턀글 아니라고 짤려도 할 말은 없는 잡소리이자, 일하기 싫어서 쓰는 헛소리.
해당 룰북의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크툴루의 부름은 1926년의 여름에 쓰였고 1928년 Weird Tales이라는 펄프 잡지에 실리는 것으로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단편 소설은 화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종조부의 유산에서 상형 문자가 새겨진 기이한 석상을 발견하게 되고 이에 호기심을 느낀 주인공은 이 석상에 대해 조사하게 되며 그것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들을 쫓다가 그 석상의 존재가 무엇이고 그 존재가 무엇을 하려는 지에 대해, 그가 감당 못 할 진실을 알아내고는 두려워하며 끝이 난다.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친숙한 혹은 처음 보는 이 문어 대가리 신은 이 단편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에서 크툴루가 다시금 언급되는 일은 없다.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들은 대부분 단편이며 물론 중장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랜돌프 카터 연작이나 리 애니메이터가 그 예시지만, 러브 크래프트는 당대에 인기 있는 작가는 아니었으며 펄프 잡지에 단편을 게재하여 간신히 먹고 사는 작가였다. 지금의 인지도는 후에 생겨난 것으로 니알라토텝, 아자토스, 슈브 니구라스, 크툴루 기타 등등 이들은 대부분 일회성으로 출연했다.(니알라토텝 제외)
그렇다, 크툴루 신화는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크툴루'신화란 무엇인가?
그건 이 어거스트 덜레스 라는 작자가 만든 것으로 그는 분명, 러브 크래프트를 대중이 인지하게 만든데에 톡톡히 역할을 해내었지만, 악신과 선신의 분화와 크툴루 신화의 그레이트 올드원들에게 각자 4원소의 속성을 부여하는 등 눈 꼴시운 일들도 저질렀다. 덜레스는 러브 크래프트의 사후에 아캄 하우스를 설립하고 러브 크래프트가 Weird Tales에서 연재한 것들을 모조리 출판 했는데.
재밌는 사실은 이 새끼는 이짓거리를 할 때, 러브크래프트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1도 없었다. 즉, 해적판을 당당히 처낸 것이었다. 그러나 덜레스가 소송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어찌 된 것인가 하니?
러브크래프트는 사후 자신의 미발표 저작물 그리고 저작물을 관리 할 권리를 로버트 발로우(위의 사진 속 사내)에게 내주었다. 발로우는 13살 때부터 러브크래프트와 불알친구였고 러브크래프트와 공저로 6편의 이야기를 쓸 정도로 친밀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작품을 관리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고 발로우가 필사한 덕에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로버트 발로우는 공식적인 러브크래프트의 저작물 관리인이었다. 그러나 오거스트 덜레스라는 광인은 러브크래프트의 저작물에 대한 집착이 극심하였고 내가 '크툴루 신화'를 정립했으니, 러브크래프트의 저작물들은 내가 관리해야 한다는 망상을 하고는 즉각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을 시작하였다.
오거스트 덜레스, 이 광인은 도널드 윈들레이라는 작가와 함께 어떠한 권한이 없음에도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 속 가상의 마을 '아캄'에서 따와 아캄 하우스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들을 출판한다.
이 광인은 '자신과 윈들레이가 러브 크래프트의 유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라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발로위가 가진 러브 크래프트 저작물 권리를 부정하였고 호시탐탐 러브 크래프트의 저작물 권리를 얻기 위해 기회를 노리던 와중에.
1941년에 러브 크래프트의 유산 상속자이자, 이모인 애니 에밀리 필립스 감웰이 임종을 눈앞에 두자 찾아가서 상속인들에게 자신에게 권한을 달라며 요구한다.
진짜 제정신이 아닌 새끼일 수가 없다.
아무튼 덜레스는 감월의 상속인인 모리시와 루이스에게 러브 크래프트의 저작물을 출간하고 판매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게 되어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어 내고야 만다.
그럼, 저작권을 가진 발로우는 이 광인의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안타깝게도 발로우는 그리 적극적으로 러브 크래프트의 저작물 권한을 주장하지 않았고 1951년에 멕시코 시티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하여, 오거스트 덜레스는 더는 자신을 막을 것이 없어진 것이었다.
이리하여, 오거스트 덜레스는 온연히 러브 크래프트의 저작물을 손아귀에 쥐어내는 듯싶었으나, 그의 사후에 러브 크래프트의 저작물 권리에 관해 큰 문제가 하나 생기는데....
나중에 심심하면 품.
- dc official App
코스믹 호러 좀 섞으면 시나리오 하나 뚝딱이겠네요
크툴루라는 고유명사 자체는 다른 작품에서도 간간히 나왔잖아.... 그리고 발로우는 그리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를 넘어서 아예 여론전 등에서 "이새퀴가 러브크래프트 유산 관리 개못한다~"등의 썰을 풀어댄 덜레스에게 밀리고(사실 덜가놈이 들고 일어난 동기도 내가 해도 저거보단 잘하겠다였긴 함), 멕시코 가서 인류학 쪽 일한 거. 그리고 나중에 한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아캄 하우스가 잊어먹고 저작권 연장 안 했다가 나중에 어?한 거 이야기할 거 같은데스웅
여기서 왜 발로가 발렸나 궁금해 하는 갤럼도 있을 텐데, 발로는 1918년생이라 러브크래프트가 죽은 1937년에는 만 20살도 안 된 애였거든. 본문에는 13살 때부터 불알친구 어쩌고 써 놨는데 당시 얘가 13살인 거고, 러브크래프트는 얘보다 18살 많으니 30대 아저씨였다. 그러니 러브크래프트가 죽으면서 얘한테 유산관리를 맡겼고, 그걸 또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덜가놈이 기회다 싶어서 치고 나간 거. 여담으로 그래서 왜 발로에게 맡겼나에 대해서는 발로가 게이였다는 것을 두고 사실 러브크래프트도 게이 아니었을까 하는 설도 있긴 하고 뭐 그래.
발로우가 13살이었나? 기억에 의존해 쓴것이라 틀린 것이 있어서 불편했으면, 미안해. 발로우 이야기는 자세히 쓰지 않은 것은 그냥 그 말로가 너무 쓸쓸해서였음. 당시 시대에 아웃팅 당해서 사회적으로 고립될 것이 분명한 상태에 압박감에 자살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앨런 튜링 같아서 안쓰러웠거든. - dc App
불편까지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여론전 내용 중에도 덜가놈이 발로가 러브크래프트 책같은 거 돚거했다고 주장한 거도 있었나 그렇고 하여튼 발로가 꽤 불쌍하게 살다가 갔지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는건데, 정정해줘서 고마워. - dc App
크툴루를 보고 미쳐버린 광인의 이야기를 보고 미쳐버린 광인의 이야기
https://m.dcinside.com/board/lovecraft/1910
크툴루
갤러리로 오시면 덜레스의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당. 우리 덜레스 너무 미워하지만은 마 - dc App
내가 쓴건 아니고 갤주가 씀 - dc App
덜레스의 인스머스의 진흙 같이 괜찮은 단편들을 썼다는 것과 그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위해 한 헌신들은 인정하지만, 사람은 못 되먹었어. - dc App
카오시움이 거기에 또 지랄을 한사발 더 퍼부은 것도 나오나