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다루지 못 한 내용이 떠올라 정리를 해 보았읍니다

캥캥이 야캐요 캥캥


1. 용과 마주하기


게임에는 두들겨 패서 쓰러트리거나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거나 마법이나 화술이나 그에 준하는 기법으로 물리치면

극복한 것으로 간주하고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상대가 등장하는 장면이 게임 참가자의 앞을 가로 막을 때가 있습니다.

이걸 왕국의 모험가들은 전투 인카운터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등장하는 상대로 크고 체력이 높고 쎄게 때리는데 심지어 많이 휘두르는 적은 강력합니다.


그 외에도 다른 적의 윤곽선이 있죠, 매직-유저처럼 마법을 쓰는 상대도 있고

저장된 리스토어레이션의 준비는 충분한지 물어오는 sheep새기같은 사령 괴물도 있으며

기절, 공포, 독, 마비, 봉쇄, 혼란 등의 상태이상을 거는 녀석도 있죠.

다양한 속성, 저항, 면역성, 상태 이상과 이것을 해제하는 기법들로 가득한 매지컬한 세계인겁니다, dnd의 세계는.

용이라는 족속은 그 둘을 모두 충족하죠, 충분히 게임 제목에 등장해도 될 만큼 가치있는 전투 인카운터 기물의 정수입니다.


사기꾼의 교활한 제안(dc12)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은 현명한 파티 리더(지혜17)의 주사위 굴림에서 건져내는 8이상의 숫자입니다.

바드의 휘파람소리나 어두운 골목 현업 종사자의 위트있는 제안으로 도움(aid)을 받으면 이점을 얻고

대부분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겠지요, 실제시간으로 5분은 떠든 dm과 게임시간으로 30분은 떠든 사기꾼은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죠, 다음번엔 더 강한 소셜 인카운터를 준비해 봅시다.

게임의 전투 인카운터는 좀 더 많은 주사위 굴림과 도움과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리스토어레이션도 필요하고 독 저항 물약도 필요하고 공포 상태이상에 걸려들지 않는 방책도 필요하지요.

튼튼한 갑옷과 방패를 든 적은 마법으로 쳐야 하고 마법 면역성을 지닌 골렘은 아다만틴 무기로 까야합니다.

왜 이렇게 세분화한 공격 수단과 방어 수단을 전술 게임으로 상정했냐면, 가이각스가 워게임하던 할배라서 그렇습니다.


용은 육체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강력한 전투 기물의 정수입니다, 위에 얘기했죠.

수도 없이 아크메이지와 이세계 출신 고딩들이 비만 파충류라고 멸시하지만 이 기물의 쓰임새는 던전의 보스입니다.

퀘스트의 최종 목적지이고 티어(tier) 종국의 수호자이며 프랜차이즈의 아이콘이자 전술 게임의 주축입니다.

레드 드래곤 웜링(빨간 메스가키 용)의 도전지수는 4, 젊은 놈은 10, 어른이는 17입니다, 모험의 환경이 바뀔만할 때 나오면 되죠.

용과 마주할 수 있고 용을 극복할 수 있다면 이 게임의 전투 인카운터를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 저항 물약 말고 무엇에 대해 알고 있어야 용학살자 칭호를 딸 수 있는 걸까요? 계속 읽겠습니까? (y/n)


용은 체력도 많고 쎄게 때리고 어둠 속에서도 보고 숨결 공격도 하고 심지어 날 수 있습니다.

성장할 수록 덩치도 커지고 이동도 빨라지고 공격도 많이 하죠, 두려움(frightened)을 일으키는 존재감도 익힙니다.

어른이 단계를 넘어가면 내성 굴림 몇개는 그냥 성공한 걸로 치고 레전더리 액션이나 둥지(lair) 액션도 얻고요.

