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했던 프롤로그 세션 리플레이임. 대충 3편 정도로 구성될 듯 싶음.

PC는 드워프 바바리안/레인저인 시드그렉. 이 PC의 성격이나 동기 등을 GM과 PL 서로 감을 잡기 위한 프롤로그 세션이었음.

웜즈 베인은 모우란의 별명. 대략 300년 전 질버휘겔을 처음 세웠을 때 공격해온 화이트 웜에게 아버지와 형을 잃은 그가 도끼에 붙인 이름이었고, 용을 죽이고 난 이후로는 그의 별명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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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쟁이들은 맥주잔을 높이 들고 건배사를 외쳤지만 질버휘겔의 분위기는 어두웠습니다. 오크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질버휘겔과 교류하던 몇 안되는 성채 중 하나였던 함머홀트가 완전히 궤멸되어버렸기 때문이죠. 큰 승리가, 큰 승리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만, 이 축하연은 그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함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삶을 마감한 전사들이 선조들의 전당에서 편안히 지내기를 바라는 예식이기도 했습니다. 세인은 앞으로 찾아올 수 있는 어두운 시간에도 함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난쟁이들을 격려했고, 전사들의 노력을 치하했습니다. 곳곳에서 이어지는 건배사, 그리고 일종의 예의바른 행동으로써 터져 나오는 축원과 환호. 하지만 조른하르트 가문의 상석에 앉은 늙은 모우란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모우란은 한 손에는 벌꿀주 병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술잔을 들고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흰 빛 외에 어떤 색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의 턱수염이, 다듬어지지 않아 빗자루마냥 삐죽이고 거친 끝이 바닥의 돌 타일을 쓸었죠. 시드그렉은 벌꿀술에 잔뜩 절어 축 늘어진 할아버지의 콧수염이 굳게 다문 입술 위로 파르르 떨리고, 그의 미간에 이미 깊게 새겨진 주름이 한 층 더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드그렉은 잘 알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우란이 화를 내기 전의 전조였죠.

 “이런 대가리에 맥주 밖에 들지 않은 머저리들 같으니!”

 단상에 선 모우란의 노기 어린 외침이 울렸습니다. 마치 산이 내뱉는 듯한 분노의 불길이 모든 산소를 태워버린듯, 왁자지껄하던 소리는 일순간에 가라앉아버리고 성채는 정적에 잠겼습니다.

 “겨우 떠돌이 오크 놈들을 죽여 없앤 것이 그리 자랑할 일이더냐! 그래, 그게 문제지! 술이나 마시며, 눈 앞의 작은 승리에 정신이 팔려 다들 깔깔대는 꼴이라니! 알아 들었느냐! 함머홀트가 사라져버렸단 말이다!”

 그는 그러며 연회장 구석에 모여있던 피난민들을 지목했습니다. 함머홀트의 생존자들이었죠. 난쟁이들은 그 말을 애써 부정하듯 목 구멍 깊은 곳에서 신음을 뱉어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괜찮은 동족들도 여럿 잃었지. 똑똑하고 근면성실했던 자들. 너희 모두와 맥주잔을 기꺼이 나누려 들었을 그 친구들을 말이다!”

 “선조들께서 그들을 전당으로 인도하시길.”

 엄숙한 제창이 전당을 맴돌았죠.

 “그들이 선조들과 함께 배불리 먹고 마시기를.”

 모우란 또한 잔을 들어올리고 함께 읊조렸습니다. 그러다 잔이 빈 것을 깨닫고는 잔을 등 뒤로 던지고 술병 째로 입 안에 부어넣었습니다.

 “나는 평생 무기에 기대어 살았다. 다른 똑똑한 이들과는 달리 고개를 들어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어. 내 아비와 형과 달리, 그 반의 반도 지혜롭지 못한 놈이었거든.

 하지만 나도 갱도에 가득한 가스 내음을 맡을 줄은 안다. 성냥에 불을 당기면 안 될 때가 언제인지 알아. 지금 우리는……. 가스가 꽉 들어찬 터널에 몸뚱이를 처넣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제 사소한 불씨라도 하나 생기는 날에는 모두 무너져 내릴게다.

안 그러느냐? 네놈들에게는 이 냄새가 느껴지지 않느냐? 30년 사이에 벌써 이웃 성채를 둘이나 잃었어. 황야를 배회하는 오크 놈들은 점점 영악하고 대담해지고 있고, 고블린의 수는 끝도 없이 불어나고 있다. 내 말을 잘 명심해둬라. 분명 이걸로 끝은 아닐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또 이겨내겠지요! 바로 오늘처럼!”

