 나섰고, 그 와중 에카르디안은 캐릭터를 직접 지명해 놀이에 참석할 것을 권했지. 그 놀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던 이 사교계 애송이는 가축 사냥을 연다는 에카르디안의 말을 듣자마자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 어릿광대의 모습에 불길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충고를 떠올리면서 마지못해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같이 정원으로 나섰어.
이윽고 그는 드로빈지 가문의 정원에 자리한 수풀로 된 미로 앞에 도착했어. 그리고 그 미로의 입구에는, 아까 그 어릿광대가 사병들의 팔에 붙들린 채 실금을 하며 제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외치고 에카르디안에게 외치고 있었지. 그런 애원에도 아랑곳 않고 그를 붙잡고 있던 병사들은 그의 무릎 뒤쪽을 걷어차 강제로 무릎을 꿀리고는, 알록달록한 그의 방울 달린 모자를 벗겨내고 그의 머리를 밀어낸 뒤 그에게 재갈을 물려 미로 안 쪽으로 들여보냈어. 더 이상 그 어릿광대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그의 발소리 조차 들리지 않게 되자 그 놀이가 처음인 캐릭터를 위해, 에카르디안이 직접 '가축 사냥'의 규칙을 친절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어. 그 자리에 모인 귀족 자제들은 곧 미로로 들어가 누가 제일 먼저 그 어릿광대를 잡을 지 경쟁하게 될 것이고, 제일 먼저 가축을 사냥한 이는 사냥감의 비천한 신분에 걸맞는 가능한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죽여 놀이에 참가한 모두의 흥을 돋구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말야.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자, 캐릭터는 자신은 그 놀이에 참가할 수 없다고 에카르디안에게 말했어.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묻는 에카르디안에게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적당한 말을 궁리해내지 못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던 에카르디안의 표정이 이내 실망감에서 노골적인 비웃음으로 바뀌었고, 이내 경멸 섞인 어조로 원하는 대로 하라는 대답과 함께 다른 귀족들을 이끌고 미로 속으로 모습으 감춰버렸지. 어두운 심정으로 드로빈지 가문의 저택을 떠나던 캐릭터는, 얼마 후 저만치서 울려퍼지는 그 어릿광대의 끔찍한 비명과 함께 잇따른 귀족들의 환호성을 들을 수 있었어.
그가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불러내 자신의 충고를 지키지 않은데 대해 그를 꾸짖었어. 그의 아버지는 비록 절름 발이에 왜소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지만, 기백 만큼은 여느 대상인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남자였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그의 꾸중을 듣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그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어. 가문의 사유지인 숲으로 그를 데려간 그의 아버지는, 이윽고 한 장소에 도착했어. 바로 그의 큰 형이 사냥 도중 낙마 사고로 죽었던 그 장소였지. 그리고 그는 캐릭터에게 네가 어떻게 우리 가문의 새 후계자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겠다고 말한 뒤, 이전까지 그가 알지 못한 진실을 알려줬어. 그의 큰 형은 낙마 사고로, 둘째 형은 급체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첫째 형이 사냥을 위해 타고 있던 말은 그 근처에 잠복하고 있던, 둘째 형이 돈을 주고 고용한 마법사의 정신 지배 주문의 영향으로 난폭하게 미쳐 날뛰게 되어 주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었고, 둘째 형의 음식에는 첫째 형이 매수한 요리사가 넣은 '밤의 눈물'이라는 희귀한 독약이 들어있었던 거야.
그의 아버지는 살짝 눈쌀을 찌푸리고는, 그 독약은 어지간한 전문가도 식별하기 힘든 교묘한 독약이며, 복용자의 입술에 살짝 푸른 빛이 돌게 되는 증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특이 증상도 나타내지 않기에 몇몇 귀족들 사이에서만 애용되는 비싼 독약이라는 말을 덧붙였지. 두 형은 비슷한 시기 서로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야. 둘째 형은 첫째 형을 제거하고 자신이 후계자 자리를 물려 받기 위해, 첫째 형은 둘째 형이 언젠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들 거란 의심을 품고서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서 말이지. 그리고 우연의 장난으로 둘의 암살 계획은 같은 날 같은 시에 이뤄졌고, 결국 둘 다 자신들이 계획한 음모의 과실을 맛보지 못한 채 그대로 죽음을 맞게 된 거였지.
충격에 사로잡힌 그를 바라보며, 그의 아버지는 그 둘과는 달리 그에겐 가문의 후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가문에 대한 애착이 있고, 때문에 결과적으로 적임자인 그에게 가문의 후계 자리가 돌아가게 만든 둘의 죽음에 대해선 그닥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는 가문에 쏟아야 할 애착 뿐만 아니라 가문과 상관 없는 이들에게까지 불필요한 연민을 지니고 있다며, 가문을 물려 받기 위해선 반드시 그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어.
