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베이 들어갔다가 입찰해놓은 거 줄줄이 실패한 거 보고 빡쳐서 드라이브스루에서 질렀습니다. 아직 제본을 못해서 pdf로 대충 봤더니 눈에 잘 안 들어오네요. 그래서 제대로 책을 소개한다기 보다는 제 개인적인 감상 정도만 씁니다. 그냥 재미로 쓰는 글이라 두서는 없습니다.


뱀파이어계의 초자연

대충 내용은 대부분의 V20들이 그런 것처럼 기념판에 가까운 내용들입니다. 얘들이 왜 무서운 애들이고 왜 뱀파이어 사회에서 도시괴담 비슷한 느낌으로 소문이 도는지에 대한 "첫 걸음부터의" 친절한 설명은 많지는 않은 듯. 그보다는 V:tM 2nd판 최악의 설정집 중 하나로 손꼽히는 DSotBH의 계승작에 가까운 느낌이네요. 블랙 핸드라는 조직이 외부에서 어떻게 보이고 무슨 짓을 하는지 보여주기 보다는 메타플롯에 해당하는 얘기들을 많이 꺼냅니다. 탈'마헤'라에 관계된 설정의 집대성 기념판이랄까요? 그 탓에 "일반적인" 플레이를 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물건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이 잘 모르는 세계 이면의 신비하고 주술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는 도움이 될 소재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블레이드 1 보면 프로스트라는 악당 뱀파이어가 장로들도 모르는 뱀파이어 고대 전승 같은 거 연구해서 음모를 꾸미잖아요? 뭐 그런 거 하기는 좋겠네요.


 내용은 흔히 블랙 핸드라고 불리는 사바트 강습분서(?)를 배후 조종하는 "트루 블랙 핸드", 탈'마헤'라라는 조직의 역사와 하부조직과 내부파벌과 기타 등등에 대한 설정입니다. 아마 DSotBH를 보신 분들이라면 대충은 어떤 구성이신지 감이 오실 겁니다. 탈'마헤'라는 매직 더 게더링에 나오는 소린 마르코프 같은 뱀파이어들(과 기타 잡다한 괴물들)의 조직입니다. 절대적인 NIMBY족이자 엘리트주의 꼰대들로, 자기네 기준에서 봤을 때 "정통적인 뱀파이어의 방식"이나 "정상적인 세계관"에 반하는 것들을 조지는 게 주요한 일이지요. 물론 덕분에 얘들이 하는 많은 일은 주로 얼라 뱀파이어들을 다루는 데 치중했습니다. 특히 탈'마헤'라의 주요한 구성원인 트루 브루하, 올드 클랜 찌미쉬, 하빙거즈 오브 스컬(왠지 모르겠지만 V20부터 탈'마헤'라 소속으로 바뀜) 등은 자기네 정통성 뺏은 클랜에게 복수하는 데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뱀파이어 괴롭히는 건 V:tM에서 너무도 당연하고 흔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GttTMR는 뱀파이어들에 대한 폭력 양상은 조금 언급하는 정도로 넘어갑니다. 본서 19쪽에서 42쪽까지... 그러니까 약 23쪽 가량이 할애됐네요. 사실 이것도 탈'마헤'라의 역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서술이기 때문에 그다지 자세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이 책은 상술한 것처럼 뱀파이어가 다른 괴물들과 "서로 제대로 알고 엮일 때" 발생하는 일들을 꽤 재밌게 다루고 있습니다. 늑대인간은 다소 이야기가 적습니다만(이미 많이 나왔으니), 마법사, 요정, 귀신은 물론이고, 미이라나 악마와 엮일 때까지도 이야기합니다. 아... 뱀파이어가 사냥꾼들이랑 엮이는 얘기는 HH랑 HH2 보세요.


 GttTMR에서는 흔한 뱀파이어 크로니클에서는 보기 힘든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이 언급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 중 대부분은 이미 구판에서부터 언급된 것들의 재탕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기존의 불분명하고 모호했던 전설들이 상호 연관되게 짝지어놨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DA의 Clanbook: Baali에서는 "희생의 우물"이 등장합니다. 정체불명의 안테딜루비안이 어느 깊은 우물 아래 산다는 악마를 숭배하는 부족을 학살한 후 마지막 생존자 세 명을 부족민의 피로 가득 찬 우물에 넣고 뱀파이어로 만들었는데, 이 셋이 최초의 바알리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GttTMR에서는 바알리들이 만들어진 우물이 가장 큰 우물이었을 뿐, 더 작은 우물들도 존재했었다고 언급됩니다. 이 우물들은 일종의 저승... 그것도 라비린스로 통하는 지상의 영적인 구멍인 듯합니다. 이 우물은 아마도 라비린스 지하까지 통하는 것 같다는 언급을 탈'마헤'라와 관계된 귀신이 해주는데, 이 우물의 존재 덕분에 지금까지 WoD에서 그 존재가 모호했던 많은 것들이 상호연관됐습니다. 예를 들어서 찌미쉬 안테딜루비안은 이러한 우물 중 하나와 관계되어있던 쿠팔라의 힘을 빼앗은 후로 더욱 자유롭게 비시시튜드를 쓸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DA의 GttHC에서 등장했던 바알리-라솜브라들의 비밀결사인 "검은 천사들"이 고라진의 폐허에서 찾은 것도 바로 이러한 우물 중 하나였다는 식으로 설정해뒀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뭐냐고요? 글쎄요. 어쩌면 네버본들일 수도 있고, 어비스에 갇힌 미친 천사들일지도 모르지요. 이런 가능성들에 대해서도 꽤나 비중있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약: 뱀파이어와 초자연적 세계 사이의 접점들에 대한 설정이 풍부함.


