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스터링을 사실 그다지 고되게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림이랑 브금 좀 준비해두면 끝인 타입이죠.
전투는 안하는 세션이 하는 세션만큼 많은데, 전투때도 준비를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제가 스탯 적당히 조절해서 붙여서, 이전 세션들에서 했던 전투 데이터 일부 재활용하고.
그렇게 준비합니다.
다만 플롯을 짤 때 빡시게 준비하는 편입니다.
스토리는 엉덩이로 쓰는 거더라고요.
오랫동안 고민하며 앉아있으면 이야기가 나오는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3막구조, 플롯의 특성, 이야기꾼으로의 역할, 작법서...
여러가지를 보면서 참고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결론은 저런 건 별로 도움이 안되는 거더라고요.
우선 대부분(90% 이상?)의 마스터에게는 플롯이 필요 없습니다.
대부분의 세션은 큰 플롯의 일부기 보다는 쪽대본이거든요.
즉 큰 서사 구조 없이 그때 그때 상황과 캐릭터에 맞게
짧고 에피소드 자체로 완결성 있는 스토리로 준비하는 게 보통입니다.
쪽대본의 강점은 유연하고 맞춤형이라는 겁니다.
아주 강력한 장점이죠.
그래서 거의 모든 플레이어와 마스터는 이걸로 만족합니다.
이것 이상의 것을 바라고 오는 경우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즉 내 스토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긴 플롯을 짜서 플레이어들에게 굉장한 스토리라인을 보여주겠다.
이건 사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자신의 플롯에 대한 욕망을 위한 이야기죠.
솔직히 플롯은 철저히 자기만족입니다.
플레이어의 입장일때는 시야가 좁아지게 되어있습니다.
눈앞의 상황을 따라가기도 바빠서 복선, 암시, 복잡하게 짜여진 서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따라가서 음미할 여유가 없습니다.
플레이어는 눈앞의 것을 보고 이해하기도 벅찹니다.
마스터인 사람도 플레이어의 입장에 서서 그런 플롯을 마주하면
생각보다도 그 플롯을 완전히 이해하고 움직이기 어렵다는 걸 느낄겁니다.
그러면 플롯을 쓰는 사람은 쓰기도 어렵고,
플레이어들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을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 되죠.
더군다나 쪽대본 시나리오와 달리 유연성도, 맞춤형으로의 강점도 없습니다.
솔직히 굉장히 불리해요.
유연성과 맞춤형이라는 요소는 풀어서 말하자면
완급조절, 그때 그때 달라지는 플레이어의 무드와 구미에 맞는 전개, 소재와 캐릭터 비중의 균형 같은 겁니다.
문제는 저런걸 신경 쓰다보면 전체 플롯은 구려지게 되는 편입니다.
하자만 마스터링하면서 저런걸 신경 안쓴다는건 솔직히 어렵죠?
그럼에도 플롯을 쓴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근본적으로 마스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 만족입니다.
혹여나 저같은 자기만족의 길을 걷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여
그런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해보겠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작법서나 시나리오 이론 같은 것에 얽매이지 마세요.
그런 이론의 대부분은 정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중 도움이 되는게 없진 않지만 그 보석 몇 개를 구분해내기 위해
저 쓰레기 더미를 뒤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 보다는 더 집중해야할 것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플레이어가 뭘 원하는지 입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그것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마스터링은 혼자서 소설을 쓰는 것과 달라서
플롯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면, 함께 창작의 동료가 되는 플레이어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스스로 원하는 스토리라인이 뭔지 깨닫게 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창작 과정의 동지이며 스토리에서 나오는 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테지만
결국 이야기의 재미는 소재나 배경보다는 인물간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즉 플롯에서 관계의 대부분을 다루는 플레이어가 창작의 동지로서 힘을 쓰지 못한다면
관계는 좌초되고 목적성이 없어집니다.
쉽게 말해 노잼이 됩니다.
이야기의 재미는 관계를 맺음, 관계의 변화 과정과
그 관계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가능성의 이야기입니다.
플레이어는 그 관계를 만드는데 있어서 최고의 동료이고, 실천해줄 사람이고,
일단 플레이가 시작된 이상 최선의 선택지입니다.
플롯을 쓰려면 플레이어를 볼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플롯을 아무리 잘 썼다고 믿어도 그 내용으로부터 관계의 대부분을 채울
플레이어가 이입하지 못하게되면 대부분의 경우 못 쓴 플롯이 되어버릴 겁니다.
이상으로 두서없는 글을 마치며,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글추
이 판의 비극은 이야기를 만들기위해 공부할 사람도 플레이어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할 사람도 플레이어인데 그만큼 욕심이 있는 사람은 하고싶은게 명확하기에 자기가 원하는거 해주는 마스터를 못 만나서 플레이어 안하고 마스터를 한다는데 있지
비극
많이들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명문이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