그리고 며칠 후, 그의 아버지는 가문의 일에 대해 더 가르쳐 줄 것이 있다면서 그를 데리고 웨스트크라운의 빈민가로 향했어. 어째서 아버지가 이런 곳으로 자신을 데려온 것인지 의아해하고 있던 때 귀족의 예복을 걸친 둘 앞에 어린 여자 아이가 나타나 '은화 한 닢만 주시면 하룻밤동안 어떤 성숙한 여자들에게서도 맛 볼 수 없는 기쁨을 가르쳐 드릴게요 나으리!'라며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유혹하는 것을 보고는 어안이 법벙해지고 말았지. 그의 아버지는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고는, 너같이 더러운 것의 물건 따위 필요 없으니 이거나 먹고 당장 꺼지라며 은화를 땅바닥에 내던졌어. 그러자 여자아이는 혼비백산해 바닥에 떨어진 은화를 찾고는 두 손에 꼭 쥐고서 총총걸음으로 뒷골목으로 달려 사라졌지. 그리고 그 광경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던 추레한 옷차림과 음험한 표정의 사내들이 이내 여자 아이가 사라진 골목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거리를 걷던 캐릭터는 잠시 후 뒤쪽에서 여자아이의 새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들을 수 있었어.
얼마 후 둘은 허름한 건물에 도착했고, 이 층으로 걸어 올라가 그 안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던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을 만났어.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는 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어. 이 사내들은 모두 도적 길드의 간부들이었고, 그들은 그들이 지금 행하고 있거나 장차 벌일 범죄 사업들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 동안 그의 아버지는 가업인 상업을 이어나가면서 발생하는 손해를 메꾸고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범죄 행위들에도 손을 대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어진 대화 내용으로 유추하건대, 아버지 뿐만 아니라 웨스트크라운의 다른 귀족 가문들 또한 범죄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어.
대화가 끝나자 둘은 건물 밖으로 나왔고, 아버지는 더 만나야 할 자들이 있다며 같이 이야기를 하던 사내들 중 하나에게 아들의 보호와 길안내를 부탁하고 다른 사내와 함께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췄어. 착잡한 심정이 되어 사내와 함께 빈민가를 빠져나오던 중, 그는 거리 한 곳에서 빈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 같이 그 모습을 본 동행의 사내가 이내 험악한 표정이 되어선, 그 쪽으로 걸어가 여기서 누구 허락을 맡고 이딴 짓을 하는 거냐고 윽박질렀어. 그러자 그 중 귀족 예복을 걸치고 있던 남성이 자신들은 안젤로의 허락을 받고 여기서 빈민들에게 먹을 주고 있는 것이라 항변했지만,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하! 안젤로 그 자식은 바로 지난 주에 칼침을 맞아 뒈졌다! 당장 여기서 썩 꺼져!'라고 재차 소리질렀지. 그리고 그 때, 캐릭터는 그 자를 제지하며 이들을 방해하지 말자고 그에게 이야기했어. 사내는 불만에 가득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행여나 그와 마찰을 빚어 그의 아버지의 눈에까지 나는 것이 싫었던 그는 캐릭터의 요구를 받아 들였지. 그 후 그는 빈민들을 돕고 있던 일행과 대화하고자 그 곳으로 다가갔고, 그 모습을 본 일행 가운데에서 한 중년 여인이 걸어나와 웃으며 감사를 표했어. 여인은 캐릭터를 그들의 본거지인, 이전에는 첼리악스의 전 수호신이자 이제는 자취를 감춰버린 인류의 수호신 안도란의 사원으로 쓰였던 버려진 건물로 인도해 그 곳에 살고 있는 고아와 갈 곳 없는 노인 및 병자들과 만나게 해준 후,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담소를 나누었지. 그리고 그들에게서 지금껏 보지 못한 인간의 선량함을 보고 경도된 캐릭터는 이후 지속적으로 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구제 활동에도 동참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그는 그들이 은밀히 공유하고 있던 선신 아이오메데의 가르침을 전해 받고 그들의 신앙에도 경도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그를 다시 불렀어. 이번에는 이전까지 보지 못한 진심으로 분노한 표정으로 그의 아버지는 그를 맞았지. 그의 아버지는 그가 최근 어울리기 시작한. '비루한 무리들', 특히 그 중에서도 대장 노릇을 하는 더러운 창녀에 대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면서, 당장 그들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소리쳤어. 하지만 이전까지 서자라는 신분에 위축되어 살던 이 사생아는 그 여인을 '더러운 창녀'라고 칭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느끼면서, 내 자신의 일은 내가 결정하겠다는,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말로 아버지에게 대들었어.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충격을 받고 잠시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다가, 그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말을 듣는 게 좋을 거라는 말과 함께 아들을 내보냈어.