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TRPG 갤러리 개설을 축하하는 의미로, 『네크로니카』나 『데타코토 사가』(혹은 『절대예노』?)로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카미야 료 씨의 신작 『헤이안 환상야화 누에카가미』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트위터에 쓴 걸 재탕할 거지만!)


카미야 료 씨의 작품군은 대부분이 독특한 정서를 위한 무대 설정과 연출에 집중하고 있는데(그리고 전투가 은근히 빡세죠;;;), 이번 작품은 제목대로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특화되어 있습니다. 『음양의 도시』나 『음양사』 같은 소설, 혹은 게임 『쿠온노 키즈나』, 만화책으로는 『내겐 너무 멋진 그대』 같은 작품이 알려져 있으려나요. 『겐지모노가타리』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각 인물마다 무엇인가를 잃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이 특징은 요괴와 이물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헤이안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명', '진정한 힘', '육체', '가족', '긍지' 같은 것들이지만, '자제심'만은 좀 웃길 듯(..).


캐릭터 메이킹은 총 15가지의 캐릭터 타입(신이라든가 무사라든가 요괴라든가 창기라든가 표류자라든가) 중에서 3개까지 선택, 그에 따라 기본 능력치와  '업'이라는 스킬 선택의 폭이 달라집니다. 모두 다르게 골라도 좋고 아니면 하나를 중복 선택해도 되는 식. '신'+'대요괴'+'시체'에다 '이성'을 상실했다고 하면 '한때는 신이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요괴로 격하되고 토벌당해 미치고 만 것' 같은 식으로 캐릭터를 형상화 할 수 있겠죠. 물론 '신'+'신'+'신'으로 갓갓갓이 될 수도 있겠고, '창기'+'창기'+'창기'로… 뭐가 되지?


스킬인 '업'에는 필수 연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기의 '업' 중 하나인 [미태媚態]는,  자신과 인연을 가진 인물들의 특수능력을 회복시켜주는 능력인데, 그걸 위해서는 성적 매력으로 누군가를 꼬드기는 연기를 해야 합니다. 대요괴'의 업 중 하나인 [권속]은, PC 중 한 명을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연출을 함으로써 그 인물의 실패한 행동을 성공으로 바꾸죠.


판정은 좀 독특해서, 20면체를 굴리는데 그 주사위값이 얼마나 낮게 나왔느냐에 따라서 신의 영역/달인/보통사람의 3단계로 구분하고, 각각 성공치 4, 2, 1로 취급합니다. 다이스를 여럿 굴릴 수도 있어서, 그 최종 성공치를 전부 더해 최종값을 선정. 플레이어 전원의 성공치를 다 더해, 그 합계가 얼마나 높았느냐에 따라서 종료 후 성장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게임의 흐름 역시 굉장히 독특한데, 흔히 말하는 전투 규칙이 아예 없고, 네 개의 길(道)과 각 길마다 존재하는 세번의 순간(刻), 총 12회의 판정을 거듭하면 게임이 종료됩니다. 즉, 완전무결한 레일로드 시스템. 각 순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지가 까다로운데, 샘플 시나리오에서도 '전투 상황이니 흐름 봐서'라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많이 실망했습니다…. 자신의 상실을 어필함으로써 주사위를 굴리지 않고 성공치 2를 획득한다거나, 스킬인 '업'을 사용하기 위해 정해진 연출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부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드라마 중심의 시스템.

다시 말해서, 게임이 시작된 다음에 플레이어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어떠한 행동을 해서 이야기의 상황을 변화시킨다' 보다는, '정해져 있는 굴림의 순간에 성공치를 얼마나 높게 쌓아서 종료 후 성장 보상을 받느냐' 쪽이고, 이걸 위해서는 성공치 획득에 영향을 주는 '업'을 유효하게 잘 써야 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업'에는 필수 연기가 정해져 있으므로, 플레이어들은 최대한 협력하여(..), 각각 필수 연기를 하고 서로에게 넘길 수 있도록 머리를 써야 하죠. 중요한 포인트가 일반적인 게임과는 상당히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상의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굉장히 드라마/자기 캐릭터의 연출을 중요시하는 시스템이죠. PC 및 NPC와 인연을 맺는 규칙도 매우 중요하고, 특히 NPC는 헤이안 시대의 유명인 20명이 인당 6페이지를 차지하는 대볼륨으로 들어 있습니다. 각 NPC에 대한 소개, 입장에 대한 상세한 해설 + PC와 어떤 인연을 맺을지에 대한 예시가 상세합니다. 일러스트도 한 페이지를 써서 예쁘게 실려 있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땅 하아하아……. 


정리하자면, 독특한 판정과 페이즈 진행법을 가진 드라마 중심 시스템. 저 개인적으로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 타입이지만(<- 안 선생님, 빌덕질이 하고 싶어요ㅠㅠ), 헤이안 시대물이라는 점에서는 나름의 메리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추천은 하지 않습니다. 카미야 료 씨의 RPG는 남에게 추천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