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는 좆같은 취미이다. 언제나 그랬다. 아마도 개리 가이객스가 즈그 친구들이랑 지하실에서 주사위 굴리던 시절부터 그랬을 것이다.


왜냐고? TRPG는 사람이랑 함께 한다는 점이 알파요 오메가인데, 이 사람새끼란 것들이 늘상 좆같기 때문이다.


당장에 그 극단적인 예시를 확인하고 싶거든, 고개를 들어 턀갤을 보자. 굳이 영어로 된 레딧썰 번역하러 갈 필요도 없다. 턀갤 검색창을 5분만 잡고 있어도 튀어나오는 라그나 시리즈는 턀갤이 아기 턀붕이들에게 전해주는 반면교사의 바이블과도 같을 테니까.



물론,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이 좆같기만 한 건 아니다. 이 바닥에 있는 모든 인간이 라그나였으면 애초에 이 취미가 존속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 글을 읽는 턀붕이 친구들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의외로 괜찮은 pl과 괜찮은 gm은 실존한다는 것을. 좋은 gm은 좋은 pl을 부르고, 좋은 pl은 좋은 gm을 끌어당기는 선순환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이 글을 읽는 턀붕이들이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그때부터 TRPG는 개꿀잼 취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롤20 플레이타임이 수만시간씩 찍혀 있는 괴수들도, 한 주에 여덟 세션을 꼬라박는 정신나간 세션마들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턀붕이들도 이 바닥에 남아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라고? 아님 말고.



그러나, 과연 팀 하나 구하는 순간 모두가 해피엔딩에 도달하느냐고 묻는다면, 거기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막 자기 팀을 갖게 된 아기 턀붕이가 있다고 치자. 면접을 봤든, 단편플을 통해 검증되었든, 아니면 쌩으로 지른 공개구인 한방에 로또가 터져서 한큐에 '님 저희랑 고정팀 할래요? ㅎㅎ' 소리를 들었든, 이 턀붕이는 이제 팀없찐 신세를 벗어나 한명의 당당한 팀원이 되었다.


그럼 이제 이 아기 턀붕이의 완벽하고도 즐거운 세션라이프가 시작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아기 턀붕이의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팀을 터트렸다는 죄목으로 턀갤까지 끌려나와 죽창을 후두려맞는 새끼들의 공통점이 뭘까? 정답은 그 새끼들 모두 한번쯤은 팀이 있었던 새끼들이란 거다.


첫 인상이 좋길래 냅다 팀에 넣었는데 나중에 보니 개씹 라그나새끼더라~ 같은 썰 따위는 턀갤에 널리고 널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뭐다?


아기 턀붕이는 이제 공개구인에서 똥지뢰를 밟고 폭사할 걱정은 덜었지만, 대신 자기 팀원들과 아주 오랫동안 팬티레슬링을 해야 하는 운명에 사로잡혔단 뜻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세상에 흠결 한 점 없는 완벽한 인간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좆같음. 사람인 이상 누구나 하나씩 좆같은 점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말 끝에 이기야를 붙인다거나, 히어로즈 오브 스톰 계정레벨이 세자릿수라거나, 민트초코와 하-와이안 핏짜를 즐겨먹는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암만 고르고 골라서 좋은 gm과 좋은 pl들을 섭외해도, 그들 또한 사람일 터.


평소에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라도, 같은 팀에서 오랫동안 보게 되면 해이해지게 되어 있다.


사귐이 길어질수록 앎이 깊어지고, 앎이 깊어질수록 편하게 느껴지며,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심리적인 가드는 내려가는 법.


현실 친구든, 아니면 사이버 친구든, 친구를 한 명이라도 사귀어 본 적이 있는 착한 턀붕이라면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을 알아간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 던전까기 게임의 기벽작과 다를 바가 없다.


내 팀원들에게 부디 병신같은 기벽이 붙지 않길 바라면서, 함께 깊고 어두운 던전(세션)을 헤쳐나가는 것.


팀원의 기벽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그 기벽이 해당 팀원의 포텐셜을 작살내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것.


그러다가 결국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좆같은 기벽이 터지는 순간, 팀에서 방출해버리는 것까지도 말이다.


그럼 이쯤에서 내가 있는 팀을 예시로 들어 보자.


원래 5인으로 구성된 팀이었다가, 6인으로 늘었다가, 도중에 두명 빠지고 한명이 새로 들어와 다시 5인이 된 팀이다.


그렇다. 이 팀은 멤버가 두 번 교체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션이 조져지고 팀 자체가 공중분해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팀은 나에게 있어 즐거운 기억만 있는 팀은 아니다. 즐거웠던 기억도, 좆같았던 기억도 있는 팀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용케도 살아남은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도 그런 위기가 한번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실패는 성공보다 크게 기억에 남는다. 다이스를 열 번 굴려서 아홉 번 성공이 나왔다고 해도, 마지막에 나온 게 펌블이면 기억되는건 그 펌블 뿐이다.

