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판 마스터 -> 5판 플레이어) 


1. 피드백 


마스터 입장에선 게임 끝나고 피드백 때 마스터가 어땠냐고 했을 때 '좋았어요', '재밌었어요' 같은 반응이 주를 이루면 뭔가 감질남. 


좋다면 어느 부분이 어떻게 좋았는지, 안 좋았다면 어느 부분을 수정했으면 좋겠는지... 좀 말해줬으면 하는데 보통 좋았다고 하고 끝내니까 


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해보니 왜 그런지 이해가 될 거 같음 


일단 게임이 얼추 재밌었으면 그냥 솔직히 재밌었단 말만 하게 됨. 지엽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도 물론 존재하지만, 보통은 걍 전체적으로 스무스하고 좋았으니 좋았어요... 하게 되더라. 


이걸 경험한 이후부턴 마스터로 돌아가서 pl들이 '전체적으로 매끄러웠고... 전투 재밌고, 우리가 쓰잘데기 없는 rp하는 거 받아주시느라 진행 더뎌진 것 같은데... 아 머였더라 하여튼 잼썼어용.' 대충 이렇게 피드백해주면 


속으로도 '아 잼썼나보다 ㅇㅋ' 하고 넘어감. 어디가 어떻게 좋았는지, 내가 디엠으로서 열심히 준비한 부분을 잘 캐치해서 똥꼬를 간질간질하게 해주는 똑똑한 PL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덤덤하더라. 약간 음식점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었음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하고 걍 담에 또 오는 손님들처럼    


오히려 이 담부턴 피드백이 길어지는 게 무서웠다. 


2. RP


마스터 입장에선 스토리 줫나 진행하고 진도 빼고 싶음. 


3시간 23분 진행했는데 태번에서 잡담하고, 정보수집하고, 상점가서 밑작업하고, 가격 흥정하고, 불쌍한 상인아재 협박하고, 후까시 한 번 잡아주고... 이 지랄하다 시간 반절 넘게 태우면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 진도 조또 안 나가서 좆드백 씨게 맞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pl로 해본 결과, 그 지랄하는 것도 결국 재미임. 결국 이게 롤플레잉... 풀이하면 역할연기가 주가 되는 게임 아닌가 싶음.


너무 늘어지면 중간중간 내레이션 통해서 자연스럽게 흐름조절을 해주지만 pl입장에선 rp도 중요한 즐길거리라고 생각하니 너무 진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 만약 사람들의 니즈가 싸움이나 스토리진행보다 역할연기에 있다면 반절 rp하고 반절 진행하는 식으로 밸런스 잡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음 


나중에 매튜 머서라고 성우가 진행하는 크리티컬 롤 캠페인을 함 봤는데, 이 아저씨는 진작부터 그걸 알고 있었는듯. 방송용 시나리오고 성우들이라 다르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pl들이 역할연기할때 진도 못나갈까봐 똥줄타는 느낌이 전혀 없더라 


3. 룰 실수


내가 마스터로 할 때는 '아 내가 이 세계의 마스터이고 게임 진행자고 모든 걸 주무르는데, 존나 완벽해야 하는 내가 실수를 했네? 씨발, 존나 빡치겠지 아마? 유리하게 판정해줘서 망정이지, 불리한 판정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막 이랬는데  


pl로 참여하니 마스터가 뭐 실수해도 별 생각없음. 애초에 서로 재밌자고 하는 거고, 말이 마스터/플레이어지 다 게임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잖아? 그리고 힘든 것도 아니 자연스레 존중도 있고, 앵간한 건 넘어가게 되더라 


그 다음부턴 나도 뭐 하나 실수해도 피드백에서 오바하면서 도게자 하는 대신 'ㅎㅎ... 이게 밀리어택만이 아니라 모든 공격에 적용이었네요? ㅈㅅ!' 하고 넘어감.  


4. 휴식시간과 레일로드  


내 세션은 중간중간 애매한 휴식시간을 갑작스레 가질 때가 있음


왜냐하면 테크니컬 이슈나 준비했던 스토리 쪽으로 진행하면 레일로드 티가 나서 새 상황카드 준비해야할때, 그리고 스토리상 전투맵을 다시 만들어야 할 때... 


