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개월 동안 페퍼 드 펠리페트로였다. 그녀의 슬픔을 공유하였고, 그녀의 갈망을 느꼈다. 그녀가 배운 새로운 것들에 환희했다. 그녀는 내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생각하고 말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고 했다.


 


그녀는 결국 자유로워지겠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었으나, 그것 외의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부모, 친척. 그리고 삶의 모든 것들이 그녀를 밀어낼 때,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것이다.


 


이 에필로그는 나 자신과 그녀의 이별을 인정하는 선언문이며, 동시에 그녀를 이해하고 가슴에 품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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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잔째 커피를 마셨다. 가게 중심에 자란 나무를 이용해 목가적인 분위기를 내는 복층 카페는, 아침을 갓 벗어난 시간이면 늘 그렇듯이 한적했다.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된 시간은 아직 30분 정도 남았지만, 괜히 불안해져 카페가 오픈하자마자 도착한 것은 물론, 준비한 원고를 벌써 열 번은 더 읽었다. 마지막으로 손바닥만한 구식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아, 아." 성인 남성의 목소리가 녹음기에 들어가고는 굉장히 큰 소리로 메아리쳤다. 아뿔싸, 볼륨을 너무 올렸던 것이다. 로스팅 기계를 이리저리 만지던 직원이 깜짝 놀라 이 곳을 쳐다보기에, 괜히 겸연쩍어져 2층 외부 테라스로 발을 옮겼다. 갈색 우산살이 달린 살구색 파라솔이 나무 책상 위에 놓여서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고 있었다. 나는 빈 컵들을 내려놓고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긴장한 적이 얼마나 되었던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이 일에 숙련되지 못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긴장하지는 않았는데. 일이 일인 만큼 중요한 인터뷰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원고를 읽으려 했다.


 


그 때, 너무 긴장한 탓인지도 몰랐다.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내 손을 타고 원고를 감싸더니 곧장 바깥으로 데려가 버린 것이 아닌가. 서둘러 테라스 너머를 바라보자 하얀 종이들이 카페 앞 가로수 길로 흩날리고 있었다. 급히 내려가 원고를 회수할 생각에 의자에 걸어둔 외투를 챙겼지만 곧 나는 움직임을 멈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걸 믿지도 않았지만, 이걸로 더욱 확실해졌다. 저 끝에서 그녀가 보였다. 금빛으로 빛나는 말총머리는 조사했던-그녀의 기록이 통째로 말소되었던 탓에, 한 익명의 제보자에게 받을 수 있었다- 어릴 적 그림의 그것과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녀에게는 갑옷이 없었다. 최초의 세 자루라 불리던 명검도 차고 있지 않았다. 당찬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순진함을 맘껏 드러내던 그림 속의 그녀는 지금 한껏 수수해진 채, 나뭇잎으로 비치는 햇살 사이를 걸어오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그녀가 떨어진 종이를 주으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이쪽을 보더니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카페의 출입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리고, 곧장 테라스로 올라온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림으로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다른 신중한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변성기가 오지 않은 아이처럼 낭창하고 산뜻했으나, 어딘가 심지가 있었다. 갈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던 그녀는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얼마 안 가 내가 추가로 시킨 음료와 함께 나왔다.


 


"많이 기다리셨나 보네요."


 


자리에 놓인, 텅 비어있는 두 잔의 컵을 보고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뇨, 목이 탔을 뿐입니다. 아직 약속시간이 30분은 남았는데, 일찍 도착하셨네요."


"습관이 되어서요."


 


허둥지둥 빈 컵을 정리하고 자리에 돌아온 나는, 곧장 급하게 일어나느라 치웠던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검고 네모난 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는지 그녀의 표정이 잠깐 굳어져 보였다.




"케테르 지에이의 부정이 밝혀진 지금, 폭군에게 스러진 자들의 명예를 되찾을 취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퍼 드 펠리…."


"페퍼라고 불러주세요."


 


그녀가 말을 잘랐다.


