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뻘글은 전투 인카운터의 난이도에 관한 이야기. 얌전히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마스터들에게는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전투 인카운터의 난이도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는 기본적으로는 지금 하는 룰이 대체로 어떤 수준의 인카운터를 지향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봄. 예를 들어서 D&D 계열의 룰이라면 적당한 난이도를 갖추고 플레이어들이 나름 노오력을 해야 하는 수준의 인카운터가 적합하다면, CoC 같은 룰은 잘못 걸리면 뚝배기가 깨질 각오를 해야 하는 인카운터가 나와도 상관없을 거고, AWE 계열이라면 인카운터의 난이도를 두고 고민하기보다는 사실 인카운터가 끝난 이후에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나갈 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할 거임. 요약하자면 일단 무슨 룰을 어떻게 할 거냐에 따라서 이것 또한 달라진다는 이야기임.
CR(Challenge Rating, 대충 이 몬스터는 이만큼 세다는 지표임)이 있는 룰(이라고 쓰고 쩜오와 그 후예들이라고 읽으면 됨. CR도 쩜오에서 나온 거거든요~)이라면 상대적으로 난이도 조절이 쉬움(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냥 파티원들 레벨 보고 몬스터들 CR을 참조해서 원하는 난이도에 맞춰서 적당히 구성해 들이대면 됨. 물론 이거도 완전하지는 않아서 크게 나오는 문제는 "이놈 왜 대체 CR이 이따위임?" 하는 놈이 간혹 있는 거 하고.... 좀 더 보편적인 걸로는 "뭐지 이거 CR 딱 맞춰서 내니까 너무 약하네요(초보 마스터)"라든가 "뭐가 너무해요 그냥 데들리 난이도인데(냉혹한 고인물)" 정도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들 수 있음. 이런 갭은 결국 마스터 자신의 경험 내지는 다른 데서의 조언 참조를 통해서 메워야 함. 왜 단순히 외부의 조언만 참조해서는 안 되냐면, 분명히 적절한 자원 사용과 전술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쉽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카운터라도 너네 팀 PC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별로 없기 때문임.... 간단한 예로 PC들이 따로따로 행동한 덕에 몹들이 먼저 "Geek the Mage"를 실천하게 되는 그런 꼬라지를 생각하면 됨. 쉽게 말해서 플레이어들의 능지 또한 전투 난이도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일 수 있기 때문에, 마스터는 그에 대한 경험적인 고려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임.
한편 아예 그런 인카운터 난이도 기준을 국 끓여먹고 생략하는 룰들도 있는데, 당연히 이런 룰들을 하면 CR이라는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참고는 할 만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D&D 계열에 비해서 마스터가 좀 더 인카운터 난이도에 대해 고민해야 할 상황이 많이 나옴. 그런데 사실 이것도 '어떤 이유로' 이 룰이 그러려 드냐에 따라 또 다름. 일단 한국에서 아마도 가장 흥하고 있을 룰이며 호러 RPG인(아무튼 호러 맞음)인 CoC를 보자.... 호러는 단순히 위협에 대한 상상력만 갖고 호러물이 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위협이 첨부됨으로서 완성될 수 있는 거임. 그러기에 호러 RPG의 인카운터는 무예 17반에 능한 캠프장의 수호자 제이슨 씨 같이 '정상적으로는 뭘 어찌할 수 없는 수준'으로 등장해도 괜찮은 것임. 당연히 이러면 전투 난이도는 말도 안 되도 괜찮겠지?
