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뻘글은 "제 캐릭터는 그렇지 않아요" 등의 마법의 주문에 대한 이야기.


"제 캐릭터는 그렇지 않아요"

흔한 0레벨의 자기 보호 주문임. 자기가 설정한 캐릭터는 그런 행동 /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기 생각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존재이므로 그것을 훼손하지 말라는 의미로 보면 됨. 만약 단편이라면 어차피 얘는 한 번 보고 치울 거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면 됨. 다만 장편 플레이를 하는 중이거나 다른 이유로 이 새퀴를 플레이 중에 다시 볼 이유가 있다면 이 보호 주문의 효력을 계속 인정해 줘야 할 지 고민을 해 봐야 함. 왜냐면 이 주문은 결국 자기 캐릭터의, 좀 더 정확히는 '캐릭터성'의 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이며, 이야기를 짧게 가져갈 때는 상관이 없지만 장편을 진행할 때는 이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임. 그러면 이번에는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나 같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아니, 걔는 이제까지는 그렇지 않았을 뿐이잖아요"

'캐릭터성' 하니 이번에 갤럼들이 막 어린 아이의 성향을 확인한 뒤에 '아 이 애는 나쁜 아이구나' 하고 뚝배기를 깨서 선 성향인 사람만 남기는 사회 같은 개소리를 했는데... 사실 이런 개소리의 소재가 되는 D&D 캐릭터의 성향만 해도 그 주체가 되는 캐릭터가 다양한 일을 겪다 보면 충분히 변할 수 있는 것임. 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면 '성장'이나 '회개' 뭐 그런 게 되는 거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면 '타락'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D&D의 세계에서는 뚝배기를 깨는 것보다는 강제로 가치관을 선 성향으로 변화시키는 수단을 사용하는 게 맞을 거임. 어쨌거나, 이렇게 캐릭터성이 변화할 수 있다면 무엇이 캐릭터의 이야기를 변화시키면서도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바로 그 캐릭터의 '약한 고리'다. 그러면 예를 들어보자.


옛날 옛적 어느 동네에 고-결한 기사가 있었다고 치겠음. 그런데 이 고-결한 기사는 사실 매의 눈으로 텍섹의 기회를 노리는 턀갤럼들처럼 성욕이 쩔었던 거임. 그래서 어쩌다가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불륜을 저질렀고, 이 사실이 폭로되면서 X망테크를 타게 됨. 근데 그래도 얘가 그 동안 고-결하게 행동해 온 덕인지 세계를 구하고 자신의 죄를 씻을 기회가 딱 한 번 주어짐. 물론 너희의 기대대로 이 새퀴는 영 좋지 않은 이유로 그 기회를 차 버리고 완전히 악의 길을 걷게 됨. 그래서 막 천하의 개X놈이 되서 마이웨이를 걷다가.... 이상한 곳에 갇히게 되서 그곳에서 기나긴 방황... 방황 맞나? 하여간 고생을 하면서 살다가 결국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게 되고, 어찌어찌 고향에 돌아옴. 그렇게 고향에 돌아오니까는 이번에는 처음과는 반대로 악의 세력이 얘에게 천하의 개X놈으로 돌아갈 기회를 제시하는데, 거부하고 그 대가로 불에 타 죽는 결말을 맞이함.


꽤 괜찮은 이야기지? 여기서 캐릭터의 변화가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이 캐릭터가 순도 100% 고결한 존재가 아니라 성욕이 쩐다는 약점이... 혹은 약한 고리가 있었고, 그것이 얘의 이야기를 변경시키는 요소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임. PC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 그런 약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캐릭터란 적어도 TRPG에서는 존재할 수 없거든. 예를 들어서 '제 캐릭터는 안 그래요'의 예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불살의 신념' 같은 경우.... 이건 좀 너무하니까 '무고한 자를 죽이지 않는다' 정도로 순화하자. 하여간 이런 신념을 가진 PC가 있다고 치고....


PC들은 적의 근거지로 침투하는 도중에 인근 마을의 아이들에게 목격되었음. 이 아이들은 분명히 무고하지만 지금 풀어준다면 마을로 돌아가서 어른들에게 말할 테고, 그러면 당연히 침투 작전은 실패할 거임. 그래서 이제 PC들은 아이들을 그냥 풀어준다 / 바로 죽인다 / 움직일 수 없게 나무에 묶어두고 떠난다(그대로 죽을 가능성이 높음) 중 하나를 골라야 함.


