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들은 응애난이도를 좋아한다 관련해서

뭔 RPG는 게임인가 같은 요상한 소리까지 나오길래



그러면 차라리 떡밥에 더 기름을 붓자고 생각해서 쓰는 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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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들은 방화를 좋아한다. 증거는 내가 PL밖에 안 해봤는데 좋아함 ㅎ



어떤 PL들은 전투를 좋아하지만, 나 같은 PL들은 전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서 최소한의 무력 충돌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좋아한다.


말하자면, 비밀결사의 아지트에 불을 지르고 경비대를 입구에 불러모은 다음

뛰쳐나오는 사교도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체포하는 그림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실 심상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좀 힘들긴 하다.

사람들은 보통 여기서 뛰쳐나온 사교도들(연기를 들이마셔서 v요소 있는 주문들 못 씀)과

최후의 결전 정도는 해 주는 게 빌런들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




근데 반대로 말하자면, 설사 전투를 좋아하는 PL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는 연기를 들이마셔서 v요소 있는 주문을 못 쓰는 사교도들을 

유리한 입장에서 줘팸하는 거 정도는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나는 고난이도 전투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 PC는 사교도들과 정정당당하게 싸우기를 원한다고 RP하고

팀원이 세운 방화 계획을 반대하겠다'는 PL은 거의 없을 것이며

설사 있다 해도 턀갤에서 죽창을 맞을 것이다. 대체 뭐 하는 라그나야 그거.




약간 궤변 같지만, 나는 여기에 'PL들이 입으로는 고난이도 전투 해 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응애난이도로 플레이가 돌아갈 때 더 호응이 좋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PL들이 원하는 것은 

'고난이도 전투를 방화/능동적인 소셜 상호 작용/기타 기믹/파워 빌딩/개쩌는 주사위빨 등으로

손쉽게 돌파해나가는 것'이지


'고난이도 전투를 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동남풍 카타르시스'라고 부르고 있다.


PL들의 방화 페티시즘이 지향하는 이상은 아마 적벽대전일 것이다.

온갖 계략과 계략으로 쌓아놓은 빌드업이 폭발해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장강의 숯덩이들로 만들어버리는 거.


만약 조조의 백만 대군이 연환지계에 당해 활활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잔당들만 해도 유비-주유 연합군과 대등한 규모였고

그래서 싸움 끝에 유비-주유가 패배하거나, 이겨도 피해가 극심했다면

과연 삼국지를 읽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마지막까지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박진감이 배가됐을까???



아마 사람마다 다르지 싶다만, 개인적으로는 되려 김이 빠져버릴 거 같다.

제갈공명이 연환지계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노력을 적게 한 게 아니지 않은가.


동맹이라면서 암살할 생각밖에는 없는 주유의 흉계를 피하려

노숙 상대로 매력 굴림을 수 차례 성공해야 했고

PC의 백그라운드에만 적혀 있던 봉추 방통이 등장해서

연환계의 아이디어를 찔러넣는 이중간첩질을 해 줬고

마지막에는 7일 동안 리추얼로 동남풍을 불러오기까지 해서 겨우 성공한 거 아니었냐고.


심지어 그 웬수 같던 주유까지 나름대로 고육지계 판정을 성공시켜야 했고.



이렇게까지 수고를 들였는데, 정작 승부가 마지막의 아슬아슬한 명중 굴림에 달려 있다면

내 기준으로는 오히려 앞의 수고가 부정당한 기분일 것 같다.



