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전 내 수면시간을 좀먹어가던 TRPG 생활을 마무리짓고 한동안 이세계와는 연을 끊고 살다가 최근에 와서 다시 팀을 꾸리게 되었다. 현생이 바빠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나를 비롯해 또다른 삶을 갈망하던 플레이어들도 적지 않았던 덕에 어떻게든 적정 인원수를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고른 게임은 페이트코어였고... 주제는 마법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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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아'는 어린 시절에 트럭 추돌사고를 겪고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무의식에 트럭의 불빛과 경적소리가 각인되는 바람에 커다란 섬광과 굉음이 아니면 일상에서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마법소녀의 힘을 얻어 마수와 싸우는 위험과 스릴, 그리고 아름다운 폭발에 심취해 평소에는 무기력적이고 냉담한 학생이지만 변신만 하면 세상 상큼발랄하고 전형적인 마법소녀가 되는 살짝 맛이 간 캐릭터였다.
그렇게 후배 마법소녀들과의 이중생활을 만끽하던 선아는 커다란 전환점에 맞닥뜨리고 만다. 다른 마법소녀 '쿠앤크' 가 학교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학생을 공개적으로 살해하고 '자신은 마수뿐만 아니라 악의를 가진 인간, 법망에서 벗어난 인간도 처단하겠노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예기치 못한 독단적인 행동에 나머지 마법소녀들도 경악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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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선아는 "마법소녀의 적은 마수이며 인간은 인간이 심판해야 한다" 따위를 내세우며 쿠앤크와 반목해야겠으나... 하필 선아의 정체성과 면모는 '위험과 비정상에 이끌리고','불꽃이 나를 유혹하는' 등의 똘끼투성이었고, 실제로도 정의감이나 사명을 갖고 싸운다기보다는 폭발의 쾌감을 더 추구하는 RP 위주로 진행하고 있었다. 쿠앤크가 사회에 가져다줄 커다란 파장과 혼돈에 이끌려 그녀에게 협력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로서도 혼돈 내지는 악으로 분류될 법한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이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아예 과거 겪었던 트럭 사고가 실은 경찰인 아버지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전과자의 계획범죄였다는 설정을 만들어 쿠앤크에게 적극적으로 찬동할 수도 있겠고... 그러면서도 나름의 신념을 가진 쿠앤크와 달리 쾌락만 추구하는 선아가 경찰과 민간인들까지 휘말리게 한다든지 해서 결국 모두의 적으로 거듭나게 될 수도 있겠다.
한편 "마법소녀는 꿈이자 희망으로 있어야 한다"는 뜻을 관철하며 쿠앤크와 적대하는 것도 여전히 좋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엔 선아가 어릴 적 사고를 겪고서도 정의관을 잃지 않았다거나,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자 했던 선대 마법소녀의 뜻을 이어 밝은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는 설정이 붙게 될 것이다. 단순한 이중인격 컨셉에서 더 나아가 '억지로 밝은 모습을 연기하는 우울한 정의의 사도'도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 상황 자체를 RP로 녹여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플레이가 늘어질 것 같고, 결국은 선택해야 할 문제니 이래저래 고민이다.
실수로라도 번식하지 마시고 꼭 일찍죽길 바랍니다
감정적 갈등이 느껴지는 좋은 서사네, 팀없찐이라 부럽다.. 고민에 대한 건 전체 이야기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내용이니 팀원들과 협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원래 너희 팀 분위기 모르는 턀갤보다 팀이 우선이고, 지금은 쓸데없는 혐오로 불타고 있어서 더 의미없음
팀에서도 뭔가 '이게 더 어울리고 좋겠다!' 하는 확실한 의견이 안 나와서... 게다가 악/혼돈 성향이 더 까다롭다고도 들은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네. 조언 감사!
당장 저 쿠앤크부터 자기논리에 의해 죽어야할 놈인거같은디, 나같으면 쿠앤크랑 적대하되 유선아의 폭발광적 면모를 살리는 방향을 모색해보겠다.
음...역시 그게 제일 괜찮을까, 의견 땡큐!
한세건 같은 캐릭터 아님?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쟤가 자기 머리에 총 쏘는 엔딩이면 최소한 캐릭터 조형을 홍정훈보다는 잘 한 거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