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턀갤 특유의 장작 태우는 병이 도진 거 같으니 나도 끼어들어보기로 했음. 짤은 아래 글에도 나왔는데 초딩이 친구들하고 D&D하려고 만든 시나리오라는 컨셉의 물건이다.... 초등학생 대단해!


편하게 배우는 룰, 팀은 구하셨는지?

분명히 대부분의 룰북이 길고 복잡하고 읽기 귀찮은 책인 건 맞음. 사실이잖아? 고인물들이 룰북이 읽기 쉽니 어쩌니 해도 뉴비들에게 어려운 건 사실이고, 이걸 제작사들도 모르는 거 아니니까 떠먹이려고 나오는 게 퀵스타트 / 스타터 / 에센셜 키트 등의 이름이 붙은 '룰 요약본'이 수록된 물건임. 이름은 달라도 결국 기본적인 룰 위주로 간략하게 보여주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확 줄여서 내놓는 물건들임. 이 정도도 읽기 싫은 사람이라면 딱히 더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도 되니 일단 왜 내가 '이 룰'로 'TRPG'를 하려드는 지 한 번 쯤 생각해 보고, 그럴 가치가 없다 싶으면 그냥 좀 더 하기 좋은 딴 거 찾아보거나 그러면 될 것 같다.


물론 하나 더 믿어 볼 구석인 것이 있긴 있는데.... TRPG는 이게 모르면 죽어야 하는 비정한 미니어처 게임이나 서로의 영혼을 걸고 하는 카드 게임 같은 게 아닌 '협력 게임(대부분은 그렇다)'이고, 또한 게임의 구조상 게임을 주관해 줄 마스터가 한 명 이상 있는 게 일반적이라는 거임. 그러니까 잘 모르겠으면 니네 팀 / 혹은 이번에 할 플레이 관련 마스터, 혹은 너보다는 좀 고인 냄새가 나는 다른 플레이어 등에게 먼저 물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는 거다. 오히려 이게 책 읽는 거보다 중요 포인트를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음. 마치 유튜브 동영상 같은 거 보고 정보를 얻는 것처럼 말이지....


이렇게 잘 읽히지도 않는 두꺼운 책만 혼자 붙들고 낑낑대며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룰을 배울 기회는 있다는 거임. 문제는 롤도 있고 배그도 있고 콘솔겜도 많고 술도 있고 담배도 있고 그런 이 세상에 TRPG 하는 다른 사람이나 룰북을 붙잡고서 그렇게 노력하면서 익힐만한 동기가 얼마나 있냐는 거지.


룰의 상대적 위치?

그리고 턀갤에서는 항상 이런 거 화두에 나오는 게 D&D 5판인데, 이건 좀 묘하다. '5판은 쉬운가?' 라고 말하면 이게 결국 상대적인 기준에서 쉽다 어렵다가 갈릴 거고, 그 기준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턀갤럼들, 특히 고인물과 뉴비들 사이의 기준이 엄청나게 다를 거거든. 2000년대 이후 D&D의 기조를 놓고 보면 5판은 분명히 다른 버전의 D&D, 특히 쩜오와 패파에 비해서는 쉬운 룰인 게 맞다. 그리고 여기 고인물 새퀴들은 대부분 저 다른 버전들을 경험해 본 놈들임.


근데 국내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출발한 뉴비 관점에서만 생각해보면 D&D 5판은 분명히 어려운 룰 맞음. 겁스를 제외하면 국내에 들어온 룰 대다수는 이거보다 라이트하고, 다른 버전의 D&D하고 비교하는 이야기 백날 해 봐야 그런 거 경험 안 해 본 뉴비들 입장에서는 "Latte is Horse...."하는 눈뜨고 잠꼬대하는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거든. 간단한 예로 "밴스식 X같네요"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들 수 있는데, 이거만 해도 사실 5판 밴스식은 신-밴스식(Neo-Vancian)이라고 해서 쩜오 시절에 쓰이던 밴스식 마법 체계를 덜 불편하게 개량한 버전임. 근데 뉴비들 입장에서는 그 시절 밴스식은 내가 안 해 봤고 안 할 거니까 알 바 아니라 이거지. 이와 비슷한 사례로 기준이 되는 시점의 차이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예로는 지금 국내에서 아마 "5판보다 쉬운 데이터룰"로 통할 CoC 정도를 들 수 있겠다. 혹시 이런 걸 전에 본 적이 있냐?



