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마스터링을 해 본 사람이라면 특히 잘 알 텐데, 플레이를 할 때 게임의 규칙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그럴싸한 분위기"이다. 참가자들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인상적이고 흥미롭다는 느낌을 주고, 그래서 플레이에 진지하게 몰입하게 만드는 것.
그런데, 현실을 모사하는 것은 이 분위기를 만드는 데 굉장히 효율적이다. 만일 플레이 중에 큰 성당이 나왔다고 치자. '중세 유럽에 있을 법한 고딕 양식 대성당입니다'라고만 말한다면, 그 말을 듣고 사람마다 각자 전혀 다른 형태의 성당을 떠올릴 것이고, 그 상상의 질이나 감동도 들쑥날쑥일 것이다.
그러나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면 마스터가 뭘 전달하고 싶은지 모두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감도, 몰입도, 통찰도 훨씬 잘 되겠지.
문제는 이 현실의 모사를 깊이있게 할수록, 게임에 쓰기 위한 시뮬레이션이 훨씬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단순히 이름이나 비주얼을 그대로 아니면 살짝 바꿔서 빌려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TRPG에서는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실재했던 15세기의 콘스탄티노플을 정교하게 모사해서 액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기업이 몇백억에 달하는 자금과 수백 명의 인력, 1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다행히도 이 방법이 성공했기 때문에 유비소프트는 그에 걸맞는 대가를 잔뜩 받아냈고, 게이머들도 훌륭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현실의 모사는 "잘 쓴다면" 게임의 퀄리티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확실한 방법이다. 사실 창작 컨텐츠의 퀄리티 상승이란 것은 한도 끝도 없는 싸움으로, 애당초 만점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100만큼 했어도 200을 하는 놈이 있으면 200 쪽이 잘한다는 소릴 듣게 마련이다. 뭐, 누군가는 "아 그까짓 성당 묘사 대충 성당이라고 말로 선언하기만 하면 됐지!"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플레이를 퀄리티가 높다고 부르긴 힘들 것이다.
맞아... 이래서 내가 적당히 배경 퉁치는 판타지를 싫어해
자연스럽게 NPC들이 게임NPC마냥 변해버리거든...
ㄴ적당히 넘어가면 퀄리티도 적당해짐...
문제는 현실의 모사를 적게 해서 핍진성이 붕괴해버리는 경우보다, 그 현실 모사를 하다가 마스터 멘탈이 붕괴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거...
ㄴ그건 현실의 모사를 잘 못한거, 즉 실패한 것임. 저게 전가의 보도는 아니지. 저것도 주의 깊게 선별하고 시행착오 거쳐가면서 길을 찾아야 하는 방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