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씹덕을 싫어하지 않는다. 걍 눈 크고 이유 없이 헐벗은 2D 여성 캐릭터를 물고 빠는 것에 어떠한 해악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난 너드도 싫어하지 않는다. 가상의, 혹은 실재하는 것을 두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에 분기탱천하며 사흘 내내 밤을 새워 키배를 뜨는 것에 어떠한 해악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들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타인과 교류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찾고자 한다면, 서브컬쳐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보다 이 씹덕-너드들 사이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난 사회성이 부족한 일반인과 엮이기 싫어하는 만큼 사회성이 부족한 씹덕과 사회성이 부족한 너드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
먼 옛날의 일이다. 소위 씹덕 세션이라는 것을 열었다. 캐릭터 토큰은 2D 캐릭터로 한정되었으며, 전개 또한 왕도적인 마왕 퇴치물의 선형적인 구조를 따라갔던 평범한 씹덕 세션이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제시한 기준만 만족하면 뭘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 가져오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때도 그랬다. 플레이어들이 적당히 구해온 이미지와, 적당히 짜온 배경설정을 한번 훑어본 뒤 마음이 가는 부분을 엮어 시나리오 후크로 삼아 플레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Roll 20 토큰이라는게 멀리서 보면 다 그게 그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나는 그때 조금 더 상세하게 훑어보았어야 했다.
한 남성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제시하는 왕도적인 마왕 퇴치물의 궤도에서 자꾸 벗어나고자 했던 플레이어. 이상한 집착을 보였다. 마을 내에서 '왕따-깡패' 구도를 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줘팸당하고 삥을 뜯기는 '찐'과 하루가 멀다 하고 '찐'을 줘패고 삥을 뜯는 '일진'이 이 마을에 있냐고 자꾸 물어봤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날 준비했던 시나리오가 있고, 전체 플레이 일정을 봤을때 그날 어느정도 진도를 빼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진-찐들과 이야기를 푸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그날은 최소한 드워프들의 미스릴 광산까지는 반드시 진입해야 한다고 플레이어를 설득했다.
그 플레이어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TRPG는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플레이를 꾸려나간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납득했고, 다음 플레이에 내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다음 플레이 때, 나는 광산 속에서 살아가는 드워프 마을에서 '찐'과 '일진'을 내보냈다. '찐'은 드워프답지 않게 맷집이 후달렸고, 근력도 좀 딸리고, 센스도 없어서 무기와 장신구 제작에 서툰 불쌍한 드워프였다. 반대로 '일진'은 이 '찐'을 괴롭히는데 특화된 사악한 좆만이 급식 드워프였다.
나는 이 플레이어가 이 찐-일진 구도에서 뭘 할지 궁금했다. 그렇게 강력하게 요구했다면 그만큼 강력한 장면을 연출해줄 것이다, 하는 확신도 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동안, 이 플레이어는 '찐'을 안아준다는 선언을 했다.
나는 받아주었다. '일진'에게 줘팸당하는 '찐'의 마음을 달래주기엔 따뜻한 포옹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플레이어는 이 '찐'이 눈물을 흘리냐고 물어봤다.
나는 흘린다고 말해주었다.
플레이어는 이 '찐'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선언을 했다.
나는 '찐'이 감동했다고 그의 선언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 플레이어는 이 작은 마을에 남겠다는 선언을 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플레이는 약 15회 정도의 중장편으로 기획되었고, 그날의 플레이는 겨우 두번째 플레이였으니까.
