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리우라는 사내가 있었다. 트란실바니아 산간벽지에 살던 소-보야르(토호)의 순박한 자식이었던 그는 딱히 잘난 구석 없는 사내였지만 부족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귀족은 아니었지만, 고향에서는 귀족이나 다름 없는 대우를 받았다. 또한 그의 동생인 티베리우는 다리우에게는 없는 카리스마와 과단성을 지닌 데다 형에게도 충실했기에 그는 딱히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를 못느끼며 지냈다. 하지만 이처럼 평화롭고 풍족한 세월이 마냥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기 1241년, 동방으로부터 나타난 몽골의 대군이 헝가리 왕국의 동부를 휩쓸기 시작했던 것이다.


2. 다리우의 아버지는 삼촌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떠나며 나머지 식솔들을 젊은 다리우와 티베리우에게 맡겼다. 이 시기에는 이미 다리우와 티베리우도 장성한 성인들이었다. 하지만 다리우의 아버지였던 보야르는 자신들이 타타르인(몽골)들과 싸워서 이기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아버지는 가문의 계승자였던 다리우에게 고향에 남아 노인과 여자, 아이들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또한 아버지는 동생인 티베리우를 남겨 다리우를 보필하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사실 가문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트란실바니아 지역 보이보드(대영주)의 군대에 합류하여 타타르인들과 싸우러 떠났던 다리우의 아버지와 삼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3. 다리우는 극심한 공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랬던 그를 이끌었던 것은 동생 티베리우였다. 티베리우는 몽골의 대군이 고향 마을 바로 북쪽 티후타 산고개를 통로 삼아 트란실바니아 지역으로 진입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침략자들이 마을에 들이닥치기 전 어서 산 위로 피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리우는 동생의 말을 들어서 고향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마을을 비운 채 산 위로 올라갔다. 그 덕에 타타르인들의 진군 경로에 있던 다리우의 고향 마을은 기둥 뿌리까지 불탔지만, 사람들은 살해되거나 강간 당하거나 노예로 붙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해 동안 고산지대에서 숨어지내던 마을 사람 중 많은 이들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추위와 허기로 죽어갔다. 이듬해 타타르인들이 물러간 후 산에서 내려왔을 때 살아남은 것은 오직 소수의 사람들 뿐이었다. 노인과 아이 대부분이 사망했었다. 다리우는 자신의 무능함에 죄책감을 느꼈고, 어떻게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이들을 묻고 애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보야르의 자식이라며 안락한 삶을 누렸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이 됐을 때는 누구 하나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보야르였던 자기 아버지처럼 전장에서 침략자들에 맞서다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후방에서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피신했을 뿐...


4. 고향 땅이 농사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것을 발견한 다리우와 고향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서 인접한 도시인 비스트리챠로 향했다. 티베리우가 그곳에서라면 어떻게든 빌어먹을 수라도 있을 것 같았다고 조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시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많은 곳이 불타거나 허물어진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다리우는 한 보야르의 시선을 끌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비스트리차의 라두라고 했다. 라두의 도움 덕분에 다리우와 고향 난민들은 가까스로 식량을 빌리고, 라두가 소유한 장원의 마굿간과 창고에서 그 해 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


5. 하지만 사실 라두는 뱀파이어였다. 그것도 찌미쉬 클랜의 뱀파이어 프린스. 그는 주기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바꿔서 다음 대의 계승자인 척 하며 자기 가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그조차 타타르인의 침략에는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많은 봉신 뱀파이어들이 죽거나 실종됐고, 비스트리차에 딸린 여러 촌락들이 황폐화됐으며, 그에 따라 인간 머릿수도 줄어버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두는 마침 자기 영역에 속한 변경 촌락들을 재건하고 관리해줄 새 뱀파이어 하수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다리우와 그의 난민들은 라두의 필요에 딱 맞는 존재들이었다. 라두는 다리우를 대접하는 중 은밀히 조금씩 자신의 피를 음료에 타 먹여 피의 구속을 걸었고, 다리우를 설득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자기 정체를 드러냈다. 처음에는 다리우도 라두의 정체에 깜짝 놀랐다. 은인이라고 생각했던 자가 실제로는 밤에만 나다닐 수 있고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악귀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의 구속 덕에 다리우는 라두의 설득에 빠르게 넘어갔다. 라두는 뱀파이어가 반드시 사악하고 해로운 존재인 것만은 아니며, 뱀파이어의 힘을 이용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바꿔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3일 동안의 고민 끝에 다리우는 라두의 제안-포옹을 받아들였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무능한 장자인 자신이 그나마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동생인 티베리우에 대한 부채의식과, 스스로가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한 자책의 발로였다.


