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머미는 WoD 중에서도 꽤 오래됐습니다. 머미 1판이 W:tA 1판보다 조금 일찍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머미는 1판과 2판 때까지만 해도 V:tM의 서플리먼트였었고 그리 많이 플레이되지는 않았어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열심히 보신 분이면 아마 아실 텐데, 거기도 머미가 나옵니다. 뱀파이어가 아니고 태양 아래서도 멀쩡히 돌아다니는 이집트 출신의 불사신이 언급되지요. 1판의 머미는 그냥 그런 정도의 이미지만 차용해서... 베낀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1판 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써먹을 수 없는 물건이었죠.


 하지만 2판 때부터 설정도 많이 갈아엎고, M:tA의 출시로 인해 세계관의 틀이 조금 더 잡히면서 흥미로운 물건이 됐습니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머미에 독자적인 테마가 부여됐다는 거였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판본도 2판 머미죠. 그래서 물론 Rev 때 다시 한 번 새로운 물건으로 변모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지금 얘기할 건 2판 설정입니다. 2판 머미에서 PC들은 대부분 세메스-헤루라고 하는 불사신들이 됩니다. 이들은 모두 고대에 호루스가 3세대 뱀파이어인 세트에게 맞서기 위해 설득해서, 혹은 속여서 스펠 오브 라이프라는 주술로 부분적인 영생을 부여한 자들입니다. 세메스-헤루는 대부분 호루스의 통제 하에 있고, 호루스의 의지에 따라 뱀파이어들의 지하드에 뛰어들어 싸웁니다. 이들의 나이와 힘, 그리고 오랜 역사 동안 축적한 정보망과 동맹들을 감안하면 세메스-헤루는 각자가 못해도 장로급 뱀파이어에 상응하는 존재들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세메스-헤루로 주로 하게 되는 이야기의 주제나 방식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겠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세메스-헤루의 기원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사실 이번 이야기는 세메스-헤루 자체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실제로 머미를 할 때도 엄청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일종의 배경 이야기 같은 거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세메스-헤루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짧게 언급할 필요가 있거니와, 꽤 다양한 괴물들이 나와서 엉키는 탓에 그냥 보기도 나름 재밌는 구석이 있습니다. 어쩌면 세메스-헤루보다는 이런 이야기를 더 재밌어 하실 분들도 계실 거 같고요.


 만약 호응이 있으면 다음 글도 쓰고 없으면 말겠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시리스, 그리고 세트

 아주 오래 전,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옛날. 이집트에는 네 자매가 지배하는 한 도시국가가 있었습니다. 그 네 자매는 바로 오시리스, 세트, 이시스, 네프티스였죠. 이 중 첫째였던 오시리스는 남매 중 가장 강하고 지혜로웠기에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들은 신들의 후손이었으되 그들 자신이 신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중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세트는 네프티스와 짝을 지어서 왕실을 이루었고, 위대한 지도력을 지닌 오시리스의 통치 하에 나라는 번성하고 강해져 점점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동생, 음흉하고 야심만만한 세트는 형의 왕위를 늘 넘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정의 신하들을 몰래 설득해 형에 대한 반란을 일으킬 역모를 꾸몄습니다. 세트는 몹시도 간악하고 교묘한 자여서 그 음모는 거의 다 성공할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시리스는 자신을 향한 배신이 실행되기 전에 이를 알아차렸습니다. 왕은 반역자인 동생을 체포했지요. 그러나 차마 동생을 죽일 수는 없었던 오시리스는 세트를 나라 밖 먼 황야로 추방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처벌을 끝냈습니다. 세트가 추방된 후에 오시리스는 세트의 동생이자 아내였던 테프티스를 취했지요.


