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 문제 빼고 그냥 순수하게 플레이 내용만 봐도 그럼.


TRPG는 상황이 주어지면 -> 그거에 대해 즉석에서 바로 롤플레이를 해야 하지만, ORPG는 상황이 주어지고 거기에 타이핑으로 대답하기 전까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짐. 그리고 이 다름이 부르는 차이가 생각보다 큼.


예를 들어서 눈마새를 보면 케이건이 티나한한테 이런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것이 충고가 될 수는 없을 거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두고 싶소. 신부들을 찾게 되면 그녀들을 아끼고 사랑하시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사랑하려 애쓰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하려 마음먹으시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소. 그리고 그녀의 무덤에 바칠 일만 송이의 꽃은 그녀의 작은 미소보다 무가치하오."



아내를 지키지 못한 슬픔을 투영해 티나한한테 진중한 충고를 해주는 멋진 씬이지만, 이런 대사를 과연 TRPG에서 즉석에서 생각해서 칠 수 있을까? 난 이영도 본인이 와도 저런 RP는 못한다고 생각함.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사람과 대화하면서 저만큼이나 문장을 정제해 내놓을 수 있는 건 전세계에서 한두명 정도나 가능할까 말까 한 재능이지. 일단 중간에 말 안 더듬는 것부터가 힘듬...


반면 ORPG에서는, 뭐 저것만큼 멋들어지게 읊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시도는 할 수 있음. 전업 소설가를 ORPG 팀에 받아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소리하는지 잘 알거임. 단순히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는 걸 넘어서 각각의 장면들에 자체적인 기승전결을 잡고 그 흐름에 모두를 끌어들이는 걸 보면 이 놀이에도 진짜 재능이라는게 있구나 하는걸 여실히 실감하게됨.



그래서 TRPG랑 ORPG는 같은 RPG 테두리를 공유하고는 있어도 그 세부적인 표현양식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봄. TRPG가 그 높은 현장감을 살린 "체험" "놀이" "활극" 으로서의 진행에 적합하다면, ORPG는 소설 하나를 다 같이 써내려가는 "공동창작" "연극" 으로서의 진행에 더 적합함. 그래서 어느 한쪽의 감성으로 다른 한쪽을 바라보면 부족해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