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언니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왜 동생이 그러는 지 압니다. 아까 동생이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린 가정통신문을 읽었으니까요. 5월 9일 화요일은 초등학생인 동생의 학교 소풍 날입니다. 이번 소풍 장소는 롯데월드고요. 못난 부모를 둔 덕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유원지 구경 한 번 해 본적 없는 동생이 얼마나 이번 소풍을 기대하고 있는지, 언니는 잘 압니다.


그리고 동생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니에게는 정말 돈이 한 푼도, 천원짜리 한 장도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동생은 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다만 참으려고 해도 어린아이로써는 너무나 참기 힘든 욕심에 언니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의 처지를,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언니와 동생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무거운 침묵과 함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언니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혹시나 자신이 잊고 있던 돈이 어딘가에 없는지, 집안의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뒤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돈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엊그제 동전바구니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와 백원짜리 동전 세개를 꺼낸 것이 바로 자신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히 서랍 한 구석에 자신도 잊고 있던 비상금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기대감으로 언니는 온 서랍을 다 뒤집니다. 그리고 동생은 억누르려고 해도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기대가 담긴 시선으로 언니를 바라봅니다.


물론, 돈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십원짜리 열 한개와 오십원짜리 네 개를 찾아낸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일까요. 언니는 동전 열 다섯개를 신경질적으로 내팽개치려다, 잠시 멈칫합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손가방의 동전주머니에 동전들을 털어넣습니다. 열 다섯개의 동전이 이미 들어있던 동전 하나와 부딪히며 초라한 쇳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언니는, 동생의 시선을 뒤로하고 손가방을 든 채 집을 나서서 은행으로 향합니다.


물론 은행에 가도 통장에 남은 돈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쯤 전, 지갑에 마지막으로 남은 천원짜리 두 장 중 한 장을 써서 통장에 남아있던 마지막 9천원을 맞춰 찾았으니까요. 그리고 남은 잔고는 44원. 없는 거나 다름 없는 돈이죠. 하지만, 은행에 가까워 질 수록, 왠지 모를 기대가 커져갑니다. 일년에 한두번 연락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작은아버지가 생활비에 보태라고 얼마쯤 송금해 줬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자매를 볼 때마다 자매가 돈 달라고 할까봐 지레 요새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고모가 용돈으로 쓰라고 얼마쯤 넣어줬을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십 년 가까이 소식 한 번 없는 어머니나, 얼굴도 못 본 외가 친척중에 누군가가 돈을 보내줬을지도 모릅니다. 실종된 지 3년이 되어가는 아버지가 얼마쯤 입금해 줬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뭔가 전산 오류가 일어나서 매달 중순에 들어오는 복지수당이 몇 주 빨리 입금됐을지도 모르지요. 통장에는 어느 새 돈이 들어와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언니는 당연한 결과가 찍힌 명세서를 들고 축 처진 어깨로 은행에서 걸어나옵니다. 낙담한 기색도 없고, 울고 있지도 않지만 언니의 어깨는 가볍게 떨리고 있습니다.


이제 언니는 동생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까요?


아니오.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동생도 이젠 많이 컸으니 내일 하루쯤은 알아서 밥을 챙겨먹을 수 있겠지요.


지금은 5월 6일 금요일 저녁. 그리고 동생이 소풍을 가는 것은 5월 9일 화요일. 아직 이틀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의 이번 소풍은 꼭 보내주고 싶습니다. 엄마아빠와 함께 살던, 지금만큼은 힘들지 않던 어린 시절에 한 번 가 봤던 롯데월드의 즐거운 추억이 놀이공원에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동생을 보는 언니의 마음을 무거운 죄책감으로 짓누릅니다.


뭔가, 그 사이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할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지요. 소녀는 손가방을 꼭 쥔 채, 시내로 향합니다.



니코틴 걸즈 네 번째 이야기. 조만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P.S. 원래는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647728&code=61121111&cp=nv 이 내용을 주제로 삼으려고 했는데, 이건 아무래도 플레이어 분들을 좀 지나치게 학대하는 처사가 될 것 같아서 크게 순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