고대 예언의 전승자들

항상 뱀파이어를 하면 예언이 나옵니다. 뭐, 많은 비극에서 예언이라는 소재를 차용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실제 플레이에서 예언이 등장하는 걸 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주로 하게 되는 건 "뱀파이어-관료주의의 폐해"라거나, 언더월드 2 같은 H&S, 잘해봐야 트루 블러드나 IwtV 같은 드라마입니다. WoD 세계관 기저에 깔린 종말론적이고 무시무시한 예언은 묻히는 경우가 많았지요. 물론 처음 WoD가 나왔을 때와 지금은 트랜드가 달라진 만큼 종말론이라는 게 그렇게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가 아니게 되기는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이라는 것은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그리고 GttTMR는 이러한 뱀파이어들이 예언을 받들기 위해 하는 일에 대해서 꽤 많은 언급을 담고 있습니다. 고대 예언의 전승자들이라면서도 정작 예언이나 율법과 관계된 무슨 일을 하는지 별 설명을 안 하던 DSotBH 때와는 조금 달라진 듯해서 마음에 듭니다.


 사실 대부분의 예언은 이미 전작인 DSotBH 시절에 언급됐던 물건들입니다. Guarded Rubrics 같은 맥거핀들 얘기입니다. 하지만 예언 자체가 아니라 예언을 비밀스럽게 따르는 뱀파이어 종파에 대한 설정은 DA의 Ashen Priest와 Cainite Heresy 이후 최대 분량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릴리스를 따르는 종파에 한해서는 아마 GttTMR가 가장 풍부한 설정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GttTMR에서는 아예 바하리(Bahari)라고 하는 릴리스 종파를 23쪽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바하리들이 릴리스를 숭배하는 이유, 따르는 방식, 여러 파벌들, 파벌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주술들(마치 nWoD의 Covenant Blood Sorcery처럼)은 물론이고, Path of Enlightenment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탈'마헤'라에게 있어 예언의 징표나 다름이 없는 아랄루들에 대한 언급도 좀 나옵니다. 하지만 아랄루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쓸 일도 없는 소재거니와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로 끝나기 때문에 의미 없지요.


 거기에 추가로 율법의 적들에 대해서도 꽤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델레온의 "비시시튜드 감염" 설정이 다시 기어나온 게 마음에 안 듭니다만, Soul-Eaters에 대한 설정도 개정되서 또 나왔습니다. 물론 명칭도 아사쿠(Asakku)로 바뀌었고, 상술한 "우물"을 매개로 한 라비린스와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진 뱀파이어 괴물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나마 나아진 게 있다면 설정의 상세함입니다. DSotBH에서 Soul-Eaters들은 그냥 이상한 외계 움브루드에 감염된 뱀파이어 괴물이고, 탈'마헤'라가 얘들을 왜 죽이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주 모호하게만 서술됐었습니다. 그에 반해 GttTMR에서는 아사쿠들이 왜 카인의 율법에 따를 때 부정한 존재들이며, 왜 탈'마헤'라가 이들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지에 대해 길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합니다. 아니... 사실 애초에 잘 써놨어야 했던 걸 이제 와서 뒤늦게 고친 거긴 하지만요. 그 외에도 왜 탈'마헤'라 뱀파이어가 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악마숭배자들을 멸절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추가적으로 나옵니다. 여담인데, W20의 뱀파이어+베인을 여러 종류 예제로 보여준 것도 그렇고 뱀파이어의 괴물화 참 좋아하는 듯.


요약: 고대 예언의 전승자 뱀파이어들에 대한 설정이 나옴. 어떤 예언과 율법을 왜 따르고,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과 싸우는지 나옴.


