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캐릭터는 이러저러한 설정이니까, 여기서 이렇게 반응 안 하면 캐붕이죠."


"내 캐릭터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겠어요? 캐붕이라 안돼요."


"캐릭터 설정대로 하자니 다른 사람들이 안좋아할 것 같고, 그렇다고 다른 행동을 하자니 캐붕이고..."



TRPG 하면서 다들 한 번쯤 들었을/했을 법한 소리 아닐까 싶다.


이 "캐붕"이란 단어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 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있어서,


미리 설정에 적어둔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캐릭터가 망가져 버리는 것만 같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세상의 그 누가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신도 아니고...


결국 플레이어가 "캐붕"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말하는 것은 대개 미리 써 둔 캐릭터 설정의 자기 "해석"이다.


(내가 이 캐릭터의 설정을 해석하기에) 여기서 이렇게 반응해야 한다, 라는 주장인 것이다.


지금 이 대목에서 "내 캐릭터 내가 해석한다는 데 너님이 뭔 불만?" 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맞다. 너의 캐릭터는 네가 만들었으니 기본적으로 너의 것이고, 해석을 맨 처음 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너의 캐릭터가 놀고 있는 그 놀이판, 캠페인은 너의 것이 아니다. 모든 참가자의 것이다.


게다가 캐릭터의 구현이란 단순히 설정만 써 놓고 되는 것이 아니다. 놀이판에서 캐릭터의 선언과 행동을 통해, 실제로 플레이를 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만 하는 것 아닌가.


설정+실제 플레이=TRPG 캐릭터지, 설정=TRPG 캐릭터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너의 해석을 주장할 때는 캐붕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론 정당화할 수 없다. 그 해석이 실제로 구현될 놀이판의 다른 참가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곧 죽어도 내 캐릭터에 대한 참견이 싫다? 그럼 TRPG는 할 수가 없는 거다. 1인 창작을 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