티폰의 방문

세트가 추방된 후 오시리스의 왕국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세트가 모았던 반역도당의 작은 반란들, 흉흉해지는 민심, 이웃 도시국가의 군사적 위협 등은 오시리스를 근심에 빠지게 만들었죠. 그러던 어느 밤, 오시리스의 궁정에 한 이방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하얗고 창백하면서도 돌처럼 차가운 피부를 지닌 사내였습니다. 이 사내는 스스로를 티폰이라 소개했습니다. 그를 본 순간 오시리스의 궁정에 있던 모두가 그에게서 불길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티폰은 먼 땅에서부터 여행해온 방랑자였고, 밤하늘에 박힌 별들의 수 만큼이나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범람하는 나일강 만큼이나 심계가 깊은 자이기도 했죠. 곧 오시리스는 티폰에게 매료됐습니다. 오시리스는 주변인들을 물리고 티폰과 독대하여 자신의 왕국이 처한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물었습니다. 둘 사이의 대화는 다음 새벽이 될 때까지 지속됐고, 티폰은 밤이 지나기 전에 궁정을 떠났죠. 오시리스를 제외한 모두는 이 불길한 방랑자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매번 달의 주기가 바뀌고 보름달이 돌아올 때마다 티폰은 오시리스의 궁정에 나타났습니다. 그 때마다 티폰은 오시리스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주었고, 오시리스는 이 낯선 사내를 차츰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만남의 밤이 지난 후, 티폰은 다시는 오시리스의 왕국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영원히 지속될 어두운 선물을 남기고 갔죠. 사실 티폰은 뱀파이어였고, 마지막 만남의 밤에 오시리스를 포옹하고 떠났던 것입니다. 티폰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세트를 통해 오시리스의 존재를 알게 됐으리라는 것, 그리고 티폰은 오시리스를 시대의 전쟁(War of Ages; 뱀파이어 장로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동안 끄나풀을 놓고 벌어지는 암투)에서 쓰기 위한 장기말로 선택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오시리스는 뱀파이어가 됐습니다. 뱀파이어가 된 그는 인간의 피를 마시고 내면의 짐승에 괴로워하는 밤의 괴물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시리스는 끝까지 왕의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오시리스는 뱀파이어가 된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점점 더 어둡고 냉엄한 성격이 되어갔습니다. 또한 그는 궁정에서 홀로 고립된 공포스러운 존재가 된 와중에도 자신의 모든 힘을 왕국의 안정에 사용했습니다. 그는 괴력(Potence)과 지배력(Dominate, 어쩌면 Presence)으로 왕국을 위협하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다시 한 번 왕국을 평화롭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백성들이 왕의 변화에 불안해했습니다. 신들조차도 오시리스의 변화에 슬퍼했죠.


 이에 지식의 신인 토트가 직접 신들을 대표해서 이시스와 네프티스 앞에 나타났습니다. 토트는 괴물이 됐지만 아직은 결연한 의지로 왕의 책무를 지키고 있는 오시리스를 도울 수 있도록 두 자매에게 힘을 주기로 했습니다. 토트는 이시스와 네트피스에게 이 세상의 비밀과 신비를 속삭였습니다. 토트의 가르침 덕에 이 둘은 마법을 익힐 수 있었고, 이 마법의 힘으로 오시리스의 빈 자리를 맡아 통치를 도왔습니다. 특히 이시스가 익힌 생명의 마법과 네프티스가 익힌 죽음의 마법은 오시리스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뱀파이어의 상태에서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여 이성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셋의 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은 거의 결실을 맺을 뻔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추방자가 돌아왔습니다.


세트의 귀환, 이시스의 탈출

돌아온 세트는 티폰과 마찬가지로 뱀파이어가 됐었습니다. 심지어는 오시리스보다도 막강한 3세대 뱀파이어가 됐었죠. 돌아온 그는 어둠 속에서 다시 한 번 음모를 꾸몄습니다. 낮 동안 오시리스가 석관 속에서 휴식을 취할 때, 세트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들이 오시리스의 석관을 봉인했습니다. 그리고 세트는 오시리스를 관 채로 나일 강 밑바닥에 묻어버렸죠. 하지만 이시스와 네프티스는 세트의 손아귀가 자신들마저 붙잡기 전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시리스가 뱀파이어가 되기 직전에 이시스에게 잉태시킨 어린 아들, 호루스와 함께 말입니다.


