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갤이 뜨겁네요.
갑자기 디씨에서 웬 존댓말이냐고 하지만 지금 갤도 뜨겁고 저는 언제 죽창을 찔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또 활동 재개한 김에 좀 더 열심히 살고 싶어서 글 올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턀갤에 올라온 팁이 제가 이전에 읽어서 번역해 올렸던 글이라, (해석글에 대놓고 '너 루날이니?'하고 묻는 분도 계셨고)
지금 다시 그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어제 관련 화제에 대해 떠들면서 내렸던 개인적인 결론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일단, 해당 글의 링크입니다. ( https://cafe.네1이버.com/trpgdnd/86348 )
일단 사전지식으로 깔아둡시다. 이 글은 2010년 이전에 올라왔습니다. 그 때에는 아포칼립스 월드가 없었고, 국면 기반 진행을 하는 마스터가 거의 혹은 아예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알피지 경력이 매우 짧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해당 링크의 요지는, 플롯이 아니라 '상황'을 만들라는 것에 있습니다.
(1) PC들이 악당을 쫓는다. (안 그런다면?)
(2) PC들이 그들을 배로 쫓기로 결정한다. (만약 그들이 해안가를 달리거나 텔레포트를 쓴다면?)
(3) PC들이 난파선을 발견한다. (인지 체크가 실패하면?)
(4) PC들이 난파선에 올라탄다. (그냥 항해하기로 하면?)
(5) PC들이 생존자를 구한다. (실패한다면? 아니면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도망친다면?0
(6) PC들이 생존자에게 질문을 한다. (그들이 다친 사람을 압박하지 않기로 한다면?)
(7) PC들은 사원의 중심 성역으로 가야만 한다.
(8) PC들을 향한 암살 시도는 매우 특정한 방법으로 치러져야 한다.
이건 해당 글에 나온 예시입니다. 괄호 안은 플롯이 깨지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 글의 저자는 분명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플롯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는 거지요. 이건 플롯이 아닙니다. 스토리입니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 이론 입문 때문인지, 다들 왕이 죽었다를 예시로 들더군요. 그 예시를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죽었다. 여왕도 이어서 죽었다." - 스토리
"왕이 죽었다. '슬퍼서' 여왕도 죽었다." - 플롯
스토리는 시간 순서, 플롯은 인과관계로 다들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플롯의 인과관계는 시간적인 도식이 아니라, 우리의 심리 안에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영화 '블루 발렌타인'을 예로 들어봅시다. 안 보셨다구요? 어차피 망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를 적을 필요도 없어요. 그냥 여자랑 남자 둘이 사귀다 몇 년 지나서 싸우고 헤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뛰어난 감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품의 미장센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 영화의 플롯 배치에 있습니다.
'블루 발렌타인'의 플롯 배치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1-2-3-4-5-6-7-8-9-10 이라는 전개가 시간순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6부터 싸우기 시작한다고 칩시다.
블루 발렌타인은 6-1-7-2-8-3-9-4-10-5의 구조로 이어져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오가는 식이죠. 상식적으로 볼 때, 인과는 시간적인 도식을도 일어나므로, 이런 구조는 불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구조를 괄호로 묶어봅시다.
(6-1) - (7-2) - (8-3) - (9-4) - (10-5)
좀 그럴싸해졌군요. 앞의 숫자에서 싸우기 시작한 이후에 더해진 5를 빼봅시다.
(1-1) - (2-2) - (3-3) - (4-4) - (5-5) = 0
앞뒤의 숫자가 같아집니다. 게다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죠. =0은 그냥 간지나서 붙였습니다. 이를 일반적인 심리적 인과 도식에 가져다 붙이면 이와 같습니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 이것이 심리적 인과 도식입니다.
플롯은 늘 시간순이 아닙니다. 우리는 플롯에 따라 배치된 형태소들을 감상하고, 머릿속에서 인과 도식에 따라 재구성한 다음 그것을 시간순으로 배치해서 스토리로 정리합니다.
그렇게 해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망한 사랑 이야기인 블루 발렌타인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평평해집니다.
이런 구조를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가 있습니다. 왜 이걸 예시로 안들고 이상한 걸 가져왔냐구요? $#%#$팔 설명이 어려우니까요. 놀란은 메멘토 하나만으로 $#%@#$@나게 천재입니다.
자, 그럼 우리의 본론인 TTRPG의 플롯으로 돌아가봅시다.