오히려 '이 연환지계를 통과시키면 백만 대군도 날먹이다'는 제갈공명스러운 확신이 있어야

연환지계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보람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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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전략 게임의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보통 전략게임의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유연한 반응을 보여주지 못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에서 고난이도 인공지능은, 단순히 자원 수급에 말도 안 되는 보너스를 준 다음

인공지능의 수준에서는 크게 발전하지 않은 면모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인공지능 좀 제대로 만들어라'

'내가 전략 시뮬레이션을 하는 건지 꼼수로 똥꼬쇼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성토가 흔히 나오곤 한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인공신경망 기술의 발달으로

정말 인간의 전술적 행동을 그대로 모방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딥러닝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인간이 할 법한 좆간질'을 인간보다 월등한 효율로 수행하면서

정작 '인간이 할 법한 일반적인 전략'은

컴퓨터의 판단 기준으로 그닥 효율적인 짓이 아니기 때문에 배제하고

컨트롤 싸움에 몰빵해서 인간을 압살해버리는 인공지능.


이런 인공지능을 상대로 인간의 승산이라고는

인공지능 간의 경쟁을 통한 자기학습 과정에서 배제된 전략을 찔러넣어

인공지능을 '고장'내는 것뿐이었고


이건 기준의 치트 쓰는 컴퓨터를 까기 위해 사용했던 '꼼수' 이상으로

상호작용의 여지가 없는, 진짜 치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전략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돈다.

사람들이 개쩌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개쩔지만 나한테는 져주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달라는 거라고.


정말 인간처럼 행동해서, 인간의 전략 대부분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인간처럼 승리를 위한 최선의 수를 탐색하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게임과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을 망가뜨릴 거라고.



그래서 왜 뜬금없이 PC 게임 이야기를 하냐고?

RPG랑 PC 게임이 같냐고?


분명 다르다. 뭐가 다른지는 몰라도 다르니까 게임 안 하는 나도 RPG는 재미있어 하겠지.


하지만 딱 하나 비슷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게 바로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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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말로 고난이도 전투를 하는 것, 아슬아슬한 싸움 자체에 흥미요소가 있다면

오히려 RPG는 PC 게임의 방법론을 취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부러 빤쓰에 몽둥이만 들고 트라이를 하는 거지.

마스터가 아무리 저난이도 전투를 준비해 왔든, 본인이 제약 플레이를 하면

난이도야 얼마든지 올릴 수 있지 않은가???



근데 턀갤의 주류여론은 '파워 빌딩보다 더 끔찍한 게 병신을 만들어 오는 것'이다.


이게 그냥 팀원의 발목을 잡는 게 문제다, 같은 이야기를 하려면

뭘 어떻게 해도 약한 팀원보다 강한 몬스터가 더 방해가 되지 않겠는가.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둘의 차이는 'PL들에게 상호작용의 다양성을 늘려 줄 수 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강한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PL들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아껴 뒀던 주문 슬롯이나 액션 서지 같은 자원을 동원해야 하고

AC가 너무 높으니 대신 그래플을 시도해 본다던가

마스터가 만들어 놓은 기믹을 적극 활용하던가 해야 한다.


본인은 과거 지인들과 했던 단편플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투명화한 적을 찾을 방법을 아무도 준비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동속도가 터무니없이 높았던 로그가 

'방을 한 칸씩 지그재그로 훑으면서 누군가와 부딪칠 때까지 달린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시도했고

마스터가 이걸 허용해 준 덕에 불리함을 받고도 어느 정도 대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으며


본인도 주문 목록을 열심히 읽다가 '슬립은 타겟을 요구하는 주문이 아니다'는 걸 깨닫고

3렙 슬롯을 태워서 재워버린다는, 사실 그닥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라 생각한 짓도 해 봤다.


나중에 마스터가 말해 줬는데, 사실 HP가 굴림 결과보다 4인가 더 높았어서

안 잠드는 게 맞았는데 그냥 재워줬다더라.

아마 이렇게 까발리는 걸 두고 게임의 재미를 망가뜨린다고 질색팔색하는 분들도 있을 거 같긴 한데

본인은 그냥 마스터에게 고마웠던 쪽. 아마 내 성격을 아니 마스터도 말해 준 거일 터다.




그런데 반면, 약해빠진 팀원의 PC는 다른 PC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더 주는 쪽이 아니다.

