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크툴루 신화는 그 시대에 "있음직한" 배경을 바탕으로 "보통 일은 아닌" 사건을 일으키고, 최종적으로는 "사실 이건 신화생물의 음모다!"라는 전개를 펴는 세계관임. 그러다보니까 후대 작가들 입장에서는 일단 "있음직한" 배경을 만들어내는 게 필수다보니까 특정 시대의 세계관을 막 다루어도 상관 없다 싶으면 팍팍 다룸. 그런데 그 중에서 그나마 후대까지 잘 안 다루는 물건은 대략 기성 종교와 인종차별, 그리고 약을 많이 빨고 쓰는 1인칭 서술 방식 정도.
기성 종교
일단 러브크래프트 자체는 종교에 좀 많이 회의적인 사람이었고, 칸트의 윤리관을 부정하는 쪽... 그러니까 성악설에 좀 더 가까운 사상을 가진 양반이었음. 후대에는 그래서 아예 이 양반이 썼던 그쪽 에세이 같은 거 모아다 무신론 저서까지 튀어나옴. 그래서 일단 크툴루 신화에서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절대적인 유일신"의 존재는 "원칙적으로" 부정됨. 그러다보니까 기본적으로 세계관 자체가 기성 종교들하고는 잘 맞지 않다보니까 그냥 거의 엮지 않고, 대신에 비슷비슷한 "일부 이단"을 내세우거나 컬트 교단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종교를 섞어넣음. 아니면 신비의 땅 티베트같은 "비서구 문명권"의 종교를 들고 오게 됨. 근데 이건 뭐 추리소설의 원칙으로 "짱깨를 중요 인물로는 넣지 말 것"이란 조건이 붙던 시대의 이야기니 뭐... 그런 일부 이단의 예를 들자면 일단 러브크래프트 원전만 해도 아캄쪽에는 침례회 계열 교회가 마개조된 "별의 지혜 교회(Church of Starry Wisdom)"가 있었고, 컬트의 예를 들자면 인스머스에서는 "다곤의 비밀 교단"이 나왔었고, 아마 오늘도 어디선가 털리고 있을 월터 코빗도 시나리오 내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명상의 교회(Chapel of Contemplation)"라는 컬트의 일원이었음. 여담으로 크툴루 신화 연구가 중 한 명인 로버트 M. 프라이스는 본업이 종교학자인 기독교인으로, 크툴루 신화 연구가인 것보다 기독교 쪽에서 "역사상의 예수는 사실 여러 명을 짬뽕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다중 예수론"을 제안한 사람으로 더 유명할 거임.... 근데 이 아저씨도 내 기억으로는 크툴루 신화 소설 같은 데서는 딱히 야훼같은 거 언급 안 함.
인종차별
러브크래프트는 솔직히 인종차별주의자가 맞긴 한데 이 양반이 이것저것 열심히 쓰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그건 어떻게 본다면 "일반적인" 서구인의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음. 위에서 "짱깨를 중요 인물로는 넣지 말 것"이 나온 것도 1920년대고... 다만 이 양반은 그게 좀 심한 축이라서 대놓고 사악한 동양계 혼혈 종족 사교도들을 다루는데다 심심하면 악의 근원은 유색인종과 결탁하고 있는 전개를 내고, 소설이 아닌 데서는 좀 더 대놓고 아예 "앵글로색슨의 영토"라는 글까지 써 가면서 앵글로색슨 짱짱맨도 외쳐봤었고, 친파쇼 성향도 갖고 있었다보니까 딱히 변호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님. 다만 1890년대 / 1920년대를 좀 빡세게 다루고 싶다면 그런 요소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함. 아니면 아예 다 백인으로 채워넣던가. 물론 후대 배경으로 크툴루 신화를 다루는 작품들에서는 이런 요소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대개 무시되는데, 대신에 당시 시대상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음. 예를 들어서 쵸-쵸의 경우 1970년대를 다룰 때는 대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고 서술되고, 이후에는 아예 서구세계로 진출해서 다른 동양계 민족들처럼 그럭저럭 잘 지내는 척 하면서 몰래 인간을 잡아다 인육 요리를 해 먹는다거나..... 그런식으로 설정에 살이 붙어 나감. 여담으로, 이 부분도 후대 관점에서는 좀 골때리는 게 이 양반 연구가 중에 이 양반 전기를 써 준 S.T. 조시가 인도계임.
3줄 요약
배경을 있음직하게 꾸미는 게 크툴루 신화물의 미덕이다.
근데 기성 종교는 건들면 귀찮으니까 직접적으로는 잘 안 건드린다.
인종차별도 "실제 있긴 했지만" 역시 귀찮으니까 잘 안 건드린다.
+@ 작은 사회 or 닫힌 사회
닫힌 사회... 정도는 땅이 넓은 나라라면 마음 먹으면 충분히 건드릴 수 있는 소재긴 함. 일단 일본 추리물만 해도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는 배경 중 하나고. 물론 이건 크툴루 신화와는 관계없이 요코미조 세이시의 영향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