세션 또한 마찬가지. 성공한 세션이 열 번 나왔다고 해도, 한 번 망한 세션이 나오면 그 씹창난 분위기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나는 전에도 단 한 번의 어긋남으로 인해 아는 팀이 작살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피드백과 핑계. 대수롭지 않은 잡담 속에 숨은, 살짝 불편한 농담 한 마디. 암만 그 전까지 잘 지내왔다고 해도, 한번 조져진 인상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에 배웠다.




보통 이런 식으로 팀 내부에서 생긴 문제와 고충을 턀갤에 풀어놓으면, 턀붕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팀폭 ㄱ"


턀붕이들 성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냥 남의 팀이 화려하게 불타오르는걸 보며 즐기고 싶어 할 뿐일 가능성이 높지만, 의외로 이게 틀린 조언은 아니다. 짬 좀 찬 턀붕이 치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모르는 턀붕이는 없다. 공개구인에서, 팀에서, 말할 수 있는 일과 말할 수 없는 일 다 겪고서 ‘검은머리 짐승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얻은 턀붕이들에게 있어, 팀폭하라는 말은 가장 현실적인 조언인 셈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유지되고 있다. 대화도 활발하고, 다들 잘 웃는다. 다른 멤버들의 속사정까지 내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다들 이 미움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 팀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란 말인가?


꽤 길게 고민했다. 그러나, 무엇이 좆같음을 괜찮게 만드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지났고, 다른 세션을 하기로 약속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이 세션마저 조졌다면, 팀은 확실하게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돌입했을 것이고, 턀붕이들이 좋아하는 대폭발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혹자들에겐 유감스럽게도) 이번 단편세션은 성공적이었고, 팀의 분위기는 크게 나아졌으며, 다음주에는 또 다른 팀원이 또 다른 단편세션의 마스터를 잡아 이 팀에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로 되어 있다. 덤으로, 나는 작은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이게 어떻게 된 조화였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최근에 팀 내에서 플레이한 세션의 로그 일부를 첨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룰은 페이트코어고, 배경은 한국의 고등학교. 컨셉질엔 제한 없음. 장대한 서사시도, 영웅적인 전투도 없는 하이틴 청춘물. 어떤 의미에선 턀붕이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트위터식 역할놀이와도 맞닿아 있는 물건이었다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턀붕이들의 안구와 정신건강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로그 공개는 최소한으로만 하도록 하겠다. 본 로그는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이며,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씽크빅한 뻘짓들이 세션 내에서 자행되었음을 미리 알린다.



pc1이다.


뇌가 빈 새끼다. 이 새끼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귀찮다는 이유로 창문난간에 레펠을 설치하고는, 다이스가 잘 터지자 그걸 즉석에서 포탈건으로 바꿔버렸다.


왜 학교에 와이어 발사기를 들고 온 건지, 어떻게 와이어 발사기가 포탈건으로 변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거 쓴 pl도 몰랐을 거다.


재벌2세라는 설정이 있는 것으로 봐선, 이 pc 애비의 취향이 외계인 고문이었던 모양이다. 아님 애비가 토니 스타크던가.



그리고 이게 pc2다.


컨셉질에 미친 새끼다. 말끝에 ~냥을 붙이면 사교판정에 +2를 받는 특기를 갖고 왔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하게도 특기를 쓰려면 냥냥거려야 했다. 페코에서 +2는 큰 차이였다.



pc3이다.


비릿한 새끼다. 고등학생인데 조폭이었다. 애네 아빠도 조폭이었고. 아예 집안 대대로 조폭이었던 모양이다.


NPC 조지는 건 기가 막히게 잘 했고, 거기에 다소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중간에 중립 NPC 하나한테 시비털어서 맞다이도 깠을 정도.


마지막으로 pc4.


기면증 걸린 새끼다. 세션 내내 뭔가 일이 틀어진다 싶으면 풀썩 쓰러져 잤다.


한번 잠들면 그냥 존나게 잤는데, 자느라고 말을 못 해서 그런지 말수도 pc들 중에서 가장 적었다.


특이사항으로, 교내 아이돌 설정이 붙어 있어서 한번 잠들면 어디선가 근육질 팬들이 스폰되는 신기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음.



이에 응하듯, 마스터가 내놓은 npc들도 꽤나 똘끼발랄했다. 저게 실제 세션에 나온 npc였다.


사천왕인데 왜 8석차가 있냐고 묻는 pl은 없었다. 저 세션에서 사천왕은 12석차에 더해서 번외석차까지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이 자리를 빌어 감히 추측해보건대, 분명 저 세션의 사천왕 모티브는 12사도+유다였을 것이다. 실제로 세션 막바지에 번외석차 npc가 악역 측 조력자로 등장했던 거 생각해보면 킹리적 갓심임. 지쟈스 크라이스트 쑤퍼스타 쑤퍼스타.



