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올라오는 글들 읽으면서 생각난것임.
1. 서술권을 분배해주면 모든 참가자가 극의 구성에 참가할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진행자=구성자이기에 좀 더 일체감있고 몰입감있는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물론 이는 모든 참가자들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성품이 선량하며 협동할 의지가 충만하고, 팀의 방향성이 민주적 방식으로 적정선에서 합의되었음을 전제한다.
2. 모든 사건은 점점 증폭되기 마련이다. 지금은 동네 싸움이지만 언젠가는 에픽이 된다. 정교한 극일 필요는 없다. 허나 이 과정에서 일관성을 잃는다면 이야기의 확장은 드래곤볼식 스케일 불리기가 되며 몰입도를 잃는다. 몰입도를 잃은 게임은 터진다.
3. 그렇기에 누군가는 방향성을 잡아줘야 한다. 물론 그게 진행자의 역할 중 하나다. 그렇지만 진행자가 통제의 수준으로 개입하여, 51%의 서술권 지분을 먹는다면 서술권을 애초에 분배한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그 시점부터 참가자들의 서술권은 극에 크고 작은 살을 붙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뼈대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4. 서술권의 공평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진행자는 방어적인 포지션을 맡게 된다. 참가자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 플레이어들이 하찮게 여기는 디테일을 만들고, 그들이 혐오하는 악을 조종한다. 하지만 디테일은 구체화되어선 안되며 악의 세력은 수동적인 성향을 띈다.
5. 그렇다고 해서 과연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자신과 동등한 수준의 서술권 지분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극단적'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의 변화를 적용할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가 있다면 참가자들은 받아주겠으나 떨떠름한 기분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6.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는 것은 개드립과 '중간의 중간' 뿐이다. 서로의 기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그를 하던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골라야 한다. 예상치 못한 빵빵 터지는 모험은 생각만큼 서술권 분배 상황에서 벌어지기 쉽지 않다.
7. 환상적인 모험은 실패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고고한 여기사 동료의 처녀를 땄을때 성취감이 있는 이유는 여기사가 오크들의 육변기가 되어 아헤가오를 짓게 되는 상황을 막았기 때문이다. 적은 영리하게 기습하고 옥죄어올때 훌륭한 위협으로써 기능한다.
8. 그러므로 서술권 분배룰은 실패를 적극적으로 즐길때 훌륭한 형태로 거듭날 수 있다. 사실 서술권 분배룰마다 다 써있던 이야기지만 굳이 같은 결론을 내려보았다. 맨날 적극적인 페라치오의 대상이 되는 피아스코와 아포칼립스 월드, 포도원의 개들은 모두 실패를 통해 이야기를 진전시키지 않던가.
9. 하지만 실패는 보통 재미가 없기 마련이며 단편적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캐릭터가 처맞고 강간당하고 오줌을 갈겨지는 상황에서 재미를 느끼고, 다음 단계로 이행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보통 변태다.
10(결론). 그러므로 여러분이 재밌게 실패를 즐기기 위해서는 변태들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처맞고 강간당하고 오줌을 갈겨지는 상황은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모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적극적인 텍섹은 여러분을 RPG의 새로운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세줄요약
여러분은 1번에 해당하는 플레이어들을 모을 수 없으며
만약 모으는데 성공한다 해도 서술권 분배의 딜레마에 시달리므로
텍섹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하자.
자기글 추천을 실수로 하면 비추를 누르도록 하자
기승전텍섹...
기립박수
짝짝짝
모두서서 발기된 ㅈ을 부딪치니까 기립박좃이죠
텍섹 = 개념글 공식 ㄷㄷㄷ
텍섹서들 좀 탈갤에서 못내쫓냐...
3단계에서 이상적인 합의식 플레이는, 처음 모임에서부터 전체적인 취향과 방향성을 맞추는데 있다. 모두가 이야기 흐름의 기승전결을 감안해서 참여하는 것임. 예를 들어 피아스코 플레이에선 한 사람의 진행자가 전체 흐름을 조율하지 않음. 모두가 이야기 흐름과 갈등관계, 남은 장면 수를 감안해서 맞춰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