그러면 '무고한 자를 죽이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PC는(플레이어가 어떻게 생각하든) 당연히 바로 애들을 죽이자고는 안 하겠지? 근데 얘가 죽이자는 의견에 굴복한다면 이제 얘의 "제 캐릭터는 안 그래요"는 "이제까지는 그랬었어요"가 되면서 얘의 이야기가 좀 더 다이나믹해지는 것임. 물론 신념을 깼으니 이제 피에 굶주린 살인광이 되라고 요구할 필요도 이유도 없음. 앞으로 얘가 어떻게 될 지 이야기는 더 두고 봐야 하는 거잖아...? 아, 만약 굴복하지 않고 역으로 풀어주는 쪽으로 의견을 이끌어 냈다면? 당연히 이미 마스터가 공언한 대로 침투가 발각되면서 침투 작전은 대실패하고 마스터는 PC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경계와 전력이 강화된 적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얌전히 포기하고 돌아갈 것을 메타적으로 제안하거나 그럴 거임. 어쩌면 적들이 아예 PC들을 조지려고 정찰 병력을 보내서 걔들과 싸우며 도망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 가게 할 수도 있을 거고. 어쨌든 플레이 내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 PC가 지지한 '아이들을 풀어주는 선택'의 책임을(일부라도) 지게 되는 게 포인트임. 이렇게 마스터가 특정 PC의 약한 고리를 건드려 그 캐릭터의 기존의 이야기를 비틀려고 작정하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다이나믹하게 만들 수 있음. 다만 주의할 점이 있는데....


이렇게 마스터의 생각대로 플레이 내의 이야기 뿐 아니라 PC의 캐릭터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재미있지만(혹은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단 PC의 이야기 흐름을 바꾸는 건 어떻게든 그 PC를 조종하는 플레이어의 동의가 필요한 행위라는 거임. 그런 변화에 대한 동의를 얻으려면 일단 '플레이 내의 이야기 속에서' 충분한 개연성이 있어야 하며, 판정 결과를 들이대든 설득을 하든 일단 '그 PC의 플레이어를 납득시킬 뭔가'가 있어야 진행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를 해야 함. 그 PC를 조종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자기 PC의 캐릭터성이 자신이 아닌 외부적 요소에 의해 변화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여지가 있기 때문에(사실 대부분은 그럴 거라 생각함) 가급적 그에 대한 거부감을 최대한 완화시킬 수 있을 수록 좋거든.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최소한 "A님의 마음은 그러신다지만 유감스럽게도 던지신 주사위는 안 그렇군요" 같이 판정 빨로 밀어붙이기라도 할 상황이 나와 줘야 한다는 거지. 사실 이렇게 판정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사실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추가하자면....


"제 캐릭터는 A상황에 처하면 참지 못하고 B행동을 해요"

이런 설정을 보면 일단 경계해야 함. 이건 단순히 '약한 고리'가 아니라 사실 폭탄 기폭장치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캐릭터로 가끔씩(사실 자주) 주변 상황(당연히 마스터 및 다른 플레이어 모두) 조까고 맘대로 B행동을 하며 날뛰고 싶으니 그럴 경우 니들이 알아서 눈감아 줘라"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음. 물론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게 격발하는 상황을 조율해서 캐릭터성의 변화 촉매가 되는 '약한 고리'로 사용해 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일단은 그냥 그 자리에서 한 번 개판을 만드는 쪽을 택할 - 그 다음에 이야기가 바뀌든 말든 -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단 이런 설정을 보면 이 캐릭터를 어떻게 양념할 지 고민을 좀 해야 함. 아예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법한 진행을 계속 해서 아예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준비를 해 놓고 이야기 속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이 나오도록 유도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식의 그런 진행도 충분히 폭발시의 충격에 대비한 상태로 진행한다면 좋은 방법일 수 있음. 예를 들어서....


분노 조절을 잘 못하는 PC가 아버지의 원수와 마주쳤음. 일단 지금은 섣불리 화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얘도 아는데... 여기서 마스터는 얘가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있게 동료를 활용해 진정하라는 식의 조언을 할 수도(룰적으로는 판정에 보정을 준다거나 그런 식) 있지만 반대로 아버지의 원수가 "네 녀석 덕에 느그 애비가 저기 나그란드 치킨 마냥 참 바삭하게 타들어가던 게 아직도 기억나는구나" 뭐 그런 수준의 패드립을 치면서(룰적으로는 판정을 시켜서)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시켜 날뛰면서 동료들과 세운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게 할 수도 있음. 물론 여기까지의 진행은 어느 쪽이든 사실 마스터가 생각해 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흘러갈 거고.


그러고 나면 뒷수습 등을 하면서 이야기가 다이나믹하게 진행될 거고.... 나름 재미있을 거임. 또한 이렇게 터뜨려보는 방식의 특징 중 하나는 이렇게 상황이 터지고 나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그 PC의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지 플레이어 본인 포함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임. 물론 이런 건 이야기가 길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끝나고 피드백 시간에 이야기 하도록 하는 게 좋을 거임.


3줄 요약

PC의 '캐릭터성'은 반드시 보존되어야하는 보물 같은 것은 아님.

다만 여기에 손대려면 그 PC의 플레이어를 납득시킬 필요가 있음.

자신 없으면 그냥 손을 대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도 한 방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