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노호에도 아랑곳 않고 그들과의 교제를 지속하던 어느 날, 그는 간만에 찾아간 그들의 구호소 안에서 흘러 나오는 사람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 놀라 급히 그 안으로 향했어. 그 안에는 여인의 창백한 시신이 본래는 안도란을 위한 제단으로 쓰였을 반석 위에 눕혀져 있었고, 그 주위를 둘러 싸고 구호소의 모든 이들을 흐느끼고 있는 모습을 그는 볼 수 있었어. 망연자실한 그는 다른 이들에게서 그 전날 밤까지 멀쩡했던 그녀가 그 날 아침 눈을 뜨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선, 그녀를 애도하고자, 또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뇌리에 담아 두고자 제단 앞으로 다가갔어. 그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주검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는 것을 보고 그는 바로 몸을 돌려 그 곳을 빠져 나와 자신의 저택으로,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아버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혹시 '밤의 눈물'을 써서 그녀를 죽인 것이 아니냐며 따지고 드는 아들에게, 그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의심을 하는 게냐? 죽은 시체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는 건 흔한 일이고, 그것만으로 그 독을 썼다고 의심하는 천치들이나 할 것이지. 그리고 설령, 내가 정말로 그 비천한 여자를 죽였다고 해도 그게 무슨 문제라는 게냐?'라고 대꾸했어.
이내 둘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고, 극도로 분노한 그의 아버지가 '너도 그 하찮은 여자를 닮으려는 거냐!'라고 외치자, 그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아버지를 추궁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여인이 실은 자신의 친모였고, 그를 낳고 난 뒤 다시는 그의 아버지와 자신, 가문 구성원들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조건과 함께 목숨을 부지하고 내쳐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 자신의 아들에게서 자신이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여인의 선량한 면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을 본 그는 그 여인과 아들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져 둘의 사이가 돈독해진 사실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어떤 경고와 방해로도 둘의 만남을 완전히 막을 수 없으리란 사실을 직감했고, 이대로 가면 그 여자가 자신의 아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버려놓을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기로 결정한 거였어. 그리고 한 편으로는, 지금까지 잊고 있던 그녀의 행방을 우연히 알아 내게 되자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을 망쳐 놓을 가장 큰 화근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을 지도 모르지. '그런 비루한 여인에게 그런 비싼 독까지 쓴 건 한 때 내가 사랑했고 너를 있게 해준 여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는 분노와 경악으로 말을 더듬으며 이전까지 아버지가 자신에게 충고한 모든 것들을 다시 말해 며 자신은 더 이상 그런 가르침에 따라 살고 싶지 않다고 답했어. '저는 결코 당신과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겁니다.'
그 대답을 듣고 말없이 자신의 의자에 주저 앉은 남자의 모습에선 어떤 기백도 느껴지지 않았어. 그저 야위고 늙은 남자가 자신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지. 그는 주름진 얼굴에 파묻힌 충혈된 눈을 들어 자신의 아들에게 대답했어. '아니. 나는 안다.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그 말을 들은 아들은 말없이 몸을 돌려 문 밖으로 발걸음을 딛은 뒤 문을 닫았어. 그리고 문이 닫히기 직전, 그는 노인의 지친 음성을 들을 수 있었지. '이걸로 된 겁니까, 아버지?'
이후에도 그는 구호소의 사람들과 교류를 계속했어.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만날 당시 일행 중 유일하게 귀족의 예복을 걸치고 있었고 이후 실제로도 드로빈지 가문의 후견을 받는소귀족 가문의 가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안토니오 임비우스라는 남자로부터 조심스런 권유를 받게 돼. 캐릭터가 자신의 아버지, 웨스트크라운의 귀족들, 더 나아가 첼리악스 제국의 타락상에까지 분노하게 되었단 사실을 눈치 챈 그가 이 제국의 수도이자 안도란의 성도였던 이 도시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냐는 비밀스런 권유를 해온 거야. 그가 이 권유에 흥미를 보이며 비밀을 엄수하겠다고 맹세하자, 그는 진상을 말해줬어. 웨스트크라운에는 이 도시를 제국의 영향력에서 해방시켜 독립된 도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비밀스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결사가 있고, 그 결사의 수장은 다름 아닌 드로빈지 가문의 수장 '바신디오 드로빈지'라는 거야.
