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늒네들이 여기서 세션을 찾으면 돌아오는 말이 있다.

'네캎으로' / '여기서 구인 ㄴ'

하지만 난 여기서 무려 다섯 번의 세션 - 저녁노을 어스름 PL한번, GM 두번, 덥크 PL, 그리고 이것 - 을 진행한 턀갤 고인물 중에서도 쌉고인물으로서, 항상 턀갤의 구인풀에 호평가를 하고 있다.

그 호평가를 하나 더 늘린, 최근의 세션이 있었으니, 바로 CST이다.

몇 번의 세션을 진행했지만 난 스스로를 항상 가라GM이라 평한다. 즉, 결코 준비가 철저하다고 할 수 없는 종류의 GM이다. 따라서 내 마스터링은 기본적으로 허술하고, 즉흥적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122802&s_type=search_all&s_keyword=cst&page=1


그런 내게 이 구인글은 바야흐로 시대혁명과도 같았다. 상세하며, 어떤 세션이 진행될지 다루고 있고, 구인자에 대한 조건과, 진행될 세션에 대한 흥미를 모두 포함하니 나는 신청도 전에 꿀잼세션 하나를 이미 돌린 기분이었다.

자주 들리지도 않는 턀갤에, 30분만에 마감된 이 세션의 세 플레이어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약 3년 전 재수 끝에 대입에 성공한 이래로 가장 뜻깊은 행운이라 할 만 하겠다.



우선 CST, 귀여운 여동생 TRPG는 본래 남성인 NPC를 공략해내가는 여동생을 RP하는 룰이다. 다만 이 세션이 특이했던 점은 공략 대상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단 점이다. 구인글에도 설명되었듯, 세션의 제목이 Cute Magical TRPG인 것이 그 이유에서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PC의 성별은 남성 혹은 여성, 어느 쪽이라도 OK가 되었는데, 묘하게도 세 명의 플레이어는 전부 여성 캐릭터를 짜 왔다. 이 세션이 민달팽이행이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이것이 내 캐릭터, 이하늬였다. 마법소녀들의 행복을 위해 돕고, 같은 에이전트를 공격하는 메이드 컨셉으로 짜왔고,


다른 두 PC에 대해선 단편적으로도 해줄 이야기가 잘 없다. 시트가 서로 비공개였거든. pvp룰의 특성상, 시트가 공개되다 보면 서로 어떻게 시트를 찢고 엿을 먹일지가 중점이 되어서 그런가? 덕분에 생각할 것도 많고 좋았던듯.


아무튼 마법소녀와 그런 마법소녀를 공략하는 세 민달팽이들의 이야기는 내 생각 이상으로 잘 흘러갔고, 재밌었다. 내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참으로 까다로운 일이니, 다른 두 명에 대해 말해보자면, 한 명은 룰의 본연에 참으로 충실한 맛이었다.


씹덕룰답게 정말 라노벨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이었단 말이지. 이 분이 스스로를 CST 초보라고 칭하셨는데, 역시 이 취미는 경험치보다는 타고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난 다채로운 서술보다는 순전히 대사 위주의 RP를 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이런 분들에게는 항상 배울 게 많다. 배워놓고 맨날 까먹어서 문제지.


이 분이 약간 일본 라노벨이었다면, 다른 분은 약간... 정말 인싸의 삘? 정말 인싸가 되어본 적이 한번도 없어 모르겠지만, 정말 인싸라면 아마 저런 느낌의 진행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형 라노벨같기도 하고.


나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혹평뿐일 것 같으니 로그를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몇이나 있을진 모르지만서도.


처음엔 PC끼리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로 시작됐는데, 요원인걸 알게 되면서부터 치열하게 전개되는 스토리가 특히나 인상깊었다. 지금까지 몇 번 해봤던 CST에서는 단순한 여동생들의 캣파이트로, 좋게 말하자면 캐릭터서사, 나쁘게 말하자면 캐빨로 시작해서 끝났는데, 이 세션은 더 깊은 이야기를 보여줬다는 느낌.


총체적으로, CST라는 룰은 정말 삐끗하면 좆같이도 불쾌한 경험을 하기 쉬운 룰이다. 룰 자체가 PC싸움을 조장하고, PC싸움이 PL싸움되기는 쉬운 일이고, 거기서 GM이 조금만 잘못 처신해도 세션은 뒷전의 막고라판이 열리고, 다들 서로에 대해 좆같은 감정을 한껏 간직한채로 어영부영 마무리되기 쉬운 룰이니, 씹덕을 거르고서라도 진입장벽이 낮은 룰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성공적인 세션이라는 것은, 소위 '디씨스러운', 즉, 어느 정도 이상은 거칠고 직설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다들 상호 예의를 차려야 하는 TRPG판 앞에서는 정중하고도 예의바른 사람들이 턀갤에는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턀갤발 라그나썰과 댓글의 거친 분위기에, 턀갤구인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진지하게 재고를 부탁드리고 싶다. 물론 내가 지뢰를 잘도 피해 갓-플레이어와 갓-GM을 만난 행운에도 감사드린다.


첨언. 난 많은 마스터와 플레이어를 만나봤고, 감히 개중에서도 가장 거지같은 축에 속하는 내가 품평을 하자면, 이 마스터가 지금껏 만난 마스터 중 가장 완벽한 마스터링을 선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마스터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총괄적인 분위기 면에서 내가 온라인 상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 호인이었다. 사람이 좋다는 게, 얼굴도 보지 않고 텍스트로만 접하는 디스코드와 roll 20 상에서도 정해질 정도.

다시 한번, 이 세션에 참가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이 자리를 빌어 마스터와 나머지 두 플레이어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메리카노 잘 먹겠습니다 마스터센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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