이게 대강의 면면이었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하나는 개연성과 정합성을 밥말아먹은 새끼였고, 하나는 씹덕갬성 풀차지한 컨셉충이었으며, 하나는 하이틴 청춘물 세션보다는 차라리 스카이림 세션에 내보내 노르드 펀치를 날리게 하는 편이 어울리는 새끼였고, 하나는 춤추고 노래하지 않는 아이도루 맛스타 신데레라 가루즈였다.


장담컨대, 마스터가 만든 위의 npc를 포함해서 저 중 어느 하나라도 공개구인 자리에 들고갔으면 욕 씨게 박히고 조리돌림당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만큼 좆같은 pc들이었고, 좆같은 npc들이었다. 그럼 이 좆같은 것들을 모아놓은 세션이 어떻게 됐을까?



좆나게 재밌었다.


평소라면 감히 시도하지 못할 뻘짓들이 팀원들의 묵인 내지는 맞장구 하에 정당화되었다.

마스터도, 플레이어들도, ‘이걸 해도 되나요?’ 라는 질문 일체에 ‘ㅇㅋ 물론 당근빳따죠 쫄? 님쫄?’ 이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벌려진 이야기를 수습했다.

그리고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즐겨댄 이 세션의 완결이 다가왔을 때, 깨달음이 나를 관통했다.


좆같음. 사람인 이상 누구나 하나씩 좆같은 점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좆같음은 극복될 수 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결함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덕목이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개연성과 정합성의 미비함은 로망과 뽕으로 극복될 수 있다.

정신나간 컨셉은 웃음과 티키타카로 극복될 수 있다.

폭력성은 사용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으로 극복될 수 있다.

침묵은 재치와 무게감으로 극복될 수 있다.


단점을 장점으로 뒤집는 마술. 그렇다. 이것은 페코의 면모 시스템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야기 안에서 pc들은 저마다 갖고 있는 특이한 면모로 인해 좆같은 위기에 처한다. 역발현되는 면모는 때로는 그 당사자만이 아닌 주변 등장인물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곤 한다.

그러나, 면모의 역발현이 곧 게임의 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발현된 면모는 필연적으로 운명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pc와 그 pc의 이야기에 불리하게 발현되는 면모가 있다면, 유리하게 발현되는 면모도 있다. 또한 면모의 역발현으로 인해 운명점을 얻은 pc에게는, 필연적으로 면모의 정발현을 통해 위기를 이겨낼 권리가 주어진다. 이 발현과 역발현의 연쇄는 이야기를 지켜내고, 때로는 전진시키는 힘이 된다.


자, 그럼 이제 위의 문단에서 pc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꾸고, 이야기를 팀으로 치환해 보자.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바로 내가 이번 세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하나씩 장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 장점은 때로는 은은하게 퍼지기도 하고, 강렬하게 빛나기도 한다. 어떤 미움도, 어떤 좆같음도, 그 빛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하잘것없는 티끌에 불과하다.


이 장점을 발현시키는 운명점이란 현실로 치면 그 사람의 마음, 의지력일 것이다. 이 팀을 유지하고 싶다. 지금의 팀원들과 함께 계속 즐거운 세션을 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의 면모로부터 장점을 이끌어낸 것이고, 그로 인하여 팀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나도 안다. 이것이 단지 단점으로부터 눈을 돌림으로써 사태를 어물쩡 넘기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이 글이 아무도 읽지 않을 과몰입 씹덕새끼의 잡설로 매도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장문을 턀갤에 팀자랑이랍시고 투척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의 팀을 믿고 싶은 까닭에서이며, 오늘도 절찬리에 팀원들과 갈등을 겪고 있을 턀붕이들이 내가 얻은 깨달음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길 바라는 까닭에서이다.


팀원의 미운 점이 보이거더라도, 팀원의 좋은 점을 잊지는 말자.

만약 팀원의 욕을 크게 했다면, 칭찬은 더 크게 하도록 하자.

즐거운 세션을 같이 하길 바라는 마음은 네 팀원도 너와 같음을 기억하자.


만약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네 팀원들 또한 너에게 그렇게 해 줄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있을 내 팀원들에게, 그리고 이 기나긴 잡설을 다 내리고 세줄요약을 찾고 있을 턀붕이들에게, 이 짧은 요약문을 바친다.


1) 티알피지는 좆같은 취미다

2) 그러니 이 좆같은 취미를 덜 좆같게 만들어주는 네 팀원을 사랑하자

3) 행복해라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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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사실 이 짤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싯팔 다음 세션 예고를 움짤로 하는 정성 실화냐?

리뷰에 집어넣을 러프화 그려달랬더니 글 다 쓰기도 전에 밑색까지 칠한 거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