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구 하나가 내가 ORPG를 하는 걸 보곤 자기도 하고 싶다고 했었다. 이 친구는 TRPG경험도 없고 나도 멍겅 성향을 잘 알다보니깐 좀처럼 같이 하자고는 말은 못하고 찻집이나 니가 페!미하면 트위터가라고는 했는데 그런쪽과는 인연이 전혀 없어서 사람들과 어울리질 못하더라.
그래서 이 친구가 파티에 끼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을 때 내가 권했다.

"야 그럼 1:1로 해보는 건 어때? 내가 아는 페이트코어 뿐이라 이건 좀 어렵긴 한데 익숙해지면 재미있을 거야."

친구는 좋아했다.


규칙을 같이 읽으며 이해 안 된다는 부분을 알려줬고 여러가지 설정에 대해서는 이 친구에게 물어봤다. 하고 싶은 거라던가 자신있는 거라던가. 그러니깐 자기는 인터넷 소설 중세 로멘스 판타지류가 좋고 여러가지 클리셰 보는 게 재미있다더라.

여기서 때려 쳤어야했다. 나는 중세도 잘 모르고 클리셰도 잘 모른다. 그저 중세판타지 비스무리 느낌만 나는 거로다가 이야기를 진행할 뿐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내가 룰을 알려줬듯이 자기가 설정을 알려준다더라. 그러면서 이런저런 설정을 짜서 우리는 마침내 간단하지만 그럴싸한 세계를 만들었다 왕과 마왕이 있고 인간과 괴물이 맞서 싸우고 전쟁의 경계에 존재하는 마을, 용사가 있고 주인공 파티가 용사.

정작 자기는 용사가 하기 싫다고 하면서, 혼자 하지만 파티 플레이처럼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용사 마법사 궁수 사제 이런 느낌으로. 그것도 하나의 클리셰라며

난 진짜 머저리였다. 알겠다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친구와 타협본게 GMPC 3과 NPC, 기타 여러 설명까지 맡아서 플레이하게 됐다.

나는 인물의 인격을 참 못살린다. 어떤 인물이 어떤 행동과 말을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퀘스트주는 NPC1마냥 감정없는 말투 따위밖에 못한다

근데 이 친구가 내 허접스레기 연기를 보더니 "야 니 연기때문에 답답해서 재미가 없잖아" 이러면서 나한테 인물의 성격 대사 행동 따위를 살려보란다. 그러면서 무슨 소설 작법서 가져와서 그걸 나한테 읽고 설명해줬고 나는 그걸 바탕으로 이틀정도 고민하며 캐릭터와 이야기를 다시 짜냈고 그다음번 플레이에서는 칭찬을 들었다.

인물이 살아났다며 좋아라 플레이 하는데 내가 절대 다수가 되어 친구의 캐릭터를 살려주며 플레이 하려고 하니 아주 그냥 타자수가 폭발하게 되고 혼자 죽어라 타자치며 반응 요구하고 이야기 이끌어달라고 어필하는데 친구는 소설읽듯이 읽고는 몇마디 안 적고 나보고 이야기를 진행하게 시켰다.

답답해소 이야기를 진행시켰고 친구 캐릭터가 아파서 쓰러졌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아아, 익숙한 천장이다.' 같은 식으로 약간 해리포터에 나오는 그런 학생 병동마냥 그런 곳에서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수녀같은 사람들이 돌봐주면서, "아가씨가 쓰려지셔서 의사분을 데려와 봐달라고 했어요" 같은 말을 했었다.

그러니깐 나한테 욕을 박으며 "야 중세에 의사가 어디있고 병동이 어디있어!!!" 이지랄 하더라.

난 중세같은 거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고증은 못맞춰준다고 하니깐 자기는 고증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기본적인 거만 지켜달라는 거다. 너때문에 이야기를 읽다가 눈쌀이 찌푸려진다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시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공부하려고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있잖아 야발련아

씨발 다시 생각해도 좆같네

아무튼 별것도 아니고 그냥 맞춤법 꾸준히 틀린 것도 아니면 넘기면 될 것을 자꾸 고증 맞추라고 과민반응하며 자기는 고증을 요구하지 않는다길래 만나서 밥먹으며 너랑 좆같아서 못해먹겠다 욕박고 빠이빠이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내 소중한 플레이어 머리를 멍강낼 게 아니라 이딴걸 하려고 했었던 내 머리를 반갈멍 해야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