 시드그렉의 옆에서 형 토그란드가 일어나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모우란의 말을 되받곤 능숙하게 건배사를 돌렸습니다. 불편한 침묵을 깨고, 그가 외치자 곳곳에서 건배사가 이어졌습니다.

 “그 대비는 되어있느냐. 아니지.”

 “실버마운드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오크놈들은 늘 쳐들어왔지요.”

 “오크 뿐이 아닙니다. 고블린, 코볼트, 오거, 트롤, 거인! 성채를 노리는 적은 많았죠. 그래서 지금 그 놈들이 모두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 문짝을 뜯어보지도 못하고 모두 쓰러졌지.”

 아이헨쉴트의 가주인 토그림이 맥주를 크게 들이마신 뒤,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거품을 쓱 닦아내며 성문을 가리켰습니다. 광부 클랜 베르크만 가문의 우두머리, 가빅 베르크만이 자기 수염을 꼬며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광부들이 지하에서 코볼트 놈들의 머리통을 부수느라 바쁠 때도, 지상에서는 순찰자들이 산맥과 숲에서 쏟아지는 괴물들을 상대할 때도, 전사들은 양 쪽 모두에서 싸워야했지요.”

 “지하와 지상을 가리지 않고 성채를 지키고, 동족을 위협하는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 우리 전사들의 역할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우리들의 힘은 온전히 우리의 것만이 아니라, 다른 클랜들의 지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시드그렉과 토그란드의 아버지 멜스란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그 오크 놈들에게도 우리 전사들이 제대로 본 때를 보여줬지요. 성문 앞에서 머리와 몸통이 생이별한 놈들이 삼백이 넘습니다. 도망치다가 다른 놈에게 밟혀 죽은 녀석들은 그보다 더 많고 말이죠.”

 토그란드는 멜스란의 말을 받아 이으며, 동생 시드그렉의 어깨를 툭 치며 건배를 권했습니다.

 “제작년에는 울프그림 가문에서 또다른 코볼트 소굴을 찾아서 쓸어버렸읍죠. 그 놈들 때문에 광부들이 한참 혼자서는 갱도를 돌아다닐 엄두도 내질 못했는데.”

 또 다른 광부 하나가 전사들의 업적을 칭송했습니다. 울프그림의 가주인 할그라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른 두 전사 클랜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건……. 조른하르트와 아이헨실트 가문의 전사들이 옆에 서 주었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었네.”

 토그림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아이헨실트에 대한 울프그림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선조들의 전당에 걸고, 오크나 고블린 따위는 우리 성채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하오. 그런 놈들이 위협이 되느니, 하이킹 엘켄하르트 전하께서 수염을 싹 밀어버리고 스스로가 사실 엘프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주장하는 편이 훨씬 가능성 있는 말이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놈들이 와 봤자, 우리 전사들의 방벽이 놈들을 기다릴거요. 망할 놈들은 내 도끼 맛이나 보라지!”

 “내 망치도!”

 “노포도!”

 “투석기도!”

 “그래요. 이곳에선 모두 안전할 겁니다. 질버휘겔은 근 300년 동안 어떤 적들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았죠. 오크, 놀, 고블린, 그리고 덩치 큰 놈들의 친척, 오거, 트롤, 그리고 서리 거인까지도…….”

 그러며 여기저기 떠들썩해졌습니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더 분위기가 밝아졌지요.


 “하지만……. 용이라면 어쩌겠느냐?”

 일순간 성채는 다시금 조용해졌습니다. 그러곤 이내 살짝 불쾌하며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들은 것과 같이 분위기가 누그러집니다.

 “용이요? 할아버지, 세상에 어떤 용이 우리 성채에 쳐들어오겠어요?”

 “그렇지. 영감님 걱정은 잘 알겠지만, 이 근방에서 용이 마지막으로 목격된건 30년도 더 전의 일이잖소.”

 “거기다 5년 전, 티아마트의 준동 당시에 하이킹 엘켄하르트 폐하께서 인간 영웅들의 도움을 받아 놈들을 모조리 때려 잡으셨지.”

 “그나마 살아있는 것들도 이젠 숨을 죽인 채 제 어두운 땅굴 아래서 기어나오지 않을겁니다. 적어도 폐하께서 살아계신 동안에는요!”

 “폐하께 만수무강함을!”

 “그 분의 망치 아래 번영이 깃들기를!”

 모우란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조용히 웅얼거렸습니다. 심기가 불편한 듯 남은 벌꿀술을 모조리 입 안에 털어 넣었지요.

 “왜요, 용들이 할아버지 술을 모두 빼앗아가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십니까?”