그때마다 나는 '아 불필요한 휴식시간이 또 생겼네. 괜히 마스터가 준비부족으로 흐름 끊는다고 생각하겠지?' 일케 생각했는데 


pl입장에선 별 생각이 없어지더라. 확실히 흐름 끊기는 감이 있단 느낌도 들긴 하는데, 그것보단 내가 마스터의 스토리라인에서 벗어났단 생각에 좀 미안한 맘도 들고 그럼 


그러다보니 좀 웃긴 상황이 생기는데, 


나는 어떻게든 마스터가 준 단서들을 바탕으로 레일로드를 따라가려고 npc들을 슬쩍슬쩍 떠보고, 스토리에서 탈선하려는 동료들을 rp로 설득해서 멀쩡한 스토리로 진행하려고 함. 


일단 난 마스터가 준비해온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아니, 스토리를 한쪽으로 유도하는 거에 딱히 거부감이 없더라. 근데 dm측에서 물꼬를 터준 쪽으론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5. 기타등등


5판은 마스터든 플레이어든 레벨 2~3이 제일 재밌는 것 같다. 6 넘어가면 슬슬 액션이 고착되는 것 같고 역할이 너무 확실하게 나눠지게 되더라. 


던월이나 스프롤 같은 awe룰은 얼핏보면 준비하기 간단한데, pl이 dm한테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하면 따질만한 요소가 많아서 피곤한 거 같음. dnd처럼 비교적 하드한 프레임이 있는 룰이 아니다보니 저쪽이 훨씬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지 않나 싶었음.  


아 그리고 pl일때 '어떤어떤 플레이가 좋았고, 묘사가 섬세했다~' 이런 거나 '~하는 게 본인 캐릭터의 트라우마와 공포를 잘 살렸더라' 이런 거 들으면 뿌듯해짐. 좀 우스울지 모르지만, 진짜 내 캐릭터를 연기하는 영화배우가 된 것처럼 마스터의 피드백을 중점으로 좀 더 좋은 역할연기를 위해 캐릭을 연구하게 되더라. 


그 담부턴 마스터링 끝나고 나도 pl들한테 어떤 부분이 좋았다 이런 거 한마디씩 해줌. 꼭 rp가 아니라도, 전투에 공들이는 사람한텐 '자기 액션을 지능적으로 쓰는 게 좋았다' 이런 거. 


첨엔 마스터인 내가 pl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건 좀 평가질 같아서 좆같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단은 다들 좋아하는 거 같음. 


근데 아직까지 쫄보라 '님 턴 좀 빨리 써주세요' 이런 건 말 못하고 있음  


아, 그리고 pl안 해서 인생의 절반을 손해봤다.


dm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름의 맛이 있긴 한데, 한편으론 내가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시간도 너무 많이 소모하고 힘들더라 


가끔 열심히 준비해왔는데 플레이어 집중도가 낮은 거 보이면 멘탈이 섬세해서 상처받기도 하고... 심할 땐 욕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 사실. 


반면 pl은 그런 것도 없고, 걍 즐기면 되니까 훨씬 편하고 재밌었음 


결국 전술한 문제들 때문에 고정팀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듬 


디엠으로서 가장 상처받는 순간은 내가 맛있게 만든 요리를 손님들이 먹는둥 마는둥할때인데 


그럴 땐 약간 옛날 요리만화에 나오는 깐깐한 라멘집 아저씨처럼 쒸익쒸익대면서 '저 사람은 내가 열심히 준비해온 시나리오를 먹을 자격이 없어!' 


이런 생각이 들거든. 


그런 생각은 결국 '난 마스터링보단 플레이어 역할에 어울리겠구나' 하는 결론으로 귀결되더라 


아마 맞지싶다 


근데 한편으론 다른 세션 갔을 때 dm이 말을 이상하게 하거나 진행을 너무 못하면 내가 대신 진행하고 싶을 때도 있고... 


이게 서로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주는 부분인데, 분명 dm으로서의 재미가 있긴 하지만 직장이 생긴 시점에서 세션을 위해 밑준비를 하는 거에서 점점 현타가 많이 오더라. 


백수일땐 주2회 하던 거 주1회, 다시 격주로 늘리고... 이래 되는 거 같음 


옛날에 같이 했던 아저씨랑 오랜만에 연락닿아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