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단편플 몇 개밖에 안 해 봤고, 장편 하던 건 연달아 터졌다는 점,

그리고 이번 해 들어서는 수업에 너무 바빠서 RPG 아예 못 하고 있다는 점은 염두에 좀 둬 주고...




요약부터 하면, 기본적으로 이거 때문에 힘듬.


나는 마스터가 뭘 엄청나게 잘 해서 재미있는 게 아니라, 마스터가 플레이를 열심히 해 줘서 재미있는 거고

마스터링 중 아쉬웠던 점이 일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플레이가 재미있었다는 거임.


근데 피드백은 이걸 설명해야 하고, 즉 어떤 근거를 요함.

그리고 근거를 들이밀면 들이밀수록 내 취향이나 예술관 강요밖에 안 된다는 거지.




내가 지금까지 좋은 마스터들만 만나서 그런지, 아니면 턀갤럼들처럼 진짜 잘 하는 마스터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난 노잼플이라고 할 만한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음.

물론 플레이 도중에 지루해지는 타이밍이나, 엔딩 보고 '뭐임???' 싶었던 경험이야 꽤 있지.

근데 턀갤에 나오는 것처럼 '아 플레이 좆같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경험은 없었다는 거야.


그냥 그 플레이가 마스터 생각하던 대로 잘 안 굴러갔던 것뿐인 거고, 내 취향이 그 마스터랑 일부분 안 맞았던 거 같거든.

터진 장편 플레이들도 지금 돌이켜 보면 마스터들이 큰 그림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과정의 일부라고 상상이 가고.

그냥 그 결말을 내가 못 본 게 아쉬울 뿐이고.




그래서 나는 그냥 플레이를 끝나고 나면 기본적으로 '이러이러한 점은 아쉬웠는데, 재미있었다!' 정도의 소감이 든단 말이지.

그래서 '오늘 플레이 재미있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라고 말을 하고 나면, 피드백을 해야 할 시간이 돼.


그래서 이러이러한 점은 좋았다, 다음에 어떤 거 할지 기대된다... 같은 이야기를 좀 주워섬긴다?

그러면 이제 안 좋았던 점도 이야기하라고 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좋았던 점의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만, 안 좋았던 이유는 설명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움.


'작전 구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사전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플레이가 좀 지체되었는데,

현실적으로 이건 PC들이 알고 있을 만한 부분 아니었을까요. 물론 저희가 순발력이 딸려서 어버버거린 건 실수가 맞는데,

메타적으로 PL들에게 알려 주셨으면 저희도 준비할 수 있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선역이나 악역의 동기가 1차원적인 건 괜찮습니다. 사실 현실의 인간들 상당수가 그러니까요. 하지만 계획이 1차원적인 건 좀 그랬습니다.

일이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이전에, 일이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악역 측에서 얻는 이득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최소한 이 선역/악역의 행동에 협조하거나 용인한 주변 인물들은, 좀 더 현실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묘사하는 게 이입하기 쉽지 않았을까요.'


뭐 이런 식으로다가.


그리고 내가 이런 식으로 피드백한 내용을 주르륵 읽어보면... 내가 봐도 이건

'플레이 ㅈ같았는데 심한 말은 못 하겠고, 그래서 좋다고는 말은 하는데,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한 이유로 구렸음' 으로 읽혀도 이상하지 않음.

그래서 계속 중간에 '물론 괜찮았는데' 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더 변명 같음 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플레이가 재미있는 이유라는 걸 들이대라고 하면, 대체 그게 뭐여야 하는데?

'전투 재미있었어요'? 재미있는 전투와 재미없는 전투를 구별하는 객관적 기준은 뭐임? 나는 그냥 재미있었는데...?



여기까지면 그냥 내가 눈치를 잘 보고 말을 조심하면 될 부분인데,

다른 PL들도 같이 피드백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 큰 문제야.

예컨대, 내 입장에서는 '어떤 상황의 변화가 더 이어지지 않는 전투는 늘어지는 것뿐이지 않나'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다른 PL이 '죽을 때까지 아등바등 싸우는 전투의 치열함이 좋았다' 라고 먼저 피드백을 했다 생각해 봐.


둘 다 똑같은 상황인데, 해석이 완전히 나뉜다고. 그러면 마스터가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건데?


이런 일이 빈번했음. 나는 NPC에게 통수 맞고 우울한 결말 맞는 엔딩을 본 다음

'캬 이게 하드보일드의 정수지, 오늘 밤은 필립 말로로 한 발 뽑는다' 하고 있는데

같이 플레이하던 PL은 '현탐 너무 진하게 온다'라고 우울 상태에 빠지고.

나는 '어차피 AWE 전투 죄다 구데기인 거, 총성 한 발 없이 입펜싱으로 문제를 무마하는 것이 진정한 첩보극이지' 하고 있는데

전투직 PL들은 '좀 제대로 된 전투 좀 하고 싶다, 존나 쎈 물량 드론들 상대로 개기다 튀는 거만 하잖아' 라고 피드백하고.



결국, 내 피드백이라는 게 내 취향에 따른 평가에 지나지 않는데, 이걸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해서 좋았다', '나빴다' 고 하는 것부터가

마스터에게, 그리고 다른 PL들에게 내 취향이랑 예술관에 맞춰 달라고 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있나... 라는 기분이 든다는 것.



그니까 제대로 된 세밀한 피드백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마스터랑 PL들의 취향, 추구하는 플레이의 방향성 같은 게

어느 정도 일치가 된 상태가 아니면, 서로 감정 상할 여지가 너무 많음.

마스터도 PL이 '이런 거 부족했어요!' 라고 할 때 '아...!' 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추구하는 바의 일치가 있어야

PL이 이렇게 해 달라는 게 땡깡이 안 되는 거고, PL들끼리 충돌도 안 일어나고.

마찬가지로, 이러한 큰 그림에서는 서로 맞춰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PL이 이러저러한 점은 별로였다, 라고 하더라도, 그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었다'는 전제를 안 해칠 수 있는 거고... 그런 거 같음.




그래서 턀갤럼들이 죄다 맘 맞는 사람들이랑 팀 만들어라고 그러는 거 같음.



나도 시간만 좀 있었으면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