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글 리젠이 빨라져서 본 글이 묻혔네. 할 수 없이 새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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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본문 좀 꼼꼼하게 읽어주면 고맙겠다. DnD의 선-중립-악 가치관 시스템은 선악 사이의 모호함이 없는 시나리오에서 제대로 작동한다고 분명히 본문에서 말했잖아? 그래, 니 말대로 4세 여아를 납치강간살해하려는 범죄자를 막는 것이 '선한' 행위라는 데에는 대체로 이론의 여지가 없지. 그러니까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가치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테고.
근데 애초부터 그 글은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별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치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잖아? 저 시나리오를 좀 더 꼬아보자면, 흉악한 범죄자가 어린 아이를 납치해서 어딘가로 끌고 갔어. 그리고 그 범죄자의 행방을 아는 건 피해자와 비슷한 나이인 범죄자의 어린 자식 뿐이야. 지금 당장 피해자를 구해내지 못하면 범죄자는 피해자에게 나쁜 짓을 할 거야. 하지만 범죄자의 어린 자식은 '아저씨들 우리 아빠 괴롭히려는 거죠? 절대 말 안해요!' 라고 버티고 있어.
자, 이 상황에서 그 범죄자의 어린 자식을 고문해서 범죄자의 행동을 구해내는 것이 '선' 하다고 단언하기 힘들다는 건 너도 동의하지? 이런 경우 내가 본문에서 한, 그리고 그 밑에 ID씨가 한 이야기처럼 '아이를 구슬려서 설득한다' 거나 '다른 방법으로 행방을 추적한다'와 같은 이상적인 다른 대안을 마스터가 허락한다면 다시 이 상황이 간단해 지겠지만,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DnD의 가치관 시스템은 아무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지 않니?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는 '꼬인' 상황에서는 너도 인정한 것처럼 보편적인 윤리적 합의는 작동하지 않지. 즉, DnD의 가치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리고 난 분명히 본문에서부터 '그냥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DnD의 가치관 시스템을 편하고 정확하게 사용하는 방법' 이라고 말하지 않았니?
모두가 합의 가능한 것은 선/악에 넣고, 의견이 갈리는 것은 중립으로 두자고? 근데 애초에 모두 합의 가능한 단순명료한 것은 본문에서부터 논외였고(분명히 '본문에서부터' 그런 상황에서는 가치관 시스템이 의도대로 작동한다고 했었지?), 그 글 자체가 선악이 모호한 문제를 어떻게 가치관 시스템으로 다룰 거냐는 이야기였는데? 즉, 네 이야긴 그냥 모두 다 중립으로 두자는 건데, 그럼 가치관 시스템을 쓸 이유부터가 없어지잖아?
덤 1: '그러나 그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민간인 공격이나 고문은 '선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지. 그것은 '악한 행위'라는 것을 너도 인지는 하고 있을걸? 다만 가치판단이 개입하는 것은 더 큰 선을 행하기 위하여 작은 악을 행하는 것이 변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입장차이일 뿐이야.'
-> 넌 누군가의 도덕성을 각각의 행동 단위로 따지냐? 그런 식으로 따지면 DnD의 특성상 칼 들고 다른 생명체를 쳐죽이는 건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있냐? 대체 총체적인 동기나 목적과 별개로 각각의 행동 단위로 선악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덤 2:'그리고 트랄라다라인에 대한 예시라면, 어떤 메이저 매체에서도 수탈 체제를 지탱한다는 이유로 적국의 농부를 쏴죽이는 정의의 편은 없다고 말하겠음. 물론 IS나 다른 특수한 상황에 있는 집단이라면, 이런 이야기에 반발할 지도 모르지만.'
->루디니가 V포 벤데타의 V는 테러리스라던데? 뭐 이건 해당 작품을 내가 코믹스밖에 안 봤고, 기억도 잘 안 나니 넘어가고, '이웃집 처녀와 결혼해서 애 낳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 생각밖에 없었던 평범한 농부의 자식'이 정의의 편에게 맞아죽는 작품은 책장 단위로 소개해 줄 수 있을거 같은데?
라는 입장임.
회색종자들의 세상 에버론이나 해
일단, 저 납치 상황에서 '아이를 고문한다.' 이외의 대안을 허락하지 않는 것부터 마스터 편의적인 강제일 뿐이지. 마스터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라고 못박아두고 '아이를 고문해도 사악한 것으로 치지 않을게요.'라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거부감을 느낄 거다. 왜냐면 그건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와는 동떨어진 판단이니까.
납득을 못하겠다면 네가 말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더 극단적으로 제시해보자. 에버론에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파티가 자엘라 다란을 본거지에서 끌어내어 강간 살해하고 시체를 태워버려야 한다는 퀘스트를 줬다고 치자. 그리고 마스터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아, 물론 이런 짓을 한다고 G캐릭터가 타락하진 않을 거예요. 이건 선한 행위라고 인정해드립니다.’라고 하면 플레이어들이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까? 퀘스트는 둘째치고 마스터의 인격이 의심받지 않을까?