 “난 이제 너무 늙고 지쳤다……. 더는 용의 목을 베는 건 물론, 용의 비늘조차 벗겨내지도 못할지도 모르지. 네놈들이 나를 늙고 멍청한 술주정뱅이라고 생각하는건 다 안다. 그렇지만…….”

 “뭔 소리야! 자네는 젊었을 적에도 젊고 멍청한 술주정뱅이였다고!”

 성채의 룬장이인 다그란이 큰 소리로 농을 건냈습니다. 그는 몇 안되는, 성채에 남아있는 모우란의 동년배였죠. 모우란은 그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어두운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럼 묻겠네, 내 오랜 친구여. 여기서 나보다 더 늙고 경험많은 즈베르그는 누구란 말인가? 자네? 아니면, 세인의 뒤를 졸졸 따르기만 하는 저 머저리들?”

모우란은 입에서 벌꿀술을 흘리며 세인 옆에 침묵하고 있는 귀족들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는 그의 눈은 살짝 감기며, 몸은 앞으로 크게 휘청였지요.

 “너무 많이 드신 것 같군요.”

 토그란드가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자기 뒷감당 정도는 하실 만큼 나이 드신 분이다. 다만, 이대로라면 간만의 축제 분위기를 모조리 망치겠군. 시드그렉?”

 “암요. 항상 제 일이죠.”

 시드그렉은 자기 잔을 모두 비우고, 단상의 할아버지에게 향했습니다.

 “아이고, 할배. 뭐 이리 거하게…….”

 “아, 시드기 아니냐! 내 손자!”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깐. 손자 수염 난지가 언제인데.”

 시드그렉은 팔을 벌려 자신을 안으려 하는 모우란을 한 번 안고 등을 두드려주고선, 그를 업어 단상에서 내려갔습니다. 뒷머리와 등이 축축해진 것을 보니 또 할아버지가 벌꿀술과 침을 흘린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시드그렉은 부끄러움을 참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지요.


 시드그렉은 암석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회색빛 통로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연회가 한창이었기에, 본래는 북적이던 석실에는 적막만이 감돌았지요. 그저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만이 흔들리는 시계추마냥 작고 규칙적으로 울릴 뿐이었습니다.

통로 곳곳에 꽂힌 횃불은 희미한 조명을 은은히 비쳐왔습니다. 모우란과, 그를 업은 시드그렉의 그림자가 석벽에 커다랗게 일렁거렸습니다. 시드그렉은 그들을 따라 걷는 그림자가 마치 전설 속의 난쟁이 영웅들과 같이 크고 위풍당당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자신과 할아버지의 모습은 초라했지만요.

 “……. 나도 안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몰골과 같이, 모우란의 목소리가 힘없이 새어나왔습니다.

 “내가 하는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라는 것도, 지금 성채를 위협할만한 용이 별로 없다는 것도…….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불안하단다. 내 동물적인 육감이……. 우리 앞에 다가올 불행들을 경고하고 있어. 지금도 나는……. 잠을 잘 때면 꿈을 꾼단다. 호수가 완전히 얼어붙고, 동족들이 용의 발톱에 조각나고, 형제와 선조들이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고 용의 숨결에 삼켜지는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그해 겨울을……. 잊을 수가 없어…….”

 모우란은 이내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시드그렉은 그를 업은 채 발을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시드그렉은 할아버지의 위업에 대해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습니다. 모든 이야기 속에서 모우란은 주어진 운명과 시련에 대해 항상 당당했죠. 용의 목을 그 몸뚱아리에서 분리해내는 그 순간 그의 신화적 분노는 산울림과 같이 거대했고, 성채의 어떤 난쟁이도 그의 용기와 힘에 대해 감히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우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공포와 불안이 그 마음을 잔뜩 비집고 들어가, 내면에서부터 이에 굴복해버린 나약한 늙은이. 그것이 현재 모우란의 전부였죠. 다른 종족은, 특히 인간들은 난쟁이, 즈베르그를 타고난 전사라 불렀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난쟁이는 대개 어떤 클랜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직무가 정해지고, 그 중 정말 ‘전사’로서 태어나는 이들은 그리 많이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클랜에서 태어났건, 모든 난쟁이는 도끼나 망치를 다룰 수 있도록 훈련받습니다. 지하에서의 삶은 지상에서의 삶보다 훨씬, 항상 위험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무기를 든 난쟁이는 다른 종족 기준에서 언제고 젊은이고 전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우란이 과연 전사일까요? 시드그렉은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모우란의 돌침대에 그를 조심스럽게 뉘인 시드그렉은 조용히 방을 나오려 했습니다. 그 때 모우란이 그의 이름을 불렀죠.

