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남만주철도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초기에는 이름 그대로 만주 남부의 철도를 관리했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팽창하면서 회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업무를 떠맞게 됩니다. 만철은 1931년 일본이 중국에 선전을 포고하는 사건을 조작하는데 깊게 연관되었으며, 괴뢰 만주국이 설립한 후에는 만주국의 사실상 행정부에 가깝게 행동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업 범위가 확대되자, 만철은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포섭했습니다.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파시스트, 좌익, 우익,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몽골인이 모두 만철에 고용되어 활동했습니다. 그들에게 만주는 어떤 것도 없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개척지이자 무주공산이었습니다. 국가 통제 위주의 경제성장계획, 허허벌판에 하는 인프라 설계, 고의적인 전염병 누출 이후 방역법 검증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천재들이 만주로 달려갔습니다. 미친 자들은 만주의 공백지에서 자신의 부도덕한 실험을 행하려 했고, 한 때 동양의 단결을 믿었던 천하공설회(초기 동아시아의 천재들의 협업을 촉구하던 언어학 단체) 잔당들도 만주국의 오족협화라는 표어에 끌려들었고, 군국주의적인 몇은 대놓고 관동군에 입대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만주 괴뢰국이 소비에트 연방에게 분쇄되자, 만철에 모였던 인재들은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한국과 일본의 엘리트층의 자리에 올랐고, 향후 경제성장 계획과 사회의 문화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만주국의 경험을 백분 활용합니다. 귀국한 천재들도 일반인처럼 조국에 귀환하고 싶었으나, 그들을 마주친 것은 레무리아의 사나운 발톱이었습니다. 서구 외세와 결탁한 레무리아들은 만주국의 이상이었던, "산업화된 근대 국민국가"라는 이상을 뒤틀어 버렸습니다. 레무리아는 자신 이외의 어떤 천재 조직도 산산히 무너뜨리려 했고 만철 출신 천재들은 지하로 숨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지하에서 새로운 저항 조직을 창설합니다. 공병군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