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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글의 댓글부터 정독할 것을 추천.

1. 내가 말한 '재구된 영지주의'라는 개념부터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 난 전통적으로 영지주의에 대한 전거로 인정되어 온 초대 교회 교부들의 영지주의에 대한 기술로부터 재구된 영지주의, 즉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한 적대적인 무필에 의하여 진정한 역사적 모습과는 동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영지주의를 '재구된 영지주의'로 정의함. 어디까지나 현대의 고증학적, 고고학적 방법론에 의하여 역사적 사실로서 비정되는 영지주의와 구별하기 위한 개념.

2. 엄밀히 말하면 먼저 근거에 기반하여 그렇게 주장한 게 아니라, 그냥 WoD가 그렇게 엄밀한 사적 진실을 추구하여 영지주의란 개념을 사용하였을 리 없다는 생각에서 일단 주장하고 나서 근거를 대라길래 뒤늦게 근거를 찾은 거임. 일단 이 점은 말해 둬야 할 듯;;


3. 일단 영지주의에 관한 WoD 내의 서술을 알아보기 위해서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Cainite Heresy를 살펴봄. 이하 CH로 표기.


4. CH에서는 초기 기독교의 이단이었던 마르키온주의(Marcionism)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영지주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CH에서는 anti-Gnostic heresy라고 표현), 영지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있음. CH에서는 마르키온주의가 신약의 많은 부분과 구약의 전부를 거부했으며, 영지주의와 마찬가지로 구약의 신을 사탄과 동일시(identified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with Satan)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음.

5. 문제는 마르키온과 마르키온의 사상에 관한 전통적인 전거는 그에게 적대적인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 즉 테르툴리아누스,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오리게네스, 그리고 이들을 인용한 바 있는 유세비우스와 같은 사람들의 기술이라는 것.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이러한 적대적 교부들에 의한 기술 이외에 다른 기록, 예컨대 마르키온주의자 스스로의 기록과 같은 것은 현존하지 않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통적으로 영지주의에 대한 전거로 인정되어 온 초대 교회 교부들의 영지주의에 대한 기술로부터 재구된 영지주의"라는 '재구된 영지주의'의 개념에 비추어 본다면, CH에서 기술된 마르키온주의는 '재구된 마르키온주의'라고 할 수 있음. CH의 마르키온주의는 어디까지나 마르키온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교부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의하여 온전히 재구된 것이란 소리임.

6. 최근 Claire Clivaz란 사람이 신약성경을 기록한 파피루스 필사본 중에 파피루스 69가 마르키온주의자가 개역한 누가복음 판본이라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음. 아직은 주장의 단계이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편향된 기술을 벗어나 마르키온주의에 관하여 확실히 표현하고 있는, 마르키온주의자 스스로가 기록한 자료인 셈이니 역사 속의 진실한 마르키온주의의 모습을 추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임.

7. 다만 Claire Clivaz가 이를 처음 주장한 것은 2004년, CH가 발간된 것은 1999년이라는 점이 문제. 최소한 CH에서 인용하고 있는 마르키온주의는 전통적인 전거에 기초한 '재구된 마르키온주의'라고 해야 할 것임.

8. WoD에서 이렇듯 '낡은' 해석으로서의 '재구된 마르키온주의'를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면, 시몬 마구스가 amoralism을 주창했다는 이레니우스의 기술을 배척해야 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Adversus haereses라는 하나의 '낡은' 텍스트에서 시몬 마구스(재미있게도 CH는 어디까지나 루머에 관하여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이기는 하나, 시몬 마구스를 영지주의의 중요한 인물로 전제하고 있음)에 대하여 적대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은 마르키온과 다를 바 없는데.

9. 여담인데 CH는 영지주의의 한 부류인 발렌티누스주의가 세타이트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