플레이어는 이 '찐'이 '일진'을 줘팰 수 있을 때까지 이 '찐'에게 무술, 근력운동, 용기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다 좋은데, 그럼 이 '찐'을 그냥 데리고 가면 어떠냐고 말했다. 마을에 남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파티 탈퇴나 다름 없는 말이었으니까. '찐'을 짐꾼으로 쓰면서 천천히 경험치를 주면 몇 번의 플레이 후엔 대충 싸울 수 있는 하수인 비슷한 캐릭터가 될테니 말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거부했다. 자신이 그냥 '찐'을 데리고 이 마을을 빠져나가면, 이 '찐'은 결국 영원히 그 '일진'의 그림자 밑에서 평생 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베르세르크에 나온 대사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나는 그렇다면 지금 파티가 힘을 합쳐 그 '일진'을 줘팬 다음 '찐'이 막타를 치게 해주는 복수의 대행을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다시 제안을 했다. 이미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거부했다. 그것은 '찐'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막타를 치는 것이 '찐'의 트라우마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나는 그래서 플레이어가 마을에 남겠다고 했던 플레이어의 최초의 제안을 다시 꺼내들었고, 남은 파티원들이 광산 최심부까지 들어갔다 돌아올 때 같이 광산에서 나가자는 최후의 제안을 했다. 파티에서 1명이 빠지더라도 거기에 맞춰 인카운터 난이도를 조절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난색을 표했다. 자신이 '찐'을 훈육해서 '일진'과 1:1 대결을 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내가 연출해줘야 이 모든 일이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은 파티원(이들도 모두 캠페인 내에서 자신들만의 목표가 있었다)들의 목표와 파티 전체의 일치된 퀘스트를 전부 무시하면서 그 기괴한 찐-일진 구도를 보고 싶은 이유가 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때, 플레이어가 모두에게 고백을 해왔다. 자신은 예전에 이런 '찐-일진' 구도에서 '찐'이었다는 파격적인 고백이었다.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나도 학교 폭력의 희생자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 게임 속에서나마 이 '찐-일진' 구도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고통을 게임을 통해 해소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때 나는 이 플레이어의 토큰을 자세히 확대해서 보았다. 다른 이들의 캐릭터가 모범적인 2D 씹덕 포트레이트였다면, 이 플레이어의 토큰은 3D였다. 더 자세히 뜯어보니, 한 남성이 어떤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진의 얼굴 부분을 잘라온 이미지였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캐릭터 이미지가 본인이냐고.
플레이어는 긍정했다. 그는 이 게임 내에서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캐릭터가 아닌 '본인'으로 참가해, 가상으로나마 '찐'을 구원하며 스스로도 구원받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동병상련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 플레이를 정신과 테라피로 사용하려는 그를 용서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짧게 이런저런 말을 한뒤 주저없이 추방했다. 하지만 이미 씹창난 팀의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일단 그날의 플레이는 접었지만, 뭔가 씹창난 분위기는 해소되지 않았고 그대로 플레이는 터졌다.
나는 한동안 그 친구, 그러니까 TRPG 플레이를 정신과 테라피로 써먹으려던 그 친구의 행적을 좀 찾아보았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들이 내 이전에도 있었고, 내 플레이를 터뜨린 후에도 다른 여러 팀에 지원서를 넣으며 빠른 속도로 팀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슬펐다. 그에게 가해진 폭력이 슬펐고, 그 경험을 극복하지 못하는 그의 현 상황이 슬펐고, 고작 이따위 취미에서 트라우마를 치유하겠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있는 그의 좆병신같음도 너무나 슬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는 구회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글을 삭제했고, 뒤이어 아이디까지 사라져버렸다.
나는 부디 그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과거를 세탁하고자 그런 일을 했기를 바란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그런 웃기고 슬픈 짓을 한 자신을 떠나보내고자 그런 짓을 했기를 바란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그의 캐릭터는 아직도 그 광산에서 '찐'을 강하게 키우고 있을까? 그 '찐'은 결국 '일진'을 이겨내고 트라우마를 치유했을까? 그 플레이어는 자신의 그 고통스러운 과거와 화해했을까?
슬픈 일이다.
턀갤문학 ㅠㅠㅠㅜ
안타깝긴 한데 방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네ㅠ 고생했다
글쓴애도 멘탈 다잡고 쓰는게 용하네
취미 즐기러 와서 저딴 꼬라지 봤을 다른 팀원들 생각하면 불쌍하지도 않다
지가마스터링해서저런스토릴하든가
TRPG는 정신병 치료수단이 아니야~~~
좆같은새끼네
찐이었던 이유가 드러나네
비슷한 놈 받아봄... 너무 열정적이더니 저런거 요구하더라
coc 단편플에서 만났던 사람이 떠오른다
사이코드라마는 병원에 가서 하는 건데
이래서 정신과 진료 보험 확대가 필요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