드러누울 때마다 힐을 넣어줘야 하니 오히려 플레이가 획일적이 될 뿐이지.




그리고 아마 이 지점에서, 

PC 게임의 난이도와 RPG의 난이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소울류 게임이건 항아리 게임이건

PC 게임의 고난이도는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상호작용을 시도해 보는 동기가 된다.


진행이 막힐 때마다 새로운 장비나 스킬, 루트를 시험해 보게 될 테니 말이다.

갓겜이라면 특정 보스몹을 더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장비나 기믹 같은 걸 착실하게 챙겨 준다.

하다못해 '이 패턴, 이 루트에서 어떤 행동이 최선인가'를 깨달을 때까지 반복 트라이를 하게 되지 않는가.

그 때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새로운 상호작용이 생긴다.

플레이어는 예전보다 좋은 결과를 얻거나, 하다못해 나쁜 결과라도 경험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수고가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 그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게임을 삭제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본인의 몫이고, 플레이어는 언제든지 재시도를 해 볼 수 있다.

설사 그게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일지라도.

아니, 오히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만큼, 

그간 해온 수많은 '상호작용'을 체감하는 데 있어 강렬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RPG의 고난이도는 상호작용의 여지를 PC 게임처럼 늘려 주는가?



아마... 게임에 충분히 숙달된 사람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댄디 썰들을 보면 기상천외한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한 더 기상천외한 빌드, 주문들의 시너지,

마법 아이템들의 사용법들이 잔뜩 나온다.

아마 그 사람들은 이런 새로운 '상호작용'을 탐색하는 것이 매우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 반대로 느껴질 것이다.


'최선의 방법을 탐색해서 고난이도 전투를 이겨내는 것'은

결국 '최선의 방법으로 고난이도 전투를 이겨내는 것을 강요받는 것'과 표리일체 아닌가.


결국 승리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주사위 운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내가 그간 동남풍을 불게 하기 위해서 한 상호작용들은,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난이도가 낮으면, 더 많은 '뻘짓'을 할 여지가 생긴다.

뻘짓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뻘짓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RPG에 엘든링마냥 뭔 인정협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쉬운 난이도에서 기묘한 상호작용을 즐기는 것 역시 즐거운 플레이 경험이 아니겠는가.



고난이도 PC 게임을 즐겨 하는 사람은 많을지언정,

그 고난이도를 돌파하기 위해 특정 빌드를 타는 것을 강요하는 게임을 고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그 고난이도 돌파의 조건 중 하나가 운빨, 즉 주사위 빨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똥겜 취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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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를 응애난이도로 진행하는 게 낫다는 조언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닐까.


아마 무엇을 '제대로 된 상호작용'으로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걍 주사위를 던지면 90% 확률로 성공해버리는 판정에 성공해서 일이 진행된다면

그건 성공이 결정된 일을 선택지 하나로 퉁쳐버리는 기분이 들어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 반대로, 그럴싸한 연환지계를 열심히 RP해 놨더니만

성공률 50%의 판정 네 번을 따로따로 성공해야 하고(즉 성공률 6.25%!)

그 중에 딱 하나만 펑크가 났는데 결론적으로 계획이 어그러지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오히려 자신이 한 노력이 무의미해졌다는 기분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결국 전투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명중 굴림은 성공 판정이 아니던가?



아마 둘 중에 정답은 없을 것이며,

여러분이 팀원들이 어떤 것을 긍정적인 상호작용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적절한 범위는 이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요한 것은 전투의 난이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양질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느냐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어려운 난이도의 전투를 투입해서, PC들이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유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전투던 소셜 판정이건 난이도를 무의미하게 올려서, PC가 상호작용을 망설이게 하거나

그간 PC가 쌓아온 상호작용들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면,

내 지인 마스터가 그랬던 것처럼, HP 4점 차이 정도는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답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인정협회도 없는 게임인데.... 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