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b8e50bcac76190619ef78a00ff2873a8014085e980adcd4f8664ee48c26e83d6bf4bad

특유의 화려한 아트 스타일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로어들 그리고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인 룰 덕분에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지만, 특유의 의지박약과 열어도 가끔 내가 원하는 것들과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것 사이의 간극(포트 실사풍 대 미소녀 같은것에 대한 논쟁)이라던가 하는 것 때문에 그냥 가끔씩 꺼내서 읽던 룰북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운 좋게 참가 중인 D&D 캠페인 팀의 마스터가 모크보그를 열어주겠다는 관대한 제안에 고개를 숙이고 다리 사이로 기어가 실제로 플레이를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할 모험은 룰북 내에 있는 그림자왕의 성이었고 시놉시스는 사형 직전의 범죄자인 우리들에게 왕이 관대하게도 살 기회를 내어주었고 그 기회를 붙잡으려거든, 저주받은 굴로 사라진 자신의 아들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마스터는 냄새라고 병적인 포트를 원하였고 그것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OSR은 오랜만인지라 꽤나 신이나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잡힌 플이라 주어진 시간은 3시간 정도 였고 능력치를 정하고 소지품과 장비를 정한 다음 나는 1시간도 들이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2시간 정도 눈을 붙인 다음 일어났다.

12efd522b5873ea33df28eb040d4696900d7fdf2ad5dc16619a436a92044aa2ceb868443c30aa46596bd24d515a6e459b4bfaf990ed360687c79

몰락하고 영락하였음에도 제것이 아닌 영광에 눈과 귀가 멀어 손 사이로 흐르는 모래를 붙잡으려 의미 없는 손길만을 뻗어내는구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가 수치가 무엇인지 아니.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숨기려 담대하고 위협적인 가면으로 스스로를 훔치려고 하지만 너 스스로가 알고 있으리라.

굶주린 아귀처럼 썩은 것과 날 것을 가리지 않고 주린 배를 채우려 들며 이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짐승과 같은 성품을 지닌 추례한 존재라는 것을. 스타인 가문, 옛 밤하늘을 가득 메우던 저 어둠 너머의 신비처럼 찬란히 빛나던 그 영광과 명예는 어디로 가고 이제는 볼품 없고 비참하기 짝이 없는 것만이 이 땅에 남아 삶을 구가하며 추하게 살아가는구나.

반짝이는 금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는 예술품이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더냐, 어리석게도 제 것이 아닌 것을 탐하다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 걸어 들어갔구나. 그림자의 왕의 눈은 이 땅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너를 고요히 지켜보고 있고 그의 병사들은 한시도 잠들지 않은 채 배회하는 유령처럼 왕의 성을 순찰하니, 역겨운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신하들은 그림자의 왕에게 아첨하며 자신을 봐주기만을 바라는구나.

스타인이여! 스타인 섄이여! 무엇을 위해 이 악의 소굴로 들어와 스스로 목숨을 내버리는가. 반짝이는 금화가! 아름다운 예술품이 다 무엇이더냐! 옛 세상의 정의와 인정은 모두 썩어 곪아터져 구더기가 지배하고 폭력과 슬픔만이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거늘, 내 작은 두 손아귀에 쥔 금화 몇 개가 대체 무슨 소용이더냐?

결국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을... 어찌하여 그 목숨 줄을 붙잡고 있느냐....

마스터가 요구했던 사안을 백스에 적당히 녹여낸 다음, 캐릭터는 완성되었고 든든한 동료들과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20b8d468f5dc3f8650bbd58b36847764733da7

굶주림에 못이겨 사람을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페트로브와


20b8d468f5dc3f8650bbd58b36807c64d15ede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도둑에게 길러져 도둑질로 삶을 연명하다 붙잡혀온 퀄리치.


a65614aa1f06b3679234254958c12a3ae31061529cdd280dee292cc6b1

다 같이 지하 감옥에서 죽을 때를 기다리다가 그림자 왕의 선지자에게 그림자 왕의 아들을 구하면, 자유와 부 그리고 삶을 주겠다는 제안에 저주 받은 굴로 향하였다.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f9b8e1b25da3dbb055b901db6bfd827cae415d73189c002c7faf938d47c18147ee9733451