 세트로부터 탈출한 그들은 마법으로 오시리스가 묻힌 위치를 찾아내서 석관이 강 위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구조된 오시리스가 힘을 다 되찾기도 전에 세트가 다시 한 번 추적해왔습니다. 이번에 세트는 오시리스를 13조각을 내서 완전히 살해했고, 이시스와 네프티스, 그리고 호루스까지도 포로로 사로잡았습니다. 감히 오시리스를 구조해 자신에게 도전하고자 한 자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세트는 호루스를 고문했습니다. 세트는 호루스의 눈을 파내고 육신을 난도질하며, 계속해서 피를 빨아내 천천히 죽어가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셋은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궁정에 남아있던 마지막 오시리스의 충신인 친위대장이 낮 동안 셋을 탈출시킨 것입니다. 그는 셋이 오시리스의 유해를 갖고 안전한 곳으로 도주할 수 있게 안배한 후 마지막까지 길을 막아 세트의 하수인들이 쫓아올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셋을 추적하던 세트의 하수인들에게 살해됐지요.


 친위대장의 희생 덕에 셋은 세트의 손아귀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이야기되는 이시스와 일곱 전갈들의 탈주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세트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시스와 네프티스는 어리고 쇠약해진 호루스를 데리고 여러 지역을 떠돌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기이한 존재들과 조우했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만난 많은 이들이 세트의 존재를 역겨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콜레와 부바스티, 그리고 사일런트 스트라이더 가루우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도와준 덕에 셋은 간신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들은 다시 한 번 오시리스를 죽음으로 불러내기 위한 주술을 썼고, 오시리스는 이번에도 죽음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들의 후손이자 위대한 왕이었던 오시리스는 죽음의 세계에서조차 환대를 받았었습니다. 아누비스(원래는 오시리스와 네프티스의 자식이지만, 여기서는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라는 하계의 신적 존재가 죽은 오시리스의 혼을 보호했던 것입니다. 아누비스의 보호를 받는 동안 오시리스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많은 비밀을 배울 수 있었고, 그 덕에 오시리스는 영적으로 인간도 뱀파이어도 아닌 어떤 이질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그는 여전히 뱀파이어였으므로 더 진한 피를 지닌 세트의 상대는 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는 세트로부터 고문 당해서 얻은 상처가 악화되어 오래 살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이에 오시리스, 이시스, 네프티스는 각자가 지닌 마법적인 지식을 모아 당면한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펠 오브 라이프였습니다.


스펠 오브 라이프

스펠 오브 라이프는 강대한 마법의 힘에 더해서 오시리스가 저승의 존재들과 맺은 계약에 의해 보호되는 불사신을 탄생시키는 주술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사신은 죽어도 무한한 생명의 힘으로 곧 육신이 재생하며, 영혼 또한 하계에서 영적인 힘을 회복하여 곧 지상으로 돌아오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주술을 개발한 셋 중 누구도 이 방법이 정말 작동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주술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대상이 한 번 죽어서 하계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었으므로, 만약 주술이 실패한다면 주술의 대상은 그저 죽고마는 것이었지요. 그랬기에 셋은 자신들이 점지한 주술의 대상인 호루스가 주문의 실패로 인해 영영 죽고 말 것을 걱정하여 함부로 주술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트는 점점 셋의 은거처 근처까지 수색대를 보내왔습니다. 점점 숨통이 조여오자 어쩔 수 없이 셋은 스펠 오브 라이프를 사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위대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을 지켜줄 동맹들도 모였습니다. 이들은 모콜레, 부바스티, 사일런트 스트라이더였지요. 물론 오시리스에 대한 충성을 지키기 위해 세트가 지배하는 왕국을 떠나 스스로 은거하는 삶을 택했던 옛 인간 심복들도 돌아왔습니다. 오시리스는 이들 중 자원하는 이들을 포옹하여 막강한 5세대 뱀파이어로 만들었습니다. 이시스와 네프티스는 충성을 지킨 자들 중 일부를 선별하여 자신들의 마법을 전수했습니다.