위의 내용을 이해하신 분께서는 이제 Alexandrian이 제시한 저 예시가 플롯 기반이 아니라 사실 스토리를 짜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적 인과관계가 단단하고, 시간순으로 배치되어있죠. 이건 스토리 기반 스토리 진행... 말이 이상하군요. 그냥 스토리 진행입니다.
알렉산드리안이 말한 대로 이 전개는 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니라 떠들면서 TRPG를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TTRPG는 스토리를 만드는 게임입니다. 그러니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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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델버부터 시작해서 상용중인 대부분의 D&D 시나리오는 기반 데이터를 제시하되 전반적인 스토리 또한 제시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몇 권 안 훑어봤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어드벤처북에서의 스토리는 '소급된 스토리' 즉 '물리쳤다! 끝!' 이지 '어쩌구 저쩌구 해서 물리쳤다...' 가 아닐 겁니다. 그 과정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안은 이 기반을 '상황 기반 진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기반 다지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는 OSR을 사랑하므로 OSR 게임들을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OSR은 다양한 준비를 할 수 있지만, 준비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해외에서 1 페이지 던전이라는 것들을 사서 사용합니다.
진짜 1페이지짜리 던전입니다. 아이소매트릭 지도가 필요하다면 그려져 있고 그 안의 기믹들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스터는 그거 하나 사서 지도만 띄워놓으면 되며, 플레이어는 주의깊게 행동하고, 마스터는 주인공의 행동에 반응해 상황을 제시합니다. 그러면 플레이어가 대응하겠죠.
그 과정에서 일련의 피드백 효과가 일어납니다. 그 피드백을 단위로 정리하면 플롯,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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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설명 좀 더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이 1페이지 던전이 바로 '다져진 기반'입니다. 그 안에서는 알렉산드리안이 말한 '상황 요소'들이 모두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디에는 함정, 어디에는 비밀 벽이 있고 어디에는 괴물들이 있습니다.
이 1페이지 던전을 이용하는 마스터들은 장대한 스토리를 기획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던전 안의 지형지물을 이용할 뿐입니다. 미리 배치된 상황 요소들을 이용하는 거지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던전은 일자 진행이 아닌 이상 방이 여러개일 겁니다. 그런데 플레이어는 어느 방이든 인접하다면 먼저 갈 수 있습니다!
A에서 B로 가건, A에서 C로 가건 연결만 되어있다면 어떤 진행이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진행을 A-B-C로 일자적으로 고정시키려는 행위가 바로 알렉산드리안이 부정적인 예시로 제시했던 그 예시입니다.
기반이 있다는 것은 이런 일자적인 진행을 해체하고, 다양한 방으로 갈 수 있도록 한 방에 여러 개의 방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A 이후에 어떤 것이든 연결만 되어 있다면 따라나올 수 있습니다.
이 A, B, C 각각의 방이 하나의 사건이라면, A-C-B 혹은 A-B-C 이런 식으로 연결짓는 것이 TTRPG의 플롯입니다. 하지만 이 A에서 출발에서 던전 공략을 끝내는 (중간에 죽지만 않으면!) 것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스토리입니다.
이런 구조는 비디오 게임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바로 로그라이크 던전크롤링이나 메트로베니아, 혹은 록맨이 그렇습니다. 록맨이 제일 쉽군요. 록맨을 예시로 들어봅시다.
록맨은 8보스를 어느 순서든지 잡으면 최종보스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어떤 순서로 잡건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다만 약점 무기나 비밀 공략 무기 같은, 상황 요소가 있어 특정 진행이 편하도록 되어있기는 합니다.
이 '순서'가 플롯입니다. 스토리는 더 큰 단위입니다. '록맨은 8보스를 무찌르고 와일리도 무찔렀다 완전 강하다'가 록맨의 스토리입니다. 이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상황 요소, 기반, 플롯, 스토리입니다.
그럼, 개인적인 견해가 남았군요.
알렉산드리안이 주장한 진행방식은 사실 지금은 보편화된 것입니다. 미스터리 시스템으로 알려진 검슈, Trail of Cthulhu의 시나리오 또한 특정 장소/장면에서 특정 여러 상황 요소를 배치해놓았고, 다른 장소/장면으로 향하는 루트를 여러가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다다를, 충격적인,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끝부분에 배치해 놓습니다. 그래서 여러 과정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거스르지 못합니다.
