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거리는 전통적인 조선의 상업 중심가였습니다. 하지만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상권을 일본인 중심의 진고개(혼마치, 현 충무로)에 빼앗겨 썰렁한 거리였습니다.

괴벽구락부는 1915년 그런 종로의 쇠락한 한 상가 지하실에 세워졌습니다. 침묵과 동조를 강요하는 동문회의 폭압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천재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하는 비밀 조직이 설립자의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거의 10년을 무사히 보냈습니다. 실험실이 날아갈 뻔 한적도 있고, 구성원들이 새로 들어오고 나가고, 어쩔 때는 죽기도 했지만, 총독부와 동문회의 관심을 끄는 일 없이 그럭저럭 굴러 나갔습니다.


문제는 종로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도로가 개수되며 수많은 이층집들에 새로운 상점이 들어섰으며, 그 중 서점은 특히 인기입니다. 일본어 서적들을 원서 그대로 들어와서 젊은 층에서 종로는 지식인이면 한번 쯤 들러야 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종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덕원상점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매상이었던 것이 뛰어난 상업 수완과 서비스 정신으로 공격적인 분점 확장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근처 상인들도 호객 행위에 나서면서 종로 거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입니다.


천재들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실을 온갖 방식으로 개조해 놓았기에 버리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 버티고 있자니 언제 사건이 터질 줄 모릅니다. 이런 불안불안한 상황에서 별의별 사고를 친 신입 천재들이 괴벽구락부의 문을 두드립니다...


교토쿠 타다시토(행덕충오), 남성, 48세.

마그넘 오푸스: 알타이 언어 심성론을 증명하는 것. 촉매: 호프넝. 미덕: 무편견. 악덕: 비현실성.

장: 언어, 민족성, 주술. 경이: 토템 원문화 자극기, 알타이계 언령자극.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돋보기 안경을 쓴 괴벽구락부의 부장입니다. 훗카이도 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조선으로 건너와서, 갑자기 조선인은 시베리아-훗카이도-만주로 이어지는 알타이 언어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이지만...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고대 주술을 이용하면 조선인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논문을 내면서 학계에서 매장당합니다. 그 후 자신의 남아있는 인맥과 재산을 이용해서 괴벽구락부를 설립하고 종적을 감춥니다.

본인의 이론이 총독부에 유용하게 써먹힐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교토쿠는 내지인/속지인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보면 민속학자 주제에 식민지와 민족이라는 특수성에 대한 관념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지내면 그럭저럭 재미있는 사람이겠지만, 다른 좀 더 현실감 있는 천재가 아니었다면 괴벽구락부는 벌써 박살이 났을 겁니다.


함흥댁, 여성. 20대 후반.

마그넘 오푸스: 불명. 촉매: 클라겐. 미덕: 신중함. 악덕: 색욕.

장: 불명. 경이: 불명.

함흥댁의 본명은 알 수 없습니다. 없을수도 있고요. 그저 스무살도 되기 전에 경성에 시집을 왔다가 그대로 청상과부가 되버리고 말았고, 3년 후 천재로 각성해서 괴벽구락부에 들어왔다는 것 말고는 본인이 밝히는 바는 없습니다. 교토쿠 또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히 침묵을 지킵니다. 함흥댁은 결혼으로 해내지 못한 안주인 역할을 구락부에서 하겠다는 것인지, 구락부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다른 천재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목표나 이론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물건만 만질 뿐입니다. 경이를 보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자기 연구소 서랍에 수북히 쌓인 어디서 난 건지 모를 연애편지들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최덕오, 남성, 23세.

마그넘 오푸스: 아-인슈타인 박사를 한 번이라도 만나는 것. 촉매: 스타우넨. 미덕: 친화성. 악덕: 수다.

장: 시간, 중력. 경이: 상대성 광선총, 상대성 인력거, 상대성 가배...

경주 최씨 충렬공파의 종손이 어느 잡지에서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에 관해서 읽더니 상대성 이론 빠돌이가 되었습니다. 무작정 상경한 뒤 거하게 사고를 치던 것을 교토쿠가 구락부로 끌고 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연정다방에서 차를 따르는 구락부의 대외 얼굴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입이 가벼워서 온갖 내용을 다 떠벌리고 다닌다는 점은 문제지만, 그 점은 어떤 천재도 막길 포기했습니다.


구락부에는 다른 천재들도 많이 다니지만, 대부분 따로 집이 있고 이곳으로 토의나 실험, 발명을 하기 위해서 들르는 식입니다. 구락부에서 아예 숙식을 해결하는 것은 이 셋이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