그 정도쯤 되는 성체 적룡이 이름없는 던전에서 보물 상자 떼를 지키고 있다가 한두시간 주사위를 굴리며 밥탐을 계산하다

'짠 이겼습니다!' 소리와 함께 장렬하게 경험치와 용고기 뭉치로 변할리는 없을 테니 분명,

세계 설정 어딘가에 이름을 올리고 지도 중간쯤에 동굴 입구의 마크를 남기고 왕국에 비밀리에 보낸 밀사 몇은 거느리고

또 다른 정적과 내외부적인 정치적 암투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 확실하니, 조심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잔에 독이 든 것인지 아닌지는 꼭 마셔보아야만 알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허풍은 그만 떨고, 그래서 전투 기물로 용이 뭘 가졌느냐면..

높은 hp, 비행, 블라인드 사이트, 숨결(여러 속성), 큰 크기에서 오는 리치(reach), 높은 힘, 체력, 매력 수정치입니다.

반대로 용은 상대적으로 민첩, 지혜 수정치가 낮고 이것이 내성 굴림에서 약점이 됩니다.

보통은 인간(이나 그 유사한) 모험가 몇을 대단찮게 여기므로 혼자 상대하려 드는 방심왕의 자질도 지녔죠.

모험가 선생들의 기본 전술은 숫자(머릿수이든 산수이든)이고 전략은 다양한 클래스에서 오는 다양한 기법의 시너지입니다.

액션 경제(action economy)라고 부르는, 대충 '주인공놈들의 공회합이 적의 공회합보다 많아서 이김ㅋ'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전략은 구 판본부터 최신 판본까지의 기본적 논리이고 전략전술의 시작과 끝입니다.

모험가들이 지닌 많은 수단으로 전투 전에 우리의 약점을 줄이고 전투 중에 적의 강점을 줄이면 우세를 얻습니다.

이 때문에 이 게임은 전투 시작 전에 캐릭터 시트를 훑어 보면 다음 전투에 이길지 질지를 미리 알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물론 점술 학파divination 마법으로 미리 보고 던전 토-토에 베팅을 해두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요약하면, 용을 상대하려면 용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이에 대해 준비를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플레이어 캐릭터의 기술과 마법이나 여타의 기법이 무엇이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답을 써두지는 않겠습니다, 실제로는 다양한 수단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걸 사고실험해 보는 것도 재미입니다.


2 암시와 추정


5판은 아니고, 이전 판본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우리 파티는 퀘스트를 위해 왕국 외곽에 들러 트롤을 물리쳤고 정보 얼개를 지닌 npc와 조우했습니다.

npc는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는 언덕 거인의 은신처에 대해 알려주었고 다음 목적지는 입구를 숨긴 동굴이었죠.

이제 막 6레벨이 된 파티는 파이터, 클레릭, (클래스 피처를 조정한)로그, 소서러였고 소서러는 꿈에 그리던 파볼을 골랐습니다.

언덕 거인은 캥캥 거리며 짖는 작은 똘마니 몇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무려 십자궁도 쏘고 마법도 쏘는 놈들을 말이죠.


이쯤에서 게임 진행자는 언덕 거인의 동굴 최심부 지도에 그려진 세개의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발견합니다.

거인, 크보, 무당. 모험가들이 동굴의 끝에서 인간을 믿지 않는 거인과 몸으로 하는 대화를 할 셈이었죠.

과연 모험가들이 적으로 등장하는 세 괴물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지 의문에 빠진 dm은

정식 플레이가 없는 날, 카페에 들러 파이터, 클레릭, 소서러 셋으로 언덕 거인과 전투 시뮬레이션을 하기로 합니다.

플레이어들과 함께 모험가 길드의 요청으로 아레나에 투입된 셋이 거인을 쓰러트리고 상금을 얻었을까요?


용의 사례에서 참고할 수 있듯, 전투의 결과는 전투 전에 캐릭터 시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놀라운 순발력, 대단한 위트, 정교한 상상력과 혼돈의 주사위가 미래를 속이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싸우기 전에 결판이 나 있지요.

