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는 애시당초 시작 자체가 펄프픽션물, 그러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라노베급의 물건으로 시작한 서브컬쳐물이 맞음.

다만 현재의 "서브컬쳐"에 대해 걸러야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는 대개 거기서 사용되는 "크툴루 신화"는 본질적으로 원판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임. 크툴루 신화의 원판은 뭐냐... "우리가 알기는 커녕 제대로 맞서기도 힘든 존재들이 세계 곳곳에 있고, 또 그 너머를 보면 인류는 사실 우주적 관점에서는 개미에 불과한데 가끔씩 돋보기를 들고 그 개미를 불태워 죽이고 싶어하는 놈들이 있다"는 내용으로 출발한 물건임. 그렇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는 대개 인간이 그레이트 올드 원과 "직접" 맞대면하는 상황 자체가 별로 나오지 않음. 끽해야 증기선이고, 아니면 랜돌프 카터 정도? 나머지는 간접적으로 접하는 쪽에 가까움. 


그런데 이게 시간이 흘러갈수록 재미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나오니까 후대 놈들이 저걸 갖고 좀 더 팔아먹으려고 생각해 낸 게 모험물 계열의 전개임. 호러물도 요새는 적당히 살인마에게 저항하는 사람도 나오고, 어차피 러브크래프트도 그런 거 아예 안 쓴 건 아니잖아? 그러면서 보스몹이 그냥 고생하지만 이길 수 있는 외계의 존재 정도로 끝나면 좀 심심하니까 서서히 스케일도 키우고 그레이트 올드 원의 그림자도 슬쩍 드리우는 그런 전개로 가는데, 이건 다 양놈들이 먼저 써먹기 시작한 클리셰임. 대표적인 예가 브라이엄 럼리의 타이터스 크로우(Titus Crow) 시리즈인데, 애시당초 주인공 디자인 자체가 크툴루 신화 세계관의 "아브라함 반 헬싱" 정도로 나왔었음.


물론 럼리도 무시하긴 좀 뭣한 후대 작가 중 하나라서, 저런 작품들 속에서도 크토니안이라든가 뭐 이것저것 지금도 써 먹히는 크툴루 신화의 존재들을 창조해 냄. 그런 식으로 후대 작가들이 "어느 정도 인간도 죽창질을 시도해 본다"는 전개로 살을 붙여나간데다가 80년대 이후로는 원전의 꿈도 희망도 별로 없는 전개와 모험물에 적당히 한 발씩 걸친 CoC RPG가 또 이러한 방식으로 크툴루 신화 세계관에 이것저것 슬쩍슬쩍 덧붙여대기 시작했고, 예를 들어서 니알랏토텝의 아바타 중에 몇몇은 RPG 출신임. 근데 이게 싫다고 그냥 크툴루 신화라는 세계관 자체에 쟤들이 덧붙인 걸 모조리 부정하기도 좀 묘하니 일단 "인간 < 외계 존재 <<<<<< 그레이트 올드 원"의 기본 구도에서 인간이 손가락을 무는 개미마냥 발악한다는 전개로 적당히 가면 크툴루 신화라고 용납은 되는 듯. 예를 들어서 럼리가 만든 크토니안은 써먹지만 윌머스 재단은 대부분이 안 써먹는 것처럼. 그러면 잽스가 만든 물건들은 왜 불만을 낳냐... 적당히 모에선을 쬐는 동시에 저 기본 구도를 대놓고 묻어버리거나 물말아먹고, 게다가 일본 서브컬쳐물이다 보니 씹덕들 입장에서 어느 정도 접근성이 보장되기 때문임.


3줄 요약

원래 크툴루 신화는 라노베와 별 차이가 없는데 대신 크게 본다면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가 필수다.

틀딱들은 자기들이 봤을 때 단기적으론 몰라도 "크게 봐서도" 꿈도 희망도 없는 원판 전개와 안 맞으면 거르고 싶어한다.

씹덕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CoC RPG 잡설 : 구판에서는 헨리 아미티지가 랜돌프 카터보다 크툴루 신화 지수가 더 높았다. 아마 랜돌프 카터가 낮게 책정된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