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내가 군대를 갔던 시기였다.
군대에 가기 전에도 티알피지에 대해서 흥미가 많았던 편이여서, 월급으로 티알관련 서적을 자주 구매하는 편이였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군대지만, 이런 내 취미를 이해하는 동기가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동기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만난 A라는 친구가 이 사건의 발단이였다.
A는 티알피지에 관해서 문외한이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에 관해서는 코드가 맞는 편이였고, 군대 안에서 좋아하는 시사점이 같은 사람은 금방 친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우연찮게도 A와 나는 고향이 비슷한 곳이였고, 그렇기에 전역한 뒤에 한 번쯤 만나자는, 누구나 할 법한 약속을 했다.
그때는 으례 이런 약속들이 그렇듯, 전역하고 나면 까먹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조기전역을 한지 2주 뒤에 A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솔직히, 친했던 동기가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으니, 기쁜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A와 처음으로 사회에서 만나고, 가끔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삼아 내가 좋아하는 티알피지를 해보는 것이 어떻느냐는 이야기가 둘 사이를 오갔다.
나야, 처음으로 오프라인 티알피지를 하게 되었으니, 거부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두 명이서 할만한 티알피지는 마땅치 않으니, A의 지인을 불러서 마스터 포함 3명이서 티알피지 오프라인 팟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처음으로 오프라인 티알피지에 쓸 주사위 세트를 구매했고, 캐릭터 시트와 룰 요약지를 미리 준비해서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걔네들과 무슨 시나리오를 했는지 전부 기억한다.
처음에는 '콜 오브 크툴루'의 '독스프', 그리고 '행맨', 그 다음으로는 '백장미 정원'을 했었다.
플의 분위기는 좋았고, 단편으로 자신감을 찾았던 나는 '어둠 속의 칼날'을 가져와서 이번에는 중장편을 해보기로 협의했었다.
중장편을 하기 위한 룰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하나 하나 룰에 대해서 설명해줘도, 그들은
'네가 제일 자신있는 걸로 해줘.'
라는 결론이였기에, 제일 많이 해봤던 룰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중장편을 진행하고 있던 도중에 일이 발생했다.
우리는 한적한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대놓고 신천지라 밝히는 행인들이 와서 포교를 하는 것이다.
신천지가 기승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카페의 3층까지 올라와서 신천지 10만 수여식이니 뭐니 하는 ㅈ같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홍보를 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카페 직원에게 신고를 해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나는 그런 판단을 할 겨를이 없었고, 적당히 듣는 척하면서 빨리 그들이 돌아가길 기다렸다.
나는 카페까지 찾아와서 타 업소의 고객에게 홍보를 하는 신천지의 행동에 화가 났고, 그들이 돌아가자 이를 비판하는 말들을 A와 지인에게 쏟아냈다.
사이비종교에 대한 지식은 유튜브영상이나 시사상식을 담은 책들을 통해서 주섬주섬 들은게 있는지라, 부족한 지식이지만 나름대로 비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도중에, 사이비종교에 대해서 A와 갑론을박이 오가긴 했지만, 이런 토론은 군대에서 지낼 때에도 으례있었던 일인지라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주였다.
조금 일정이 늦는다고 하는 지인을 기다려야 했기에, A와 내가 단 둘이 있던 시간의 일이었다.
A가 나와 잡담을 하는 도중에, 약간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야, 내가 좀 무거운 이야기좀 해도 될까?"
"뭐, 우리가 정치니, 경제니, 이것저것 다 이야기했었는데, 이제와서 가릴게 있냐? 말해봐."
나는 으례 A와 같이 하던, 무거운 주제에 관한 토론의 서두를 A가 던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 사실 군대다니기 전 부터 신천지 다녔어."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더 무거운 주제였다.
A의 커밍아웃에 내가 얼을 좀 타고 있으니, A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신천지에 들어와 봐서 아는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위험한 곳이 아니다?"
"너도 교회다녀봐서 알지만, 교회 입구에 보면 '신천지 추수꾼 출입금지' 라고 적혀 있잖아? 신천지는 몰라도, 왜 추수꾼은 출입금지라고 하는 줄 알아? 그건 성경내용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내가 너 포교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신천지에 대해서 조금 인식개선을 해줬으면 싶어서 세미나에 참가해줬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코로나가 유행이기도 하니까,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있거든? 그러니까..."
A가 하는 말은 이야기만으로 들어왔던 신천지 그 자체였다.
나는 A에게 확실하게 내 의견을 전했다.
"나는 예전에 기독교를 믿긴했지만, 난 이젠 무신론자라서 종교를 믿을 생각이 없어."
하지만, 이후에도 갑론을박이 오가기 시작했고, 이 대화는 지인이 도착하면서 잠시 끊기게 됐다.
준비해뒀던 플을 진행하면서도 심정이 복잡했다.
2년동안 같이 동거동락했던 동기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심정의 충격이 컸었다.
나는 이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어야 겠다 싶어, A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A의 지인에게 A에 대해서 물어봤었다.
다행히 그는 신천지는 아니지만, A가 신천지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한시름 걱정을 덜은 채로, A가 돌아오자 잠시 끊어졌던 대화를 다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역사적인 기독교의 변천사를 근거로 들면서, 종교라는 것이 사람의 의도에따라 얼마든지 분파로 나뉘어지며, 사람의 탐욕에 따라 교리와 형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최대한 A의 심경을 건들지 않는 내에서 그를 설득하고자 했다.
지인의 질문이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러면, 너는 성경 속에서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러면, 진리를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나는 지인의 질문을 받고서, 내가 2년동안 덪에 빠져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난, 진리같은건 지금 상황에서 알아낼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해, 오히려 그걸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야."
라는 나의 대답에
"그러면, 너는 지금 진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라는 그의 재질문은 이 지인도 한통속이라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나는 내 주장을 '기독교에서 나온 다른 모든 종교들은 어찌보면 유대교의 이단들이니, 네가 신천지를 믿고 있다고해서 이상할 건 없지 않을까?' 라는 괴상한 결론으로 선회한 뒤, 빠르게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내 생애 첫 오프티알을 신천지 포교꾼과 같이 했다는 사실에 머리가 깨질거 같았다.
끌려가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다.
지인도 아니니 빠르게 손절치는게 맞다
하다하다 tr을 포교 수단으로 삼네ㅋㅋㅋㅋ 가성비 안나올 거 같은데 - dc App
손절이 맞음...저건 너만 친하다고 생각한거고 저쪽은 널 그냥 자기 종교에 끌어들일 제물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생각 안했던거임
무슨 괴담이냐 존나 무섭네... - dc App
한번물면 안놔주니깐 무신론책 열심히 봐두고 다시오면 무신론 강론해줘. 개네가 가장 무서워하는게 무신론자임.
더럽혀진 추억이여 사라져라
이게... 가능한... 일이냐....
끌려가면 팔라딘과 클레릭만 있는 파티로 티알할듯 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