캠페인이 시작하기 전 dm은 추천 마법 목록을 짜두었고 공개했습니다.

소서러에게는 힘을 줄이는 광선, 눈과 귀를 멀게 하는 마법, 가속과 감속 마법 등을 추천했고

클레릭에게는 방어력을 늘리는 마법, 눈이 머는 마법, 대상이 받는 피해의 반만큼 사용자가 받는 마법 등을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특수 공격과 방어를 주고 받는 전투를 할 것이라고도 첨언했지요, 여러 수단을 통해서 말이죠.

거인은 크고 리치가 두칸입니다, 체력이 높지만 좀 멍청하죠, 몽둥이를 두번 휘두르며 상당히 쎕니다.

강점을 줄이려면 힘을 약화하거나 감속을 걸면 한결 쉬울 겁니다, 용이라면 모를까 거인은 눈이 멀면 ㅈ되고요.

6레벨 파이터는 풀어택으로 두번 공격할 수 있고 클레릭과 소서러는 3레벨 마법까지를 쓸 수 있습니다.

클레릭은 방어력을 올리거나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마법을 준비했습니다, 의외로(가 아니라 당연히) 전투 망치의 위력도 높았죠.

소서러는 매직 미사일, 스코칭 레이, 파이어볼의 맹신자였습니다, 로드를 이용해 화력 마법의 피해를 절반 늘릴 수 있기도 하고요.

치유량이 낮은 물약은 잔뜩 들고 있었지만 전투 중 보다는 후에 여러병을 마시는 게 유리하다는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흐음?


다음 정식 플레이에서는 거인이 사는 동굴 앞의 정찰병 코볼트를 때려부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십자궁을 든 코볼트가 둘, 마법을 쓰는 코볼트가 둘이었죠.

소서러의 강화된 파이어볼 앞에 정찰병들은 금세 무력해졌습니다, 살아남은 코볼트 무당은 목숨을 구걸하며

동굴 안에는 두목(거인)과 또 다른 코볼트가 하나씩 더 있으며 그들의 장비와 마법도 우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무당들은 블라인드 마법(성공율이 꽤 낮기에 내성 굴림에서 1이 나오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을 걸고

그 다음 차례부터는 매직 미사일을 두발씩 쐈지요, 코볼트 십자궁과 볼트는 작아서 인간이 쓰기엔 적합치 않았고요.

소서러가 코볼트 무당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무슨 마법을 쓴다고?'

코볼트 무당이 대답했습니다, '아까 썼던 거'

소서러의 플레이어가 물었죠, '그래서 무슨 마법을 쓴다고?'

클레릭의 플레이어가 대답하죠, '아까 썼던 거'


흐음?


모험가들은 동굴의 어두운 복도를 지나 꽤 넓은 지하의 공간에 도달합니다.

거인의 은신처이고 그 곳엔 몽둥이를 든 언덕 거인과 캥캥대는 그의 부하가 둘 있었죠.

거인의 스펙은 모험가들이 (게임시간으로)며칠 전 만났던 적과 같았습니다, 크고 두대 때리고 튼튼한 녀석이죠.

모험가들은 거인과 두 코볼트를 상대로 승리하고 중요한 정보를 캐낼 수 있었을까요?


언덕 거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규칙책이나 인터넷 어딘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코볼트는 파이터와 소서러 레벨을 약간 올린 것이지만 대략적인 전술만 파악하면 무난한 상대가 되고요.

그렇지만 그들이 어떤 전투 기물인지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거인에 대해서는 사전 전투를 진행했고 코볼트 부하들은 던전의 전반부에 등장했습니다.

그런 정보의 제공은 던전의 후반부 전투를 위한 간접적인 핸드아웃handout이었고요.

강점과 약점을 미리 알 수 있으면 전투 인카운터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난이도가 낮아지죠.

