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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결국 지금까지 실제 세션에 못 써본 D&D 마스터 룰북. 베이직 룰북은 너무 많이 펴보다 보니 페이지가 하나둘 낙장되서 스프링으로 제본했음.


이 취미를 언제 시작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 아마 중학생 때였을 거야. 초딩이었던 동생을 데리고 모눈종이 하나 펴놓고 던전을 탐험하던 게 내 인생 최초의 마스터였고, 첫 세션이었다.


그 다음에도 이따금씩 친한 친구들이나 동생을 데리고 게임을 했어. 굴리던 룰은 사진에 올린 D&D랑, 저거 샀을 때 끼워팔이로 넘겨준 크리스타니아 RPG. 하나는 양키룰이고 하나는 일본룰인데 너무 어릴 때라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써있는 대로 하기만도 벅찼다. 정석대로 던전 크롤링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삼국지에 꽂혀서 부대에 해당하는 시트를 잔뜩 만들어다 판타지 배경의 장편 영지물 워게임을 즐기곤 했지. 미니어쳐가 뭔지 알지도 못하던 시절인데, 격자맵을 쓴다는 티알의 속성이 영걸전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나 봄.


그렇게 살다가 고등학교 가고 대학을 가면서 친구들과는 뿔뿔이 흩어지고, 집이 지방이다 보니 동생 얼굴도 잘 못 보게 되면서 티알을 접었지. 스케줄이 다르다 보니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당시 나한테 걔들이랑 연락할 수단은 msn 메신저밖에 없었는데, 이걸 가지고 맵이랑 토큰이랑 다이스를 다 공유하면서 할 엄두가 영 안 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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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찾은 게 한국 맵 제작자 집단 4rum에서 만든 워크 유즈맵, TRPG였다. 스샷은 찍어놓은 게 없어서 인터넷에서 대충 퍼왔음.


제작자가 Miju(자기 딸 이름을 배틀넷 닉으로 쓴다고 해서 아직도 기억난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라는 분이었지. 아무튼 이 유즈맵은 스샷의 방처럼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지형 프리셋을 준비해놓고, 여기다가 마스터(최대 3명까지!)가 자기 맘대로 NPC를 배치하고 대사를 쳐 가면서 자기 시나리오를 굴릴 수 있는 획기적인 플랫폼이었다. 턴제전투를 구현하거나 워크래프트3 시스템을 그대로 써서 실시간 배틀을 하는 것도 가능했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한테 이건 신세계였다. 물론 맵 로딩하면 그냥 지형밖에 없기 때문에 세션 상황에 맞춰서 저런 지형지물에 NPC들을 배치하느라 1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노가리만 까고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1) 시간 약속 안 잡고 그냥 편한 시간에

2) TRPG 채널에 있는 불특정 다수와 단편 팀을 짜서

3) 마스터 경험이 부족하면 경험 많은 마스터의 세팅을 보조하고 인카운터만 건드리는 서브 마스터(통칭 NPC Master, 엔마)로 들어가서


티알을 돌리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상상도 못하던 세계였지. 가까운 친구나 동생이랑만 즐기던 턀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셈이다. 이거에 얼마나 꽂혔는지 하는 사람도 몇 없는 워크래프트 맵 제작을 열심히 파서 결국 저 제작자 집단에 들어갔는데, 팀에 들어가놓고 보니 TRPG 제작하던 사람은 이미 나가서 없고 어디 네이버 카페 같은 데서 후속버전을 만들고 있더라. 젠장.


물론 신세계의 단맛만큼 쓴맛도 강렬했다. 세팅이 저장되는 게 아니라 매번 처음부터 다시 세팅을 해야 되는데 1시간 넘게 겨우겨우 세팅해놨더니 불이야 치고 나가는 새끼라거나, 세션 시작한지 5분만에 미구현된 마을맵 바깥으로 뛰쳐나가려는 놈이라거나...지형이 바뀌지 않는 워크래프트 시스템상 '불 지르는 RP'가 제대로 구현되기 힘든 워크3 플랫폼이라 망정이지, 지인들이랑만 할 때는 본 적도 없었던 악의 넘치는 플레이를 수없이 맛봤다. 게다가 배틀넷 ID는 무한성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좆같이 구는 애들을 걸러낼 수도 없고...뒷통수가 오목해질 정도로 얻어맞다 보니 나중에는 마스터보다는 마스터를 기쁘게 해줄 리액션 쩌는 플레이어를 목표로 하게 됐다.


그렇게 학점을 바쳐서 상시플보다도 신뢰가 없고 장르도 통일되지 않던 세션 덩어리에 인생을 갈아넣은 시절이 대략 2년 정도? 또다시 내 턀생은 갑작스러운 돌연사를 맞게 되었다. 사실 뭐 큰 문제가 생겼던 것도 아니고, 반쯤 자업자득이었음.


조금 위에 내가 이 맵을 보고 꽂혀서 워크3 맵 제작을 존나 배워서 그 제작자 집단에 들어갔다고 했잖아? 여기서 AoS 장르의 유즈맵을 하나 만들었는데 제작 & 운영인력이 부족해서 시간 많고 만만한 나를 그쪽 개발팀으로 빼간 거임. 설상가상으로 당시의 내 현실 친구들이 도타에 흥미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운영하는 유즈맵으로 넘어오게 됐는데, 이런 식으로 지인이 지인을 부르고 지인을 부르다 보니 파이가 커져서 어느 순간 아프리카 중계방송으로 사설대회 같은 것도 열고 그랬다. 수많은 유저들이 버그를 제보하고 대회에 상금도 걸리고 하다 보니까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다른 취미생활을 할 여유도 없이 제작에 몰두했다.


다만 이 시기에 느꼈던 게 있는데, AoS는 기본적으로 컴퓨터로 하는 PvP 게임이다 보니까 아날로그식 PvE인 TRPG에 비해서 유저들이 데이터의 정밀성을 어마무지하게 요구하더라는 거지. 게다가 당시 유통(?)되던 다른 맵들에 비해 우리는 데이터를 대부분 투명하게 공개하는 입장이었거든. 스킬 A는 0,25초 스턴이고 스킬 B는 0.5초 변이인데 이거 밸런스 괜찮나요? 사정거리가 1300인 스킬이 왜 사정거리 700인 스킬이랑 데미지가 같죠? 이런 식의 피드백을 계속 받다 보니 어느 순간 데이터 그 자체에 신물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에 그것 때문에 멘탈이 완전히 박살나서 더더욱 티알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도 같고.


그리고 기획자(디자이너)가 까라는 대로 까고 구르라는 대로 구르다 보니 간단한 수준의 매크로 알고리즘 정도는 라면 먹으면서 메모장으로도 짤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도 그 시절에 얻은 수확이었다. 진짜배기 공돌이들에 비하면 초심자 레벨이지만, 문과충인 내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지.


그러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로 가게 되는데...


근데 이 정도 썰이면 틀딱 맞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