아아, 이것은 CoC에서 사용하던(지금도 CoC 아닌 룰에서는 사용하는) 저항표(Resistance Table)라는 물건이다ㅡ

CoC 6판까지는 이 표를 보고 능력치를 비교한 뒤에 원하는 결과값을 찾아서 그 수치를 기준으로 판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음. 7판에서는 이럴 경우 그냥 능력치를 그대로 써서 판정하고, 대신 보통 / 어려운 / 극단적 성공의 범위 안에서 판정에 성공하기 위한 성공 수준을 다르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판정의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 둘 다 능력치를 기반으로 판정을 해서 처리하는 부분을 다루는 내용이지만 뉴비들 입장에서 6판의 저항표를 본다면 아마도 확실히 "디테일한 대신에 X같고 비직관적인" 룰이 될 거고, 7판의 능력치 기반 판정을 본다면 "알기 쉽고 간단한", 혹은 "그래도 좀 어려운(판정 난이도 조절 부분이)" 룰 정도가 되겠지.


물론 위의 X같아 보이는 저항표가 사실 '기본 50%+(행동 하는 쪽의 능력치 - 행동 대상의 능력치) x 5% = 판정 성공률(%)' 공식을 풀어서 표로 나타낸 내용이라는 거 아는 고인 새끼들은 "그냥 저거는 표 없이도 계산해서 하면 되는 건데 ㅎㅎ;" 할 수도 있겠지만, 6판 이전의 CoC가 쩜오 / 패파만큼 고인물이 많지 않고, 이게 그 두 룰들보다도 훨씬 더 비직관적인 것도 확실하니 그런 말까지는 거의 안 하는 거. 못 하는 건가? 일단 이 정도면 룰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복잡하고 안 복잡하고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 이거 말고도 CoC에서 개떡같던 걸로는 빼놓을 수 없었던 구판 CoC 기관총 연사 규칙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세상은 넓고 룰은 많다

그래서 5판은 좋은가? 네 좋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어쩌고 하는 판매량은 둘째치고, 일단 룰 자체의 특성만 봐도 돈법사라는 안정적인 출판사와 해외의 많은 서드파티 업체 / 플레이어들이 있기 때문에 '영어가 가능하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 들어 올 그 어떤 룰보다도 더 많은 플레이 관련 조언과 데이터 등의 자원을 찾아서 활용할 수 있고, 룰 또한 확실히 기존의 'D&D'라는 프랜차이즈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쩜오 시절의 복잡함을 줄이고, 사탄 시절에 메호메 / 메불메가 갈린 부분 중에서 평이 좋았던 부분 위주로 추려내 써먹으려 한 + OSR의 요소도 가져오려 시도한(그 과정에서 OSR계 어그로 종자도 좀 끌어들이긴 했지만), 요약하자면 '기존 버전보다 확실히 발전한 점이 있고 그게 눈에 들어오는' 좋은 룰 맞음. 레인저 클래스 설계 부분은 룰 아니잖아?


그럼 난 5판이 싫은데(어려운데) 5판이 아니면 할 룰이 없냐? 그건 또 아님. 찾아보면 많음. 그러니까 5판, 또는 다른 특정 룰이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냥 다른 룰을 찾아가면 됨. 해외에서는 5판과 패파, 그리고 그 미만 잡룰들인 구도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 격차가 압도적이지만 그래도 그 미만 잡 룰들이 많이 나오고, 한국 안으로 한정할 경우에는 아예 삼두회의 삽질과 초여명 등의 선전 덕에 해외처럼 D&D가 다 해먹는 구도가 형성된 것도, 앞으로 형성될 것도 아니잖음? 어차피 TRPG 플레이라는 게 결국 일단 룰 하나 정하고 그 룰을 하려는 팀을 돌릴 인원만 모으면 외부 상황이야 어쨌든 돌아가게 되어 있음. 문제는 그럴 만한 동기와 의지가 있냐는 거지.


3줄 요약

혼자 룰북잡고 낑낑대는 것 외에도 룰 익힐 방법이 없진 않음.

특정 룰이 어렵냐 쉽냐는 일단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달렸음.

특정 룰이 마음에 안 든다면 그냥 다른 룰 찾아보는 것도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