물론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듯이, 이런 룰을 하더라도 전투 난이도를 적당히 설정해 주려고 할 수는 있음. 근데 이러려면 추가적인 문제가 생기는 게, 이런 룰들은 대개 시나리오 내에서 제시하는 기준들 자체도 사실 난이도가 나름 높은 쪽이라는 거임. 간단한 예로, 구판 CoC 룰북에는 미-고 일곱 마리가 나오는 시나리오가 있었음. 그나마 다행히도 세 마리 / 네 마리
식으로 나뉘어서 행동했는데... 그러면 3~4명 정도의 탐사자들+개 한 마리를 보내면 어떻게 됐을까? 사실 미-고가 개에
약하고 그런 건 다 왜국놈들의 철저한 프로파간다기 때문에(실상은 사람이 경찰견에 물리면 죽는다는 수준임) 탐사자들 개개인이 총기로
무장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면 미-고 3마리한테 몰살당해도 할 말이 없었음. 그래서 상용 시나리오라도 이 시나리오를 돌리기 전에 "키퍼는 장난으로 낸 몹에게 탐사자는 진지하게 죽는다"는 것을 키퍼가 확실히 인식하고, 그에 맞춰서 "진행 도중의 인카운터"는 대개 탐사자가 적당히 살아남을 정도로 난이도를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던 물건이 꽤 많았음. 가장 심각한 건 "던전 까기" 스타일의 시나리오인데, 이건 그런 스타일로 내는 것 자체로 까이던 물건이었고... 지금도 대부분 추천되지 않음. 그러면 어떻게 이런 룰에서는 전투 난이도를 조절하냐.... 개인적으로는 인카운터를 조율할 때 "이 새퀴는 탐사자를 최소 몇 방으로 죽이거나 리타이어시킬 수 있는가" / "얘가 한 턴에 입힐 수 있는 최대 피해는 얼마인가" 등 주로 신화생물의 공격력을 기준으로 인카운터 난이도를 어떻게 다룰 지 결정해 왔음. 만약 탐사자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녀석을 내고 싶을 때는 미리 모습을 멀리서 보여준다거나 해서 깝치면 X된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킨 다음 / 혹은 탐사자들이 그런 놈도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은 이후에 / 혹은 그냥 도망가서 시나리오를 끝내도 상관없을 때 내고. 그럼 전투 난이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 국내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다른 룰들은 또 어떨까?
OSR 쪽은 온갖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니 전투 난이도 맞춰주고 그런 건 없어도 된다는 고전적 관점을 고수함. 그래서 랜덤 인카운터 표 같은 거도 꽤 선호됨. 그럼 호빗 새퀴가 용하고 일대일로 마주치고 뭐 그런 상황이 나와도 괜찮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겠지만, OSR에서는 그래도 괜찮다는 입장임. 그럼 그럴 경우 불쌍한 호빗은 바로 죽어야 하냐... 꼭 그런 건 아님. 대신 OSR에서는 PC들이 몸을 비틀며 머리를 짜내서 답이 없어 보이는 전투 인카운터를 어떻게 회피하냐 / 어떻게 난이도를 최대한 낮추고 유리한 상황에서 싸울 준비를 하냐 같은 식으로 "난이도 조절"이 진행됨. 물론 적당히 전투 난이도를 미리 맞춰 줄 수도 있긴 한데, 그런 건 정말 적당히 싸워서 대놓고 이기라고 내는 거고, 물론 그렇게 할 경우에는 마스터가 나름대로 손을 보거나 그럼. 이럴 때의 기준은 대개 HD(Hit Dice, 체력 주사위) 같은 게 되겠다.
좀 더 특이한 걸로는 AWE쪽을 들 수 있는데, 이쪽은 "이야기는 어쨌든 계속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전투 인카운터 또한 위의 D&D 같은 데서 취급하는 것만큼 '중요한 무엇인가' 같은 게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이 포인트가 됨. 예를 들어서 전투가 벌어져서 PC들이 지더라도 적들은 PC들을 죽이기보다는 자기들의 목표였던 NPC를 내놓으라고 한 뒤에 걔를 바닥에 강제로 눕혀놓고 골프채로 실컷 머리에 풀스윙을 한 다음 돌아간다거나 혹은 PC들을 노예로 삼으려고 끌고 가고(물론 도중에 탈출한 기회가 생길 거고) 그럴 수 있는 거임. 그런 식으로 이야기만 이어 나갈 수 있으면 별 상관이 없다는(적어도 MC /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식으로 접근하는 룰이니까 딱히 전투 난이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은 거임. 그래서 원래 AWE에는 이런 관점의 연장선으로 '죽은 PC'도 나중에 어딘가 병신이 되는 식의 '큰 변화'를 겪고 돌아올 수 있는 룰이 있는 거고.
3줄 요약
전투 인카운터의 난이도 조율은 그 룰에서의 전투의 위치에도 영향을 받음.
D&D, 특히 2000년대 이후의 D&D 계열 룰의 경우 난이도에 나름 신경 씀.
근데 장르에 따라서는 그런 거 신경을 룰북에서는 별로 안 써줄 수도 있음.
만물쩜오설은 진짜야!
CR 도입한 D&D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전투 난이도는 사이언스가 아니라 아트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림
확실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트여야지. 그리고 그러기에 마스터의 짬 영향을 받는 부분이 아닐까 ^^
개새끼 존나 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