 일단 의식이 시작되자 세트와 그의 주술사들도 그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힘들이 전과는 다른 패턴으로 한 곳을 향해 집중되기 시작했고, 이집트의 모든 존재들이 그 의식을 주시했습니다. 세트 또한 자신의 거대한 군세와 더불어 뱀파이어 자식들을 이끌고 의식의 장소로 향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스펠 오브 라이프는 세트의 군세가 쇄도하기 직전에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호루스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시리스, 이시스, 네프티스는 근심을 안은 채 세트를 막기 위해 나아갔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이시스와 네프티스는 가장 강대한 마법을 써서 세트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세트는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둘에게 접근해 네프티스의 심장을 뽑아내 살해했고, 이시스마저도 살해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시스마저 죽기 전에 오시리스가 끼어들었습니다. 둘의 싸움과 더불어 각자가 끌고 온 무리들 또한 한 데 뒤엉켜 창백한 달 아래 피로 모래를 적시며 서로를 찢어발기기 시작했지요. 이번에도 오시리스는 세트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세트는 다시 한 번 오시리스를 찢어죽인 후 그의 주술사들에게 시체를 불태우도록 시켰습니다. 오시리스가 쓰러지자 변신종족의 가장 흉포한 전사들이 세트를 막아서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이들조차도 3세대의 상대는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트는 다시 한 번 이시스를 끝장내기 위해 다가갔지요.


 바로 그 때, 여전히 죽은 자를 감싸는 리넨 천에 뒤엉킨 사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로 죽음으로부터 갓 돌아온 호루스였습니다. 외눈의 그는 스펠 오브 라이프로 강화된 힘으로 세트와 겨루었고, 비범한 속도로 세트가 채 반응도 하기도 전에 낫과도 같은 칼날로 삼촌의 목을 그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세트는 대량의 피를 쏟으며 휘청였습니다. 모두 호루스가 세트를 끝장내기 위해서 칼날을 들어올리는 마지막 동작을 경악 속에 지켜보았지요. 그러나 세트는 아직 오래 전에 호루스로부터 뽑아낸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호루스의 눈을 터뜨리자, 호루스는 놀랍게도 고통 속에 울부짖었습니다. 호루스의 뽑힌 눈은 아직까지 주술에 의해 영적으로 그와 연결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연결된 눈이 터지며 생긴 충격으로 인해 아직 스펠 오브 라이프에 완전히 동조되지 않았던 그의 육신은 순간적으로 안정을 잃고 붕괴됐습니다. 꿰메어 놓은 피부와 장기가 찢기고, 그 상처로부터 생명의 힘이 환한 빛줄기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세트에게는 충분했습니다. 세트는 빠른 속도로 상처를 재생했고 이제 그를 죽일 기회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시스와 그 무리는 세트가 완전히 재생하기 전에 후퇴하기로 했습니다. 오시리스의 자식들은 특유의 초인적인 속도로 전장에서 이탈했고, 변신종족들 또한 후일을 기약하며 퇴각했습니다. 이시스는 의식을 잃은 호루스의 육신을 챙겨 마법의 힘으로 탈출했습니다. 완전히 상처를 회복한 세트는 아직까지 남아있던 적들을 모두 도륙한 후, 분노하여 자신의 종복들까지 모두 살해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일순간이나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시리스의 연맹

그 후 호루스는 다시 한 번 동맹을 모아 세트에 대한 항전을 벌였습니다. 한동안 그가 규합한 동맹은 비록 뱀파이어가 됐지만 오래도록 위대한 왕의 책무를 다했던 오시리스를 기리는 의미로 오시리스의 연맹이라 불리웠습니다. 오시리스의 연맹이 지닌 힘은 한동안 세트의 클랜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 수록 동맹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모콜레들은 족장이었던 세벡이 세트에게 살해된 후로 수동적이 됐습니다. 부바스티들은 세트가 약속한 여러 어두운 비밀들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 호루스의 동맹으로부터 이탈했습니다. 사일런트 스트라이더들은 세트에게 저주를 받아 조상신들과의 연결을 끊기고 고향 땅으로부터 쫓겨나 떠도는 신세가 됐지요. 호루스가 몇 번의 죽음을 거치고 하계로부터 돌아오는 사이 다른 동맹들도 모두 소진됐습니다. 오시리스의 자식들은 완전히 세트에게 압도되어 이집트를 떠나야 했습니다. 오직 이시스에게 마술을 배운 결사만이 숨어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스펠 오브 라이프에 대한 비전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지요.


