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총기와 석궁의 종합적 비교부터 알아보자.


1. 장전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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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의 장전은 생각보다 아주 열악한 물건이었다. 


우선 42개의 동작이 필요했으며 바람이 불 경우 화약이 날리고 고장이 잦은 등 실질적으로 빠른 사격이 어려운 물건이었다.


숙련된 사수들이 훈련장이라는 조건 하에서 1시간에 40발의 사격이 가능했다고 하며 


그보다도 상황이 열악한 실전에서는 한시간에 10발 정도가 현실적인 기대였다고 한다.


이런 느린 사격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총병은 총기 기술이 개선되고 총검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장창병의 보호하에 활동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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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반해 우리가 장전과 사격이 느리다고 알고 있는 석궁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석궁에는 여러가지 장전방식이 있었지만 우리가 아는 관통력이 어느정도 나오는 위력 있는 석궁의 장전 방식에는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위의 이미지와 같은 지렛대의 원리를 사용하는 염소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장전이었고 이는 장력이 550 파운드 정도에 해당했다.


염소발을 끼웠다가 빼는 작업이 귀찮았겠지만 장전 속도 자체는 빨라서 10~15초에 한발은 조준 사격할 수 있는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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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방법은 훨씬 더 강력한 권양기를 사용한 장전이었는데 이는 염소발에 비하면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권양기를 걸고 시위를 뒤로 당긴후에 다시 방아쇠가 걸릴 수 있도록 반대로 조금 돌린 후, 권양기를 제거 한 후에야 발사가 가능했는데


권양기를 돌리는데는 의외로 한손만 필요할 정도로 힘이 적게 들었지만 시간 자체는 적지 않게 걸렸다. 물론, 화승총 보다는 훨씬 짧지만.


장력은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 무려 1500파운드 이상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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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전속도가 분당 10발까지 발사가 가능한 활에 비해 느렸기 때문에 이러한 반격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병이 창병의 보호를 받았듯 파비스라는 방패를 단단하게 말뚝과 쇠로 고정한 후에 그 뒤에서 사격을 보통 진행하였다.


활과 비교한 장점을 지나가는 김에 설명하자면 활은 조준, 시위를 당기는 강력한 힘, 사격솜씨라는 3박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해서


장전 이후에는 조준만 해도 괜찮은 석궁에 비해 정확도가 훨씬 낮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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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여러가지 장전 방식의 비교. 본인은 가장 강하고 너무 후대에 발생하진 않은 두가지만 중점적으로 보여줬다.)




2. 관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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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투사체에 가해지는 힘만 비교하자면 석궁은 200쥴, 아르퀘부스는 2700쥴에 해당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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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석궁의 볼트는 공기역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가 어느정도 떨어져도 관통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강철로 된 탄두를 가진 경우가 많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도 무른 납으로 만들어진 총알에 비해 관통력이 높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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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퀘부스나 머스킷, 총기류의 총알은 당시에는 제작기술의 특성 때문에 둥글 수 밖에 없었고 무른 납이었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질수록 갑옷에 대한 관통력은 떨어졌다. 물론 지근거리에서는 석궁보다 훨씬 뛰어난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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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총알 제작 기술은 높은 탑에서 뜨거운 녹은 납방울을 떨어트리면 아래로 떨어지며 둥글어지고, 그대로 찬 물에 떨어져 굳혀지는 방식이었다.)

(위와 같은 총알 제작 시설을 shot tower라고 불렀다고 한다.)



3. 숙련의 용이성


당시 전쟁학에 대한 저술에 따르면 총기의 사용에 어느정도 적응하는데는 60일의 훈련 밖에 필요하지 않았던 반면에,


석궁의 사용은 상당한 숙련과 오랜 훈련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는 석궁과 총기의 사용법 차이에서 기인하는데, 당시 총기는 강선의 부재와 공기역학적이지 못한 총알의 특성으로 인해


사격 거리가 멀어지면 궤도가 바람과 우연한 요인들로 인해 지 멋대로 날아가는 경향이 강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총기는 일제사격이 중요한 전술이 되었고 일제사격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열과 훈련 방식이 고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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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는 당시 강력한 총기와 장창병의 조합이었던 테르시오라는 군사적 단위이자 대형의 이미지인데


이들이 사각형으로 대열을 짠 이유는 앞쪽의 줄이 서로 앙옆으로 어느정도 간격을 띄우고 서 있는 뒤의 병사들 사이로 신속하게 물러나서


재장전 등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에반해 석궁은 개인의 숙련도가 훨씬 중요했으며, 상대 방향으로 사격하는게 아니라 조준사격이 필요했기에


한명의 숙련된 석궁 사수가 만들어지려면 총기 사수보다 훨씬 더 길고 비용이 들어가는 훈련이 필요했다.



번외.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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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는 중세말- 근대초 유럽에서 석궁과 아르퀘부스라는 초기 화승총을 보급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비교한 그래프이다.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총기 자체의 가격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에 들어가는 부가적인 장구류와 특히 화약, 총탄의 비용이 높았던것을 알 수 있다.




결론. 왜 석궁이 총기에게 군사적 무기로 대체되었는가.



위의 비교를 보면서 우리는 왜 석궁이 대체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총기 자체의 비용이 높다 하더라도, 개인을 훈련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소모에 의한 코스트를 생각하면


총기는 짧은 시간안에 훌륭한 전력을 길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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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시 15-16세기 유럽의 전장이 급변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한가지는 갑옷의 열처리 기술이었다.


열처리 기술은 엄청난 기술적 난도와 비용을 불러왔지만 이를 거친 갑옷은 석궁의 공격에는 아주 지근거리가 아닌 이상 뚫리기 힘들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총기는 이를 뚫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 결과적으로 갑옷의 쇠퇴를 불러올 정도로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무기였다.



위에서 우리가 봤듯 가격과 장전속도라는 디메리트가 총기에 있었으나


가격은 당시 신대륙으로 부터 쏟아져들어오는 재화와 발달을 시작한 상업에 의해 커버가 될 수 있었고


장전속도는 대형과 전투방식이라는 형태로 보완이 이뤄졌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석궁에 대한 숙련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유지와 사용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총기는 부담스러웠기에


석궁은 개인의 보호용 무장이나 사냥 도구로 18세기까지 근근하게 이어져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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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레져나 스포츠 용도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