다른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던전과 인카운터, 최종 국면의 위험(과 보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약간이라도 알아두는 것이 게임을 훨씬 쉽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3 메타적 서술


소서러가 코볼트 무당을 다그치는 것은 게임 안의 서술입니다.

클레릭 플레이어가 소서러 플레이어를 다그치는 것은 좀 메타적인 서술이지요.

trpg는 이 두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D&D도 마찬가집니다, 롤플레잉이 적당한 윤활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레나에서 거인에게 패배했지만 은신처에서의 전투에서는 승리한 모험가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dm은 거인과 코볼트의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썩 좋았다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팀마다, 게임마다 달라지지만 적어도 저 모험가들에게는 좋지 않았죠.

추천 마법을 준비한 클레릭의 마법은 거의 상처 치유 마법으로 전환되었고

소서러는 파볼뽕에 눈이 멀어 거인 전투 내내 버프/디버프 마법이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특수 공격과 방어를 주고 받는 전투를 할 것이라는 dm의 선언은 바람을 따라 귓가를 스쳐간 한 구절일 뿐이고요.

그저 높은 피해량과 치유량의 주사위만이 전투의 우위를 점하고 결과를 불러오는 존재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게임 방법이 잘못되거나 틀린것은 아닙니다.

hp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죠, 이만큼 두들겨 패면 쓰러진다, 쎄게 많이 자주 때리시오.

(임파워드) 파이어볼 내성 굴림 실패하면 바로 전투가 종료됩니다, 와! 쎈딜! 와! 뽕맛!


전투 기물에 대한 암시와 추정을 위한 단서 제공이 잘 안 맞는 팀이 분명 있을 겁니다.

팀원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일부가 깨달은 정보의 공유가 잘 안 될 수도 있죠.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게임보다 실제 사람들과 둘러쌓여 하는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로

비언어적인 의사수단을 꼽는 참가자도 분명 있을 겁니다,

모든 정보가 글과 소리로 전달될 수는 없고 의사소통의 격벽이 느껴질 수 있다는 거지요.


추리물 장르의 trpg가 재미있기 어려운 이유도 일종의 의사소통 문제입니다.

추리가 단서를 얻어 논리 체계를 구축하고 답을 얻는 행위인 이상, 게임 참가자 개개인의 성향과

주요 관심사와 흥미도, 정보 전달과 해석의 불균형 등으로 하나의 심상(사실)을 구축하기 어렵죠.

때문에 '비밀을 탐사하는' 게임에서는 참가자의 수가 적으면 유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단서, 정보, 분위기 등이 공유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dnd에서 정보 공유와 전달은 중요한 행위입니다.

이 게임의 그래픽카드는 rtx3090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이죠, 그 전력은 공유된 정보입니다.

만약 공유된 정보에 누락이 발생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수단이 암시나 단서 제공이라 문제가 된다,

라면 메타적으로 발언하십쇼, 전해질 지 안 될 지 모르는 연애 편지보다는 고백해서 혼내주는게 낫습니다.


하면 좋은 정보 공유는 이런게 있습니다.

던전에서 함정 인카운터가 나올 것인가?

던전의 마지막 보스전에서 리스토어레이션이 필요한가?

던전에 들르기 전 마을에서 독 저항 물약을 싼 값에 팔고 있는가?

퀘스트 보상으로 "프레임 텅" 무기가 나오는가?


하면 나쁜 정보 공유는 이런게 있습니다.

레드 드래곤 웜링(빨간 메스가키 용)의 스탯은 몬스터 매뉴얼 98페이지에 나온다.

저 코볼트 무당이 쓰는 블라인드 마법은 내성 굴림이 2만 떠도 성공한다.

이번 글에서도 1에만 온점을 쓰는 개드립을 치는거 노잼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다.


정보 공유에 신경쓰세요.

세상에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