6. 라두가 다리우를 보낸 곳은 다리우가 원래 살던 고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 티후타 산고개였다. 이곳은 대대로 북쪽의 이민족이 트란실바니아로 들어오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탁트인 산고개였다. 카르파티아 산맥 북동부 줄기에 해당하는 도르네이 산맥을 넘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 외 통로들은 너무 가파르거나, 좁거나, 혹은 위험했다. 따라서 라두는 늘 북쪽의 다른 뱀파이어 프린스가 지배하는 몰도바를 경계하고 감시하기 위해 일단의 인간들을 정주시키고 뱀파이어 하수인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과거 튜튼 기사단은 헝가리 왕의 요청에 따라 이곳에 머물며 북부의 유목민족인 쿠만족을 막기 위해 작은 성채를 짓기도 했었다. 비록 그 성채는 타타르인의 침략기에 모두 불타고 허물어진 채 폐허가 되어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다리우는 바로 이곳에 고향 사람들을 정착시키고 새로 촌락을 이루어야만 했다. 몇 해 동안 마을 사람들은 힘겹게 밭을 갈고 집을 지어 새 터전을 만들어갔다. 다리우는 오직 자기 가족에게만 뱀파이어가 된 사실을 밝혔다. 심지어는 가족조차도 그의 새 본성을 두려워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리우를 다시 자신들의 품으로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리우는 더 이상 고향 사람들 앞에 존재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겨울 몇 주 동안 앓는 연기를 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가장했다. 장사를 지낼 때는 라두가 몰래 도시로부터 보내준 시체를 비시시튜드의 힘으로 자신처럼 바꾸어 대신 사람들 앞에 내보였다. 그 후 이 새 촌락-티후타 촌락의 지도자는 다리우의 동생인 티베리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우는 라두로부터 배운 디시플린들을 보다 연마하며 고향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애니멀리즘으로 늑대나 곰 같은 맹수들이 촌락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고, 오스펙스로 밤마다 토양의 감촉과 나무 안을 흐르는 수액을 가늠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동생 티베리우에게 어느 농토에서 수확량이 좋을 것 같다거나, 어느 숲에서 많은 도토리를 딸 수 있을지 등을 전해주었다. 다리우는 처음으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됐다는 데서 자부심을느꼈다. 비록 신의 은총에서 벗어난 흉측한 존재가 됐지만, 그렇게라도 고향 사람들을 돕고 신의 자비와 사랑에 헌신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시시튜드의 힘만은... 그조차도 거부감을 느꼈다.


7.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다리우는 점차 자신이 고향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도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감을 느꼈다. 가족 모두가 나이를 먹고, 새 후손들이 태어나고, 세대가 바뀌어갔다. 그러나 오직 자신만이 그대로였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할 때도 자신만이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한 채 소외되어 있었으며, 낮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끔찍한 것은, 점점 가족들을 먹이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다리우는 오직 가족들로부터 조금씩의 피를 받아 섭취하고 부족한 양은 가축 떼로부터 빨아마시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늘 갈증에 시달렸고, 이러한 기간이 여러 해를 넘길 수록 그의 본성도 더욱 야성적이 되어갔다. 상황이 심해지자 나중에는 눈 앞에서 아내가 말을 하는 와중에도 말 소리보다는 호흡에 따라 들썩이는 목덜미와, 그 피부 아래로 맥박치며 내달리는 피의 흐름만 의식됐다. 그렇게 될수록 다리우는 의식적으로 흡혈을 기피했다. 물론 이러한 기피는 비극적인 결말을 불러왔다.


8. 유난히 혹독했던 어느 겨울이었다. 수확량도 별로 좋지 못했던 해였기에 촌락의 모두가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었다. 이는 다리우의 가족도 마찬가지여서 그 자신의 아내가 앓는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다리우는 가족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 특별히 더욱 흡혈을 삼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충동의 억제는 결국 다리우를 광기로 몰고 갔고, 어느 밤 다리우는 피의 갈증에 이성을 잃어 가족을 습격했다. 모든 가족이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무능한 장자인 자신을 대신해서 고향의 생존자들을 이끌어왔던 티베리우와 그 가족이 모두 무참하게 살해됐다. 오직 병들어 누워있던 자기 아내와 첫째 자식, 그리고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됐던 티베리우의 막내 딸만이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9. 다리우는 죄책감에 태양 앞으로 걸어나갈 생각까지 했다. 역시 라두의 제안은 악마의 꼬드김이었고, 자신은 영혼마저 신의 은총에서 벗어나 추한 본능에 휘둘리는 식인괴물이 됐다고 여긴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마저 죽을 수는 없었다. 아직 자기 자식은 다 장성한 사내도 아니었다. 심지어는 자기 아버지가 타타르인들과 싸우러 떠났을 때의 자신보다도 열 살이나 어린 나이의 아이였다. 병든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자기가 죽인 동생의 아직 옹알이도 못하는 갓난 딸만 남겨두고 자기까지 죽는 건 너무 비겁한 짓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건, 사실 그는 죽음이 무서웠다.


 그래서 결국 다리우는 계속 살기로 했다. 그는 추운 밤에 먹이를 찾아 촌락까지 온 늑대 무리에게 티베리우와 그 가족이 살해된 것으로 꾸몄다. 가문의 장자 자격은 아직 어린 10대 중반의 아들인 발레리우에게로 돌아갔다. 한동안 티베리우 일가의 죽음은 촌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자 이 또한 지나간 옛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리우는 여전히 그 날의 기억을 안고 살았다. 밤이 지날 수록 죄악감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티베리우의 죽음과 함께 고향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보야르의 책무가 온전히 자신 혼자서 짊어질 의무가 됐다는 의식은 더욱 그를 압박했다. 보야르의 의무를 다해서 촌락 주민들 사이의 의견을 취합하고, 분쟁을 조정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도력과 지혜가 아직 어린 아들에게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괴물이 된 자기 자신이 사람들 앞에 다시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와 같은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인해 다리우는 점점 더 고독하고, 어두운 성격이 되어갔다.


10. 보다 못한 그의 사이어(Sire), 라두는 다른 뱀파이어들을 보내 다리우를 도와야겠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과 연이 있는 뱀파이어들을 하나씩 새로운 봉신으로 받아들여 다리우가 살고 있는 티후타 촌락으로 보냈다. 그게 다른 PC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