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토론하자는 글을 보니 갑자기 심술보가 도져서 토론은 안 해 주고 뻘글을 쓰기로 했음. 물론 이해해 주지 않아도 괜찮음 ^^ㅋ


마스터는 왜 필요한가

우리의 친구 위키... 물론 꺼라위키 말고 위키피디아를 보면 대충 각이 나옴.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위키피디아의 게임마스터 항목에는 마스터의 네 가지 역할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보면 마스터가 왜 필요한 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음. 대충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창작자(Author) - 플레이 내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과 배경을 만드는 역할

연출자(Director) - 플레이어들의 선언에 따라 플레이가 변하는 것을 처리하는 역할

레프리(Referee) - 플레이 도중에 규칙에 따라서 판정을 하고 해석을 내리는 역할

매니저(Manager) - 사람 모아서 플을 돌리고 그러는 '플레이 외적 요소' 담당 역할


간단히 말해서, 마스터는 이 네 가지 역할을 하며.... 굳이 아무도 이 역할을 안 해도 된다면 굳이 마스터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음. 그리고 단편 위주의 플레이 기준으로라면 나는 저 넷 중에서 레프리의 역할이 마스터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할 거라고 생각함.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 없으니 매니저 역할의 중요도는 그냥 '처음 구인할 사람 1'이 되고, 창작과 연출은 룰북 / 시나리오 등에 나오는 거 보고 잘 따라가거나, 플레이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상상력을 발휘하면 커버가 되기는 되잖아? 특히 마스터가 없는 룰의 경우 둘 중 어느 쪽이든 한 쪽은 대개 지원한다고(물론 대충 세팅만 던져주고 치우면 '플레이어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쪽'이 되니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아도 좋음) 보면 될 거임. 물론 장편 플레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저 중 매니저 역할이 비중이 상당히 올라가서.... 아마 일반적으로는 저 네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긴 함. 아는 분은 항상 매니저로서의 팀 운영을 항상 가장 중요하게 보시던데.... 나도 거기에 대체로 공감하는 편임.


레프리로서의 마스터

TRPG는 플레이어들의 선언과 판정,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진행 방식상 플레이 도중에 특이한 선언을 매개로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도' 솔직히 할 말은 없음.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 플레이어들을 중재하면서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고, 가장 쉽고 편한 것이 그냥 그런 역할을 할 플레이어를 하나 마스터로 정하는 거임. 그래서 옛날 옛적에.... 그리고 지금도 일부 OSR에서는 이 역할에 초점을 두고서 그런 건지 마스터가 아니라 레프리(Referee)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그럼. 바꿔 말해서, 플레이어들끼리 알아서 상황을 통제할 수단만 충분하다면 이 이유로 마스터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것임. TRPG가 아니기는 한데 이런 방식으로 진화한 대표적인 사례가 보드게임 광기의 저택(Mansions of Madness) 되겠다. 원래 이 룰은 1판 시절에는 플레이어 하나가 게임 마스터 역할을 맡아서 나머지 다 X되봐라....까진 아니어도 TRPG의 마스터처럼 진행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2판에서는 룰을 간략하고 그냥 앱 실행시켜서 나오는 거 보고 그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꿨거든. 물론 TRPG 쪽에서도 이렇게 레프리로서의 마스터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음. 일단 두 가지 방법을 들어보자면 하나는 피아스코, 폴라리스 등의 룰에서 사용하는 그냥 '혼돈을 지향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을 꽉 짜놓는' 방법이 되겠다. 우선 혼돈을 지향하는 쪽부터 설명해 보자면....


