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자주 하던 생각인데, 어떤 플레이를 하건 찰지게 하려면 룰북만 봐선 알기 어려운... 해당 장르에 대한 기본 이해도가 높아야 할 필요가 있음. 예를 들어서 '중세 판타지 배경으로 던전크롤링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건 초보자건 숙련자건 대충 어떤 세상에서 pc들이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식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쉬움. 게임과 만화, 소설로 이미 해당 장르를 다룬 작품들이 잔뜩 있고, rpg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런 작품들을 함께 향유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좀 더 특화한 배경...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의 폐허에서 독일군과 싸우는 소련군 pc들이라거나, 19세기 미국의 탐정 사무소 직원 pc들 같은 경우는 pc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지 플레이어로서는 감이 잘 없는 경우가 많음. 왜 소속 부대의 규정과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야 할 군인 pc가 책임질 거 없는 모험가처럼 행동하는 경우라거나 베테랑 첩보원 pc가 상대의 전략을 추측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개돌하는 경우 자주 봤지?
사실 저런 건 해당 캐릭터를 움직이는 플레이어가 평소부터 저런 장르의 픽션들을 자주 접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내 캐릭터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어울리겠다'에 대한 감을 키워둬야 할 필요가 있음. 마스터라도 마찬가지야. 무한세계 배경으로 무한경비대 플레이를 한다고 하길래 '대체로 조직에 충실하지만 영 납득이 안 가는 명령이 내려올 경우 현장 요원 권한으로 그걸 좀 왜곡해서 수행해 버릴 생각도 있는' 뭐 그런 경비대원 캐릭터를 만들어 갔는데 마스터가 묘사하는 경비대가 무슨 소년 만화 속 정의의 조직처럼 용기와 열혈로 땜빵하는 것처럼 나오면 짜식을 거 아냐.
근데 그러려면 평소에 그런 픽션을 자주 접할 뿐만 아니라, 수동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보지 말고 'rpg에서라면 어떨까'를 계속 생각해 가며 봐야 할 필요가 있음. 본 아이덴티티 보면서 '우왕 액션 쩐다' 하고 마는 거랑 '아하 첩보원 캐릭터는 식당에서 밥을 한 끼 먹어도 계속 드나드는 사람에 주의를 기울이고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옷 속에 무기를 숨기고 있지 않은지 자세히 살피고 유사시 도망칠 뒷문이 없는지 미리 확인해둬야 하는구나' 같은 거 생각해 가며 보는 게 똑같을 리가 없잖음?
저런 부분에 있어서의 연출 능력과 센스가, 룰에 대한 지식 이상으로 초보자와 숙련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봄ㅇㅇ
D&D하면서 고대 신화/유럽 중세사/기독교 신화 정도는 이해해줘야지. 룰이나 시나리오가 거지같은 게임들도 그런 사람들이 하면 갓겜됨. ㅇㅇ
글라트니/그렇게 책을 읽는 사람 보기 쉬운 시대가 아니지
근데 그렇게 보면 집중하기 힘들어서 뭔가 그렇던데요. 영즐기지를 못 하는 것 같고...
글라트니/그건 좀 오버고ㅇㅇ
여난달/사람 나름이죠 뭐. 말하자면... 전투에서 칼질을 한 번 해도 무슨 턴제 게임에서 커맨드 고르듯 '공격해요' 보다는 '제 브로드 소드로 상대의 팔을 베는 척하면서, 상대가 검으로 막으면 그대로 무기 파괴. 부숴지면 그 여세를 몰아 베어 넘겨요' 쪽이 더 좋다 그거죠(약간 벗어나는 이야기인데 제가 겁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함. 어지간히 복잡하게 선언해도 왠만해선 그에 맞는 룰이 있음). 검술을 좀 알아야 액션 씬에서 그런 묘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배경 지식이 왠만해선 좀 있어줘야 장면을 상상하기 쉬워지고 플레이의 디테일이 산다는 거.
rpg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격하는지도 묘사 안 하고 걍 '공격해요' npc를 설득해야 할 때 뭐라고 설득하는지도 묘사 안하고 걍 '교섭해요' 책장을 조사해야 할 때 어딜 어떻게 뒤지는지도 묘사 안 하고 걍 '뒤져요' 하면 노잼이다... 라는 이야기의 연장선. 그런 게 정 힘들다면 필수사항까지는 아닌데 왠만하면 플레이어가 어느 정도 그런 쪽의 센스와 지식이 있어주는 쪽이 같이 플레이하기 편하다는 거(그리고 그런 묘사를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게임 내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은 룰이 마음에 들고).
나도 20세기 시절만해도 커멘드 고르듯이 하는 선언하는 RPG는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임들은 상당수 컴퓨터게임 이나 콘솔게임들이 대체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솔까말 주관적으로는 화려한 그래픽과 웅장한 사운드로 눈과 귀도 즐겁게 해주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쪽이 오히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TR할때 까지도 그런식으로 하고 싶진 않더라. 그런데 이런 개인취향문제를 다른사람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이런 취향을 맞는 팀원을 찾아야하는데 그냥 찾는것도 힘든마당에 이것도 따져야하니 더욱 구인하기 힘들어지는 지경에 오는듯 ㅇㅇ
말 그대로 콘솔이나 온라인 게임이 rpg의 일부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rpg의 촛점은 더 세부적인 기획과 세계관이 지닌 의미, 갈등 상황에 대한 올바른 대처, 심지어 교양적인 지식 습득으로 가야하는게 맞다고 보는 편이라... 누군가는 그냥 레벨업하고 무기 강화해서 몹 두들겨패면 끝이라고 하겠지만, 그런거라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데미지 계산해서 화려한 이펙트로 하는게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거지.
그냥 세계관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큰 틀만 이해하고, 캐릭터들이 나름 일반 상식적인 선에서 행동하게 하면 된다고 봄. 솔직히 여기서 CoC 하는 / 하려는 사람 중에 카오시움에서 나온 Cthulhu Mythos Encyclopedia 같은 설정집읽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음..? 근데 그래도 유령의 집같은 거 잘 돌잖아.
글쎄... 개인적으로는 놀이는 그냥 놀이라는 입장이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의 병사들이 유쾌한 모험가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고 보거든. 그래서 이건 그냥 결국 각자의 취향 문제 아닌가? 누군가는 DnD 할 때도 고대 신화나 중세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너는 그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그럼 다른 누군가는 네가 '필요' 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건 좀 지나치다' 고 말할 수 있는거 아냐?
결국 이건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찾아야 할 문제지, 교양이 필요하다고 할 문제는 아닌 거 같다만.
교양이 없으면 무개념캐릭으로 설정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중세사/신화/배경 등에 대해 플레이어가 잘모른다면 캐릭터도 세상물정을 모른다던가, 머리가 좀 모자란다던가 하는 애로 설정하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