본래 바신디오는 젊은 시절 몰래 아이오메데 신앙에 투신했던 이상으로 가득 찬 젊은이였지만, 가주였던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자 그 자리를 이어 받아 온갖 더러운 권모술수와 협잡 및 계략으로 가문을 지켜냈고. 특히 이미 오래전부터 웨스트크라운의 귀족들이 개입해있었던 도시의 범죄 사업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 웨스트크라운의 암흑가를 장악함은 물론 그를 바탕으로 가업인 상업에서도 대성해 무너질뻔한 가문을 다시 웨스트크라운 제일의 가문으로 올려 놓은 입지전적 인물이었어. 하지만 말년에 들어 가문을 이어 받을 예정이었던 자신의 아들 내외에게서 어째선지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사생아 에카르디안이 태어났고, 반은 쫓아내듯, 반은 피신시키듯 외국의 사업장으로 떠나 보낸 아들은 항해 도중 사고로 실종되어 결국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티플링 태생의 독자가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가 되는 기가 막힌 일을 당하게 되었지. 그러자 지금껏 온갖 죄악을 저지르며 지켜오고자 했던 가장 소중한 것, 즉 그의 가정이 어이없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의 지난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젊은 시절 품었던 신앙에 다시금 귀의해 그간 자신이 지은-그리고 아마 앞으로 자신이 대의라고 빋는 모종의 거대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또 저지르게 될- 죄악들을 속죄하고자 그간 자신의 기반이었던 범죄 사업들을 정리함과 동시에 가문의 사업을 합법으로 전환하고, 또 이 도시를 악의 제국으로 해방시킬 계획까지 세우게 된 거였어.
안토니오의 소개를 받고 조직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캐릭터는 안토니오의 안배에 따라 자신의 아버지에게, 드로빈지 가의 후견 가문인 임비우스 가문의 사람을 도와 드로빈지 가문의 사업 경호와 관련된 일을 얼마간 맡아 줄 것을 권유 받았으며 자신도 그 일을 맡고 싶다는 말을 전했어. 그의 아버지는 드디어 자신의 아들이 방황을 끝낸 것은 물론 자신이 그토록 염원했던 드로빈기 가문과의 인맥 형성에 도움까지 줄 기회까지 얻어온 데 크게 기뻐하며 기꺼이 승낙함은 물론 얼마간의 돈까지 쥐어줬어. 진상을 알고 나면 분명 대경실색할 일에 자신의 아들이 발음 들이밀었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이 귀족의 사생아가 운명의 전환점을 맞기 시작할 즈음, 웨스트크라운 인근의 깊은 산 속에서 기나긴 수행을 마친 한 티플링 수도사가 제국의 눈길을 피해 한동안 떠나있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고향, 웨스트크라운의 도공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
이제 슬슬 자러 가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나중에 시간 생기면 이어서 더 적어보겠음.
그리고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해두자면, 위에서 얘기한 바신디오 드로빈지의 설정은 내가 임의로 바꿔서 써먹은 것이고 공식 설정과는 다른 설정이니 착오 없길 바람.
카운슬 오브 시브즈면 사실 레지스탕스 물보다는 얽히고 섥힌 음모의 어반물 성향이 강하긴 한데 변주를 잘 한듯... 나도 그런 캠페인 하고 싶다
언제 플이 터지나 두근거리며 읽고 있었다. 턀갤에 올라온 플레이 폭파 썰에 너무 자연스럽게 적응해버렸나....
음모 가득한 도시에서 펼쳐지는 레지스탕스 영웅담이라는 측면에서 기획 당시 디스아너드를 주요하게 참고했었음. 당장 웨스트크라운만 해도 베네치아에서 모티브를 딴 물의 도시였던지라, 게임 내적인 묘사 부분에서도 도입할 거리가 많았음. 도시를 몰래 돌아다니기 위한 운송 수단으로 도시 곳곳에 자리한 운하 등의 수로들 사이를 쪽배를 타고 돌아다닌다거나. 그리고 이 수로들이 전부 웨스트크라운의 거대한 하수도(시나리오집 안에 지도 및 데이터로 수록된 그거)들과 연결되어 있어, 수로 및 하수도에 거주하는 생명체들과의 랜던 인카운터들만 감수한다면 얼마든지 마음 먹는대로 도시를 몰래 돌아다닐 수 있는 구조였음.
거의 소설이네 다음편 기대
존잼
그래서 플 터졌음?
와 이런플하려면 대체 몇세션이 필요한거지
개추박고간다
와, 길어서 지금에야 천천히 읽어봤는데 흥미진진하네요. 훌륭합니다. 개추드려요.
캬 완벽한 ㅍㅍ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