애초에 PC들이 자발적으로 제3의 길을 찾아가는 것까지 막아놓고 윤리적인 딜레마를 유도하면서 ‘덴디의 가치관 시스템은 이런 윤리적인 딜레마를 설명하기엔 너무 조악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불공정한 거 아니냐? 사안이 복잡하면 해결방법도 복잡한 거지. 네가 복잡한 해결방법을 인정하기만 하면, 단순한 가치관도 의미가 있어져. 마스터가 가치관을 통해서 PC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제3의 길이건 뭐건 인정 안 해 줄 거면 왜 모여서 TRPG하고 계시는지? 컴퓨터 게임이 더 그래픽 좋고 연산도 빠르구만.
납치 건으로 다시 예시로 들면, G캐릭터는 아이를 고문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탐색하겠지. 마스터가 그런 해결방식을 거부하고 피해자를 죽이면, 최소한 피해자를 죽인 범인을 잡아다 LG는 법정에 세운다거나 NG는 피해자 유족을 위로할 수도 있고, CG면 사적인 보복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도 있겠지. 여기서 가치관 시스템의 어디가 기능적인 결함을 보이는지? 이게 ‘애새끼 고문해도 타락 안함.’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지 않나?
나도 사안을 단순화시키는 게 덴디 플레이에 더 편하다는 거에는 동의함. 난 단지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가치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 네가 윤리적 딜레마라고 든 예시들은 솔직히 표현에 있어서나 상황에 있어서나 걔네가 선하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듦. 절대로 내가 선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겠는걸, 선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럼 중립으로 둡시다. 라는 타협안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내 경험상 그 정도로 첨예하게 도덕적인 가치가 대립한 플레이는 거의 없었다. 내가 덴디로 정치 플레이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덤1에 대해 ; 동기는 행위에 대한 정상참작을 가능하게 하는 거지. 행동 단위의 선악도 의미가 있음. 당연히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 하에서 사악한 일로 평가받는다. '다만' 그 생명체가 나나 공동체에 피해를 주거나 위협이 될 경우, 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같은 제한적인 상황에서 선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지.
덤2에 대해; V의 이상에 공감하면 혁명가 취급해주겠고, 못하면 테러리스트겠지. 애초에 V가 자기가 정의의 편이라고 하고, 앨런 무어의 생각도 그랬나? & 정의의 편에게 맞아죽는 농부 시추는 '자칭' 정의를 비꼬는 내용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 행위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묘사한 것인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진짜 묻고 싶은 건데, 선악의 애매함을 보정하기 위해 중립을 두면 선과 중립의 모호함/악과 중립의 모호함, 으로 모호한 게 두 배로 늘 뿐이지 않나...?
ㄴ그 모호함을 줄이려면 단계를 계속계속 더 나눠야하고 d&d 는 9개가 끝이니 모호한게 적을 수가 없지 ㅋ
ㄴ아니, 내 말은 중립을 타협안으로 삼는 건 의미가 없다는 소리였어. 마찬가지 과정을 통해 선이냐 중립이나 논란이 될 테니.
Loodin/ 그것도 게임적으로 본다면, 마스터와 플레이어들간에 타협으로 분류가 끝날 문제라고 봄. 그리고 통상 N가치관의 경우에는 L,T,C가 부각되는 느낌인듯
영지주의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의 실체가 모호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낙인찍기냐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이단과 영지주의는 구분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고요.
Loodin/ 현실적으로 모호하지 않냐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가치판단에 있어서 그런 식의 분절을 늘상 있는 거니...갓겜과 그저그런 겜과 똥겜의 경계는 몇 점부터 몇 점까지인가 같은...
마스터 편의적 강제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그런데, 니가 말하는 '마스터 편의적 강제' 없이 TRPG(특히 마스터 중심 룰이라면)가 성립할 수는 있냐? 플레이어와 마스터간에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어쨌건 마스터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응할수는 없지? 마스터는 자기가 준비한 범위 내에서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어. 그게 아니라면 시작하자마자 상점 주인부터 공격하는 트롤러들을 씹을 이유도 없잖아?
그렇다면, 그 마스터가 준비한 범위의 이야기가 '플레이어들에게 윤리적 진퇴양난 속에서 선택을 요구하는 이야기'여서는 안 될 이유는 없지? 그리고, 나는 거기서 반드시 플레이어들이 윤리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보는데? 어차피 이야기 속에서 PC들은 좌절과 실패를 겪어나가잖아? 시나리오 내에서 때려잡고 싶은 놈들 다 때려잡게 해 줘야 된다는 법은 없는데, 윤리적 진퇴양난으로부터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법은 있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
그리고 덤 1에 대한 대답은 상당히 재미있는데... 넌 왜 니 논지를 너 스스로 무너트리냐? "당연히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 하에서 사악한 일로 평가받는다. '다만' 그 생명체가 나나 공동체에 피해를 주거나 위협이 될 경우, 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같은 제한적인 상황에서 선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지" 라고? 근데 너 그 바로 앞에서 "동기는 행위에 대한 정상참작을 가능하게 하는 거" 라고 했잖아?