2010년에 빈센트 베이커가 아포칼립스 월드에서 제시한 국면 기반 진행 방식은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아예 '스토리'라는 것을 만들지 않은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다다를 파국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는 캐릭터가 행동하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어있는 것이죠. 그래서 '파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징조' '약한 액션과 강한 액션'으로 유사 복선을 설치합니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서 스토리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 이래서 던월 마스터링이 겁나 어려운 겁니다. 던월은 초보자 룰이라고 할만한 게 아니에요.
사실 그래서 아포칼립스 월드 계열은 '무브' 라는 식으로 플레이어, 마스터가 취할 수 있는 액션을 정해놓았습니다. 강령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 안에서 해결됩니다. 그래서 아포칼립스 월드 계열은 스토리가 없음에도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스토리를 준비할 수는 있지만 효율적이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그걸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룰이 아니니까요. (그런가 하면 그걸 뜯어고쳐서 기반까지 제시해준 밤의 마녀들, 어둠 속의 칼날, City of Mist 같은 예시도 있습니다. COM은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먹구구 스토리 전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지만, 새도우런 같은 경우에는 한 번의 몇 시간의 건수를 위해, 플레이어 캐릭터들의 준비 상태를 보고, 경비를 배치하고, 보안 설계를 배치한 다음 NPC 개개인이 상황에 따라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인지 일일이 애드-혹을 달아놓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먹구구 스토리 전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하나의 건수를 준비하는 데에 일주일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알렉산드리안이 주장한 '플롯 준비하지 마세요'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플롯 준비하지 마란 소리가 아니라 스토리 구성을 시간순으로 세세하게 짜지 말란 소리다.
2. 캐릭터의 행동 과정이 결과적으로 플롯이 된다. 그리고 플롯이 이어져 스토리가 된다. 플롯이 어떻게 발생할 지 기반을 다지는 게 마스터의 임무다.
3. 유즈키 유카리는 귀엽다.
이상입니다. 질의응답 받고 카페 및 제 블로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글은 좋다 개드립이 재미없다 좋은 글에 씹정색하게 만듬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 ㄹㅇ
씹타쿠
음 읽으면서 확실히 원 글의 플롯을 준비하지 마 라고 하는 제목이 자극적인 면이 있다는 건 느꼈는데 그래도 잘 정리하긴 했네 - dc App
다른 건 모르겠고 원문에서 하고자하는 말이 미리 어떤 상황요소 달리말하자면 스토리의 일부에 pc가 놓여있을 때 pc들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마스터가 준비한 빡빡하게 연결된 플롯은 쉽게 망가진다. 그러니 상황요소들과 선택지를 늘려주는 것으로 게임이 어거지로 끌고가는 느낌을 최대한 줄이는 게 목적으로 그 방법에 대해 적은 감이 있다고 생각 - dc App
그래서 플롯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느정도의 스토리는 준비해둬라 라는 느낌으로 그나마 이와 비슷한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하이퍼링크 텍스트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해. 글 내에 특정 단어에 하이퍼 링크를 걸어두고 그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그런 종류의 소설. 또한, 하이퍼링크 텍스트는 하이퍼링크를 여러 단어에 걸 수 있으니 - dc App
원문의 저자가 말한 미스터리 시나리오 방법론임 세 단서 규칙과도 어울림 - dc App
말이 잠깐 샜지만 포인트는 쉽사리 망가지는 빡빡한 플롯보다는 느슨느슨하게 이런저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상황요소를 준비해서 똑같은 전체적으로는 선형적 이야기가 될지라도 우회로좀 깔아두고 철도가 끊기더라도 다른 길로 가면 되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 철마가 멈추지 않고 잘 달리게 하라는 거지 - dc App
음 그리고 저자가 플롯 준비에 비해 준비량이 적다고 하는건 사실 상황요소를 준비해서 배치해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러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준비해야 하니깐. 하지만, 플롯 준비는 이야기를 아다리 탁탁탁 맞게 한 줄기를 세세하게 준비하는 것이 비해 - dc App
상황요소 준비는 그 수고가 좀 덜하면서 더 좀 더 넓은 범위를 커버치니깐 준비량이 덜 할 수도 있고 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 dc App
내 경우는 플롯을 준비하는 편인데 '플레이어들이 개입하지 않았을 때'의 플롯을 구성함. 그걸 뼈대삼아서 플레이어들의 개입으로 일어난 변화를 시뮬레이팅 하는식. 단순히 뼈대로서만 생각하면 플롯도 좋은 도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