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던월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첫 플레이를 굳이 따지자면 2년전 실친 2명 불러서 한 크툴루지만, 그 해에는 누메네라까지 해서 세션 3판 하고 접었다. 그 해가 쿠팡댄디 붐이 일었던 해였다. 나도 쿠팡댄디를 샀다. 그러나 정작 플은 하지 못하고 삼신기는 팔아버렸다.

사실 나는 쨍쟁이가 목표였다. 특히 체인질링 더 로스트가 하고 싶은 신쨍쟁이. 물론 부산에서 쨍을 굴리기는 무리였고 인터넷 구인도 할 줄 몰랐다. 그 무렵 어칼을 펀딩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빅토리아풍 고딕펑크. 나는 그 룰을 보자마자 매료된 채 한정판을 질렀다. 그러나 '인터넷 약속을 한다'는 개념이 생소했던 나로서는 어칼 한정판을 질렀다.

팝니다. 어칼 한정판, 사용한 적 없음. 판매글을 올린 건 일주일 뒤였다.

알라딘을 자주 쓰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새끼들은 중고 존나 양심없이 후려친다. 나는 어칼을 사는 족족 알라딘에 갖다바쳤고 아, 내가 이 룰 굴릴 일은 없겠지, 아, 그래도 소설 참고용으로, 아, 언젠간 굴려보자.

내 어칼은 지금이 아마 다섯 권째다.



TRPG를 하겠다고 시도한 건 영화비평가가 되겠다고 생지랄을 하던 찰나였다. 그땐 이미 어칼은 들고 있었다. '기이한 호러영화의 미학'이니 뭐니 같은 걸 조사해보겠다고 러브크래프티안이 되기로 선언하고는 크툴루의 부름을 샀다. 하는 김에 댄디도 구했다. 누군가가 판델버를 구인해준 덕에 지금도 열심히 댄디를 하고 있다.

어칼 마스터링도 댄디 플 시작에 힘입어 시작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어줍잖은 면접 수준과 자캐딸이 플을 망쳤을 줄은. 세션 2까지는 내가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문제의 세션 3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문제였다. 시나리오대로 움직인 게 문제였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레일로드 시나리오. 어칼에서는 피해야 할 그것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씹새끼는 탈주했고 푸념하고 있으니 죽창이 날아왔다. 아 시발 근데 2년만의 첫 마스터링인데 못할수도있지 십새가. 나중에 역죽창 날리긴 했지만, 그 새끼가 한 말 지금와서 말하자면 다 맞는 말이다. 그 새끼가 닉까고 직빵으로 날렸으면 난 그 자리에서 울었을 거다.



씨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새끼 프사가 아스톨포일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했다. 알아봤어야 했다.



그럼에도 인정해야할 것은, 전적으로 내 마스터링 실패로 일어난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 불러놓고 4시간동안 장면 하나 안 준 건 내 탓이 맞다. 그 새끼가 탈주한 후 곧이어 한 사람이 자기도 하겠다고 말했다.

'좀 자유로운 분위기를 원했는데 생각보다 제약이 많은 룰인 것 같아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구인 되면 나갈게요.'

그때 나는 밖에 있었다. 밖에서 패닉에 빠졌다.




'근데 혼자 고민은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팀원분들과 상의하는 게 어때요?'

솔직히 병 주고 약 준다는 느낌이었다.



긴급소집이 열렸고 일단 팀원들에게 대가리박고 사과했다. 일단 그 새끼 빈자리는 팀원 지인 찬스로 빠르게 소집이 된 상태. 만약 보이스가 아니라 TR이었다면 울었을 것이다. 그 주 플레이는 쉬기로 했다.

일주일 뒤 세션을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는 방향으로 전환했고 이번엔 플레이어에게 모든 걸 맡겼다.

내가 한 일은 추임새가 다였다. 그거 멋진데요. 그거 룰북에 있어요. 그거 ㅇㅇ에서 봤는데 될걸요.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건 플레이어들이 제일 잘 알기 마련이다. 나는 회의에서 들린 것들을 주워먹고 RP가 시들해졌을때 쯤 뱉었다.

세션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마스터링은 자신을 비워나고 그 자리에 플레이어들을 채워넣는 과정임을.

지금은 나가기로 했던 팀원도 즐기고 있고.(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충격요법을 주려던 게 아니었을까?) 아직 마스터링 4주차 배울 게 너무 많다. 내일은 13시대 세션 제로가 잡혔다.


단순히 플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면 플레이어에서 만족하거나 적당히 마스터링을 즐기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굳이 마스터링에 정진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나는 4주차밖에 안되는(실제로는 더 걸렸지만) 세션 속에서 혼자 고민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배웠으며, 자신을 굽히는 법을 배웠다.

마스터가 하고 싶은 것은 그 모든 걸 새롭게 겪으며 스스로 성장하는 게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