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첫 세션을 (그럭저럭) 잘 끝마쳤다. 첫 세션에서 얻은 플레이어들의 취향과 스타일, 관심에 따라서 캠페인을 짜 넣으면 됨. 예전에 누가 글 올렸는데, 당연히 캠페인 계획을 첫 세션보다 먼저 해도 되지만, 나는 테스트를 위해 첫 세션 이후에 짜는 걸 좋아하는 편임.
일단 첫 번째 글에서는 무난하게 별 테크닉 없이 캠페인을 짜는 법을 보여주고, 두 번째 글에서는 좀 더 스토리 헤비한 방식에 적합한 내가 개발한 테크닉인 654321 캠페인 계획을 보여주겠음.
캠페인의 컨셉 - 무엇이 필요한가?
초보들은 캠페인을 처음 짤 때 NPC가 중요하냐 플롯이 중요하냐 캐릭터 백스토리가 중요하냐 같은 걸 물을 텐데. 그걸 물으면 안 되지. 이 캠페인에 뭐가 필요한지를 봐야지. 자, 처음에 정해 놓았던 캠페인 컨셉을 보고 지금 어떤 내용을 정해야 할 지 생각해 보자. "마왕과 싸우는 선택받은 용사들" 이라면 당연히 마왕군이 세상에 어떤 위험을 가져다 주고 있고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PC들이 할 역할을 정해야 하는 거고, "차가운 외계 행성 개척지에서의 잔혹한 생존"을 다룬 샌드박스 캠페인이라면 외계 행성의 구체적 환경과 주요 개척지들의 성격을 정해야 하겠지. "70년대 뉴욕 뒷골목 주먹들 도장깨기 레일로드"면 순서대로 덤벼올 강자들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겠고. 이걸로 우선순위를 짠 다음 계획에 돌입하셈.
예시) A는 플레이어들이 전투에서 흥미를 보였고, 떡밥도 잘 무는 것으로 봐서 캠페인 컨셉은 전투 비중만 올리고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다. "학교에서 10년 전 일어났던 일을 수사하는 마법소녀"이기에, 당연히 10년 전 일의 진상을 정해야 한다. 또한 이 진상을 알지 않기 위해 방해하는 자들이 누군지와, 학교 자체에 숨겨진 비밀 또한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에 비스트도 있으므로, 어쩌면 마법소녀들과 비스트를 이간질하려는 적도 필요할 것 같다.
아이디어 짜내는 법 - 베껴오기, 변형하기, 섞으려고 시도하기
이제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할텐데. 여기서는 캠페인마다 천양지차일 테니 내가 굳이 해줄 말은 없음. 다만 팁이 있다면 베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음. 대놓고 상업적 시나리오로 팔지만 않는다면(그런 경우도 '영감을 받았다'는 마법의 말로 퉁칠 수 있음)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들을 차용하는 건 문제될 일이 없잖아. 물론 그대로 쓴다면 이런저런 문제도 많겠지? 그럴 때는 자신의 캠페인에 맞게 한 번 꼬면 되는 거임.
위에서 말한 70년대 뉴욕 뒷골목 주먹들 도장깨기 레일로드에서 각 주먹들의 성격과 목표들을 나루토 보스들에게서 가져오면 어떨까? 페인이 시도한 구미를 모아서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방법은 여기서는 지역 경찰들과 결탁해서 각 갱들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계획이 되는 거지.
만약 그래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면, 아예 완전히 상관없는 것 같은 두 아이디어를 가져다 와서 어떻게 이 둘을 섞을 수 있을 지 한번 궁리해 보셈. 섞이면 좋고, 섞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머리를 쓰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음.
예시) A는 크툴루 신화에서 이스의 위대한 종족이 죽을 때가 되면 숙주 몸을 바꿔가면서 살아남는다는 내용을 보았다. A는 이게 오싹한 괴담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해, 사실 심성고등학교에서 10년 전 있었던 일도 이런 현상이 아닐까 싶었다. A는 그 괴생명체들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지만 인간을 숙주로 삼고, 10년 단위로 몸이 다 된 사람을 심성고등학교 학생에게 빙의시킨다는 설정을 잡는다. 하지만 10년 전 의식에서 사고가 일어나서 미처 빙의하지 못한 존재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송희정의 외할머니인 것이다! 이제 적들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심성고등학교 내부에는 이 일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존재가 교사로 위장하고 있다고 정한다. 이 NPC의 모티브는 고민 끝에 맥고나걸 선생으로 정하지만(능력 있고 엄격하지만 은근히 잔정도 많음), 너무 평면적인 것 같아서 자비에 교수의 특성(학생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도록 도와줌, 은근히 못 믿을 야심가임, 텔레파시, 대머리에 다리 장애)까지 더해 준다.