 “시드그렉……. 얘야……. 이리 가까이 오려무나…….”

 “주무시지, 뭘 또 부르시고 그러시나.”

 시드그렉은 그러면서도, 돌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모우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침대 옆 서랍장 안으로 손을 뻗어 더듬거리더니, 열쇠 하나를 꺼내 시드그렉에게 건냈습니다. 어둠 속이었지만, 시드그렉은 할아버지가 쥔 줄에 메달려 흔들리는 빛나는 금속성 물체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지요.

은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열쇠였습니다. 시드그렉이 그것을 받자, 모우란은 방 반대편에 있는 장식장을 가리켰습니다. 은제 프레임에, 투명한 수정을 통째로 깎아 만든 장식장이었습니다. 그 안에 든 것은 그의 도끼였죠.

겨울 폭풍. 백색 고룡 그하즈로크를 쓰러뜨릴 때 모우란이 사용했었던 바로 그 룬 도끼였습니다. 용의 목을 베어내며 묻어난 피로 인해 영원히 냉기를 머금게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수백년간의 시간을 모우란의 일생과 함께 해 온 무기였죠.

 “내 도끼를 내게……. 가져다 주려무나…….”

 시드그렉은 장식장의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고 돌렸습니다. 가벼운 금속음, 부드러운 움직임. 수정으로 만든 장식장의 문이 열리자, 시드그렉은 방의 온도가 한층 차가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시드그렉이 천천히 손을 뻗어 도끼의 자루를 쥐자, 도끼 몸에 새겨져 있는 네 개의 룬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어둠 속에서 타올랐습니다.

도끼는 보다시피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시드그렉은 양 팔에 느껴지는 투박하고 육중한 무게감에 잠깐 당황했지만, 도끼날과 자루의 무게가 완벽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지요. 시드그렉은 천천히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침상으로 가져갔습니다.

모우란은 그런 손자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몸을 일으켜 그가 건내는 도끼를 받았습니다.

 “난 이제 늙었다. 첫번째 숨을 세상에 내뱉은 지도 벌써 사백년이 되었지. 내 아버지와 형이 목숨을 잃었을 때, 난 아버지의 도끼에 용의 파멸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이고선 그들의 복수를 맹세했다. 내 친구 다그란이 새로 벼린 룬을 이 도끼날에 박아주기까지 했지. 이 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느냐?”

 그의 주름진 손이 아주 오랜 친구를 대하듯 도끼에 새겨진 룬 하나하나를 만졌습니다. 마치 그 감촉을 처음 느꼈을 때의 기억을 회상하듯이 말이죠.

 “전쟁. 고통. 사냥. 그리고……. 복수. 이 도끼를 처음 휘두르게 된 뒤로 숨 한 번 제대로 돌릴 시간이 없었다만……. 이제는 나도 알 것 같구나. 이제는 이 아름다운 무기를 다시 쥘 순간이 더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우란의 말 끝에선 그리움, 미련, 슬픔, 아쉬움과 같은 감정들이 잔뜩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이내 시선을 돌리고선 그것들을 애써 떨쳐내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원한다면 이 도끼는 네가 가져도 좋단다, 시드그렉. 내게는 이제 필요 없으니.”

 모우란은 손자 쪽으로 천천히 도끼를 밀어냈습니다.

 “적과 나 사이에 늘 함께 해주었단 내 오랜 친구여……. 지금껏 긴 세월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내 곁에 있어 주어서 정말이지……. 영광이었다.”

 모우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도끼날 위로 떨어졌습니다. 눈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날에 달라붙지만, 모우라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떨어내고선 도끼를 시드그렉에게 넘겼지요.

 “……. 아직 아니요, 할배. 아직 정정하시잖아.”

 시드그렉은 도끼를 받아들고, 모우란을 도로 눕혔습니다. 그런 뒤, 다시 겨울 폭풍을 수정 장식장 안에 넣은 뒤, 장식장을 잠군 열쇠를 도로 서랍장에 넣었지요. 아마도, 얼마 뒤 할아버지가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적을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그것을 늦추고자 하려는 마음이었겠지요. 시드그렉은 스스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 행동이 의미가 없으리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우란은 연회 이후로 단 한 번도 방을 나서지도, 술잔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잠에 빠져있었고, 이따금 먼저 간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잠꼬대를 하곤 했지요. 깨어 있는 동안에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창문 밖 난쟁이들이 바삐 움직이는 성채의 석실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었습니다. 마치 삶의 목적을 잃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들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몇 주 뒤의 어느 날 아침, 모우란은 침대 위에서 잠든 듯이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