'혼돈을 지향하는' 룰들은 대체로 단편 중심적이며, 예상 외의 선언을 통해서 개판 오분 전이 되는 상황을 넘어 개판이 벌어지는 상황 자체를 염두에 두고 진행하도록 짜여진 방식임. 예를 들어서 폴라리스 같은 경우 시작부터 PC들은 결국 언젠가는 타락하든가 죽어서 개X망하는 걸 전제로 삼은 상태의 룰이고, 마법의 말인 "그러나 그러려면" 등을 사용해서 정말로 그런 막장스러운 이야기를 만들게 됨. 좀 더 인지도가 높을 피아스코 역시 자기 캐릭터의 장면을 만드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내 마음에 드는 색" 주사위를 주거나 그러면서 서로의 PC의 이야기를 막장으로 만들 수 있는 구조임. 그러니까 이 룰들은 애시당초 룰 자체에서 '플레이어가 예상하지 못한 /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져도 딱히 상관 없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 방식을 좀 막장스럽게... 혹은 죠죠스럽게 말하자면 "내일 죽는다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각오가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라든가 "각오한 자는 행복하다는 거다!" 같은 이야기가 되겠다. 문장은 맞지만 내용은 좀 다른가? 뭐 상관은 없음. 물론 모두가 개막장 상황만 뻥뻥 터지는데 장단 맞춰서 계속 하하호호 해주는 것은 아니므로(솔직히 내 PC가 갑자기 식인이나 강간 기타 등등의 '많이 일반적이지 않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남이 선언하면 그거 듣고 좋다고 한다고 낄낄댈 놈들이 턀갤 바깥에 몇이나 될지 모르겠음) 내 PC의 통제권을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상황이나 아니면 다른 플레이어의 영 좋지 않은 제안에 대한 거부권 같은 메카닉이 존재하긴 해. 어쨌거나 나름대로 상식과 원칙을 가진 레프리의 진행 같은 것이 없이 그냥 혼파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도 괜찮다는 식으로 가는 룰들이라고 보면 됨.


이와 반대로 상황을 꽉 짜놓는 쪽은.... 솔로 플레이 쪽, 특히 아예 다인이 마스터 없이 진행하는 룰보다 그냥 기존의 룰로 마스터 없이 솔로 플레이 하라고 나오는 솔리테어(Solitaire) 시나리오 같은 물건 쪽에서 좀 많이 보이는데, 아예 배경이 되는 환경을 적당히 틀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다른 길로 샐 선택지를 아예 주지 않는 거임. 그러니까 이런 식이면 대개 게임북이나 보드게임, 어쩌면 비주얼 노벨에 가까운 식으로 적당히 선택지를 골라가며 진행을 하게 됨. 이런 경우 아주 완전히 답정너가 일직선까진 아니어도, 애시당초 진행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선택지는 몇 개로 정해져 있고 너는 그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는 식으로 흘러 감. 다른 선택지는 별 의미가 없는 환경이고. 개인적으로는 트위터 등에서 흥하는 타이만 시나리오 같은 것들, 특히 아예 모르는 천장에서 시작한다거나 하면서 마스터 / 키퍼를 이미 상황이 꽉 짜여진 시나리오를 돌려주면 되는 변사 같은 포지션에 놓는 시나리오들도 이 범주에 넣어야 하지 않나 싶음. 트루 엔딩이니 굿 엔딩이니 뭐 그런 식으로 엔딩을 분류해 놓는 그런 거 말이야 그런 거.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함.


마스터는 필요하긴 한가

그렇지. 대부분 필요한 상황이 여전히 존재함. 이제 단편플 위주의 환경에서는 그렇게 티가 안 나는 것 같은데.... 팀을 짜서 플레이를 좀 길게 해 보면 위의 마스터의 네 가지 역할 중에서 매니저로서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고, 그건 위의 세 역할과 달리 누군가 책임지고 총대를 매는 사람이 아예 없으면 정말 곤란할 거거든.... 모두가 항상 같은 일정에 딱 맞춰준다는 보장도 없고, 도중에 그만두고 싶어하는 사람도 나올 수 있고 뭐 그렇잖아? 그리고 이 역할에 대해서는 룰북이라고 다른 역할들만큼 잘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기도 하고 ㅋㅋㅋㅋ 물론 매니저로서의 역할 말고 다른 문제도 있으니.... 레프리로서의 역할도 솔직히 장기 플레이를 하다보면 룰이나 시나리오에서 위에 제시한 방법 두 가지로 땜빵해 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 룰에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제시해 줘서 마스터 없이도 룰이 돌아가게 만들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러려는 노력을 하는 거보다 '그러니 오늘부터 네가 마스터다'라고 책에 적어서 파는 게 더 편하잖아? 결국 그러니 대부분의 룰들이 마스터링 하는 요령 알려주고 '오늘부터 네가 마스터다' 하는 거임.


3줄 요약

TRPG를 하려면 마스터가 할 일이 이것저것 있음.

그것들을 대신할 수단이 있으면 마스터 없어도 됨.

근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으니까 그냥 마스터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