PC들의 뒷배경 엮어내기
뭐, 이 부분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지만 엮어주는 편이 플레이어들의 몰입감을 크게 상승시킬 수 있음. PC들의 백스토리를 잘 읽고, 이들의 과거사나 현재 상태 혹은 가치관을 토대로 스토리에서 강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끌어내셈. 물론 백스토리에서 설정한 중요 NPC를 막 죽여버린다던가 하는 단순무식한 방법 말고, 플레이어들도 기분 나쁘지 않을 방법으로. 내가 예전에 친구랑 TR할때 가족관계 설정하라고 한 뒤 바로 다음 세션에서 동생을 죽여버린 적이 있거든? 그 뒤로 걔 나랑 할 때는 절대로 가족관계 설정 안 넣음.
예시) A는 10년 전 사건이 가장 큰 떡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적는다. 다행히 갑의 캐릭터 맹금희와 을의 캐릭터 한민지는 딱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줬다. 10년 전 마법소녀들이 오컬트 의식을 방해해서 전투가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나온다. 한민지의 전임자였던 하트 여왕의 후계자, 그리고 맹금희의 어머니가 전사한다. A는 잠시 생각하다가 맹금희의 어머니가 전사한 것이 아니라 동료의 죽음을 보고 폐위자로 타락했고, 지금은 어둠의 차원에 있으면서 심성고등학교 주변 어둠의 세력을 지휘한다고 정한다. 이 계획은 갑에게 은근슬쩍 물어서 허락을 받아야 하겠다고 A는 노트에 기록한다. 병의 캐릭터인 반예림은 딱히 접점이 없으므로, 흑막인 교사 NPC와의 접점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능력 계발이 NPC의 특성이기도 하니 개연성도 있다. 정의 캐릭터인 김수정은 크로스오버 특화인 짐승이므로, 10년 전 사건에서 마법소녀와 동행했던 다른 초자연체가 있고, 현재 생존해 있다고 설정을 잡는다.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모순이 있나 확인
이제 기초적인 내용은 다 나왔으니, 한번 훑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지 살펴보자. 내용 중에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나 PC들이 조연에 불과한 부분이 없나도 확인해 보고. 그리고 정리해서 마스터 스크린 뒷편에 붙이면 완성!
예시) A는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완전히 정리해서 쓰고, 몇 가지 설정을 추가한다.
1. 세상에는 인간들의 몸에 빙의해서 사는 이차원의 괴물들이 존재한다. 이 괴물들은 인간의 몸이 늙으면 다른 인간으로 교체해서 영생을 누린다.
2. 심성고등학교에서는 10년에 한 번씩 이 괴물들의 몸을 교체하는 의식이 벌어진다.
3. 10년 전 마법소녀 셋과 체인질링 하나가 이 의식을 막으려고 했다.
4. 맹금희의 어머니는 심성고등학교의 교사로, 한민지의 전임자는 심성고등학교의 학생이었다.
5. 전투 끝에 의식은 저지하지만, 의식에 쓰였어야 할 학생들의 육체는 희생된다. 한민지의 전임자와 다른 마법소녀 한 명은 사망하고, 맹금희의 어머니는 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충격에 빠져서 타락한다. 체인질링은 가까스로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6.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의식이 진행될 준비가 끝났다. 학생지도담당 이유현 선생은 사실 괴물이 빙의한 인간으로, 현재 괴물들의 리더이다.
여기서 예시만 보면 딱히 중요하지 않은 백스토리만 짰고 정해진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그건 내가 (2)편을 위해 고의적으로 많이 빼놔서 그렇다. 아, 그리고 캠페인 계획만 하면 단계별로 다루는 건 거의 끝이 났으니 다뤄줬으면 하는 주제를 댓글로 써 주삼.
븅신 ㅋㅋ
왜그래
내가 갤을 거의 폰으로만 보는데 이 글 글씨가 존나 깨알같게 나와서 미뤄두고잇엇음... 근데 이제 몰아보니까 존나 도움된다 ㄱㅅㄱㅅ
진짜 도움되고 잘 읽고 있으니까 끝까지 써 줘 덕분에 마스터 잘 잡았다
글고보니까 궁금한게 있는데 플레이어들이 알기쉽게 떡밥 던지려면 어케해야됨? 그리고 혹시 플레이가 방향이 잘못된건 아닌데 한곳에서 괜히 늘어진다싶으면 어떻게함? 마침 생각난거 있어서 씀
음 그러면 다음 글에서 페이싱에 대해 다뤄야겠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