 


"페퍼 님."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앞으로의 대화는 녹음 될 것이며, 제보자로서 당신은 익명으로 남기 힘들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익명을 지킬 것이라 맹세할 수 있습니다만…."


"잊혀진 사람들을 위해서니까요."


 


페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 녹음기의 버튼이 눌러지고, 녹음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경계하듯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카페에는 나와 당신을 제외하고는 종업원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종업원은 멀었으며, 내부에 있었기에 이야기가 새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걸 확인한 그녀는 결심하고서 나를 마주보았다.


 


"시작하죠."


 


그녀가 말했다.


 


"네. 좋습니다. 짧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페니라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그녀의 동공이 일순 확장되었다. 허나 그녀는 곧 숨을 들이쉬고, 평정을 유지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의절당했지만, 저는 이전 펠리페트로 가문의 장녀였습니다. 제 어머니는 유명했던 검사, 플로니 드 펠…."


 


그녀가 잠시 말을 끊었다.


 


"플로니 드 클레이본이십니다."




금발머리의 그녀, 페퍼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고 했었는지, 어떤 가문에 있던 사람인지. 실제로 존재하긴 했던 사람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였다. 허나 익명의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 그녀의 사전조사를 마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저 이름을 듣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유명한 마법가문에, 유명한 검사군요."


"페넌트의 세 명가라고들도 하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스페니라자의 검사였지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저는 그런 어머니를 동경했고, 지병을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릴 적 뵈었던 삼촌을 찾아, 정략혼도 거절한 채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노력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스페니라자가 반역에 얽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저 어리석게도 소용돌이에 뛰어들었지요. 어렸을 적의 이야기예요."


 


녹음기가 그것을 계속 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군요."


"어렸으니까요. 세상이 전부 제 것처럼만 보였고, 바라기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줄만 알았거든요. 그저 순진한 어린아이였으니까."


 


그녀의 눈앞에는 대륙을 넘나드는 정기선이 떠오르는 듯 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들려왔던 듯,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륙정기선을 타고 페넌트에서 세피로트로 떠날 적. 한 연금술사를 만났지요. 그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탄하게만 보였어요."


"인생의 대부분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죠."


 


내 말에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요. 그 사실을요."


 


그녀는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이 커피에 손을 가져다댔다. 가을바람은 어느새 커피의 온기를 빼앗아가, 딱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남은 열을 손으로 느끼며 한 모금 홀짝였다.


 


비록 질문 원고가 싹 날아가 버렸지만, 이미 몇 번이고 읽었던 종이다. 나는 그녀가 커피를 마시길 기다린 뒤 다음 질문을 꺼내었다.


 


"제보를 결심하신 주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속죄를 위해서예요."


"무엇에 대한?"


"살아남은 것에 대한 속죄요."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생각을 하듯 잠깐 눈을 감았다.


 


"제 삼촌은 클리오 드 클레이븐이에요. 늦게서야 알았지만, 스페니라자의 수장을 맡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형이 집행된다는 소식을. 나는 그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케테르 지에이의 부정이 밝혀져 혼란스러운 지금이, 스페니라자의 반역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킬 좋은 기회입니다. 편히 말씀해주시죠."


"제 삼촌, 클리오라 칭할게요. 스페니라자는 최근에 밝혀진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반대했던 집단이었어요."


 


그녀가 말하는 '프로젝트'는 케테르 왕실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선대의 지식을 전부 이어 받은 완벽한 후계자를 만드는 마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허나 그 마법은 사람을 희생해야 하는, 반인륜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그 때에는, 마법이 불완전하게 완성된 상태였으니. 삼촌의 입장에서 보자면 왕자를 희생하는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겠죠."


"왕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는 겁니까?"


"네. 그 마법을 실패한 사람은 살아있는 도서관이 되어, 정보밖에 말할 수 없는 폐인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클리오는 그에 저항했고. 그 대가가 반역으로 몰리는 거였죠."


"유감입니다."