저주 받은 굴에 처음 도달하고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겪은 '함정'에 의해 편집증에 시달리던 나는 고작 물줄기 따위에 과민반응을 보이며 흥분하기 시작했고.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e881b21da3dbb055b90e4a7875c81aa6311a981a779c8261eaa175451bcd7b0452ba626

못을 밧줄로 담궈서 확인해보고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e8b1f24da3dbb055b9014429af8b0ca284ec9a16fd385ebf6285dfd01d3ccc0e482b931

원숭이도 선발대로 보내본 결과, 일련의 모든 의심과 행동들이 모두 헛짓거리라는 결과를 도출 해낼 수 있었다.

7ee58675b28068e864afd3b258db343af72a7041655212511ec5e5a2

물줄기 너머에는 두 개의 문이 존재했는데, 내 머릿 속에서는 문을 열자마자 가시가 달린 쇠판이 머리통을 후려 갈기는 망상이 떠올랐고 원숭이에게 모든 일을 전담하였다. 문 너머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별 것 없이 누군가 살고 있었던 흔적들만이 가득했다.

나는 플레이 내내 pc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의심하며 아주 조심히 나아갔고 생각 외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자, 아주 조금은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플레이를 하던 중에.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f891b20da3dbb055b90aeb5675df86043b5407b55c6d19b55d80f01af940b0e730ea9

페트로브가 연 석관에 빨려들어가 어디인지 모를 곳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f8b1a26da3dbb055b90e37ca7686d0a50ccbba5c3934f1c6e6aa1f9a9aae6fd9403c94b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었고 저주 받은 굴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한 공간과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술을 권유 받았지만, 이런걸 받아 들일 정도로 순진한 이는 없었기에 모두들 거절했다.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f8e1c25da3dbb055b902ec681309142c8ddeb7966f786976281ee676fffd4ba088d96e9

우리는 이들의 권유를 거부하면서 온건히 지나치려 했지만, 이 선택이 얼마나 그른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f8f1b21da3dbb055b904031804c022c00f6032c01d58ddc35e2140c7c1d2b2013e4caf8

그냥 보자마자 안전하게 대가리를 깨버렸어야만 했다.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f801b20da3dbb055b902d31bc1a8a3d456f0cfa57c44221a866fe09d8b96523553531cb

시작하자 마자 페트로브가 젊은 이들에게 무참히 살해 당하고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c8b1f2ada3dbb055b90085fbccadba4480a13a6a785afd9b37424d02798718b0c1f4806

스타인 섄은 실력으로 버텨내는 듯 싶었지만,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c8c1b2ada3dbb055b90b19e9a88fcaa235fb4fa9d1287cc7232cf3a5b164d4aec2e3f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c8d1c24da3dbb055b909bc1430698150c98039f2a074f0782b079b553402182873400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c8c1d2ada3dbb055b90c5df9eb3b379a089816c82fa6794cc3552196480f07c3783dc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c801d20da3dbb055b908f2318defd7292c7491f9efe546a8541a231bf2909dde2ba555d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c811a21da3dbb055b90ece0801ba1bf6e15ced8aef0c8d4695102c522f9aa1d268b0b

다이스 억까로 사망하게 되었다.


1ebec223e0dc2bae61abe9e74683776d31540413f9189c8f1f2ada3dbb055b90fce6bb8bb47551754987367c8f4a4ee430fa236fef0ed27c0b

퀄내치도 꽤나 분전해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래 가지 않아 젊은이에게 사망하고 말았다.

그림자 왕의 아들은 얼굴 조차 보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굉장히 즐거운 세션이었다.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며 던전을 나아가고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한다.

잃은 것이 즐거웠다. 모크보그에서는 인간다운 사고를 하면 빨리 죽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다음에는 저주받은 굴의 끝까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플을 끝냈다.

모크보그는 플레이어들이 자유로운 선언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어서 꽤나 즐거웠음, 가지고 있는 소지품들을 활용하여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지에 대한 고민이나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정말 좋았음.

기회나 관심이 있다면, 모크보그는 해보는 것을 추천함.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