흉물들

전작에 대한 오마쥬일까요? 본서에는 Dirty Secrets라는 장이 있습니다. 39쪽이나 할애하고 있는 꽤 비중이 큰 파트입니다. 이미 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탈'마헤'라가 연합한 온갖 괴물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늑대인간-뱀파이어인 흉물(Abomination)은 물론이고, 고대 차크라바르티 마법사들의 분파인 이드란에, 키아지드보다 훨씬 불안정한 고대 요정의 피로 만들어진 마에가르(Maeghar), 귀신, 미이라들에 대한 설정이 나옵니다. 이 중에서도 제가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건 이드란인데요... 미친놈들이 Spheres에 근거해서 마법을 쓰는 게 아니라 여전히 Pillars에 근거해서 마법을 씁니다. 그래서 졸라 쎕니다. 게다가 중세 OoH 이상으로 파괴에 집중된 Pillars들을 갖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중세처럼 Foundation 5점일 때 얻는 추가 효과는 없습니다만(OoH는 Modus 5점일 때 한 턴에 의지력 2점씩 쓴다거나), 마법을 쓸 때는 중세처럼 Foundation+사용하는 가장 높은 Pillar 점수로 판정을 합니다. 특이한 건 마법을 쓰고 생기는 역효과가 패러독스(Paradox)가 아니라 스커지(Scourge)라는 점입니다. 이건 SC 때 나온 거지요. 아직 GttTMR에서 "스커지"라고 쓰인 것이 M20의 패러독스를 말만 바꾼 건지, 아니면 진짜로 스커지인지는 대조 안 해봐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뭔가 묘한 애들이기는 합니다. 더불어 이드란들의 가장 오래된 대마법사들인 야마사트바들에 대한 언급도 더 나옵니다. 예전에는 "얘들 리치가 아니냐"는 카더라가 좀 있었는데 리치는 아닌 걸로 판명. 고대 미이라인 이나우하텐이 유사-생명의 법을 걸어준 덕에 불사신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 애들이 8명 중 왜 3명만 남고 다 죽었는지는 불명.


 뱀파이어와 걸친 다른 라인의 초자연적 세계를 다루고 있는 만큼 크로스오버 규칙들도 조금 있습니다. 뱀파이어에 대한 빙의 규칙이라거나, 마법 규칙이라거나, 그런 것들입니다. 흥미롭게도 마법사가 "만들어낸" 태양광은 뱀파이어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한다고... 그러나 여전히 BT에서 나왔던 것처럼 공간 마법으로 태양광을 "소환"하는 것은 정상적으로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구울 마법사에 대한 언급도 한 쪽 가량 나옵니다. 몹시 분노스럽게도 레브넌트 마법사에 대한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BT에서는 "그게 가능은 하지만 아마 별로 없지 않겠느냐"고 얘기해놓고는, 이제 와서 "하지만 이드란 중에는 많음"이라고 하다니요!


 뭐 어쨌든 간에, 크로스오버에 로망이 있는 분들이라면 재미나게 볼 만한 내용입니다.


요약: 탈'마헤'라와 크로스오버되는 다른 괴물들 얘기 많음. 특히 이드란 마법사들.


그 외

놀랍게도 탈'마헤'라용 예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바하리와 관계된 겁니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 nPC들 데이터도 좀 있지만 사하르-한니발 제외하면 2nd 판본의 정신나간 파워 밸런스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말로우 말고는 플레이어가 PC로 써먹을 만한 예시들은 별로 없습니다. 미스터 말로우는 제가 예전에 짰던 수학자 트루 브루하랑 무지 겹치는 부분이 많네요. 역시 사람이 생각하는 건 다 엇비슷한 듯.


요약: 그 외에는 별 거 없음.


아쉬움

뱀파이어 설정집이면 뱀파이어 얘기도 나왔어야 하는데, 너무 뱀파이어 외의 초자연적 세계에 집중한 느낌입니다. 사실 탈'마헤'라가 제일 많이 두들겨 패고 다니는 것은 역시 다른 뱀파이어인데 말입니다. 기껏 CoR에서 잃어버린 부족이랑 질라의 우는 거석 설정 넣어놓고는 트루 블랙 핸드 vs 잃어버린 부족의 사바트 내 암투는 몇 줄 언급하고 넘어간 게 너무 아쉽네요. 늑대인간, 마법사, 요정, 귀신, 미이라, 악마 등은 물론 흥미로운 소재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에 써먹을 구석이 생각 만큼 많지가 않아요. 저도 가끔 이런 뱀파이어 외의 괴물들을 써먹기는 합니다만, 역시 V:tM는 뱀파이어와 인간이 이야기의 핵심이에요. 그런데 탈'마헤'라라는 조직을 기껏 들고 나와서 얘들이 뱀파이어 세계를 얼마나 공포스럽고 치밀하게 조종하는지, 어떤 음모를 꾸미는지,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고, 매수하고, 회유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빈약한 것 같습니다. 깊고 어두운 일루미나티 괴물들 조직에 대한 설정이 아니라, DSotBH의 뱀파이어 어벤저스 감수성이 조금 남은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Caine's Chosen: the Black Hand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요약: 크로스오버 좋아하면 사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