"아직 일러요. 클리오는 스페니라자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고, 대표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어요."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완전한 남의 이야기를 꺼내는 듯, 방금 전의 떨림조차 잊은 목소리 로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이쪽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딱딱한 어투였다.


 


"즉, 스페니라자의 반역은 왕가를 방해하는 일을 막기 위해 꾸며진 것이란 말씀이십니까."


"네. 어쩌면, 실제로 방해했으니 반역이라고 부를 수도 있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무언가가 이상했지만, 딱 짚어낼 수가 없었다.


 


"…그 때의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허망했죠. 하지만 제가 하나의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던, 그런 기회였어요."


"기회라."


"기회요.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잖아요. 그렇죠?"


 


그녀는 오히려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슬펐을 것 같군요."


"네. 굉장히 슬펐어요.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게 전부에요."


"힘든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게 일이시잖아요. 저는 괜찮아요. 이해해요."


 


대화가 끊겼다. 그녀는 그 말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고, 여전히 무언가를 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의 전달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직관이지만, 저 이야기는 가림막일 뿐이다. 이대로 그냥 떠나기에는 뒷맛이 썼다.


 


"두려우신가요?"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 생각하던 그녀는 답했다.


 


"전 이제 두렵지 않아요. 행위를 그만두었으니, 더는 제게 닥칠 일은 없거든요. 제 칼은 두꺼운 천으로 잘 감싸서 빌린 방 깊숙한 곳에 보관했고, 허드렛일이지만 일도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났어요. 제게 더는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성급히 말을 꺼내었다.


 


"또, 양 팔이 잘린 채 처형당했던 제레라는 기사님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처음 세피로트의 어느 항구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만난 기사님이었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그녀는 제게 자신의 팔이 잘리고서도, 저를 비호하려고 했어요. 한 연금술사가 저를 데려간 탓에,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반역자였던 저를 비호한 죄로 본보기가 되어 모든 기사 앞에서 처형당했지요. 그들의 일족도, 전부 마찬가지로요. 하지만 그 연금술사 덕분에 저는 살아남았지요. 그분들이 제가 남긴 마지막 말씀도 살아남으라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이 편이 최선이었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강한 아이였군요."


"네?"


 


그녀는 눈에 띄도록 당황했다.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그토록 찾았던 삼촌에게 버림받고도, 유일하다고 할 만한 이해자를 잃어도, 그렇게 굳건히 버틸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예요?"


"그들을 구하고 싶었겠지요.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었잖아요,"


"이상한 소리 마세요.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이 덜컹거려, 내가 주문한 음료가 몇 방울 떨어졌다.


 


"계속 그런 말씀만을 하시겠다면 저는 이제 돌아가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다 끝냈으니까요."


 


날아간 원고는 더 기억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왠지 그랬다. 단순히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


 


"제 부모님도 스페니라자의 일원이었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요."


"그 분 또한, 반역의 죄를 물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구하지 못 한 것이 분했고,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 세상이 다 싫었습니다. 그분이 연상되는 모든 게 있다면 다 부숴버리고 싶었고, 실제로 그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야 겨우 저는 그 슬픔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 어쨌다는 건데요!"


"그 모든 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알아요."


"당신 탓이 아니라고요."


"안다고요. 제발. 그만 해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늦가을의 바람이 멈추었다. 녹음기에서 흐르는 작은 소음이, 둘을 가득 메운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저 그럴 뿐이었다. 한참이 지났다.


 


"제가 슬퍼해서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죠?"


 


한 줄기 눈물이 주욱, 볼을 타고 땅을 향해 흘러내렸다.


 


"왜 제게 그런 걸 묻는 건데요? 저는 아이에 불과했다고요. 그런 제가 슬퍼해서 세상이 바뀌나요? 제 눈물은 그 어디에도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다고 저를 그렇게 몰아세우는 거냐고요. 네? 전 이제 일어날 거예요. 여길 떠나서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고, 당신이 이걸 주제로 기사를 쓰든 쓰지 않든 절대 신경쓰지 않을 거라고요. 알겠어요? 인터뷰는 끝이에요. 저는 제 삶을 살아가야 해요. 저런 기억들에 묻혀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요."