 결국 호루스는 세트와의 전쟁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자신처럼 죽지 않는 불사신 병사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자신 외에 다른 불사신이 만들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 스펠 오브 라이프를 사용했던 셋 중 오시리스는 다시 죽어서 완전히 지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됐고, 네프티스는 세트에게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이시스도 혼자서는 스펠 오브 라이프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요. 게다가 모든 동맹이 사라진 이집트 제1왕조 시절에 이시스는 너무 나이가 들고 피로했던 나머지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 후였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루스는 아직까지 간신히 명백만 유지한 채 전수되고 있던 스펠 오브 라이프를 나름대로 재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이 스펠 오브 라이프는 호루스 본인이 받았던 것 만큼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엄선한 가장 뛰어난 인간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불사신 병사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처음에는 셋이었던 그 수는 점점 늘어나 42명에 달하게 됐습니다. 이들이 바로 세메스-헤루, 호루스의 추종자들입니다. 즉 여러분의 PC들이지요.


세메스-헤루

세메스-헤루는 그렇게 자신의 것이 아닌 전쟁에 영겁의 세월을 바치게 됐습니다. 이들 중 가장 오래된 이는 이집트 제1왕조 초기부터 살아왔고,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이조차도 약 3천살에 가까운 나이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들은 여러 지식을 쌓고 힘을 축적해왔습니다. 이나우하텐 같은 세메스-헤루는 고대로부터 탈'마헤'라의 성립에 기여해서 그들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탈'마헤'라를 통해 세트의 자손들과 싸워왔지요. 그런가 하면 불멸자 아란테베스도 중세 시절부터 살아온 가장 나이 많은 장로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름입니다. 아직 그 장로 뱀파이어들이 포옹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아란테베스는 이미 므두셀라들과 비밀을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호루스 본인은 중세에 4세대 므두셀라 미트라와 직접 힘을 겨룬 적도 있습니다. 물론 PC 세메스-헤루도 그만큼 지난 역사에 무수한 전설들을 남긴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체 왜 싸우는 걸까요? 어쩌면 처음에는 그들도 어떠한 의지를 갖고 이 싸움에 뛰어들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단지 큰 힘이나, 영원한 삶을 보고 뛰어들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세메스-헤루는 뱀파이어와 달리 가멸한 인간의 육신으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물론 태양 아래서 걷고,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성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 세메스-헤루는 더한 것을 잃어갑니다. 이들은 죽을 때마다 기억과 감정을 잃어갑니다.


 세메스-헤루가 죽을 때마다 그의 영혼은 이집트의 저승 중에서도 자신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성소인 두아트로 하강합니다. 두아트에서 영적인 힘을 회복한 영혼은 다시 한 번 지상으로 돌아가 이미 죽은 육신을 스펠 오브 라이프의 힘으로 재생시키고 깃들어 부활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죽었다 돌아오는 과정은 가끔 세메스-헤루의 영혼에 회복하기 힘든 상흔을 남기기도 합니다. 죽었다 재생할 수 있을 지언정, 죽음의 고통과 충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세메스-헤루는 수천살을 살며 끝도 없이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무수한 죽음을 겪기를 반복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영혼과 정신은 이미 상처투성이로 너덜해진 상태입니다. 이들 중에 어떤 이는 자기가 왜 호루스의 복수에 가담한 건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호루스를 돕기로 맹세하고 스펠 오브 라이프를 받은 계기는 기억나지만, 더 이상은 과거의 감정을 되살릴 수 없어진 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세메스-헤루들은 본의 아니게 기억을 잃어서건, 스스로 마음이 변해서건, 호루스의 복수로부터 떠나 도망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가도 이들은 다시 한 번 소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세메스-헤루는 호루스와의 계약으로 스펠 오브 라이프를 받았고, 거의 문명의 역사 만큼이나 오랜 세월 동안 어둡고 더러운 일에 가담해왔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기억하든 못하든, 자의였든 아니었든 간에, 호루스의 복수에 가담해서 무수히 비정한 일을 벌여왔습니다. 이들 세메스-헤루는 결국 자기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게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를 재밌게 하신 분이나 만화 [써틴]을 재밌게 보신 분은 아마도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이제 와서 손을 씻기에는 너무 깊게 시대의 전쟁... 이제는 지하드로 불리는 뱀파이어들의 싸움에 결속되어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