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프: 발톱 먹는 들쥐. Identity Theft.
박한영
155 cm, -- kg, 28세 한국인 여성.
삼켜지기 전의 삶: 예쁘고, 공부 잘 하고, 집은 잘 사는 아이. 부족할 게 없는 아이. 언제나 반장인 아이. 친구로 둘러싸인 아이. 반장, 학생회장. 동아리의 우두머리. 친목 모임의 중심. 부족할 게 없는 아이. 완벽한 아이.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친절하게 답하는 아이. 여왕이 있다면 저런 아이가 여왕이겠지, 싶은 아이.
당연하지만, 사춘기 소녀가 완벽하게 행세한다면 그 소녀에겐 보이지 않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복어의 전략. 가시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 안은 텅 비어있는 풍선에 불과하다. 애초에 왜 풍선이 되기를 선택했는지는 그녀 스스로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뻔하지 않나. 다른 사람들에게 동경을 받고, 예쁨을 받고 싶었던 거겠지. 다른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싶은 욕망, 그런거.
웃기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의 동경을 받아야만 열등감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 위에 있을 수 있는가? 무대로 여왕이 된 자는 자신이 모은 관객들의 노예가 되고, 광대가 되며, 조각상이 된다. 그리고 그 안의 공허함을 발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복어의 두 번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기.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알 시간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게 너무 많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겠다고 말하던 특목고를 가야만 했다. 부푼다. 경성대 경영학과를 졸업해야 했다. 더 크게. 경성대 대학원을 졸업할 것이다. 더욱 크게. 박사 학위는 외국에서 딸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악몽: 웃는 얼굴이 그려진 풍선을 불어보았는가? 크게 부풀수록 예쁘지만, 어느 선을 넘어가면 그 웃음은 울음에 가깝게 일그러진다. 눈은 양 옆으로 째지며, 입은 헤 벌어지고, 코는 주먹만 하게 부푼다. 눈물만 없을 뿐, 추한 고통으로 울부짖던 풍선은 결국 참지 못하고 펑, 터진다.
한영은 무작정 위만 바라보았다. 계속 탑을 쌓아올렸다. 어느 날, 자신이 막무가내로 높게만 올린 탑을 처음으로 내려다보게 되던 날부터 그녀는 추락의 악몽에 시달렸다.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쾌감을 잊을 순 없었다. Higher they climb, harder they fall. 갈수록 더 큰 공포에 시달렸다. 추락의 악몽도 부풀기 시작했다. 성적이 떨어져 비웃음거리가 된 자신을 꿈에서 본다. 부푼다. 더 이상 집이 부유하지 않게 된 자신을 본다. 더 크게.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버림받는 자신을 본다. 더욱 크게.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악몽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매일 그녀는 악몽을 보았다. 자신을 비웃는, 인간의 머리를 한 까마귀 떼를 매일같이 보았다. 한영은 수면제 서른 알로는 병원에 닿기 전에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고, 끊어진 가죽 벨트를 통해 질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배웠다. 뜨거운 욕조와 면도날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풍선을 터뜨릴 수는 없었다. 더욱 뾰족한 것이 필요했다.
삼켜지다: 자신을 비웃는 까마귀 떼의 악몽이 여느 때보다 선명했던 여름날, 한영은 창밖으로 솟은 바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 어디에나 올라있는 바벨탑들. 확신이 있다면 사람은 어디나 갈 수 있다.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고층빌딩의 55층 발코니도 다를 바는 없다. 한영은 그 곳에서 해방을 느꼈다.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저 아래로 보이는 것은 아지랑이 뿐이었다. 마지막 한 발자국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암흑 속에 잠겼다. 무한한 평정.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멈추어보았다. 처음으로 묶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자유로워졌다. 한영이 죽어서야 깨달음을 얻은 자신을 한심하게 돌아보고, 조금 울고, 조금 웃자, 그녀를 괴롭혀왔던 까마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발자국, 더 걸을 생각은 없느냐?”
한 발자국 더: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녹색의 자살 방지망에 걸려있었다. 얼굴은 심하게 쓸렸고 옷의 단추는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어리둥절했다. 분명 뛰어내리기 전에는 이런 망 따윈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이제 중요한 것은 그녀가 고통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없어졌단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더 이상 위협이 아니게 된다.
모든 새의 첫 비행은 추락이다. 바닥에 처박히는 대신 날개를 펼친다면 다시는 지상 위에서 몸을 비틀며 살아가던 비참함 속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도 날개가 있다. 하지만 필요 하지도 않은 쓰레기를 사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땅에 스스로를 묶기에 펼치지 못할 뿐이다. 더욱 환장할 노릇인건 사람들은 자신을 땅에 속박시키는 쇠사슬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으며, 자신의 쇠사슬이 더욱 굵다고 자랑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직업이 아니다. 대학도 아니고, 통장의 숫자도 아니다. 지갑 안에 든 것도 아니다. 차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의 진짜 사람을 가리고 있는 쇠사슬이 모두 끊어질 때, 사람은 날아오를 수 있다.
꿈은 높은데: 사람들은 자신의 사슬을 사랑한다.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들을 전력으로 지키려 애쓴다. 다행히도 새로이 태어난 야수에겐 힘이 있었고, 야수는 사슬을 끊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단칼에. 그리고 당연히 사람들은 망가지고 죽어갔다. 그녀는 형편없는 스승이었으며 가족들은 그녀가 굶주림에 굴복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한영의 육신을 낳은 인간들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들은 걱정을 넘어 분노하고 있었다. 완벽했던 딸은 이제 양쪽 손목이 면도칼로 그은 자국으로 가득했고 손질하지 않은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대충 흘러내려 있었다. 그녀는 매 순간 술에 취해있었고, 미친 듯이 웃거나, 미친 듯이 울었으며, 둘 다 아닐 때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결국 그녀는 S시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청명 재단이 그녀를 지원해주겠다고 해주는 마지막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명목상, 그녀는 청명 재단에서 운영 중인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는 환자이며, 청명 재단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지내고 있다.
주 무기: Never forget what you are. The rest of the world will not. Wear it like armor, and it can never be used to hurt you. 한 사람의 정체성은 한 사람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그 무형의 영향력은 사람에게 허용된 유일한 초능력이다. 그리고 만약 그 정체성이 무력화당한다면, 도둑질당하고 빼앗긴다면, 한 사람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악의 공포는 자기 자신을 잃거나 빼앗기는 데에서 나온다.
발톱 먹는 들쥐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박한영의 사냥 방식은 그와 비슷하다. 다른 점은 현대엔 실제로 변신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신분증을 빼앗고, 자신감 넘치게 말하면 당신은 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사슬이 얼마나 허술한지 깨닫게 된다.
한영은 한 발자국 나아가, 그 사슬은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날지 못하게 묶으며, 천천히 죽어가게 만드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싶어 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슬은 그냥 당기면 끊어진다. 날아올라라! 사람에게 날개는 괜히 달린 것이 아니다.
백스보니 잘 뽑힐 것 같다. 좋은 플 기대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