"감정은 묻는다고 지워지지 않아요. 이렇게 되면 당신이 괴롭잖아요."


"저는 괴롭지 않아요. 전혀 괴롭지 않고,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아요. 절 그렇게 몰아세우지 마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요. 저는 전적으로 괜찮아요."


 


그녀가 거의 울부짖었다.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녀는 갈 길을 잃은 채 멈춰섰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 때문에 죽었어요. 삼촌도, 기사님도,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도요. 제가 제대로 제 할 일을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저는 무엇도 할 수 없었고 누구도 지켜낼 수 없었죠. 죽을 자리를 찾지도 못했어요. 저는 이것을 속죄해야만 해요. 차라리 당장이라도 죽고 싶어요. 왜 이렇게 된 거냐고요? 왜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왜. 왜? 왜!"


 


페퍼가 성질을 내며 말했다.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모르겠어요. 전 모르겠다고요. 이걸 왜 제가 알아야 하죠? 제 탓이 아니면 뭐가 변하나요? 전부 제 탓이라고요. 제가 그 자리에서 죽어야 했어요. 삼촌, 제레, 그리고 다른 모든 병사들, 제가 베어 죽인 기사. 그들을 대신해 죽었어야 했다고요. 그래야 했는데, 저는 용기가 없었어요. 저는 이렇게 되기보단,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어요. 가문에서 추방당한 것도 사실 제가 마법을 못 다루기 때문이었다고요."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때문인데요. 네? 정말 그게 전부예요? 제 탓이 아니면 다 끝이냐고요!"


 


페퍼가 울부짖었다.


 


"당신은 그저 사랑받고 싶은 거잖아요."


 


처음 보았던 그녀의 침착한 모습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듯이 땅에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그들의 명예를 되돌리려 오셨지 않았습니까."


 


나는 손수건을 건네었다. 그녀는 그 손수건을 보았다. 그녀는 잠시 갈등하더니, 손을 내밀어 손수건을 받았다.


 


"믿고 싶어요. 그 말을 믿고 싶은데, 도저히 용기가 안 나요. 모든 사람들이 저를 욕할 것 같아요. 배신자, 반역자. 살인자. 모든 딱지가 저한테 붙어 있는 것 같아요."


"믿어주세요. 당신을 아끼던 모든 사람이 했던 살아남으라고 했던 말은, 이런 식으로 살아남으라는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그럼, 무슨 뜻인데요."


"아마,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뜻일 겁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저는…."


 


나는 말을 끊었다.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요. 그 모든 건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고, 당신은 미성숙하고 어렸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할 수 있었어요. 제가 다 고칠 수 있는 문제였어요."


"가정은 그만하세요. 그런 생각은 공허합니다.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고, 자기 자신을 다시 찔러갈 뿐입니다. 질문하길 멈추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저는 그럼. 어떡해야 하죠? 제 판단을 따라 살아가야 하나요? 그 모두를 지키지 못했는데, 저를 믿어야 하나요?"


"믿어야 해요. 당신 자신부터 믿어야 해요. 죽은 사람들을 놓아주세요. 당신은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묻고 울었다. 점심 때가 가까워져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모이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울었다. 지금까지 참았던, 그들을 떠난 이후로 참았던 눈물을 다 쏟을 기세로 울었다.


 


한참 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퉁퉁 불어 볼썽사나웠지만, 자신은 개의치 않는 모양새였다.


 


"배가 고파졌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에 나는 대답했다.


 


"뒷 내용은 기사에 싣지 않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 읽을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곧장 카페를 나섰다. 사람들이 수근거리며 페퍼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마도 저대로 쭉 가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겠지. 그리고 쭈욱 살아갈 것이다. 검을 다시 쥘 수도 있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고, 사랑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진정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럼, 기사 쓰러 가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탁자에는 이제 무엇도 남지 않았다. 정오의 햇살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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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세션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