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배경의 캠페인이었는데
우리팀에는 인간 사회 세상물정을 모르는 고대 안드로이드와
판타지 배경의 바드에 해당하는, 가무와 사교성을 무기로 삼는 스페이스-챙놈이 있었다.

세션 도중에 우리 팀은 세뇌를 당해 우리를 공격하는 초초초능력 소녀를 적으로 만나게 됐는데,
전투를 벌이다가 소녀가 기절한 틈을 타 그녀를 탈출선으로 구조(납치)했다.

깨어난 소녀는 일단은 세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우리 팀의 잠재적 위험요소 겸 보호 대상으로 취급되어 주요 npc가 되었다.

몇 세션 후, 그 소녀가 다시금 정신공격의 여파에 괴로워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우주-바드가 정신공격 디스펠 효과가 있는 노래를 불러 안정시켰다.

그리고 또 다시 몇 세션 후, 소녀의 상태가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생각하고 방심할 쯤에 소녀는 다시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 때는 팀이 고대 안드로이드에게 애보기를 맡기고 다른 일을 하러 나간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첫 만남 당시 소녀가 보여줬던 능력을 고려했을 때, 우주선 안에서 폭주했다간 우리 팀의 기반 함선이 날라가 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 팀원들은 냉정한 안드로이드가 소녀를 우주 밖으로 내다 버리는거 아니냐며 농담 겸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에 안드로이드의 플레이어는 메모리에 자동 녹음 되어 있던, 우주-바드가 이전에 소녀를 진정시킬 때 불러주었던 노래를 재생한다고 선언했다.

녹음된 노래는 당연히 원본과 같은 효과는 없었지만, 마스터는 긴박한 분위기에 터진 허무맹랑한 선언에 빵 터졌고, 더불어 소녀도 웃으면서 정신을 차리는 것으로 상황를 모면했다.

어찌보면 그냥 농담이나, 아니면 루니 플레이로도 보일 수 있는 선언이었지만
나는 그게 마치 정말로 '노래를 부른다'→'소녀가 진정된다'라는 원인과 결과로만 관계를 파악한 안드로이드나 할 법한 발상 같아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결국 해당 팀은 다른 이유로 도중에 터져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긴박한 브금이 흐르며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브금이 딱 끊어지고 노이즈 섞인 노래소리가 재생되는 장면이 종종 머릿속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