네 말대로면, 그 생명체가 너나 공동체에 피해나 위협을 주기 때문에 죽였다는 '동기' 역시 참작 사유는 될 지 몰라도, 명백하게 악한 행동인 살생(그것도, 많은 경우 이성을 가진 생물에 대한 살생)을 선한 행동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건 아니지 않냐? 그 '동기'를 참작해서 그 살생을 '선한 것' 으로 인정하는 거야? 그럼 그건 그냥, 내가 애초에 한 이야기랑 똑같잖아. 행동을 행동 자체로 판단할 수 없고, 그 맥락에 따라 선악을 판단해야 한다는 거니까.
그리고, 선과 악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만드려고 하니까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고, 그게 DnD의 특색인 동시에 한계가 되는 건 당연한거 아냐? 애초에 캐릭터에게 명확하게 범주화된 가치관을 부여하지 않으면 그를 통해 얻어지는 효과를 못 얻는 대신 이런 한계에 부딪힐 일도 없잖아
대체 왜 마스터 편의적인 강제를 밀어붙여야 하는지부터 이해가 안 가는데. 한 번 플레이를 하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다 치면, 그 동안 진행할 수 있는 분량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함? 시나리오의 방향을 바꿀 만큼 중대한 결정이면 플레이어들끼리 3,40분 그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수두룩함. 그렇게 내린 선택을 마스터가 ‘나는 그런 경우의 수를 생각해오지 않았다.’라고 무시하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한다면 마스터도 그 진행을 수정할만한 시간이 분명히 있음. 그딴 거 필요 없고 무조건 내가 정한 선택지만 따라야 한다, 식으로 나오는 마스터면 그건 그냥 가치관 시스템 따위 알 바 없고 내 말 따르라는 건데 그런 식의 진행에서 가치관 시스템이 멀쩡히 돌아가길 기대해야 함?
이건 상점 주인부터 공격하는 트롤러랑은 분명히 차별되는 것임. 걔네는 마스터가 던져주는 상황이 어떻든 관심 없고, 개연성 같은 거 전부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는 거고, 마스터가 제시한 갈등을 PC의 가치관에 입각해 풀어나가려는 사람은 오히려 개연성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건데. 그런 걸 마스터가 ‘내가 생각하는 주제랑 이건 다르니까 각하.’ 하는 식으로 무시하면 ‘좆까세요, 병신아.’ 하고 펜 던지고 나올 듯. 사람이 컴퓨터보다 나은 건 상호작용뿐인데 그거 포기하고 일직선 진행 시키겠다고? 모두가 만족할 선택지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선택은 할 수 있게 해줘야지.
그리고 덤1에 대해서 말한 것은, 더 큰 선을 행하기 위하여 작은 악을 행하는 것이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입장차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음. 생명을 죽이는 것은 악은 악이라는 것이지. 내가 더 큰 선을 위하며 불가피하게 필요악을 저질렀다면 그것이 사회로부터 용서받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행위 자체는 악인 것이 맞지. 가령, 아까의 납치 예를 다시 들어볼까? 내가 피해자의 소재를 알기 위하여 아이를 고문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 아이를 고문한 것은 나의 선한 동기 때문에 악이 아니게 되는 건가? 결과도 못 냈는데 필요악만 남으면 그 행위는 그냥 악인 게 당연하지 않겠음?
선과 악을 분명하게 나누려는 덴디적인 시도에 대해서, 가치관을 부여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일도 없다는 말은 좀....노모 히데오가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라고 한 게 떠오르는데. 그야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지적을 받지도 않겠지. 그래서 시스템적으로 가치판단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안하고, 이런저런 제약 다 풀어놓은 게임들이 한계 돌파한 만큼 재미있는 건 또 아니거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칼을 휘두를 때마다 20면체 기준으로 명중률이 5%단위로 변화하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왜 엄밀한 물리법칙을 안 따르고 5%씩 변화하는 것임? 떨어질 때 1d6 낙하대미지를 받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내적인 필연성을 충족하나? 그게 중력가속도 법칙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피해 대미지라고 증명할 수 있음? 그런 한계들에 대해선 아무도 불만을 안 가지는데 왜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엄진근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아, 이거는 실제 윤리관만큼 심오하지 않고 너무 단순하네요.’ 이러는 것임?
익명씨 말대로라면 모든 면에서 한계가 없는 룰은 무룰이겠네. 아무 것도 언급하질 않았으니까. 그럼 무룰은 특정한 룰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개성 넘치고 재미있나? 그건 아니거든. 실제로는 덴디정도의 조악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가치판단 시스템이라도 있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음. 초보들이 접근하기에도 좋고. 그럼 이건 한계가 아니라 장점이라고 해야 맞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