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중에는 말끝마다 '노.' '딱.' 이라는 어투를 붙혀쓰는 친구가 있다.

정말 일간베스트를 한 적이 있었는 지, 아니면 디시에서 본 드립들이 감명깊었는 지 평상시에 만날 때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내 얼굴이 빨개지지만, 그 단점 만큼이나 사람사귐이 좋아서 계속 만나는 중이다.

그 친구를 이야기를 왜 하고 있냐면, 그 녀석이랑 티알피지를 같이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trpg커뮤니티에서 안정적으로 재미있는 세션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친구를 티알피지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욕망이 샘솓았다.





절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이었고, 많은 이들이 내 권유를 거절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친구가 TRPG를 해보겠다고 흔쾌히 승낙했다.

기뻤다.

잘만 한다면 이 친구에게 TRPG에 대한 흥미를 붙이게 만들어서, 한 번도 해본 적없는 오프티알을 할 빌드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롤20에 초대된 뒤에 처음으로 만든 캐릭터의 포트레잇으로 노무현을 올리기 전까지 말이다.


룰은 던전월드, 캐릭터는 도적, 포트레잇은 노무현이 사시미 칼을 햛고 있는 짤이었다.

나는 유일하게 내 권유를 승낙한 그에게 모종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에게 '그 좋같은 노무현 짤좀 치우고, 진지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할 자신감은 없었다.

나는 굉장히 애둘러 표현해서 포트레잇을 교체할 것을 요청했지만, 그는 거부한데다가... 오히려 내가 곤란해 하고 있는 모습을 즐기고 있는 목소리였다.

조금 더 강한 표현으로 포트레잇에 문제가 있음을 전하자, 그는 알겠다며 포트레잇을 교체했다.

장검을 들고 있는 노무현짤로 말이다.


나는 정상적인 TRPG를 진행할 수 없을 것이라 짐작했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는 여느 라그나썰에서나 나올법한 행동양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사는 신경쓰지 않고 여관손님들의 주머니를 털 궁리만 하고 있는 그에게 '가도의 행인들을 습격하는 도적단을 무찌르기'라는 메인서사까지 데려다 놓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딴길로 새는 시간이 메인서사를 진행하는 것보다 길었고, 도적들의 소굴에 도착해 임무를 완수한 뒤에도 그의 재물에 대한 집착은 여전했다.

소굴에는 행인들이 가지고 있던 값나가는 물건들이 쌓여있었고, 이 물건들을 훔치고 싶어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나중에 네가 임무를 완료했다고 전하면, 경비들이 이 소굴로 들어와서 도난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할거야. 만약 예상한 것보다 도난품들의 수가 적으면 경비들이 널 의심할지도 모르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다.


"뭐 그러면... 적당히 값나가 보이는 작은 물건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아? 하나 정도는 티도 안날거고."


나는 그에게 좋은 물건을 찾을 수 있는 지에 대해 판정하라고 지시했고, 그는 판정에 성공했다.

생각에 없던 시나리오였고, 나는 대충 재보들 사이에 은빛으로 빛나는 시계가 있다고 그에게 전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흥미롭다는 듯이 반문했다.


"시계? 여기가 논두렁도 아니고 ㅋㅋ... 비싸보임?"


나는 여기서 그의 흥미를 끌만한 힌트를 얻었다.


"은빛으로 도금되어있는 고급 손목시계고, 한 눈에 딱봐도 좋은 시계장인이 만든 작품인 것 같아."

"뒷면에 피아제라고 적혀있는거 아니지?"


노무현드립과 관련되어있는 물건이 나오자 그는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이 시계가 좋은 이야기를 만들 키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시계에는 시간을 아주 잠깐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엄청난 물건이었고, 흑막은 이 시계를 얻기 위해서 도적들을 고용해 행인들을 닥치는 대로 강도질 했다는 내막을 즉석해서 만들었다.

보수를 받는 상황에서 딱봐도 수상하게 생긴 귀족을 출현시켜서 그에게 시계의 행방에 대해서 묻게 만들었고, 그는 당연히 시계를 숨기고 도주했다.

강력한 능력을 가진 시계를 우연찮게 얻게된 노무현이 추격을 받는 시나리오가 전개되었고, 흑막이 보낸 암살자를 만날 때마다 그는


"이 녀석들... 국정원이 보낸 자객이냐!"


라고 말하면서 몰입하는 rp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막바지에 이르러, 흑막에 의해서 노무현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될 상황이 펼쳐졌고.

시계의 진짜 능력이었던 중력을 거스르는 힘에 의해서, 노무현은 죽지않고 살아남게 된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세션이 끝나고, 그는 재밌는 티알피지였다고 내게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해보고 싶다고 그가 말했지만...

나는 실친에게 다시는 TRPG를 권유하지 않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